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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논 위의 햇빛이 원전을 밀어낸다ㅡ영농형 태양광과 농촌형 V2G가 여는 진정한 탈원전의 미래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06|조회수186 목록 댓글 0

[칼럼초고] 논 위의 햇빛이 원전을 밀어낸다ㅡ영농형 태양광과 농촌형 V2G가 여는 진정한 탈원전의 미래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구글제미나이3 + AI Claude Sonnet4.6
2026-06-06

태풍이 준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초가을 태풍이 올 때마다 두 가지 소식이 함께 온다. 나쁜 소식은 원전이다. 몇 해 전 연거푸 몰아친 태풍 때 원전 6기가 어이없이 정지되면서 나라가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
좋은 소식은 논이다. 거센 바람에도 논 위에 세워 둔 태양광 설비들은 끄덕 없었다. 전남 보성의 어느 논, 경지정리된 반듯한 논 위에 한 자 남짓한 폭의 패널들이 기초를 튼튼하게 박고 서서, 태풍이 빠져나가기 좋게 열린 채로 버텨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바현은 태풍 때 곳곳에서 전신주가 쓰러지며 수십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지만, 논 위의 영농형 태양광(Solar Sharing) 시설은 멀쩡했다.
이 대조가 모든 걸 말해준다. 원전은 태풍 한 번에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논 위의 패널은 태풍을 이긴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발전원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토 공간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그 부가가치를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선택이다. '밀양의 눈물'로 대표되는 송전탑 갈등, 후손에게 떠넘기는 핵폐기물, 부하추종이 안 되어 블랙아웃 위험을 항상 안고 사는 원전. SMR도 이 본질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답의 출발점은,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우리의 경지정리 논에 있다.

벼는 원래 그늘을 좋아했다

여기서 잠깐, 벼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견된 1만5천 년 전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재배벼와는 유전적으로 40%밖에 닮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볍씨는 숲을 조금씩 불태워 짓는 화전밭의 것이었다. 그늘과 산란광 속에서 자라는 DNA였다. 인류가 그 볍씨를 평지의 논으로 데려와 수경재배를 하면서, 벼는 스스로 직사광선에 적응해 왔다. 그런데 지금의 벼도 광합성에 필요한 물보다 직사광의 고온을 냉각시키기 위해 물을 더 많이 쓴다. 직사광이 지나치게 강해도 광합성이 더 늘지 않는다는 '광포화점'이 존재한다.

즉, 햇빛을 3분의 1쯤 가려도 벼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적당한 그늘은 물 소비를 줄이고, 폭염을 막아주며, 태풍에 벼가 쓰러지는 것도 줄여준다. 사람이 논에서 김을 매기에도 시원하다. 물을 적게 써도 된다는 것은 메탄 발생을 줄여 기후에도 이롭다.

전남 보성의 어느 논에 설치된 99kW ‘영농형 태양광’. 벼는 원래 그늘이 있는 산란광에서도 잘 자란다. (사진은 (사)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실증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66개 실증단지를 6년간(2016~2021) 전수 조사한 결과, 차광률 30% 이내에서 대부분 작물의 생산성이 80% 이상 유지됐다. 배추 –7%, 양파 –11%, 마늘 –18%로 감수율이 20% 이하였으며, 녹차·무화과·포도는 오히려 품질이 향상됐다.
일본 치바현에서는 추적식 패널을 단 벼 수확량이 96.7%까지 유지됐다. "햇빛을 나눈다"는 표현이 딱 맞다. 논이 에너지와 식량을 함께 생산하는 것이다.

단, 이 평균 뒤에는 경고도 있다. 설계가 잘못되면 감수율이 71%라는 극단 사례도 나왔다. 그래서 영농형 태양광의 전국 확대는 반드시 '수확량 80% 미만이면 즉시 허가 취소'라는 일본식 제도와 세트여야 한다. 이 안전판이 있어야 차광 30%가 진정한 공존의 선이 된다.

600평의 표준 유닛, 12억 평의 국토 전략

설계 실무에서 가장 합리적인 기본 단위는 600평(약 2,000㎡)이다. 농지법상 농업인 자격을 유지하는 최소 기준에 부합하고, 농기계 회전 반경과 작업 동선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 공간이기도 하다. 차광률 30%를 적용하면 600평당 100kW가 도출된다. 사례들을 보면 월 전기판매액이 2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고, 20년 장기 고정단가 계약(한국형 FIT)이면 농촌에서는 실로 큰 안정 수입이다.

이것을 국토 전략으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현재 가동 중이거나 계획 중인 원전의 총 설비용량은 약 32GW다. 원전 이용률(80%)과 태양광 이용률(15%)의 차이를 반영해 실질 발전량 기준으로 환산하면, 원전을 전면 대체하는 데 필요한 영농형 태양광 규모는 약 170GW다. 600평당 100kW 기준으로 계산하면 총 12억 평이 필요하다.

12억 평이 천문학적으로 들리는가. 그런데 현재 기계화 영농이 가능하도록 정비된 경지정리 논이 전국에 약 15억 평 있다. 그 80%의 상부 공간만 공유해도 이론적으로 국내 원전 전체를 대체할 수 있다. 전체 농지(논+밭 약 44억 평) 기준으로는 4분의 1이다. 산림을 깎아 설치하는 대지형 태양광과 달리, 농지 고유의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에너지 주권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다. 10GW 설비에 전국 농지의 1.5%면 족하다는 말도 있다. 그 방향을 쭉 밀면, 머지않아 모든 발전소를 대체할 수도 있다.

이앙기에 손자를 태우고 모심기를 하는 할아버지의 풍경. 그 논 위에 패널이 펼쳐지고, 그 패널이 할아버지의 노후 연금을 만들어낸다면 어떨까. 농촌은 더 이상 떠나는 곳이 아니라 돌아오는 곳이 된다. @김효빈

'바퀴 달린 ESS', 농촌형 V2G의 서막

문제가 하나 남는다. 170GW의 태양광이 낮 시간대에 한꺼번에 쏟아지면 전력망이 버티지 못한다. 이른바 덕 커브 문제다. 수십조 원의 고정형 ESS를 짓는 대신, 이미 논밭에 있는 것을 쓰는 방법이 있다. 바로 V2G(Vehicle to Grid),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과 연결하는 기술이다.

비수도권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1,490만 대다. 이 가운데 55~65%가 V2G 가능한 전기차로 전환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전망하는 2035년 전기차 보급 목표(전체 차량의 약 60%)에 근거한 낙관적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12억 평의 영농형 태양광이 낮 동안 생산하는 잉여 전력(하루 약 400GWh)을 배터리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미국 농업 현장이 이 가능성을 먼저 증명했다. 캘리포니아 에너지위원회(CEC) 주도로 모나크 트랙터(Monarch Tractor), 보그워너(BorgWarner), 그리드트랙터(Gridtractor)가 함께 진행한 V2G 실증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전기 자율주행 트랙터 'MK-V'는 농번기엔 밭을 갈고, 비농번기와 야간엔 분산형 발전소로 돌변한다. 단 10대만 묶어도 1MW짜리 배터리 거점이 생긴다. 낮에 태양광 잉여전력을 트랙터 배터리에 채워두었다가 저녁 피크에 역으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농민들은 단 3시간의 역송전만으로 일주일 치 트랙터 운영비를 충당하는 새로운 수입원을 얻었다. 디젤 연료비 절감은 덤이다.

한국도 1톤 화물트럭을 비롯한 농촌 차량의 전동화가 이 방향으로 가면, 농기계 마당이 곧 분산형 발전소가 된다.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계통이다
기술은 이미 왔다. 문제는 한국의 제도와 계통이 이 기술을 받아낼 준비가 됐느냐다.

현재 농촌 배전망은 전력이 발전소에서 수요처로 일방향 흐르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170GW 규모의 태양광이 곳곳에서 발전하고, 수백만 대의 전기차가 피크 시간에 전력을 역으로 쏟아내면, 기존 단방향 변압기와 계량기는 버티지 못한다. 쌍방향 지능형 계량기(Smart Meter) 교체와 농촌 배전망 디지털 전환이 우선이다.

두 번째 벽은 한국전력의 구조다. V2G 역송전 수익은 농민에게는 햇빛연금이지만, 발전·판매 독점 구조에는 위협이다. V2G 역송전 우대 요금제와 독립계통사업자(ISO) 중심의 전력시장 재편이 함께 가야 한다. 기술이 제도보다 훨씬 앞서 달리고 있는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이 전략의 최대 병목이다.

햇빛연금이 농촌을 살린다

이 두 병목을 뚫어낼 때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12억 평의 농지 상부 에너지가 소수 대기업이나 외지 자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공간을 에너지 공유부로 지정하고, 주민 참여형 협동조합을 통해 발전 수익을 고령 농가와 지역 청년들에게 '햇빛연금'으로 재분배해야 한다. 농지가 곧 연금 통장이 되는 구조다.

햇빛연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면, 인구 정착과 식량 안보 두 문제가 동시에 해소된다. 지방 소멸의 근본 원인은 소득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하부에서 식량을 기르고, 상부에서 청정에너지를 수확하며, 마당의 농기계 배터리로 전력망을 컨트롤하는 농촌—그것은 쇠락하는 1차 산업 기지가 아니라 첨단 에너지 안보 거점이자 지방 재생의 경제 주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늘 DNA를 회복한 새 품종의 볍씨도 개발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차광률을 높여도 수확량이 늘어나는 진정한 이모작, 즉 농업과 에너지의 완전한 결합이 가능해진다.

자포리자와 부쉐르에서 보듯, 원전이라는 핵지뢰가 전쟁터에 묻혀 있는 한 에너지 안보는 언제든 인류 안보의 재앙이 된다. 햇빛은 공짜고 깨끗하다. 고압선과 철탑도 필요 없다. 600평의 반듯한 논 한 필지에서 시작한 이 국토 재구조화 전략이야말로, 지방 소멸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자, 대한민국이 핵지뢰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는 진정한 탈원전의 이정표다.

뜻이 있는 모든 농민에게 녹색금융과 행정 지원을 아낌없이 펴는 것—이게 진짜 그린뉴딜이다.

[원고 주] 차광률·감수율 데이터는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국책과제(2016~2021) 전수 조사 및 녹색에너지연구원 실증 자료에 근거함. V2G 전환율 55~65%는 한국자동차연구원 2035년 전기차 보급 목표를 기준으로 한 낙관 시나리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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