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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에너지 거버넌스의 직무유기,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지붕형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으로 여는 분산형 에너지 주권 시대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0|조회수50 목록 댓글 0

[시론] 에너지 거버넌스의 직무유기,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지붕형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으로 여는 분산형 에너지 주권 시대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2026-06-10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지난 15년간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성적표는 참담함을 넘어 절망적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관들의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1인당 태양광 전기 생산능력은 이웃 나라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거대한 인구 규모를 가진 중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실질적인 체급과 성장 속도 면에서 3분의 1 선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글로벌 시장이 RE100(재생에너지 100%)을 무기로 우리 제조기업들의 목을 죄어오는 지금, 대한민국 국토는 거대한 잠재력을 품은 채 마비되어 있다.

에너지 거버넌스의 직무유기

이러한 에너지 마비 상태는 최근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인해 국가적 생존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그야말로 '전기 먹는 하마'다. 생성형 AI 검색 한 번에 기존 포털 검색보다 10배 이상의 전력이 소모되며, 거대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웬만한 중소도시 전체의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이 치열한 AI 패권 경쟁 속에서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다급한 시점에 일각에서는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이 대안이라며 대대적으로 군불을 지핀다. 그러나 이는 현장의 시간표를 모르는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SMR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제대로 된 상용화 실험조차 끝나지 않은 '미완의 기술'일 뿐이다. 설계 인증을 받고 부지를 선정해 실제 가동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입지선정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부하추종때문에 감발의 위험을 무릅쓰야하는 원전 그리고 건설에 10년이 넘게 걸리는 원전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물롬이다.

당장 올해와 내년, 전력 부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AI 시대의 폭발적인 수요에 10년 뒤에나 올지 모를 가상의 원전으로 대응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안전성 검증과 공학적 실패 위험,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비용까지 계산하면 결코 싸지도 않다. 원전은 한번 켜면 출력을 쉽게 조절하지 못해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전력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부하추종'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약점도 안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빠르고, 가장 싸며, 갈등이 없는 '현실적인 에너지 대안'이다. 그 해답은 머나먼 원전 기술이 아니라, 이미 우리 국토에 펼쳐져 있는 두 개의 거대한 공간, 즉 ‘도심의 텅 빈 지붕’과 ‘농촌의 넓은 논’ 위에 내리쬐는 공짜 에너지에 있다.

전국 지붕 위의 '공짜 에너지'를 깨워라

가장 먼저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책은 이미 개발되어 매일 햇빛을 받고 있는 전국의 지붕 면적을 100% 활용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산업단지와 제조공장, 대형 물류창고, 공공기관의 지붕 면적을 모두 합치면 최대 2억 8천만 ㎡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산을 깎거나 논밭을 없애는 토지 갈등 없이, 이미 존재하는 건축물 위에 ‘에너지 생산층’을 한 겹 더 얹는 다층적 국토 이용이 가능한 황금 같은 유휴 부지다.
이 텅 빈 지붕들만 제대로 깨워도 설비 용량으로 최대 43GW, 즉 대형 원자력 발전소 40기 분량의 전력을 즉시 확보할 수 있다. 인허가에 몇 달, 공사에 1~2년이면 끝나는 지붕형 태양광이야말로 폭증하는 AI 전력 수요에 실시간으로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그러나 현재 전국의 수많은 지붕 중 실제 태양광 패널이 얹어진 곳은 고작 10% 안팎에 불과하다. 90%의 도시 지붕 공간이 행정의 방치 속에 버려져 있다.

지방소멸의 대안 —영농형 태양광과 농촌형 V2G의 결합

도시의 지붕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는 '영농형 태양광(Solar Sharing)'을 정책적으로 우선 추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전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소멸해가는 농촌을 살리고 국가 에너지 구조를 분산형으로 바꾸는 고차원적 국토 전략이다.
그동안 태양광은 ‘농지 잠식’과 ‘식량 안보 저해’라는 해묵은 반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식물의 생태적 사실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원 소로리 볍씨(1만 5천 년 전)의 DNA가 증명하듯, 본래 벼는 숲속의 그늘과 산란광 속에서 자라던 작물이다. 현대의 벼 역시 직사광선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광합성량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광포화점'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한여름의 강한 직사광선은 벼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벼는 고온을 냉각시키기 위해 과도한 물을 소비한다.
논 위에 일정한 높이와 간격으로 한 자 남짓한 폭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영농형 태양광은 햇빛을 약 3분의 1쯤 가려준다. 이 적당한 그늘은 폭염으로부터 벼를 보호하고 토양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며, 메탄 발생을 줄여 기후에도 이롭다.
실제로 초가을 거센 태풍이 올 때마다 원전들은 무더기로 정지되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지만, 기초를 튼튼하게 박고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설계된 논 위의 영농형 패널들은 끄떡없이 버텨냈다.

태양광이 농사를 망치는 게 아니라 벼를 보호하고 농부를 시원하게 만드는 상생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인구소멸 지역의 농민들에게 영농형 태양광은 확실한 '기본소득'을 보장한다. 농사 수익에 더해 지붕과 논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발전 수익이 결합되면 농가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 청년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제적 유인책이 된다.

여기에 '농촌형 V2G(Vehicle-to-Grid)' 기술을 결합하면 금상첨화다. 농촌의 필수품이 된 전기 트럭이나 전기 농기계들이 낮 동안 논 위에서 생산된 공짜 전기를 가득 채우고, 전력 수요가 폭등하는 저녁 시간에는 이 전기차 배터리들이 거대한 분산형 가상발전소(VPP) 역할을 하며 한전에 전기를 역송전(V2G)하는 것이다. 이는 수조 원을 들여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미완의 SMR보다 훨씬 저렴하고 유연하게 전력망의 균형을 잡아내는 현실적인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된다. 이미 미국에 본격 적용중이다.

거버넌스의 직무유기와 지산지소(地産地消)의 과제

기술도 있고 부지도 넓으며 농촌을 살릴 대안도 명확한데, 왜 우리는 아직 태양광 시대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까.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고 이끌어야 할 공공 에너지 거버넌스가 철저히 기능을 상실하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거버넌스 실패는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부처 간 칸막이 행정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다. 지붕형과 영농형 태양광을 활성화하려 해도 산업부는 보급 수치에만 급급하고, 국토부는 건축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며, 농림부는 농지 보존이라는 교조적 틀에 갇혀 있다. 지자체들은 민원을 핑계로 도로와 주거지로부터 수백 미터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초법적 ‘이격거리 규제’를 남발하며 국토를 사장시키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통합 관리하는 강력한 사령탑이 없다.

둘째, 선제적 인프라 투자의 실패로 인한 전력망의 동맥경화다. 지금 현장에서는 태양광을 지어놓고도 전기를 보낼 ‘길’이 막혀 있다. 전력망(송배전망) 확충은 최소 10년을 내다보고 공공이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영역임에도 단기적 성과주의와 관료적 타성에 젖어 타이밍을 놓쳤다.
그 결과 호남과 제주 등지에서는 멀쩡한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출력 제어’가 일상화되는 황당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생산한 지역에서 전력을 직접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기반의 분산형 에너지 수급 거버넌스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대규모 원전이나 화력발전소를 변두리에 짓고 수백 킬로미터의 송전탑을 세워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대량생산·장거리 송전 방식은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도, 지역 형평성 측면에서도 이미 수명을 다했다. 산업단지 지붕에서 만든 전기는 그 산업단지 내의 AI 데이터센터와 공장이 쓰고, 농촌 논 위에서 만든 전기는 농촌의 전기차와 지역 커뮤니티가 소화하는 지산지소 체제가 정착되어야 송전탑 갈등과 전력망 포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셋째, 관료 주도형 밀실 행정과 주권자의 소외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소수 관료와 대형 발전 공기업의 중앙집중식 의사결정 구조에 갇혀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공장의 노동자, 지역 주민, 농민들이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철저히 배제되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핵심 정책이 통째로 흔들려도 이를 방어할 사회적 합의나 시민적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권자 중심의 공공 거버넌스 개혁을 촉구한다

비어 있는 수억 평의 지붕을 전면적으로 깨우고, 소멸하는 농촌의 논 위에 영농형 태양광을 심어 대한민국을 진짜 태양광 시대로 진입시키는 힘은 단순한 시장의 논리나 경제적 유인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국토의 입체적 효율화와 에너지 주권을 국가의 핵심 자산으로 통찰하는 선진적인 공공 철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과감한 거버넌스 개혁에서 시작된다.
이제 관료 독점형 의사결정 체제를 깨부수어야 한다. 뜬구름 잡는 10년 뒤의 SMR 미궁에서 벗어나, 당장 전국의 지붕과 논을 에너지 자산으로 편입시키는 과감한 입법과 행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주권자인 시민과 현장 농민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새로운 분산형 에너지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미래 세대의 생존과 국가 경쟁력이 걸린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버넌스의 직무유기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당장 전국의 지붕을 개방하고, 인구소멸 농촌 지역의 영농형 태양광 빗장을 풀고, 지산지소의 분산형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 전력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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