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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유부개혁당'으로 민족연합시대를 대비하자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1|조회수82 목록 댓글 0

[칼럼] '공유부개혁당'으로 민족연합시대를 대비하자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2026-06-11

올해 봄 캘리포니아의 어느 저녁, 사막에 펼쳐진 수십 기가와트 태양광 패널들이 해질 무렵 일제히 잠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퇴근한 시민들이 불을 켜고 가전제품을 돌리며 전력 수요가 수직으로 솟구쳤다. 과거라면 대형 가스발전소들이 화석연료를 태우며 헐떡였을 시간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달랐다. 12기가와트가 넘는 배터리 저장장치들이 낮 동안 머금어두었던 전기를 조용히 도시의 핏줄로 내보냈다. 굴뚝은 매연을 뿜지 않았고 전력망은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다.
같은 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주택가에서는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과를 마친 주민들이 공유 전기차를 집 앞 충전기에 꽂자, 차들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력망으로 전기를 되돌려주었다. 낮 동안 지붕의 태양광 패널이 모아둔 햇빛을 배터리에 저장해두었다가 저녁 피크 시간에 동네 전체로 공급하는 것이다. 500대의 전기차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것만으로도 마을 전체 전력 수요의 10분의 1을 가볍게 감당해냈다.

이것은 공상과학이 아니다. 지금 지구 곳곳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두 장면 속에 어떤 문명사적 전환이 숨어 있다. 에너지의 본성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의 본성이 바뀌면, 권력의 구조도 평화의 조건도 함께 바뀐다. 바로 이 전환 속에서 지금 한반도의 문제를 다시 읽어야 한다.

한반도에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북한(조선)은 오랜 세월 유지해 온 민족과 통일의 담론을 공식 폐기하고,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다. 냉혹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억지스러운 감상주의나 흡수통일론은 파산했다. 서로의 체제와 주권을 인정하는 두 국가 체제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예방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남한의 경제 모델, 즉 토지와 금융을 소수가 독점하여 불로소득을 취하는 투기 자본주의를 그대로 들고 북한과의 경제 연합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남한의 기획 부동산과 금융 자본이 북한의 토지와 인프라를 사유화하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 양국 간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다가올 민족연합시대의 경제 연합은 철저히 공유부(Common Wealth) 개혁의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갈 정치적 결사체로서, 우리는 이제 (가칭)'공유부개혁당'의 창당을 구상하고자 한다.

공유부의 세 가지 몸통

공유부란 인간이 스스로 만들지 않았으나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혜택,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신뢰와 노력과 인프라를 통해 발생하는 모든 풍요로움이다. 우리가 개혁의 칼날을 겨누어야 할 대상은 세 개의 몸통이다.

첫째는 지대공유부, 즉 지대개혁이다. 땅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토지 가치가 오르는 것은 그 주변에 도로가 놓이고, 지하철이 뚫리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회 전체의 노력 덕분이다. 그런데도 그 이익, 지대(Rent)는 지주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것은 도둑질이다. 다만 합법화된 도둑질일 뿐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유부 환수의 순간은 1950년 조봉암의 농지개혁이었다. 해방 직후 소수 지주가 독식하던 토지의 공유부를 소작농들에게 돌려주었더니, 전 국민의 교육 열풍이 일어났고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만든 인재강국의 원동력이 되었다. 부동산을 투기와 소유의 가치에서 사용과 공유의 가치로 전환하는 것, 지대개혁의 요체는 그것이다.

둘째는 금융공유부, 즉 금융개혁이다. 시중은행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빚과 부동산 담보를 근거로 장부에 숫자를 적어 화폐를 창조한다. 이른바 신용창조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민간 은행이 천문학적인 이자 수익을 독식할 수 있는 이유는 중앙은행과 국가 시스템이 이 신용을 보증해 주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국가가 짓고 관리하는 공항에서, 착륙료를 사기업이 혼자 받아 챙기는 것과 같다. 화폐의 발권력은 명백한 사회의 공유부다. 그것을 민간 사기업이 독점하여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 과잉 이득을 공유부 부담금으로 회수하는 것이 금융 정의의 출발점이다.

셋째는 에너지공유부, 즉 생태개혁이다. 하늘이 준 햇빛과 바람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다. 전남 신안군은 이것을 먼저 알아챈 곳이다. 태양광·풍력 발전 이익을 주민들에게 햇빛연금으로 배당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인구가 유입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선례이지 완성이 아니다. 대자본이 발전 부지를 독점해 재생에너지 이익을 사유화하는 구조를 막고,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국가가 책임지는 에너지 고속도로로 구축해 그 혜택을 시민 전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구조는 이 전환 과정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할 낡은 패러다임이다.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

공유부 개혁 운동은 인류 정당사에서 끊임없이 시도되어 온 검증된 노선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주창한 지대 환수 사상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정당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1886년 미국에서는 헨리 조지를 뉴욕시장 후보로 추대하며 창당된 연합노동당(United Labor Party)이 31%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1924년에는 당명에 공유부를 명시한 공유지대당(Commonwealth Land Party)이 등장했고, 1942년 영국에서는 주요 자원의 사적 독점을 비판한 공유부당(Common Wealth Party)이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가장 성공적인 제도권 진입 사례는 덴마크의 정의당(Retsforbundet)이다. 1919년 창당된 정의당은 노동으로 만든 자산에는 세금을 매기지 말고, 자연과 공동체가 만든 토지 가치에만 세금을 매겨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정교한 정책을 폈다. 1950년대 후반 연립정부에 참여해 이를 일부 실현했을 때, 토지 투기가 사라지고 갈 곳 잃은 자본이 생산적인 기업 혁신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이룩하는 경제적 기적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 정당들에는 공통된 한계가 있었다. 주로 거두어들이는 방법, 즉 토지세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기득권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세금을 새로 만드는 정당이라는 오해를 샀다. 빼앗는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운동은 수세에 몰렸다.

구성하고 있는 공유부개혁당은 이 한계를 뛰어넘도록 한다. 토지를 넘어 금융과 에너지까지 공유부의 범위를 거시경제 전체로 확장하고, 동시에 원내 정당인 기본소득당과의 정책적 연대를 통해 환수된 공유부를 전 국민에게 100% 기본배당으로 돌려준다는 분배 채널을 결합하는 것이다. 빼앗는 정당이 아니라, 숨겨진 국민의 몫을 찾아 지갑을 채워주는 대안 경제 정당, 그것이 공유부개혁당의 존재 이유다.

화석은 고립을 낳고, 햇빛은 연결을 부른다

여기서 다시 캘리포니아와 위트레흐트의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두 장면 속에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에너지가 가진 본원적인 철학의 전환이 담겨 있다.

석유·석탄·가스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는 본질적으로 고립과 독점의 에너지다. 특정 지역에만 매장되어 있고, 대규모 자본과 권력이 채굴하여 거대한 저장고에 쌓아두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화석연료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독점의 역사였고, 지배의 역사였으며, 그 독점권을 빼앗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의 논리를 낳았다.
중동의 전쟁도,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도 결국 화석연료가 가진 고립성과 유한성에서 기인한다. 국가 권력이 통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대형 핵발전 역시 이 독점과 고립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반면 햇빛과 바람은 본성적으로 연결과 공유를 요구한다. 햇빛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으며 지구상 어디에나 내리쬔다. 다만 기후와 시간에 따라 변덕스러울 뿐이다. 이 변덕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재생에너지가 선택한 진화의 방향이 바로 연결이다. 넓은 지역의 전력망을 하나로 묶고, 남는 곳의 전기를 부족한 곳으로 실시간으로 나누며, 수백만 개의 미시적인 배터리를 연결할 때 재생에너지는 비로소 화석연료를 압도하는 가장 강력하고 안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이 차이는 문명사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한다. 독점 가능한 에너지가 지배와 전쟁을 불렀다면, 연결을 요구하는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협력과 공존의 논리를 부른다. 그리고 이 연결의 논리는 가정에서 단지로, 단지에서 섬으로, 국가에서 대륙으로 끊임없이 확장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외로운 전기적 섬(Electrical Island)이다. 대륙과의 전력망 연결이 없는 한, 우리는 언제나 에너지적으로 고립무원이다. 그렇기에 동북아 대륙과의 전력망 연계는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한반도의 생존 조건이자 분단 체제를 물리적으로 해체하는 평화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전기로 묶인 이웃은 서로를 겨누지 못한다

평화는 말의 성찬이나 선언문으로 오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틀리거나 국내 정치적 위기가 찾아오면, 수십 장짜리 불가침 선언문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인류는 잔혹한 전쟁사를 통해 뼈저리게 학습했다.

진짜 평화는 인간의 연약한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공격하는 순간 자신도 파멸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상호의존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작동한다.
가장 완벽한 모범 답안은 유럽연합(EU)의 출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의 핵심 군수물자였던 석탄과 철강의 권한을 양국 정부로부터 빼앗아 초국가적 기구에 귀속시켰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출범이다. 군수물자의 목줄을 서로가 공유하고 있으니, 상대방 몰래 전쟁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신뢰가 있어서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 상호 신뢰를 강제한 것이다. 이 당돌한 인프라의 통합이 자라나 오늘날 거대한 유럽연합을 일구어냈다.

이제 우리는 석탄과 철강의 시대를 지나 전력과 에너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평화의 중력을 만들어낸다. 초고압 직류 송전선은 양국의 심장을 연결하는 혈관과 같다. 일단 전력망이 연결되면, 전기를 끊는 순간 자국 전력망도 함께 붕괴할 위험이 생긴다. 전력망으로 묶인 이웃은 서로를 쉽게 겨누지 못한다. 이것이 기술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평화다.

이 구상이 매력적인 이유는 참가국들의 도덕적 선의가 아니라, 철저한 이해의 합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수출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송배전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며, 북한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요충지로서 전력망 통과 이익과 국가 전력망 재건의 혜택을 얻는다.

지대본위 화폐ㅡ민족연합시대의 마스터플랜

공유부 삼각 축을 확립하고 동북아 전력망 연결의 비전을 현실화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남북이 상생하는 경제 연합을 이룰 때 가장 큰 걸림돌은 화폐와 자산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교역할 것인가의 문제다. 북한의 토지는 기본적으로 국유화되어 있다. 여기에 남한식 사유화와 투기 메커니즘을 강요해서는 결코 연합할 수 없다.

필자는 지대본위 화폐라는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남북 평화경제 시대의 새로운 매개 화폐, 가칭 환(環)을 발행하되, 그 화폐의 가치를 토지의 사용가치 즉 지대를 본위로 하는 것이다. 사적 부동산 담보가 아니라 한반도 국토 전체의 잠재적 사용가치인 지대를 매개로, 즉 지대공유부를 담보로 삼는 것이다.

이 모델이 작동하면 남한의 투기 자본이 북한 땅을 사들이며 원주민을 쫓아내는 자본주의적 폐해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토지의 소유권은 각자의 체제에 묶어두되, 경협 특구와 인프라 개발에서 발생하는 사용 가치를 명확히 계산하여 공동 재원으로 환수한다.
또한 조선(북한)의 풍부한 햇빛과 바람, 수력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에너지공유부로 설정해 공동 투자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지대본위 화폐를 통해 양국 시민들에게 기후배당이자 평화배당으로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다.

체제는 두 개일지라도, 그들이 공유하는 국토와 자연에서 나오는 풍요로움은 하나로 묶어내는 방식이다. 물론 지대의 객관적 평가 기준, 남북 간 평가 기구의 설계, 초기 신뢰 구축의 단계적 경로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설계하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깃발을 들 때다

지금의 거대 정당들은 말로는 민생과 평화를 외치지만, 기득권의 표심과 투기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과감한 구조 개혁을 외면한 채 진흙탕 정쟁만 반복하고 있다. 민족연합에 대한 상상은 전무하다.
녹색당의 생태주의는 고결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대중의 지갑을 채워주지 못해 외연 확장에 한계를 겪고 있으며, 기본소득당은 배당의 정의를 외치지만 그 막대한 재원을 어디서 정의롭게 조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명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공유부개혁당은 이 간극을 채우는 정당이다. 도덕적 선언이나 규제가 아니다.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라는 철학 아래, 땅과 금융과 자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정의롭게 환수하는 원천(Source)을 다루고, 이를 배당(Distribution) 채널과 직결시켜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대안 경제 정당이다. 기존의 진보적 정당들과는 정책적 연대를 할 수 있다.

조선(북한)이 통일을 지웠다고 해서 낙담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낡고 감상적인 통일 프레임이 사라진 자리에, 남한 내부의 불평등을 치유하고 다가올 민족연합시대의 대전환을 설계하는 공유부 패러다임을 채워 넣을 기회다.

역사교과서에 있는 한민족의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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