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인디언 학살' 위령제ㅡ한미시민동맹의 K씻김굿을 상상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 여러 AI들
2026-06-14
미국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선의와 평화로 포장된 미국 문명에, 실은 유럽이 갖고 있던 식민적 침략의 속성이 깔려있음이 최근 몇년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구촌을 놀라게 하고 있다. 사연을 들여다 보면, 그 자신이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긴 했지만 그 전후로 크게 두 가지 파괴적 사건이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바 있다. 하나는 노예제 또 하나는 인디언 학살.
노예제는 남북전쟁으로 물꼬를 텄지만 원주민 인디언의 학살은 아직도 미해결 상태다. 포르투칼 스페인이 중남미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프랑스 벨기에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유혈지배하던 방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을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풍요의 상징'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풍요의 토대 아래 잠들어 있는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직시하고 있는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조직적 학살과 말살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인류사의 긴 흐름 속에서 미국은 현대 문명의 정점이자, 동시에 가장 거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것은 현대 미국 대외 정책의 작동 원리인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거대한 DNA로 남아,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상상을 한다. 태평양 건너, 아주 오래전 지질학적 이별을 겪었던 두 형제 민족이 미국 대륙의 심장부에서 만나 벌이는 'K-씻김굿'의 풍경을. 그런데 이 상상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꽤 단단한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유전적 형제, 1만 년의 기억을 잇다
최신 분자인류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북미와 남미 원주민들의 유전적 기원이 고대 동북아시아, 즉 바이칼 호수 일대를 중심으로 한 광역 집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집단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인과 원주민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거의 없다.
약 3만 5천 년 전, 빙하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해수면은 지금보다 120미터 이상 낮아졌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베링 육교(Beringia)'가 바다 위로 솟아올랐고, 우리 선조들과 가장 가까운 일부 집단이 그 초원을 건너 아메리카의 주인이 되었다. 약 1만 1천 년 전, 해수면이 오르자 그 육교는 다시 바다 아래로 잠겼다.
우리는 지질학적 변화에 의해 강제로 헤어진 이웃이다. 형제 집단인 증거는 신생아의 몽고반점이나 언어의 교착어적 구조 같은 표면적 유사성을 넘어, 자연을 대하는 샤머니즘적 영성에서 더욱 뚜렷하게 공명한다. 우리의 씻김굿과 원주민의 진혼 의식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즉각적으로 통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1만 년 전의 기억이 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노사이드, 사라지지 않은 문명의 DNA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건국 이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국가는 원주민들의 토지와 생명을 수탈한 정착민 식민주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19세기 서부 개척 시기, '명백한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원주민은 '제거해야 할 타자'로 규정되었다.
문제는 이 논리가 21세기에도 형태를 바꿔 살아 있다는 점이다. 타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자국의 기준만을 보편 규범으로 강요하는 군사 개입주의와 금융 제재는, 과거 원주민을 몰아내던 그 사상적 방식의 현대판이다. "우리가 문명이고, 너희는 개화되어야 한다"는 논리 구조는 19세기와 지금 사이에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내에서도 양심세력이 원주민 학살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하고 있다.
개빈 뉴섬 (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2019년 6월, 뉴섬 주지사는 원주민 지도자들 앞에서 "역사책에 기록된 대로 말해야 한다.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19세기 중반 캘리포니아 형성기 당시 주정부가 주도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원주민 말살 정책을 '제노사이드'로 명확히 규정했다. 이후 주정부 차원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 과거사 조사를 진행해 왔다.
뎁 홀란드 (Deb Haaland) 내무부 장관도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칸 원주민(라구나 푸에블로 부족) 출신으로서, "이 나라는 제노사이드 위에 세워졌다"면서 그녀는 의원 시절부터 미국의 건국 과정에 원주민 학살과 문화적 말살이 존재했음을 거침없이 지적해 왔다. 특히 19~20세기 미국 정부가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했던 '원주민 기숙학교 정책'을 조사하면서 ‘수많은 아동 학살과 암매장’ 실태를 세상에 드러내며 국가적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진보 진영의 거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역시 미국의 역사적 과오를 언급할 때 원주민 문제를 빼놓지 않는다. 대선 도전 당시부터 그는 "미국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기반 위에서 형성된 국가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더스는 원주민 부족들의 주권 인정, 조약 준수, 그리고 원주민 거주 지역에 대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 및 환경 보호 구역 지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일한 오마르 (Ilhan Omar)의원 및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AOC) 의원 등 민주당 내 진보 성향의 소수계 의원 모임인 '더 스쿼드(The Squad)' 멤버들은 미국의 건국 기념일이나 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10월의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학살의 시발점으로 보고, 이를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공식 대체해야 한다고 법안을 발의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한 오마르 의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 중 하나로 미국의 원주민 말살 정책을 꼽기도 했다.
그러니까 과거 미국의 원주민 정책을 '과오나 비극' 정도로 뭉뚱그리던 시절을 지나, 현재 미국 내 진보 성향의 유력 정치인들과 학계 인사들은 이를 명백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자 '도둑맞은 땅(Stolen Land)'의 문제로 규정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반성과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병리의 치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흥미롭게도, 미국 내부에서 그 단서가 나오고 있다. 2021년 연방 정부가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공식 선포한 것은, 미국 스스로가 자신의 건국 서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치유의 씨앗은 이미 그 땅에 심겨져 있다. 문제는 누가 그것에 물을 주느냐다.
이 결의안이 2025년 10월에도 초당파(공화당 콜 의원 포함)로 재발의되었다는 점은, "이 의제가 진보 진영만의 것이 아니라 초당적 흐름"임을 보여주고 있다.
K-씻김굿 — '대신 씻겨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씻기는' 것
필자는 상상한다. 올해 10월, '원주민의 날' 주간에 캘리포니아와 캔자스에서 펼쳐질 위령 문화제다. 인디언과 동족이나 다름없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건너가서 그 진혼과 위령으로 한미시민동맹의 첫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그런 그림속에 지구촌의 문제로 함께 다루고 미국문제의 뿌리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흐름을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인과 무속인이 원주민의 한을 씻겨준다는 발상, 그것은 선의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적 위계인가? "우리가 당신들의 아픔을 알고 풀어드리겠다"는 말은, 자칫 과거 서구가 원주민에게 들이댔던 '문명화의 친절함'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씻김굿은 설계부터 달라야 한다. 한국의 무속인이 원주민을 '치유하는' 구도가 아니라, 원주민의 전통 의식과 한국의 씻김굿이 나란히 놓이는 구조. 흰 광목천을 잡은 한국의 시민들과 원주민들이 함께 춤추고 함께 우는 장면. "당신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가 아니라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연대의 언어.
이렇게 설계될 때, 이 행사는 반미(反美) 시위도 아니고 이국적 퍼포먼스도 아닌, 미국이 스스로 천명했던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완성하도록 돕는 '친구의 충고'가 된다. 미국 언론과 젊은 세대가 이 숭고하고도 낯선 행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동맹, '시민 동맹'의 시대
지금까지의 한미동맹은 군사·안보·정치인들의 밀실 거래 위에 세워져 왔다. 그 동맹은 튼튼했지만, 좁았다. 이제 다른 동맹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국가 간 거래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들의 연대.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원주민 형제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미국의 패권주의적 DNA를 인류애적 DNA로 전환하는 첫걸음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해 캔자스로 이어지는 일주일간의 릴레이 위령제는, 2026년 가을 미국 사회에 가장 신선하고도 묵직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정표가 되려면 조건이 있다. 원주민 공동체가 이 행사를 함께 기획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것. 한국 시민이 '선물을 들고 온 손님'이 아니라 '같은 의제를 가진 동반자'로 그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
1만 년 전 헤어졌던 이웃들이 다시 만나 서로의 맺힌 한을 나눌 때 —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 — 비로소 미국은 학살자의 이름에서 치유자의 이름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먼저 연필로 그려본다.
연필로 그리는 퍼포먼스
언제 추진의 여건이 무르익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령 올해 추진되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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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치인들의 확고한 지지 기반이자 원주민 커뮤니티가 촘촘히 살아 숨 쉬는 캘리포니아나 캔자스를 첫 무대로 삼는 것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길 수 있는 대안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정부 차원에서 원주민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다. 주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가 이 문제에 열려 있다.
'원주민의 날 법안'을 이끄는 노르마 토레스 하원의원도 10월 선거철에 자신의 표밭이자 지역구에서 한국 시민단체와 원주민이 연대하는 대형 문화제를 환영하는 인사말을 한다.
'한미시민동맹'의 깃발을 들고 현지 교민 사회, 한인 문화 단체들과 연합하여 인력과 인프라를 동원하기가 매우 수월하다.
10월12일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그 한 주 동안, 미국 서부의 관문(캘리포니아)에서 동쪽(캔자스)으로 이동하며 릴레이로 평화와 치유의 불씨를 지피는 서사는 미국 언론과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월화 이틀동안 LA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오랜 옛날 베링해협을 건너기 전 한 뿌리였던 기억을 되살리며 "태평양을 건너온 형제의 첫 위령"을 위해 불교의 수륙재, 천주교의 위령미사를 진행한다.
이어서 10월 15일~16일에는 캔자스 주에서 씻김굿을 진행하고 기독교의 반성퍼포먼스를 벌인다.
캔자스를 비롯한 미 중부 평원 지대는 과거 원주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이주당했던 역사의 본령이다.
캔자스에는 최초의 원주민 여성 의원인 샤리스 데이비즈의 지역구(캔자스 제3선거구)가 위치해 있다. 원주민 부족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참여를 끌어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화려한 대도시가 아닌, 원주민들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K-씻김굿'은 진짜배기 '진혼과 해원'의 울림을 줄 수 있으며, 이 진정성이 오히려 미국 전역의 언론을 움직이는 잔잔한 파도를 만들 수 있다.
그런후 미국의 사상적 심장부(Heartland)인 이 곳 중부 지역에서 백인 우월주의적 건국사를 성찰하는 기독교적 회개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전역에 중계될 것이다.
미국은 이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1만 년 전 헤어졌던 이웃들이 다시 만나 서로의 맺힌 한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는 그동안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온 국가나 세력에게도 정신적인 자극을 줄 것이다.
1890년의 인디안 학살(운디드니 사건)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