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거제도 선진화와 민주당의 정책적 분당, 이것이 올바른 길이 아닌가
이원영(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 AI 동료들
2026-06-21
거대 정당이 흔들릴 때마다 통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호소에는 트라우마가 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로 갈라져 정권을 내준 과거의 기억이다. 그러나 질문을 한 걸음 더 밀고 가보자. 거대 정당은 정말로 하나로 뭉쳐 있어야만 강한가. 그리고 지금의 거대 정당은 애초에 하나로 뭉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가.
권력의 근거가 하나뿐인 권력은 그 하나가 흔들리면 함께 무너진다. 역사상 오래간 권력들의 공통점은 근거가 여러 층위에 걸쳐 동시에 작동했다는 것이다. 로마는 군단과 법과 경제와 문화, 네 가지 근거가 동시에 떠받쳤기에 500년을 갔다. 반대로 단일한 근거에만 의존한 권력은 그 근거가 무너지는 순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의 거대 양당은 사실 이미 여러 권력의 근거를 한 지붕 아래 욱여넣은 인위적 단일체다. 토지와 공유부 개혁을 핵심 가치로 보는 흐름이 있고, 안보와 외교에서 실용을 우선하는 흐름이 있고, 검찰·사법 개혁의 속도와 방법을 다르게 보는 흐름이 있고, 노동과 복지 확장을 우선하는 흐름이 있다.
이 흐름들은 한 정당의 깃발 아래 충돌 없이 공존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노선도 선명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위임하는지 알 수 없고, 정당도 자신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모호해진다. 위임이 정밀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뭉뚱그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당인가. 여기서 분명히 가를 기준이 필요하다. 분당이 권력의 새로운 근거 — 선명한 정책 정체성과 그에 동의하는 별도의 유권자 기반 — 를 만들어내면 그것은 다각화다.
명분 없이 권력 다툼과 감정싸움으로 갈라진다면 그것은 다각화가 아니라 단순한 소모다. 과거의 뼈아픈 분당이 실패로 남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책 차이가 아니라 사적인 사건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 노선이 제아무리 선명해도, 그것만으로는 다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선거제도다.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구조적으로 양당제를 강제한다. 정책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나섰다가, 선거제도의 벽 앞에서 표가 갈려 모두 공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에서는, 정책이 아무리 선명해도 작은 정당은 의석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유권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차악을 택하기 위해 거대 양당으로 다시 회귀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분당이 시도될 때마다 다각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순한 자멸로 끝난 근본 이유다.
순서가 중요하다. 정책 노선의 선명한 차별화가 먼저거나 동시여야 하고,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 개혁이 함께 가야 하며, 그 위에서야 분당이든 정책연합이든 의미를 갖는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즉 선거제도의 뒷받침 없이 분당부터 감행하면, 다각화가 아니라 그저 권력이 쪼개져 사라지는 결과로 끝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가 함께 도입된다면 그림이 달라진다. 토지와 공유부 개혁을 앞세운 세력이 자신의 깃발로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고, 실용 안보를 앞세운 세력도, 노동과 복지를 앞세운 세력도 각자의 지분을 인정받는다. 이것이 유럽의 정당정치가 보여주는 풍경이다. 녹색당과 사회당과 자유당이 각기 선명한 정책으로 경쟁하다가, 필요할 때 연정을 구성해 다수를 만든다. 분당이 자멸이 아니라 다각화로 완성되는 것은 바로 이 제도적 뒷받침 위에서다.
비례성을 높이는 길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나만은 아니다. 2025년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이 다른 길을 보여줬다. 열 명이 넘는 후보가 난립한 그 경선에서, 무명에 가깝던 34세의 주의원 조란 맘다니가 거물 정치인을 꺾었다. 비결은 순위투표제, 곧 단기이양식 투표(STV)였다. 유권자는 후보 한 명에 표를 던지는 대신 1순위·2순위·3순위를 적었다. 1차 집계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꼴찌 후보가 탈락하고, 그 표는 버려지지 않고 유권자가 적어둔 다음 순위로 옮겨간다. 이 이양이 라운드마다 반복되며 마침내 누군가 과반을 넘긴다. 흩어졌던 표심이 사표가 되지 않고 차곡차곡 모여 하나의 정당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STV의 미덕은 단순하다. 단기명은 유권자에게 "하나만 고르고 입 다물라"고 명령하지만, STV는 "원하는 만큼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이 끝까지 일하게 하라"고 답한다. 이것은 정당의 분화에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정책 노선이 갈라져 여러 정당이 동시에 출마해도, 유권자는 1순위로 가장 가까운 노선을 찍고 2순위로 차선의 노선을 적어둘 수 있다. 표가 갈려 모두 공멸하는 대신, 가까운 노선들끼리 표가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남는다. 다당제가 단순다수제의 무덤에 빠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마침 한국에도 디딤돌이 놓였다. 2026년 4월 정치개혁 입법으로 광주광역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광역의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그릇은 마련됐다. 다만 아직 유권자는 후보 한 명에게만 표를 던지는 단기비이양식(SNTV) 방식이어서, 표의 이양이라는 알맹이는 빠져 있다. 그릇에 이양이라는 내용물을 채우면 그것이 곧 완전한 STV다. 맘다니의 뉴욕이 보여준 원리와 광주가 갖춘 틀이 만나는 자리에, 정책적 분당이 자멸이 아니라 다각화로 완성될 다음 칸이 있다.
지금 거대 정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풍경을 들여다보면, 정작 정책적 컬러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누가 더 강경한가, 누가 더 충성스러운가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전면에 있을 뿐이다. 이런 권력형 주도권 투쟁은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결국 위임을 잃는다. 유권자가 보는 것은 노선의 차이가 아니라 자리싸움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소모적인 주도권 투쟁을 멈추고, 선거제도 개혁과 정책적 분당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선거제도 선진화 없는 분당은 자멸이다. 분당 없는 선거제도 선진화는 절반의 개혁이다. 둘이 함께 갈 때, 거대 정당의 균열은 국가를 약하게 만드는 위기가 아니라 더 정밀한 위임으로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다각화가 된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남용되고, 다각화되지 않은 권력은 그 하나의 근거가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진다.
지금 거대 정당이 답해야 할 질문은 뭉칠 것인가 갈라질 것인가가 아니다. 갈라지더라도 각자의 깃발이 정확히 의석으로 환산되는 제도를 함께 만들 것인가다. 그 답에 따라 지금의 균열은 자멸의 전조가 될 수도, 다음 시대로 가는 다각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주권자 국민의 뜻을 올바로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정치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스마트한 선거제도를 토대로 해야 대리운전과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촛불의 민심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