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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변호사의 한국위기론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6|조회수28 목록 댓글 0

이승우변호사의 한국위기론
ㅡ조선시대, 광해군(光海君) 집권기와 현재의 국제 정세 비교<요약본>
2026-06-16

조선은 건국 이후 자발적으로 명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겼다. 스스로 신하의 나라를 자처하며 '전하'라는 호칭으로 왕의 위상을 낮추고, 매년 평균 6번의 사신을 보내 모시·인삼·종이·금·은은 물론 공녀와 환관까지 조공으로 바쳤다. 명은 항복 문서도 없이 자발적으로 조공하는 조선을 신하국의 전형으로 여겨 다른 나라에 좋은 선례로 삼았다. 사신들은 황제를 직접 알현해 진헌(進獻) 의례를 치르고, 황제의 덕을 찬양하는 진헌시(進獻詩)를 함께 바쳤다. 개국공신 권근은 이런 진헌시의 대가로 주원장에게 칭송받기도 했다. 조공은 실제로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바치는 전리품적 선물이었지만, 조선은 이를 예(禮)로 승화시키며 소중화의 자긍심을 키운 역설적 외교였다.

이러한 조공외교는 주자를 숭상하고 성리학을 국교로 받든 정책에 바탕했지만, 단순히 전통을 고수한 것만은 아니었다. 명의 강력한 국력을 감지하고 불필요한 저항을 피해 백성의 생명과 산하를 보호하려는 외교정책적 기능이 있었다. 만약 자주를 내세워 저항했다면 조선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휘말렸을지 모른다. 임진왜란 때 명이 원병을 보내 일본군과 직접 싸운 것도,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명분과 더불어 예의 바른 신하국에 대한 의리가 신속한 파병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러나 임란 이후 명은 과도한 군사 지원으로 재정이 고갈되고 환관의 부패와 잦은 민란으로 쇠락기를 맞았다. 반면 만주에서는 누루하치가 흩어진 여진 부족을 통일해 후금을 세우고, 몽골을 포섭하고 인삼 무역을 국가가 관장하며 팔기제(八旗制)로 상시 전시 체제를 확립해 30여 년간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명은 만주를 통제할 여력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1619년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해 일으킨 것이 사르후 전투다. 명은 조선에 13,000명의 파병을 요구했다. 실리를 추구하는 광해군은 명의 쇠퇴와 후금의 부상을 잘 알았기에 백성을 사지로 보내길 꺼렸으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내세운 사대부들의 명분에 밀려 군사를 보냈다. 다만 도원수 강홍립에게 밀지를 내려 적당히 싸우다 후금에 투항하게 했다. 원군을 보내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싸우다 항복함으로써 후금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은 실리적 중립외교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서인 세력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결국 축출되었고, 조선은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사르후에서 승리한 후금은 동북아 주도권을 잡았다. 명을 공략하려면 후방의 협공 가능성을 배제해야 했기에, 친명배금의 조선을 1627년 침범하니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겨우 3만 명의 후금 군대도 막지 못해 왕은 강화도로, 세자는 전주로 피난 가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결국 형제 관계를 맺고 후금과 무역을 개시하는 조건으로 강화했는데, 중원 공략을 꿈꾼 후금이 조선에 국력을 소모하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누루하치가 죽고 홍타이치가 칸으로 등극해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를 칭하자, 조선 사신 나덕헌과 이확은 명에 대한 의리를 이유로 청태종에게 절하지 않았다. 분노한 청태종은 왕자를 볼모로 보낼 것을 요구했으나 답이 없자 1636년 다시 침략하니,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겪고 항복해 청과 군신관계를 맺었다. 사르후에서 후금의 승리를 목도하고도 명분 외교에 매몰된 무지의 소산이었다. 명분이 국제정치의 실체와 부합하지 않으면 폐기해야 한다. 바른 외교는 국력의 정확한 분석에서 나오지, 도덕적 명분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임란 이후와 유사하다. 독립·건국·한국전쟁 참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은 임란 이후의 명에, 일대일로·BRICS·상하이협력기구로 새 질서를 구축하는 중국은 후금에 비유될 수 있다. 다만 정세가 광해군 시대만큼 명백하지는 않다. 사르후 이후 명의 패권 상실은 분명했지만, 지금 미국 패권의 종말은 불확실하다. 트럼피즘이 반헌법적·극우적 성향을 보여도 미국 사법부는 헌법 수호의 판단을 지속하고 있으며, 사법부가 건재한 한 미국 민주주의는 견고하다. 게다가 미·중 모두 한국의 1·2위 무역 대상국이어서, 섣부른 일방적 외교는 큰 경제적 손실을 부르고, 경제가 약화되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레버리지가 사라져 안보도 취약해진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한국이 정묘·병자호란과 같은 상황을 어떻게 예방하느냐에 있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당연하나 친미가 도덕적 명분이 되어선 안 되며 실리에 입각한 합리적 선택이어야 한다. 중국을 배척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남한의 군사·외교정책이 중국에 위협이 되어선 안 된다. 중국은 언제나 후방을 경계하며, 평택의 대규모 미군 기지를 둔 한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본다. 한미동맹의 목적이 대중국 방어로 재규정되면 중국은 한국을 적대국화할 것이다. 국방예산 65조로는 대중국 견제가 불가능하며, 그 경제적 고통은 국민의 몫이 된다.

최근 시진핑이 7년 만에 안보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북한을 방문한 것은 북·러 밀착을 파고들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안보적 포석이다. 한편 미국은 대만 유사시 한미연합군을 활용하려는 전략적 유연성을 깔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일본이 추진하는 군장비 스왑은 이재명 정부가 거절했는데, 성사되면 한일 군사동맹의 전조가 된다. 중국은 한미동맹은 인정하되 한일 군사동맹은 적대적으로 간주하므로,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지난 70여 년처럼 한미동맹만으로 안보는 충분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이다. 장기적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높고, 전 세계 물동량의 40%가 통과하는 대만해협은 미국의 핵심 이익이라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 대만 유사시 후방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한국이 공격받을 수 있으므로, 한국은 불개입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설령 중국이 평택 기지를 공격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지금은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다. 다행히 중국도 현 한미동맹을 비적대적으로 인정했으니 이를 공고히 하는 것은 한반도 세력균형과 평화에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국이 반대하는 한일동맹과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중국을 공식 적대국으로 돌리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귀결될 수 있는, 한국의 실리를 해치는 일이다. 광해군이 실리외교로 후금과의 전쟁을 피한 지혜를 되새겨, 한·중 전쟁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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