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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수정본] 프라우트에서 지대본위화폐까지 — 탈자본을 사색하기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6|조회수136 목록 댓글 0

[칼럼수정본] 프라우트에서 지대본위화폐까지 — 탈자본을 사색하기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 AI Claude Sonnet 4.6
2026-06-19 수정


인도의 사상가 P.R. 사카르(1921~1990)가 1959년 제창한 프라우트(PROUT,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 진보적 활용이론)는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려 한 드문 시도였다.

프라우트라는 획기적인 개념

핵심 원리는 다섯 겹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자원의 최대 활용과 합리적 분배 — 생산수단의 사적 축적에 상한을 두되 국가 독점도 거부한다.
둘째, 3층 경제구조 — 핵심 산업은 지역 공영, 중간 규모는 협동조합, 소규모는 사적 운영을 허용한다.
셋째, 자본 축적 상한선 — 개인의 부 축적을 제한하되 능력과 기여에 따른 차등 보상은 인정한다.
넷째, 탈집중화 — 경제·정치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한다.
다섯째, 생태적 균형 — 자연과의 조화를 경제 원칙에 통합한다.
"최소한의 필요는 모든 이의 권리"라는 선언은 기본소득론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이미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P.R.사카르의 제자 라비 바트라(달라스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SMU) 경제학 교수)는 이 사상을 주류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했다. 사카르의 '사회 사이클 법칙' — 노동자·전사·지식인·축재자의 순환 뒤에 혁명이 온다는 역사 문법 — 을 경제사 분석에 적용해, 1978년에 소련 붕괴를, 1987년에 1990년대 대불황을 예측해 주목받았다.

그의 핵심 논증은 이렇다. 임금 대비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면 수요가 무너지고 공황이 온다. 불평등은 도덕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경기붕괴의 원인이다.
자본주의의 자기파괴적 경향을 내부 논리로 증명하려 한 점에서 바트라는 프라우트를 한 층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 물음을 사카르가 던진 지 반세기가 지나, 세속 학계가 각자의 언어로 같은 자리를 다시 찾아왔다.

반세기 후의 재발견 — 그러나 똑같이 비어 있는 자리

도넛경제학은 옥스퍼드의 케이트 레이워스가 2012년 처음 그린 도형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기초 — 아무도 삶의 필수재에서 결핍되지 않게 — 와 생태적 한계 — 지구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하지 않게 — 라는 두 동심원 사이의 공간에서 인류가 번영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레이워스는 "화폐와 금융, 기업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그 재설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인지는 비워둔다.
도넛은 목적지의 형상을 그렸을 뿐, 그곳에 도달할 화폐의 동력 장치는 설계하지 않았다.

웰빙경제는 2018년 결성된 웰빙경제연합(WEAll)이 추동하는 흐름이다. 이들은 현재 경제체제가 지속불가능하고 불공정하며 불안정하고 불행을 만든다는 네 가지 구조적 결함을 진단하며, 결정적으로 "제동장치도 가속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체제"라고 표현한다.
스코틀랜드·뉴질랜드·아이슬란드·핀란드·웨일스 정부가 연합(WEGo)을 이루어 GDP를 넘어선 지표로 정책을 평가하려는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스스로 인정하듯 "웰빙경제로 가는 단일한 청사진은 없으며, 그곳에 이르는 제도와 활동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화폐 개혁은 핵심 의제로 전면화되지 않는다. 진단은 정확하나, 고장난 제동장치를 무엇으로 교체할지는 답하지 않는다.

탈성장론은 D'Alisa, Demaria, Kallis가 엮은 《Degrowth: A Vocabulary for a New Era》(2015)로 학술적 체계를 갖췄다. 무한 성장이라는 전제 자체를 거부하고, 더 적게 가지고 더 잘 사는 사회를 정치적으로 기획한다는 점에서 셋 중 가장 급진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진영 안에 화폐를 둘러싼 균열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공공화폐'를 행동강령으로 제시하며, 민간은행의 부채 화폐 대신 국가가 부채 없이 화폐를 발행해 세뇨리지를 시민에게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비판적 연구는, 지역화폐가 의도적 탈성장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연구 기반이 약하며, 두 갈래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로 분류될 수 있고, 정부 중심의 생태적 화폐개혁이 지역화폐보다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는다.
즉 탈성장론은 화폐를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갔지만, 국가화폐냐 지역화폐냐를 둘러싼 내부 논쟁만 있을 뿐 합의된 설계에 이르지 못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 모델 모두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생태적 한계를 그리고, 성장 강박을 진단하고, 화폐개혁의 필요성까지는 외친다.
그러나 "무엇을 본위로 화폐를 발행할 것인가" 라는 가장 근본적인 설계 질문 앞에서는 셋 다 침묵하거나 분열한다. 1959년 사카르가 던진 물음이, 반세기를 거쳐 가장 정교해진 세속 학계의 손에서도 여전히 미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질문 앞에서 먼저 현재의 화폐 체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피아트화폐의 근본문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피아트화폐(fiat money)다. 금이나 실물 자산의 뒷받침 없이 국가 권력의 선언만으로 통용되는 화폐다. 1971년 닉슨이 달러-금 태환을 정지시킨 이후 인류는 본격적인 피아트화폐 시대에 진입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한계가 누적되어 드러나고 있다.

첫째 한계는 신용창조의 사적 독점이다. 영란은행이 2014년 공식 인정했듯,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대부분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는 순간 창조한다.
예금을 받아 빌려준다는 교과서의 설명은 순서가 거꾸로다 — 대출이 예금을 만든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기업이 본질적으로 공적인 화폐 창조 기능을 위임받은 것이다.
그 결과 신용은 생산적 투자보다 자산 시장으로 쏠리고, 호황에 과잉 공급되었다가 불황에 급격히 수축한다.

둘째 한계는 구매력의 만성적 침식이다. 피아트화폐는 발행량을 제어할 내재적 기제가 없다. 정치적 압력과 경기 대응이라는 명목 아래 통화량은 꾸준히 팽창해왔다. 그 결과는 장기 인플레이션이다.
1971년 이후 달러의 구매력은 85% 이상 하락했다. 화폐를 보유한 사람은 조용히 수탈당하고, 실물 자산을 가진 사람은 반사이익을 누린다. 피아트화폐는 구조적으로 자산 보유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셋째 한계는 세뇨리지의 불공정 분배다. 화폐 발행 이익은 국가와 금융기관에 집중되고, 그 비용은 화폐 사용자 전체에게 분산된다. 발행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라는 질문은 정치적으로 금기에 가깝다.

프라우트는 이 피아트화폐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결여하고 있다. 사카르의 자본 축적 상한과 바트라의 반독점 처방은 실물 분배 차원의 개혁이지, 화폐 발행 권력 자체를 겨냥하지 않는다.
분배를 바꾸려 해도 화폐 창조의 구조가 그대로라면, 개혁의 성과는 금융 메커니즘을 통해 다시 빨려 들어간다.

빈자리를 채우려는 한 시도가 있다. '지구의 사용가치를 본위로 하는 화폐' — 필자가 오랫동안 사색해온 지대본위화폐 '환(環)'의 구상이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77


이 발상의 출발점은 '굿하트의 법칙'이다. 어떤 지표를 화폐 본위로 삼는 순간, 그 지표는 조작의 대상이 된다. 금은 채굴량을 조작하기 어렵지만 공급이 경직되어 디플레를 불렀다. 신용은 유연하지만 사적으로 창출되어 불평등을 심화한다. 데이터와 탄소는 측정 자체가 포획된다.

조작 불가능하고 유한한 닻이 필요하다. 그 닻이 지구의 사용가치다. 땅이 실제로 부양하는 생산적 삶, 생태계가 실제로 순환시키는 생명력 — 이것은 발행으로 늘릴 수 없는 거의 유일한 기반이다.

토지의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지대본위화폐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 구분이 필요하다. 토지의 교환가치(가격, 스톡)가 아니라 사용가치(지대 흐름, flow)를 본위로 삼아야 한다. 고전적 부동산 버블은 자본화된 토지 가격의 거품이며, 재매각 투기와 레버리지를 타고 부푼다. 그런데 사용가치 본위 체제에는 그 채널이 구조적으로 없다.

토지를 팔지 않고 사용권을 임대하며, 담보는 가격이 아니라 지대 흐름이고, 그 지대는 재매각 기대가 아닌 생산적 사용에서 매겨진다. 스티글리츠가 정식화한 '헨리 조지 정리'가 뒷받침한다.
* 헨리조지정리: 정부가 공공재나 인프라에 투자해 창출된 토지 가치의 상승분(지대)을 100% 토지 가치세(Land Value Tax)로 환수하면, 추가적인 조세 징수 없이도 공공재 공급 비용을 완벽하게 충당할 수 있다는 이론

공공투자가 만든 토지가치 상승분만으로 원리상 그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지대를 공적으로 환수하면 사적으로 자본화될 잔여가 사라져서, 초장기적으로 지가는 0으로 수렴하고 투기는 정의상 배제된다.

화폐의 세 기능 — 척도, 매개, 저장 — 을 이 원리 위에서 재설계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온다. 척도는 지구의 사용가치에 닻을 내린다. 매개는 순환하되 저장되지 않게 설계한다. 여기서 헨리 조지와 실비오 게젤이 만난다.

게젤의 실험은 역사 속에 한 번 선명하게 빛났다. 1932년 오스트리아 소도시 뵈르글(Wörgl)이 무대다.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실업률이 치솟고 시 재정이 바닥났을 때, 시장 미하엘 운터구겐베르거는 '노동증명서(Arbeitszertifikate)'라는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핵심 장치는 매달 1%씩 가치가 줄어드는 감가(demurrage)였다. 돈을 쥐고 있으면 손해이므로 사람들은 빨리 써야 했다. 13개월 동안 이 화폐는 뵈르글에서 14배나 빠르게 순환했다. 도로가 포장되고, 다리가 놓이고, 스키 점프대가 세워졌다. 실업률은 25% 줄었다.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살아났다.
인근 200개 도시가 모방하려 하자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이 발권 독점을 이유로 실험을 강제 중단시켰다. 뵈르글의 기적은 13개월 만에 끝났지만, 화폐가 저장 수단이 아닌 순환 수단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실증으로 남겼다.

조지의 지대환수가 땅의 불로소득을 끊는다면, 게젤의 감가화폐는 돈의 불로소득을 끊는다.
이 두 원리를 결합한 것이 '환(環)'이다. 지대본위화폐 '환'에서는, 저장의 필요가 재생(regeneration)으로 흐른다. 미래를 위해 가치를 쌓는 유일하게 허용된 방법이 미래의 사용가치를 실제로 높이는 것 — 숲, 토양, 인프라 — 이 될 때, 저축이 곧 재생이 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앞서 세 모델이 비워둔 자리를 각각 채운다. 도넛경제학의 사회적 기초는 시민배당(저장 기능)으로, 생태적 한계는 지구 사용가치 본위(척도 기능)로 옮겨진다.
웰빙경제가 진단만 했던 고장난 제동장치는, 흐름본위 자체가 자동 제동장치 역할을 하면서 메워진다.
탈성장론 내부의 공공화폐냐 지역화폐냐의 분열은, 지대 흐름이라는 보편적 척도 위에서 지역 단위로도 국가 단위로도 확장 가능한 설계로 봉합된다.

이 구상이 넘어설 수 있는 비관이 하나 더 있다. 토마 피케티의 것이다.

피케티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해법

피케티는 방대한 데이터로 하나의 철칙을 증명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은 한(r>g), 부는 세습을 통해 특정 가문에 무한히 집중된다. 상속자산이 노동소득을 영구적으로 압도하는 세계, 21세기는 19세기 귀족사회로 회귀한다는 비관이다. 그의 처방은 글로벌 자본세였지만, 그 자신도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환의 구상은 이 비관에 구조적으로 응답한다. r>g의 핵심 동력은 토지와 금융자산의 자본화다 — 땅값이 오르고, 이자가 복리로 불어나고, 그것이 상속되어 대물림된다. 그런데 지대를 공적으로 환수하면 토지는 자본화될 수 없다. 지가가 0으로 수렴하면 상속할 토지자산 자체가 사라진다. 감가화폐는 화폐의 축적을 구조적으로 막는다. 저장의 유일한 통로가 재생 투자라면, 자본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흘러야 한다. r>g의 방정식에서 r의 핵심 구성요소 — 토지불로소득과 화폐불로소득 — 를 동시에 제거하는 것이다.
피케티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세금으로 교정하려 했지만, 환은 운동장 자체를 다시 설계한다.

프라우트는 1959년에 자본 축적의 정당성을 물었다. 도넛경제학과 웰빙경제, 탈성장론은 반세기 뒤 같은 물음을 각자의 언어로 되살렸다. 그러나 누구도 화폐라는 가장 깊은 층위까지는 내려가지 못했다.
지대본위화폐 환은 그 60년 동안 닫히지 않았던 고리를 닫으려는 시도다. 프라우트가 분배의 정의를 실물에서 찾았고, 탈성장 삼형제가 성장 자체를 의문에 부쳤다면, 환은 그 모든 물음이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자리 — 화폐의 정당성을 지구의 순환에서 찾는다.

뵈르글의 기적이 13개월 만에 중단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프라우트의 협동조합 경제 위에 지구의 사용가치를 닻으로 삼는 화폐가 흘렀다면, 피케티가 예언한 세습 귀족사회는 다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실험은 짧았지만, 사색은 계속된다.

지구의 사용가치 즉 생태적 이용가치를 본위로 하는 화폐를 상상한다. 불로소득을 공유부로 환원하고, 경제선순환이 가능하며 궁극적으로 지구생태계를 지켜내는 그러한 화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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