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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원리 연재

권력의원리ㅡ명제 9.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07|조회수31 목록 댓글 0

[제3부 권력의 작동]

명제 9 —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동물의 세계에서

새로운 집터를 찾을 때 벌집은 수백 마리의 정찰벌을 사방으로 보낸다.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후보지를 탐색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8자 춤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 벌일수록 더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다른 벌들이 그 춤에 합류한다. 직접 현장에 가서 검증한다. 공감대가 임계치에 달했을 때 비로소 수만 마리가 함께 이동한다.
결정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군림하는 여왕벌이 없다는 것이다. 정보를 독점하는 자도 없다. 강요하는 자도 없다. 탐색을 나눴다. 정보를 나눴다. 결정권을 나눴다. 그 분산이 군집 전체를 최적의 장소로 이끌었다. 한 마리의 여왕벌이 결정했다면 찾을 수 없었을 최적의 답을 수백 마리의 분산된 탐색이 찾아냈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개코원숭이 무리에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의 결정은 알파 수컷 혼자 내리지 않는다. 여러 개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더 많은 개체가 따르는 방향으로 무리 전체가 이동한다. 이 분산된 의사결정이 무리를 더 좋은 먹이터로 이끈다. 알파 혼자 결정하는 무리보다 생존율이 높다.


1. 뜻풀이

명제 8은 말했다. 권력은 단일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명제 9는 말한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이 두 명제는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순이 아니다.

단일화는 의사결정의 최종 구조다. 분산은 그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과정이다. 최종 결정은 하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더 많은 위임이 참여할수록 더 나은 결정이 나온다. 더 나은 결정이 더 큰 권력을 만든다.

위임을 나누는 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수평적 분산은 같은 층위의 구성원들에게 의사결정의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아테네의 500인 평의회, 벌집의 정찰벌들이 그것이다. 수직적 위임은 위계 구조 안에서 하위 단위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관중의 마을 단위 편제, 로마의 켄투리아가 그것이다. 두 방향 모두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나누면 커진다.

왜 그런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정보가 풍부해진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정보가 모인다. 오류가 줄어든다. 여럿의 판단이 모이면 오류가 서로 상쇄된다. 위임의 총량이 늘어난다. 결정 과정에 참여한 구성원은 그 결정에 주인의식을 갖는다. 주인의식이 있는 위임은 강요된 위임보다 훨씬 강하고 오래간다.

그러나 분산에는 조건이 있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정찰벌이 거짓 없이 춤을 춰야 군집 전체가 최적의 결정을 한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이것을 가장 먼저 행정 구조에 적용했다. 제나라를 마을·향·수·국으로 계층적으로 편제했다. 각 단위에 고유한 권한과 책임을 줬다. 마을 단위에서 결정할 것은 마을에서 결정하게 했다. 이 분산이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중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보다 각 단위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나라가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미헬스가 말한 과두제의 철칙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소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는 경고다. 이 철칙을 극복하는 방법은 의도적인 분산 설계다. 위임을 나누는 구조를 끊임없이 설계하지 않으면 미헬스의 철칙대로 다시 소수에게 집중된다. 분산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 로베르토 미헬스 Roberto Michels, 1876~1936. 독일 출신 이탈리아 사회학자. 어떤 조직이든 결국 소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을 제창했다. 저서 《정당론》(Political Parties, 1911).

삼봉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설계자였다.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핵심 구상은 재상중심주의였다. 왕의 권한을 재상에게 나눔으로써 더 나은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 위임을 나눌수록 국가 권력이 커진다는 원리를 삼봉은 제도 설계로 구현하려 했다. 고려조까지의 국정문란의 구조를 시정하려 한 뜻이었다. 그 뜻은 사대부계층 전체에게 공유되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이 설계를 거부했다. 삼봉을 죽이고 왕권 중심의 구조를 택했다. 위임을 나누지 않는 선택. 그 선택이 조선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세종이 분발한 것도 자신의 아버지가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빙하려는 듯한, 무언의 행동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삼봉이 기획한 구도는 조선조 오백년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정조라는 명석한 임금이 그의 대계를 알아차리고 그를 복권시킨 것이다.
▷ 정도전 鄭道傳, 1342~1398.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사상가. 조선 건국의 핵심 설계자. 재상중심주의를 주창하여 왕권을 제한하고 신권을 강화하는 제도를 설계했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에게 살해됐다. 저서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3. 역사적 사례

아테네의 추첨제 — 분산의 극치

고대 아테네에서 선거는 오히려 귀족적이고 과두적인 제도로 간주됐다. 돈 많고 이름 알려진 자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선거는 귀족정의 원칙이다. 추첨이야말로 민주정의 원칙이다.
500인 평의회는 30세 이상의 시민권자 중 추첨으로 선발됐다. 평범한 신발 수선공이나 농부가 오늘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내일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구조. 의사결정권을 500명에게 나눴다. 그 나눔이 더 강한 아테네를 만들었다.
▷ **소르티션(추첨제)** Sortition.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 추첨으로 시민 대표를 선발하여 국정을 논의하게 했다. 500인 평의회(불레)가 대표적이다. 선출이 아닌 추첨으로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민주적 평등의 극치로 평가된다.

스위스 — 150년의 검증된 분산

스위스는 연방 차원의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의회가 처리하지 못하거나 거부한 사안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전통을 150년 이상 유지해 왔다. 선출된 의원과 직접민주주의 장치가 상호 견제하며 공존하는 이 모델이 대의제 보완의 가장 검증된 사례다. 의사결정권을 의회와 시민이 나눴다. 그 나눔이 스위스를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뉴욕의 STV — 이사 가는 표

2025년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 열 명이 넘는 후보가 난립했다. 무명에 가깝던 34세 주의원 조란 맘다니가 전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에 도전했다. 보통의 단기명 투표였다면 표가 잘게 쪼개지고 조직력 있는 기성 정치인이 이겼을 것이다.
뉴욕은 달랐다. 유권자는 후보를 순위대로 적었다. 1순위·2순위·3순위. 순위투표제(STV·단기이양식 투표)다. 1차 집계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꼴찌부터 탈락한다. 그런데 탈락한 후보에게 갔던 표가 버려지지 않는다. 그 표를 던진 사람의 2순위 후보에게로 이사를 간다. 이 이양(移讓)이 라운드마다 반복된다. 흩어졌던 개혁 성향 표심이 맘다니에게로 차곡차곡 모였다. 결국 맘다니는 과반의 정당성을 안고 경선을 통과했다. 그해 11월 본선거에서도 승리하여 뉴욕시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 됐다.
사표가 될 뻔한 표들이 살아서 이동했다. 이것이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이 커진다는 원리의 선거제도적 설계다.
선거제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누구의 뜻을 살리고 누구의 뜻을 버릴지 정하는 권력의 설계도다. 단기명은 "하나만 고르고 입 다물라"고 명령한다. 순위투표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이 끝까지 일하게 하라"고 답한다.

국민동의청원, 국회 처리율 0% — 분산 실패의 현주소

지금 한국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처리율이 21대 국회에서 194건 중 17%였다. 22대 국회는 60건 중 0%다. 2년이 지나도 5만 명이 서명한 민의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의사결정권이 국회에만 집중됐을 때 그 권력은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모된다. 촛불이 두 번이나 일어난 것이 그 증거다.

정치개혁 파일럿 시민의회 — 제도에 켜는 촛불

그러나 선거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셀프입법이다. 선거제도를 포함해 국회의원의 특권과 권한에 관한 규칙을 의원들이 스스로 정한다. 심판이 경기 규칙을 정하고 선수가 그 심판을 겸하는 격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 그들이 제 손으로 제 특권을 내려놓을 리 없다.
이 자물쇠를 여는 방법이 파일럿 시민의회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모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숙의하고 그 결론으로 법안을 발의한다. 이해당사자인 의원이 아니라 추첨 시민이 다룬다. 중이 못 깎는 머리를 시민이라는 이발사가 깎는 것이다.
아테네가 2500년 전 추첨으로 시민을 공직에 세웠듯, 아일랜드와 캐나다의 시민의회가 헌법 의제를 숙의했듯, 한국도 할 수 있다. 대리에만 맡긴 민주주의는 절반의 민주주의다. 촛불은 한 번 타고 꺼지지만 그 불씨를 제도라는 화로에 옮겨 담으면 꺼지지 않는 불이 된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이 커진다는 원리의 가장 현대적인 실천이다.


4. 종합정리

관중은 제나라를 마을 단위로 나눠 강국을 만들었다. 미헬스는 나누는 구조를 끊임없이 설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소수에게 집중된다고 했다. 아테네는 추첨으로 500명에게 의사결정권을 나눴다. 스위스는 시민과 의회가 결정권을 나눈다. 뉴욕의 STV는 표가 살아서 이사 가도록 설계했다. 정도전은 나누려 했으나 실패했고, 덩샤오핑은 나눠서 성공했으며, 시진핑은 거둬서 후퇴했다.

대리에만 맡긴 민주주의는 절반의 민주주의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이 커진다는 원리의 현대적 실천이 파일럿 시민의회다. 촛불의 불씨를 제도라는 화로에 옮겨 담는 것.

민주주의 역량에는 두 층위가 있다. 저항의 역량과 설계의 역량이다. 저항의 역량 — 잘못된 권력을 끌어내리는 것. 여기서 한국은 세계 최강 수준이다. 4·19, 5·18, 6월항쟁, 두 번의 촛불, 내란 탄핵까지. 그러나 봉기 이후 민중은 어김없이 설계권을 대리인에게 넘겼다. 저항은 눈부셨지만 설계는 엘리트에게 넘어갔다. 이것이 반복된 비극이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이 커진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나눔의 구조를 직접 설계해야 한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그러나 그 나눔은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명제 9 —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벌집이 수백 마리 정찰벌의 탐색으로 최적의 집터를 찾듯, 나누면 더 나은 결정이 나온다. 아테네는 추첨으로,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뉴욕은 이양투표로, 관중은 마을 편제로 이 원리를 실천했다. 촛불의 불씨를 제도라는 화로에 담는 설계가 있어야 한다. 나누지 않는 권력은 소모된다.

2024년 5월 시민의회 국제심포지움에서 시민들이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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