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권력의 작동]
명제 11 — 일을 이루려면 그에 걸맞는 권력을 갖춰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하이에나 한 마리가 사자의 먹이를 빼앗으려 한다. 실패한다. 그러나 하이에나 열 마리가 모이면 사자도 물러선다. 사자 한 마리의 권력이 하이에나 무리의 권력에 밀리는 순간이다. 아무리 옳은 방향을 가진 존재라도 그 방향을 관철할 만한 권력이 없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
침팬지 무리에서 개혁적 성향의 수컷이 먹이 분배 방식을 바꾸려 한다. 알파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집 구성원 다수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옳은 방향과 충분한 권력이 함께 있을 때만 변화가 일어난다.
1. 뜻풀이
공적인 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그에 걸맞는 권력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명제 11의 핵심이다.
방향이 옳다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열정이 있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지가 강하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를 이루려면 반드시 그 변화를 가로막는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공적으로 유익한 일일수록 저항이 크다. 기득권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 저항을 이겨낼 만한 엔진과 날개가 없으면 개혁은 이륙하지 못한다. 비행기는 바람의 저항이 있어야 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저항을 이겨내는 엔진이 없으면 바람에 쓸려 추락한다.
권력 없는 개혁 의지는 세 가지 방향으로 끝난다. 첫째, 저항에 압살된다. 그라쿠스 형제처럼. 둘째, 방향을 잃고 타협한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딴판이 된다. 셋째, 실패로 더 나쁜 권력을 불러들인다. 공백이 다른 권력으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공적인 일을 이루려는 자에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지금 그 일을 감당할 만한 권력을 갖고 있는가.
없다면 권력을 조직하라.
노무현대통령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이를 말한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환공을 패자로 만들기 전에 관중이 먼저 한 것은 개혁이 아니었다. 권력 기반의 구축이었다. 창고를 채우고 군대를 훈련시키고 백성의 위임을 쌓았다. 15년이 걸렸다. 충분한 권력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밀어붙였다. 그래서 성공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것을 냉정하게 정리했다. 무장한 예언자는 성공하고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한다. 사보나롤라는 무장하지 않았다. 피렌체를 변화시키려 했지만 그 변화를 지킬 권력이 없었다. 결국 화형당했다. 모세는 달랐다.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명분과 함께 실제로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권력을 가졌다.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Girolamo 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 피렌체의 수도사·개혁가. 메디치 가문의 부패와 교회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피렌체를 신정 국가로 바꾸려 했다. 그러나 권력 기반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다 결국 교황과 귀족들의 반격으로 화형당했다.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의 비극이다.
한비자는 말했다. 아무리 현명해도 세(勢)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는 자리에서 나오는 권위다. 공적인 일을 이루려면 그 일을 실행할 세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3. 역사적 사례
그라쿠스 형제 ㅡ권력 없는 개혁의 비극
기원전 133년 로마.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호민관이었다. 귀족들이 공유지를 불법 점유하여 자영농이 몰락하고 있었다. 방향은 정확했다. 로마 공화정의 핵심 모순을 짚었다. 그러나 호민관의 권력으로 원로원 전체를 상대했다. 토지개혁법을 밀어붙이다 귀족들의 폭력에 죽었다. 10년 뒤 동생 가이우스도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실패는 방향의 실패가 아니었다. 권력의 실패였다. 로마 공화정의 뼈대를 바꾸는 개혁을 호민관의 권력으로 시도했다. 그 저항을 극복할 권력이 없었다.
▷그라쿠스 형제 Gracchi. 기원전 2세기 로마의 개혁가 형제. 형 티베리우스(기원전 163~133)와 동생 가이우스(기원전 154~121). 토지개혁과 평민 보호를 위해 권력을 사용했으나 원로원의 반격으로 모두 살해됐다. 올바른 방향의 개혁이 걸맞는 권력 없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
정도전 —설계는 탁월했으나 권력이 부족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설계자였다. 재상중심주의라는 방향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방원이라는 가장 강력한 저항을 극복할 권력을 갖추지 못한 채 너무 빠르게 밀어붙였다. 1398년 왕자의 난. 정도전은 죽었다.
세종은 정도전이 못 이룬 것을 다른 방법으로 이루었다. 집현전을 먼저 만들었다. 지식 권력을 먼저 갖추었다. 왕권을 충분히 다진 뒤 점진적으로 실행했다. 훈민정음 창제 때 최만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했다. 그때는 이미 저항을 극복할 권력이 있었다.
링컨 — 권력이 갖춰졌을 때 결단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즉흥적 결단이 아니었다. 전쟁의 명분이 쌓이고 북부의 위임이 충분히 모였을 때 결단했다. 1862년 9월 예비 선언, 1863년 1월 공포.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때 실행했다.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이 바뀌었고 영국의 중립을 이끌어냈다.
4. 종합정리
권력이 없으면 개혁도 없다. 이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그라쿠스는 죽었다. 사보나롤라는 화형당했다. 정도전은 살해됐다. 세 사람 모두 방향은 옳았다. 그러나 저항을 극복할 권력이 없었다. 반면 세종은 집현전을 만든 뒤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링컨은 전쟁의 명분이 쌓였을 때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방향과 권력이 함께 있었다.
석가모니는 왕자라는 권력의 후광을 업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파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많은 나라들에 순조롭게 전파되었다.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신분때문에 진리만을 따르던 12제자만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다.
둘 모두 시대를 거스르는 혁명적인 이야기를 전파했지만 운명은 달랐다. 이는 바로 권력의 위력이다.
공적인 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 — 먼저 물어라. 그 일을 감당할 만한 권력을 갖고 있는가. 저항이 얼마나 클 것인가. 그 저항을 극복할 엔진과 날개가 있는가. 있다면 나아가라. 없다면 먼저 갖춰라.
-명제 11 — 공적인 일을 이루려면 그에 걸맞는 권력을 갖춰야 한다. 그라쿠스는 방향은 옳았으나 권력이 부족했다. 정도전은 설계는 탁월했으나 저항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 세종은 먼저 집현전을 만든 뒤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방향과 권력이 함께 있을 때만 개혁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