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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원리 연재

권력의원리ㅡ명제 13. 권력에 의한 의사결정은 기승전결로 이행된다ㅡ위임철회가 발생하는 이유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0|조회수20 목록 댓글 0

[제3부 권력의 작동]

명제 13 — 권력에 의한 의사결정은 기승전결로 이행된다ㅡ위임철회가 발생하는 이유


동물의 세계에서

개코원숭이 무리가 새로운 먹이터로 이동을 결정하는 과정은 기승전결의 원형이다.

기(起) — 한두 마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임이 시작됐다. 승(承) — 더 많은 개체가 그 방향을 살피기 시작한다. 정보가 쌓인다. 경우의 수가 생긴다. 전(轉) — 임계점에 달한다.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무리의 방향이 결정된다. 결(結) — 무리 전체가 이동한다. 결정이 실행으로 옮겨진다.

꿀벌 무리가 새 집터를 결정하는 과정은 더 정교하다. 정찰벌 수백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져 후보지를 탐색한다(기). 돌아와 8자 춤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지지가 경쟁한다(승). 공감대가 임계점에 달한다(전). 무리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이동한다(결). 놀라운 것은 이 과정에서 여왕벌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보가 충분히 쌓이고 합의가 임계점에 달할 때 결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 뜻풀이

기승전결(起承轉結). 동양의 글쓰기 원리이자 음악의 구조이자 이야기의 뼈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권력에 의한 의사결정이 전개되는 자연의 원리다.

기(起) — 시작. 문제를 인식한다. 방향을 감지한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가능성이 하나다. 인(仁)의 단계다.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상황을 감지하는 것.

승(承) — 전개. 정보를 모은다. 경우의 수를 파악한다. 가능성이 여러 개로 분기된다. 지(知)의 단계다. 통찰로 경우의 수를 읽는 것.

전(轉) — 전환. 선택의 순간이다.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를 고른다. 가능성이 하나로 수렴된다. 의(義)의 단계. 이익이 아니라 올바름으로 선택하는 것.

결(結) — 완성. 선택을 실행한다. 결과가 나온다. 다음 기(起)의 토대가 된다. 신(信)의 단계다.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

이 네 단계는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 기 없이 승이 없다. 승 없이 전이 없다. 전 없이 결이 없다.

경우의 수의 변화를 보라. 기에서 경우의 수는 1이다. 승에서 경우의 수는 2, 그리고 전에서 4, 결의 8로 폭발한다. 전 결단계에서의 권력자의 선택은 다른 경우의 수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추상적 원리가 아니다. 도시계획의 현장에서 매번 확인되는 실천적 법칙이다.

도시계획의 의사결정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 발상(發想) — 하나의 아이디어로 시작한다. 구상(構想) — 구체적 상상이 더해지면 두 가지 방향이 생긴다.
계획(計劃) — 시간의 프로그램이 들어오면 네 가지 이상의 대안이 나타난다.
설계(設計) —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계에서 여덟 가지 이상으로 증식한다.

여기서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일곱은 채택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일곱으로부터의 저항은 확률적으로 반드시 존재한다. 이것은 선택된 안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선택 자체가 필연적으로 저항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허버트 사이먼은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으로 설명했다. 모든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인간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을 한다.
케네스 애로우는 불가능성 정리로 증명했다. 셋 이상의 대안이 있을 때 모두를 공정하게 만족시키는 집합적 결정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이먼이 개인의 인지 한계를 봤고 애로우가 집합적 선택의 한계를 봤다면, 도시계획의 현장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 더 있다 — 결정이 구체화될수록 저항의 씨앗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는 것이다.

▷ 허버트 사이먼 Herbert Simon, 1916~2001. 미국 경제학자·인지과학자. 카네기멜론대 교수.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해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과 만족화(satisficing) 개념을 제시했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저서 《행정행동》(Administrative Behavior, 1947).

▷ 케네스 애로우 Kenneth Arrow, 1921~2017. 미국 경제학자. 스탠퍼드대 교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 1951)로 집합적 의사결정의 수학적 한계를 증명했다. 19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저서 《사회적 선택과 개인적 가치》(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 1951).

의사결정이 쌓일수록 위임은 소모된다

여기서 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가 생긴다. 권력자가 전(轉)의 단계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경우의 수를 원한 구성원들의 위임이 일부 철회된다. 이것은 수학적 필연이다.

한 번의 결정에서 위임의 일부가 소모된다. 두 번째 결정에서 또 소모된다. 결정이 쌓일수록 소모가 쌓인다. 아무리 훌륭한 권력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위임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결정이 많을수록 실망하는 구성원도 많아진다. 모든 결정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와 승의 단계에서 충분한 참여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轉)의 패자도 결(結)을 인정하고 다음 기(起)에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예(禮)는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다. 예가 없으면 전(轉)의 패자는 다시 기(起)로 돌아오지 않는다. 순환이 끊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죽음이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의 국정 운영은 기승전결의 원리 위에 있었다. 관중은 서두르지 않았다. 환공이 즉위한 뒤 즉각 전쟁을 원했을 때 관중은 먼저 내정을 다지자고 했다.

기 — 제나라의 현실을 파악한다.
승 — 경제 개혁으로 힘을 기른다.
전 — 외교와 군사의 때를 기다린다.
결 — 규구의 회맹으로 패자가 된다.

이 흐름에 15년이 걸렸다. 서두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관중은 말했다. 때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의 흐름을 읽는 것이 비르투의 핵심이라고 했다. 포르투나는 강물처럼 흐른다. 기의 단계에서 그 흐름을 읽어야 한다. 승의 단계에서 준비해야 한다. 전의 단계에서 결단해야 한다. 결의 단계에서 실행해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든 타이밍을 놓치면 포르투나는 지나간다.

주역의 소과괘(小過卦)는 승(承) 단계의 원리를 가르친다. 작은 것을 먼저 처리하라. 큰 것을 먼저 하려다 작은 것에 발목 잡힌다. 승의 단계에서 충분히 경우의 수를 파악하지 않으면 전(轉)의 결정이 실패한다.

3. 역사적 사례

유방의 한나라 건국 — 기승전결의 완벽한 사례

기 — 진나라 말기의 혼란. 유방은 패현의 작은 관리였다. 그러나 시대의 기를 읽었다. 승 — 각지에서 위임을 모았다. 약법삼장으로 백성의 신뢰를 쌓았다. 경우의 수를 늘렸다. 전 — 해하 전투. 모든 위임을 하나로 모아 결전을 선택했다. 결 — 한나라 건국.

유방이 탁월한 것은 기의 단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의 단계에서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왕과 일본 천황 — 권위자로 남는 전략

의사결정이 쌓일수록 위임이 소모된다는 것을 역사가 만들어낸 해법이 있다. 결정권을 내려놓고 권위자로 남는 것이다.

영국의 왕과 일본의 천황이 그 길을 택했다. 실질적 의사결정을 의회와 내각에 넘기고 자신은 상징적 권위만 보유한다. 결정을 내리지 않으니 위임이 소모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더 넓은 위임을 유지한다. 존재 자체가 명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이다. 결정하지 않는 권력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권위자다. 권력과 권위는 다르다. 권력은 결정하는 힘이고 권위는 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영국 왕과 일본 천황은 권력을 버리고 권위를 얻었다. 그 선택이 수백 년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조직의 관료화 — 혁신 없는 클러스터링의 말로

어떤 권력 조직이든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의사결정이 시행되면 분열이 생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원리다. 결정이 쌓일수록 불만족한 구성원이 쌓인다. 처음에는 작은 균열이다. 그러나 균열은 쌓인다.

균열에 대응하는 방법은 하나다. 새로운 클러스터링. 새로운 명분, 새로운 위임의 구조, 새로운 결합의 계기. 이것이 없으면 조직은 경직되고 관료화된다. 관료화된 조직은 기(起)를 감지하는 능력을 잃는다. 승(承)에서 경우의 수를 펼치지 않는다. 기존 방식만 반복한다. 결국 외부의 기(起)에 의해 해체된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전환된 것도, 조선이 세도정치로 굳어진 것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제도화 이후 관료화된 것도 같은 원리다. 혁신이 없으면 조직은 결국 자신의 무게에 눌린다.


4. 종합정리

의사결정은 기승전결로 전개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원리다.

그리고 결정이 쌓일수록 위임이 소모된다는 것도 원리다. 아무리 훌륭한 권력자도 시간 앞에서 이 원리를 피할 수 없다. 영국 왕은 결정권을 포기함으로써 권위를 얻었다. 관료화된 조직은 새로운 클러스터링 없이 스스로 굳어간다.

결정의 역설 —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결정하면 할수록 위임이 소모된다. 이 역설을 아는 권력자만이 오래 간다. 결정의 질을 높이고 기와 승의 과정을 충분히 밟으며 전-결단계의 이반을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기승전결의 지혜다.

명제 13 — 권력에 의한 의사결정은 기승전결로 전개된다. 기-승에서 공감과 합의가 제대로 형성되어야 전-결에서의 실행에 저항이 적다. 그럼에도 결정이 쌓일수록 위임은 소모된다. 그러므로 결정의 질을 높여야 한다. 혁신이 없으면 조직은 자신의 무게에 눌린다.

2600년전의 인물 관중(관자). 권력의 원리를 제대로 구동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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