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 권력의 진화와 유지]
명제 16 — 권력에는 호르몬이 따른다 — 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라퐁텐의 우화가 있다. 강을 건너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동행을 부탁한다. 개구리가 허락해줬다. 그런데 전갈은 중간에 개구리를 찌른다. 함께 빠져 죽는다. 왜 찔렀는가. 그것이 나의 본성이라고 전갈이 말한다.
▷ 장 드 라퐁텐 Jean de La Fontaine, 1621~1695. 프랑스 시인. 이솝 우화를 바탕으로 한 《우화》(Fables)로 유명하다. 전갈과 개구리 우화는 본능과 합리성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권력 호르몬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는 원리의 비유로 사용된다.
자신마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찌르는 것이 전갈의 본성이다. 이것은 합리적 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의 역사는 이런 전갈들로 가득하다. 공멸을 알면서도 질러놓고 보는 자들. 인과론을 초월하는 이 본능이 권력 호르몬이다.
로버트 새폴스키가 케냐 마사이마라에서 수십 년간 관찰한 개코원숭이 무리는 권력과 생물학의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알파 수컷은 다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가 낮다. 면역 기능이 강하다. 권력이 몸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집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고 구성원을 보호하는 알파는 이 호르몬 균형이 유지됐다. 폭력과 강압으로만 군림하는 알파는 점차 코르티솔이 올라가고 판단력이 흐려졌다. 권력의 사용 방식이 몸의 화학을 다시 바꾼다. 권력은 몸을 바꾸고 몸은 다시 권력을 바꾼다.
1. 뜻풀이
권력에는 역설이 있다. 공감으로 위임을 모아 권력을 얻는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면 공감을 잃기 시작한다. 공감을 잃으면 위임을 잃기 시작한다. 권력을 얻게 해준 바로 그 능력이 권력을 가지면 사라진다. 이것이 양날의 칼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세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생물학적 층위 — 새폴스키가 증명했다. 권력은 테스토스테론과 코르티솔의 균형을 바꾼다. 권력자는 신체적으로 달라진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는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심리학적 층위 — 애덤 갈린스키가 증명했다. 권력은 행동활성화시스템(BAS)을 켜고 행동억제시스템(BIS)을 끈다. 쉽게 말하면, 권력을 가지면 "해도 될까"라고 묻는 목소리가 작아지고 "하자"는 목소리만 커진다. 술에 취했을 때, 익명일 때, 권력을 가졌을 때 — 이 세 가지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뇌에서는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망설임의 회로가 꺼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양쪽으로 갈린다. 더 대담하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거리낌 없이 나쁜 일을 할 수도 있다.
갈린스키의 또 다른 실험은 더 직접적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리게 했다. 자기 시점에서 쓴 사람일수록 — 즉 남이 봤을 때 거꾸로 보이게 그린 사람일수록 — 더 강한 권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권력은 "남이 어떻게 볼까"를 잊게 만든다.
▷ 애덤 갈린스키 Adam Galinsky, 1969~.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권력과 협상의 심리학을 연구한다. 권력이 행동활성화시스템(BAS)을 활성화하고 행동억제시스템(BIS)을 약화시켜 '탈억제(disinhibition)'를 일으킨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권력뿐 아니라 음주·익명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경과학적 층위 — 앵거스 플레처가 증명했다. 권력자는 세 가지 뇌 상태의 함정에 빠진다.
공황 — 위기 앞에서 판단이 마비된다.
분노 — 저항 앞에서 감정이 앞선다.
혼란 — 복잡함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 앵거스 플레처 Angus Fletcher. 미국 스토리텔링 연구자. 뇌과학과 문학의 교차점에서 권력자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공황·분노·혼란의 세 함정을 극복하는 '고유지능(직관·상상력·감정·상식)'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명제 16은 권력자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구조에 대한 경고다. 권력자가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구조 문제다. 그러므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환공에게 끊임없이 경고했다. 군주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욕망이다. 《관자》에서 그는 말했다. 군주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신하들이 그것을 이용한다. 군주가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신하들이 그것으로 위협한다.
환공의 호르몬을 관리하는 것. 충동적 결정을 막는 것. 욕망이 위임을 소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 그것이 관중이 환공 곁에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관중이 죽은 뒤 환공은 역아·수조·개방이라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였다. 아들을 삶아 바치고 스스로 거세하며 고국을 버린 자들. 관중은 경고했었다. 인간의 정리로 할 수 없는 것을 한 자는 반드시 다른 목적이 있다. 견제가 사라지자 권력 호르몬이 폭주했다. 환공은 굶어 죽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말했다. 군주는 아첨꾼을 피해야 한다. 권력 호르몬이 만드는 자기 확신 —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옳다는 착각 — 이 아첨꾼을 불러들이고 직언하는 자를 멀리하게 만든다.
새폴스키의 발견을 기억하라.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높으면 뇌의 해마가 손상된다. 기억력과 판단력이 흐려진다. 견제 없이 오래 권력을 유지하면 판단력이 손상된다. 손상된 판단으로 더 나쁜 결정을 내린다. 더 나쁜 결정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만든다. 악순환이다.
켈트너가 제시한 해법은 의식적 환기다. 권력이 주는 도파민의 쾌감을 스스로 의식하고, 공감과 감사의 실천을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것. 권력을 준 사람들에게 계속 시선을 돌리는 것. 이것이 권력 호르몬의 역설적 해법이다.
3. 역사적 사례
나폴레옹 — 권력 호르몬의 교과서
초기의 나폴레옹은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고 싸웠다. 그 공감이 폭발적인 위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뒤 나폴레옹은 변했다. 아무도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러시아 원정 전에 측근들은 경고했다. 나폴레옹은 듣지 않았다. 공감 능력의 감소. 충동의 증가. 자기 확신의 과잉. 60만 대군이 러시아의 동토에서 죽었다.
연산군 — 동양의 사례
연산군은 처음부터 폭군이 아니었다. 즉위 초에는 신하들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될수록 변했다. 직언하는 자를 견디지 못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제거했다. 직언하는 자가 사라지자 아첨꾼만 남았다. 악순환이 가속됐다. 중종반정. 스스로의 파멸이었다.
푸틴 — 현재진행형의 증거
초기의 푸틴은 유능하고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20년 이상의 권력이 그를 바꿨다.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 주변에는 이미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3일 만에 끝날 것이라 믿었던 전쟁이 3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오랜 권력이 판단력을 손상시킨 것이다.
4. 종합정리
권력에는 호르몬이 따른다. 새폴스키가 생물학으로, 갈린스키가 심리학으로, 플레처가 신경과학으로 증명했다. 권력자는 변한다. 선택이 아니라 메커니즘으로.
그러므로 권력자 개인을 탓하지 마라. 구조를 설계하라. 진실을 말하는 자를 보호하는 구조. 임기를 제한하는 구조. 권한을 나누는 구조. 이것이 명제 14의 견제 구조가 필요한 생물학적·심리학적 근거다.
카르스텐 샤물리는 이 메커니즘을 중독의 언어로 정밀하게 번역했다. 권력은 소유자에게 도취감을 준다. 처음에는 기분 좋은 흥분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권력이 필요해진다.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중독이다. 그리고 중독은 사람을 변형시킨다. 더 충동적으로, 덜 공감적으로, 더 부패하게. 권력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권력 중독이 사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 카르스텐 C. 샤물리 Carsten C. Schermuly, 1976~. 독일 SRH 베를린 응용과학대학 경영심리학 교수. New Work and Coaching 연구소(INWOC) 소장. 임파워먼트·뉴워크를 핵심 연구 주제로 삼는다. 저서 《권력의 심리학》(Die Psychologie der Macht, 2025)에서 권력의 도취감과 중독 메커니즘, 그리고 심리적 임파워먼트를 처방으로 제시했다.
샤물리의 처방은 임파워먼트다. 순수한 권력 집중의 대체물로서, 권력을 나누고 분산시키는 것. 조직과 공동체에서 권력이 공공선을 위해 작동하게 하려면,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 중독된 자에게 스스로 끊으라고 할 수 없다 — 구조적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권력 중독을 끊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설계다.
그리고 켈트너의 권력의 역설을 기억하라. 그는 20년간의 연구를 다섯 가지 실천으로 압축했다. 자신이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 자체를 의식할 것. 그 느낌이 주는 도파민의 쾌감을 경계할 것. 공감을 유지할 것. 감사를 표현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이야기를 할 것. 켈트너는 말한다. 권력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권력을 준 이유 — 공동의 이익에 기여했기 때문 — 를 잊는 순간, 그 권력은 빠르게 흘러나간다.
▷ 대처 켈트너 Dacher Keltner, 1962~. 미국 UC버클리 심리학 교수. 그레이터 굿 사이언스 센터 소장. 저서 《권력의 역설》(The Power Paradox, 2016)에서, 권력을 얻게 해준 자질(공감·이타성·연결)이 권력을 가지면 사라지는 역설을 분석하고 다섯 가지 실천으로 이를 극복할 것을 제안했다.
갈린스키와 켈트너의 결론은 같다. 스스로 제동장치를 달지 않으면 — 의식적으로 망설이고, 의식적으로 공감하고, 의식적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 리더십은 반드시 파멸한다. 권력에 취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집단을 위해 싸우고 구성원을 보호하는 알파가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강한 생물학적 이유다.
명제 16 — 권력에는 호르몬이 따른다. 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공감으로 위임을 모았지만 권력을 가지면 공감을 잃는다. 스스로 제동장치를 달지 않으면 리더십은 반드시 파멸한다.
구조를 설계하라. 그리고 권력을 나눠줄 때 권력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역설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