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권력의 진화와 유지]
명제 18 — 권력은 권위와 경멸 사이에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 고릴라 실버백은 무리 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그러나 그 권위는 공짜가 아니다. 실버백은 외부 포식자 앞에서 가장 먼저 나선다.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구성원들이 이 모습을 볼 때 권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실버백이 위협 앞에서 도망치거나 새끼들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권위는 순식간에 경멸로 바뀐다. 무리는 새로운 알파를 찾는다.
권위와 경멸 사이의 거리는 짧다. 아무도 없을 때의 행동 하나가 그 거리를 메운다.
침팬지 알파는 언제나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먹이를 독차지하면 구성원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공유하면 다시 달라진다. 그 시선이 권위와 경멸 사이를 오간다. 프란스 드 발이 말했다. 침팬지 알파의 권위는 매일 재확인되어야 한다. 재확인되지 않은 권위는 경멸로 향한다.
1. 뜻풀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반드시 피해야 할 두 가지를 말했다. 증오와 경멸이다.
증오는 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할 때 온다. 이것은 명제 5(생존)에서 다뤘다. 그러나 경멸은 다르다. 경멸은 훨씬 더 미묘하게 온다. 그리고 훨씬 더 치명적이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증오는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경멸은 싸울 수 없다. 경멸받는 군주는 이미 권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멸은 어떻게 오는가. 다섯 가지 원인이 있다.
변덕스러움 — 오늘 한 말과 내일 한 말이 다르다.
경박함 — 작은 일에 흔들린다.
유약함 — 어려운 결정 앞에서 피한다.
우유부단함 —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무기력함 — 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나타나면 경멸이 시작된다. 경멸은 소문처럼 퍼진다. 그리고 경멸이 퍼지기 시작하면 권위는 급속히 무너진다.
반면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일관성 — 어제 한 말을 오늘도 지킨다.
단호함 — 어려운 결정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능력 — 맡은 일을 실제로 이룬다.
품격 —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원칙을 지킨다.
권위와 경멸 사이에는 권력이 있다. 권위에 가까울수록 위임이 모인다. 경멸에 가까울수록 위임이 떠난다. 권력자의 일상이 매 순간 이 사이 어딘가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환공에게 권위를 세우는 방법을 가르쳤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켜라. 상을 줄 것이라 했으면 반드시 주어라. 벌을 줄 것이라 했으면 반드시 내려라. 일관성이 권위를 만들고 변덕이 경멸을 만든다.
관중 자신이 권위의 모델이었다. 환공과 관중은 젊은 시절 적이었다. 관중이 환공을 향해 화살을 쏜 적도 있다. 그러나 환공은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으로 삼았다. 관중은 그 위임에 평생 일관되게 응답했다. 사심 없이, 변덕 없이. 그것이 관중의 권위를 만들었다. 죽은 뒤에도 그 권위는 오래 남았다.
마키아벨리는 경멸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가장 실용적인 조언을 남겼다. 군주는 위대한 일들의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연출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높이 평가한 군주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말과 행동이 일치했다. 체사레 보르자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경멸을 받지 않은 이유는 그가 선언한 것을 실제로 행했기 때문이다. 잔인하더라도 일관된 자는 경멸받지 않는다. 선하더라도 무기력한 자는 경멸받는다.
베블런은 권위와 경멸의 경계가 과시와 실제 능력의 괴리에서 만들어진다고 봤다. 과시가 실제 능력을 앞서는 순간 경멸이 시작된다. 이것이 화려한 권력이 갑자기 무너지는 이유다.
▷ 베블런 Thorstein Veblen, 1857~1929. 미국 경제학자·사회비평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에서 과시적 소비와 사회적 지위의 관계를 분석했다. 권위가 어떻게 과시되고 경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선구자.
3. 역사적 사례
루이 16세 — 유약함이 부른 경멸
루이 16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선의를 가졌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마다 결단하지 못했다. 귀족들의 과세를 거부당했을 때 물러섰다. 삼부회가 국민의회로 전환될 때 망설였다. 바스티유가 함락됐을 때 흔들렸다.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했다. 백성들은 서서히 경멸하기 시작했다. 증오가 아니었다. 경멸이었다. 그 경멸이 단두대로 이어졌다.
▷ 루이 16세 Louis XVI, 1754~1793. 프랑스 왕국의 마지막 왕. 선의를 가졌으나 결단력이 부족하여 프랑스 혁명의 급류를 감당하지 못했다.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경멸받은 권위의 가장 극적인 역사적 사례.
세종 — 권위의 설계
세종은 권위를 연출하지 않았다. 실제로 쌓았다. 훈민정음을 만들 때 신하들의 반대를 정면으로 받았다. 물러서지 않았다. 직접 연구하고 직접 검증했다. 결과로 말했다. 권위는 선언이 아니라 성취에서 온다는 것을 세종이 보여줬다.
세종은 또 신하들의 직언을 보호했다. 틀린 말을 해도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려했다. 권위 있는 자가 직언을 수용할 때 그 권위는 더 강해진다. 경멸은 강압적인 자에게만 오지 않는다.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자에게도 온다.
2024년 내란 — 경멸로 끝난 계엄
2024년 12월 3일 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군인들이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갔다. 시민들이 탱크 앞에 섰다.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다.
이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었다. 경멸의 표현이었다. 가장 극적인 권력 행사가 가장 극적인 경멸을 받은 것이다. 권위 없이 행사된 권력은 경멸 앞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한국 현대사가 다시 한번 보여줬다.
4. 종합정리
권력은 권위와 경멸 사이에 있다. 매 순간 이 사이 어딘가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권위는 일관성·단호함·능력·품격에서 온다. 경멸은 변덕·경박함·유약함·우유부단함·무기력함에서 온다. 관중은 일관성으로 권위를 쌓았다. 세종은 성취로 권위를 만들었다. 루이 16세는 우유부단함으로 경멸을 샀다.
마키아벨리의 경고를 기억하라. 증오는 싸울 수 있다. 경멸은 싸울 수 없다. 경멸받는 권력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경멸을 피하는 것이 증오를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지금 한국의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은 위기에 있다. 최근의 지방선거에서 드러나듯, 선명한 개혁 노선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표를 의식해 흉내만 내는 행태는, 강성 지지층에게는 개혁성 상실로, 중도층에게는 진정성 없는 선거용 꼼수로 비치며 양쪽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이런 경멸은 정권의 위기다.
5. 21세기의 경멸 — 평판권력의 무기화
그런데 21세기에는 경멸의 발생 경로 자체가 달라졌다. 마키아벨리의 다섯 가지 원인 — 변덕·경박함·유약함·우유부단함·무기력함 — 은 모두 권력자의 실제 행동에서 나온다. 행동이 있고, 그 행동에 대한 평가로 경멸이 따라온다.
그러나 평판권력의 시대에는 순서가 뒤집힐 수 있다. 폭로가 있고, 그 폭로의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경멸은 이미 도착해 있다. 경멸은 진실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명제 18의 핵심으로 돌아간다. 경멸은 싸울 수 없다. 증오라면 법정에서, 여론에서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경멸은 다툼의 대상이 되는 순간 오히려 강화된다. "변명한다"는 사실 자체가 다섯 번째 원인 — 무기력함 — 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이 나중에 밝혀져도 경멸은 쉽게 회수되지 않는다. 위임은 빠르게 떠나고 느리게 돌아온다. 어쩌면 돌아오지 않는다.
대학과 연예계를 비롯한 여러 공인의 영역에서, 내부의 비리나 부당함을 폭로한 이가 거꾸로 다른 혐의로 고발당하고, 그 고발이 수년 후 무혐의나 무죄로 결론나는 사례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 수년의 시간 동안, 폭로자의 자리와 평판은 이미 무너져 있다. 진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경멸이 할 일을 끝낸 뒤다.
이 비가역성은 개인에게만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에도 작동한다. 공인의 죽음이나 중대한 사건이 평판권력의 격류 속에 던져지면, 진상규명이라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조차 정치적 위험이 된다. 진실을 끝까지 밝히려는 절차 자체가 "누군가의 편을 드는 행위"로 읽힐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종종 진상규명을 서둘러 종결하거나,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제 14가 말했듯,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남용된다. 진상규명이라는 견제 장치가 평판권력의 압력 앞에 멈춰설 때, 남는 것은 영원히 봉합되지 않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명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네 커뮤니티에서 — 평판이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고, 그 평판이 누군가의 삶을 결정짓는 구조는 도처에 있다. 권력을 가진 자만 경멸의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고, 한번 표적이 되면 진실은 그 뒤를 영원히 따라가야 한다.
더 깊은 함정이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자체가 또 다른 경멸의 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말이 "2차 가해"로 읽히는 구조 안에서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침묵해야 한다. 경멸을 멈추려는 시도가 새로운 경멸을 부른다. 출구가 사라진다.
이것이 현대 사회가 마주한 새로운 위기다. 진실을 향해 가는 절차를 지키는 것 — 그것이 결과가 누구에게 불리하든, 권위가 경멸로 떠밀리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그 절차를 지키려는 자가 또 다른 경멸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 이것이 21세기의 명제 18이 새롭게 던지는 과제다.
명제 18 — 권력은 권위와 경멸 사이에 있다. 증오는 싸울 수 있지만 경멸은 싸울 수 없다. 루이 16세는 선의를 가졌지만 우유부단함으로 경멸을 샀다. 실버백이 포식자 앞에서 도망치는 순간 권위는 사라진다. 일관성이 권위를 만들고 변덕이 경멸을 만든다.
그러나 21세기의 경멸은 진실을 기다리지 않는다. 폭로가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고, 그 경멸은 좀처럼 회수되지 않는다.
평판권력 증폭시대의 화두다.
단두대에서 참수된 루이16세의 머리. 경멸받은 권력의 최후다. 사진은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