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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원리 연재

권력의 원리ㅡ명제 20. 권력의 근거가 다각화될수록 권력은 오래간다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제4부 권력의 진화와 유지]

명제 20 — 권력의 근거가 다각화될수록 권력은 오래간다


동물의 세계에서

범고래 무리는 하나의 먹이에 의존하지 않는다. 연어가 줄어들면 청어를 사냥한다. 사냥 방식도 다양하다. 좌초 사냥, 파도 사냥, 협동 사냥. 먹이와 방법의 다각화가 무리의 생존을 보장한다. 하나에 의존하는 무리는 그 하나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침팬지 알파는 권력의 근거를 다각화했다. 힘만으로 알파가 유지되지 않는다. 동맹을 관리한다. 약한 개체들을 보호한다. 암컷들의 신뢰를 유지한다. 외부 위협으로부터 무리를 지킨다. 이 여러 근거들이 동시에 작동할 때 알파의 권력이 오래간다.


1. 뜻풀이

권력의 근거가 하나뿐인 권력은 그 하나가 흔들리면 무너진다. 역사상 오래간 권력들의 공통점은 권력의 근거가 여러 층위에 걸쳐 동시에 작동했다는 것이다.

포피츠는 권력의 네 가지 유형을 분류했다.
행동 권력 — 물리적 강제력.
도구적 권력 — 자원의 통제, 보상과 처벌. 공유부가 이 도구적 권력의 물질적 토대다.
권위적 권력 — 규범과 정당성.
데이터 권력 — 현실을 정의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권력이 가장 강하고 가장 오래간다.
▷ 하인리히 포피츠 Heinrich Popitz, 1925~2002. 독일 사회학자. 권력의 네 가지 유형(행동 권력·도구적 권력·권위적 권력·데이터 권력)을 체계화했다. 이 분류가 현대 권력 분석의 표준 틀이 됐다. 저서 《사회적 권력 현상》(Phänomene der Macht, 1992).

공유부 — 도구적 권력의 물질적 토대

공유부(Commons)가 소수에게 독점되면 문명이 무너지고,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갈 때 문명이 도약한다. 로마의 공유지(Ager Publicus)는 시민들의 물질적 토대였다. 공화정 말기에 귀족들이 사유화하면서 자영농이 몰락했다. 그라쿠스 형제가 되돌리려 했다가 암살됐다. 공유부가 무너지면서 로마의 내부가 서서히 썩어들어갔다. 당나라의 균전제가 무너지면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한국의 농지개혁이 성공했을 때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제나라의 권력 근거를 다각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봤다. 군사력만으로는 패자가 될 수 없었다. 경제력을 키웠다. 외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도덕적 명분을 확보했다. 문화적 권위를 쌓았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제나라는 춘추시대 최강국이 됐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말했다. 민심, 귀족, 군대. 이 세 축의 위임을 동시에 유지하는 자가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다.

포피츠가 특히 강조한 것은 데이터 권력이다. 현실을 정의하는 권력. 이 데이터 권력을 어느 단일 세력이 독점하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정찰벌이 거짓 정보로 춤을 추면 군집 전체가 잘못된 집터를 선택하듯.

주역의 비괘(比卦, 8번째)는 다각화의 원리를 "친비(親比)"로 담았다. 여러 방향으로 연대를 맺고 가까이하라. 하나의 축에만 의지하는 자는 그 축이 흔들리면 함께 무너진다. 겸괘(謙卦, 15번째)는 "겸손한 자는 형통한다"고 가르친다. 하나의 근거에 의존하는 권력은 교만이고, 여러 층위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한 권력이 오래간다.


3. 역사적 사례

로마 — 다각화의 완성과 붕괴

로마가 500년 이상 지속된 것은 권력 근거의 다각화 덕분이었다. 군단(행동 권력), 경제와 세금(도구적 권력), 로마법과 시민권(권위적 권력), 로마 문화와 라틴어(데이터 권력).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그러나 공유부가 붕괴했을 때 도구적 권력의 토대가 흔들렸다. 다각화가 무너지면서 제국이 무너졌다.

월왕 구천 — 다각화로 복수를 완성한 20년

기원전 494년, 월왕 구천(勾踐)은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참패했다. 포로가 되어 말 그대로 굴욕의 바닥을 맛봤다. 그러나 구천은 그 바닥에서 다각화의 설계를 시작했다.
범려(范蠡)는 군사와 외교를 맡았다. 문종(文種)은 내정과 경제를 맡았다. 구천 자신은 친히 밭을 갈고 백성과 함께 먹었다 — 권위적 권력의 재건이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쓸개를 핥아 굴욕을 잊지 않았다. 20년. 군사·경제·외교·권위 네 층위의 다각화가 동시에 완성됐을 때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 범려(范蠡) ?~기원전 448.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전략가.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공(功)이 이루어지면 물러나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해 스스로 물러났다. 훗날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 기록됐다.

하나에 의존한 자는 그 하나가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진다. 구천은 가장 낮은 곳에서 여러 근거를 동시에 쌓았다. 단일화된 권력이 아니라 다각화된 위임이 20년을 버텼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 다각화의 성공과 실패

오다 노부나가는 군사력 하나로 일본 전국시대를 제압했다. 혁신적 전술, 철포의 도입, 무자비한 결단. 그러나 그의 권력은 군사력이라는 단 하나의 근거 위에 서 있었다. 1582년 혼노지(本能寺)에서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죽었다. 그 하나가 무너지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달랐다. 군사력에 경제력(검지·刀狩)을 더했다. 노(能) 문화를 후원해 권위적 권력을 쌓았다.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다각화된 근거가 더 오래갔다. 그러나 임진왜란이라는 과잉 확장이 경제·외교·군사 모두를 한꺼번에 소진시켰다. 과잉 확장은 다각화의 적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 위기를 다각화로 돌파한 여왕

1740년, 합스부르크의 카를 6세가 죽었다. 후계자는 스물세 살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 즉위하자마자 프로이센·프랑스·바이에른이 동시에 영토를 침략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시작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군사 개혁으로 행동 권력을 재건했다. 세제 개혁으로 경제력(도구적 권력)을 정비했다. 교육 개혁으로 인재를 키웠다. 숙적 프랑스와 동맹을 맺는 외교 역전("외교혁명")으로 데이터 권력의 판을 바꿨다. 그리고 직접 헝가리 의회에 나타나 갓난아이를 안고 눈물로 호소해 군사 지원을 받아냈다 — 권위적 권력의 절정이었다.
▷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1717~1780. 합스부르크 군주. 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아의 여왕(재위 1740~178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위기를 군사·행정·외교·교육 개혁의 동시 다각화로 돌파했다. 합스부르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된다.

네 층위의 다각화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위기가 역전됐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40년 통치는 합스부르크 역사상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위기가 다각화를 강제하고, 다각화가 위기를 돌파한 것이다.

한국의 언론권력 — 데이터 권력의 독점

조선·중앙·동아. 시민들이 위임한 적 없는 권력을 세습으로 유지한다. 현실을 정의하는 권력이 소수 가문에 독점됐을 때 민주주의적 위임 갱신이 왜곡된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이 데이터 권력의 독점이 더 정교해졌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길지 결정한다. 신문사는 이름이라도 있다. 알고리즘은 얼굴이 없다. 데이터 권력의 다각화가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4. 종합정리

관중은 경제·외교·군사·명분을 동시에 구축했다. 로마는 군단·법·경제·문화를 동시에 작동시켰다. 구천은 20년간 군사·경제·외교·권위 네 층위를 동시에 재건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위기 앞에서 네 층위의 다각화로 합스부르크를 구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군사력 하나에 의존하다 무너졌고, 히데요시는 과잉 확장으로 다각화를 스스로 소진했다. 공유부가 무너졌을 때 로마도 당나라도 쇠락했다.

권력의 근거를 다각화하라. 하나에 의존하면 그 하나가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진다. 여러 근거가 서로를 뒷받침할 때 권력은 오래간다. 그리고 그 다각화에서 공유부의 보전과 데이터 권력의 민주화가 가장 시급한 현대적 과제다.


명제 20. 권력의 근거가 다각화될수록 권력은 오래간다. 범고래는 연어가 없으면 청어를 사냥한다. 로마는 군단·법·경제·문화로 500년을 버텼다. 그러나 공유부가 무너졌을 때 제국도 무너졌다. 하나에 의존하지 마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 마리아 테레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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