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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원리 연재

권력의 원리ㅡ명제 21. 권력은 후계자가 있어야 강해진다

작성자이원영|작성시간26.06.18|조회수31 목록 댓글 0

[제4부 권력의 진화와 유지]

명제 21 — 권력은 후계자가 있어야 강해진다

동물의 세계에서

침팬지 현명한 알파는 자신의 후계자를 준비했다. 젊고 유망한 수컷을 곁에 뒀다. 함께 사냥하게 했다. 무리 관리의 경험을 쌓게 했다. 자신의 동맹 네트워크를 서서히 이전했다. 이 알파가 늙어 자리를 내줄 때 무리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후계자를 두지 않은 알파가 갑자기 사라지면 무리는 혼란에 빠진다. 후계자가 있는 권력과 없는 권력의 차이가 무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여왕벌이 늙어가면 벌집은 미리 준비한다. 새 여왕벌을 키운다. 때가 되면 기존 여왕벌이 일부 일벌과 함께 새 집터로 떠난다. 후계가 권력을 분열시킨 것이 아니라 확장시킨 것이다.


1. 뜻풀이

권력은 사람에게 묶여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작동한다. 권력자가 사라지면 권력도 함께 사라질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을 막는 것이 후계자다.
후계자가 있어야 권력이 강해지는 이유는 세 가지다.

연속성 — 권력이 지향하는 방향이 계속 작동하려면 그 방향을 이어받을 자가 필요하다.
현재의 강화 — 역설적으로 후계자가 있으면 현재의 권력이 더 강해진다. 내가 없어도 이 일이 계속된다는 것. 그것이 구성원에게 더 강한 안도와 위임을 만든다.
견제의 기능 — 후계자는 현재 권력자를 자연스럽게 견제한다.

딜레마가 있다. 후계자를 지명하면 권력자 자신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구성원들의 시선이 후계자에게 쏠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미룬다. 그러나 미룰수록 권력 공백의 위험이 커진다.
해법은 하나다. 개인 후계자가 아니라 제도를 후계자로 만드는 것. 사람은 죽지만 제도는 남는다.

주역의 점괘(漸卦, 53번째)는 후계의 원리를 "기러기가 차례로 나아간다"는 상(象)으로 담았다. 기러기는 무리지어 날 때 순서가 있다. 앞의 기러기가 뒤의 기러기를 위해 바람을 가른다. 후계란 강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서다. 항괘(恒卦, 32번째)는 "항구히 지속되는 것"의 원리다. 권력이 제도를 통해 지속될 때만 항구성이 가능하다. 사람에게 묶인 권력은 항구할 수 없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의 가장 큰 실패가 후계자 문제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관중은 죽기 전 환공에게 후계 재상을 분명히 조언했다. 사마천의 《사기》 「관안열전」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환공이 물었다. 그대가 죽고 나면 누가 재상이 되어야 하는가. 관중이 답했다. 포숙아는 안 됩니다. 포숙아는 선악의 구분이 너무 엄격합니다. 선한 것만 가까이하고 악한 것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습니다. 군주를 모시기에는 너무 날이 서 있습니다. 관중은 대신 습붕(隰朋)을 추천했다.
▷ **포숙아(鮑叔牙)** ?~기원전 644.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대신. 관중의 오랜 벗으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을 환공에게 천거한 인물이지만, 관중은 죽기 전 포숙아를 후계 재상으로 추천하지 않았다. 덕이 너무 높아 현실 정치에서 군주를 보좌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환공은 이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관중이 죽자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았고, 얼마 후 다시 역아·수조·개방이라는 간신들을 곁에 뒀다. 관중이 죽기 전 경고했던 바로 그 세 사람이었다. 후계의 설계는 했으나 위임이 없었다. 설계는 집행되지 않았다. 환공은 결국 굶어 죽었다.
관중의 실패는 후계자를 키우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후계 설계가 집행될 수 있는 구조 — 제도 — 를 만들지 못한 것이었다. 설계가 사람의 선택에 맡겨지는 순간, 설계는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마키아벨리가 높이 평가한 아우구스투스는 후계를 개인이 아닌 제도로 만들려 했다. 황제 개인이 아니라 황제 제도가 이어지도록. 그 설계가 로마 제정 200년의 안정을 만들었다.

덩샤오핑은 후계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설계한 현대 지도자였다. 5년 전에 공개적으로 지명했다. 예측 가능성이 권력의 안정성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진핑이 이 설계를 깼다.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14억의 집단지성이 후계 문제 하나로 흔들리고 있다.


3. 역사적 사례

알렉산더 대왕 — 후계의 실패

알렉산더는 33세에 갑자기 죽었다.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 물었다. 나의 제국을 누구에게 주는가. 가장 강한 자에게. 그 말이 재앙이었다. 디아도코이 전쟁이 40년간 계속됐다. 가장 빠르게 만든 제국이 가장 빠르게 무너졌다.
▷ 디아도코이 전쟁 Wars of the Diadochi. 알렉산더 대왕 사후 기원전 323~281년에 걸쳐 벌어진 후계자들 간의 전쟁. '디아도코이'는 그리스어로 '후계자'를 뜻한다. 후계자 부재가 만들어낸 40년간의 내전으로 알렉산더 제국은 완전히 해체됐다.

진나라 효공과 상앙 — 제도가 사람을 넘어선 후계

기원전 338년, 진나라 효공이 죽었다. 상앙이 주도한 변법 개혁의 설계자가 사라진 것이다. 새로 즉위한 혜문왕은 상앙을 처형했다. 그러나 상앙이 만든 법과 제도는 살아남았다. 사람이 죽어도 제도가 이어진 것이다.
그것이 훗날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이어졌다. 상앙의 후계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법이었다. 제도가 가장 강한 후계자임을 역사가 증명했다. 사마천은 《사기》 「상군열전」에서 이것을 정확히 기록했다. "상앙은 죽었으나 진나라는 그 법을 계속 썼다."

쿠빌라이 칸 — 마르코 폴로가 목격한 후계의 딜레마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말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 궁정에서 17년을 보냈다. 그가 목격한 것은 제국의 절정이자 후계의 위기였다. 쿠빌라이는 정복자 칭기즈 칸의 손자였다. 그러나 그 자신의 후계 설계는 실패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쿠빌라이의 웅장한 권력을 묘사했지만, 동시에 그 권력이 얼마나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지를 은연중에 보여줬다. 쿠빌라이가 죽은 뒤 원나라는 급격히 무너졌다. 황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이 반복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만든 몽골이 왜 그렇게 빨리 해체됐는가 — 후계 제도의 부재가 결정적 이유였다.
▷ **마르코 폴로** Marco Polo, 1254~1324.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탐험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원나라를 여행하며 쿠빌라이 칸의 궁정에서 17년을 보냈다. 귀국 후 구술한 《동방견문록》(Il Milione)은 동서 교류의 역사적 기록이자, 권력 정점에 있던 원나라의 생생한 증언이다.

합스부르크 카를 6세 — 30년의 후계 설계

1713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6세는 자신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30년 전부터 후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국사조칙(Pragmatic Sanction)"을 만들었다. 유럽 열강의 동의를 얻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러나 카를 6세가 죽자 프로이센·프랑스·바이에른이 즉각 도전했다. 30년의 설계도 완벽하지 않았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스물세 살에 그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야 했다. 그것이 오늘 명제20에서 다룬 그 위기였다.

두 가지 교훈이 함께 있다. 후계를 설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사람에 의존하는 제도는 그 사람이 사라지면 흔들린다. 제도가 사람을 넘어서야 한다.

도요토미의 실패 — 사람에게 맡긴 제도의 한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전 다섯 다이로(大老)에게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부탁했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게 맡긴 것이다. 히데요시가 죽자 2년 만에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그 구조를 무너뜨렸다. 사람에게 의존한 후계 설계의 필연적 결말이었다.
반면 이에야스는 달랐다. 쇼군직을 아들에게 조기 이전하고 "쇼군은 도쿠가와 가문의 것"임을 제도로 만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후계를 보장했다. 265년의 차이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워싱턴과 만델라 — 제도를 후계자로 만든 자들

워싱턴은 개인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도를 후계자로 만들었다. 헌법. 선거. 삼권분립. 누가 이어받아도 작동하는 구조. 그것이 250년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됐을 때 한 번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이끌어달라고 했다. 거부했다. 내가 물러나도 민주주의 제도가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했다. 그 자발적 퇴임이 만델라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권력자 중 하나로 만들었다.


4. 종합정리

권력은 후계자가 있어야 강해진다. 내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만든다.

관중은 후계자를 충분히 키우지 못해 자신의 설계가 함께 사라졌다. 알렉산더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아 40년 전쟁을 남겼다.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는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다 급격히 해체됐다. 도요토미는 사람에게 맡겼다가 2년 만에 무너졌다. 카를 6세는 30년을 설계했지만 제도가 사람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상앙의 법은 상앙이 처형된 뒤에도 살아남아 천하통일의 토대가 됐다. 아우구스투스는 후계 구조를 설계해 200년을 만들었다. 이에야스는 제도로 265년을 만들었다. 워싱턴과 만델라는 제도 자체를 후계자로 만들었다.

패턴은 하나다. 사람이 후계자일 때 권력은 그 사람만큼만 지속된다. 제도가 후계자일 때 권력은 시대를 넘어 지속된다.

사람을 후계자로 만들되 동시에 그 사람이 없어도 작동하는 제도를 만들어라.


명제 21 — 권력은 후계자가 있어야 강해진다. 알렉산더는 후계자 없이 죽어 40년 전쟁을 남겼다. 워싱턴은 제도를 후계자로 만들어 250년을 만들었다. 사람을 믿지 말고 제도를 설계하라 — 후계자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했던 쿠빌라이 칸. 후계자 부재가 유일한 약점이었다. 사진은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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