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충욱 시인
못골 가는 길
- 봄
권충욱 시인
경주 출생
함안문학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했고
함안문인협회 회장, 함안예총 회장 역임
시인의 말씀
/
고향
동구 밖
늙은 은행나무 뒤로
노을이 내리고
샛길 따라
염소 몇 마리
종종걸음하는
박꽃 피는
낮은 지붕들이
저녁연기에 아득한
황혼에 잠긴
오랜
동네
/
고목
삶이 길이며
길이 곧 삶인 것을
하늘로 직립한
저 옹고집 보면 알겠다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온
침묵의 긴 세월
참 멀리 왔구나
/
고향 집 1
기울어진 지붕이 잡초가 무성하다
처마 밑 제비집도 빈집이다
마당가 붉은 오지독 하나
고인 빗물 담고
처연히 명상에 잠긴 저 집
대문 앞 늙은 감나무는
밑둥에 묶인 워리가
울부짖던 그때를 기억할 것이다
대처에서
아득히 돌아갈 날을 헤아려 본다
권충욱 시집
/
고향 집 2
마당에 홍시 다 떨어지는데
아무도 안 오네
문고리 간신히 붙잡고
녹슨 자물쇠
동네 사람
누구도 모르네
/
입동
밭둑 머리 감나무
바알간 홍시 몇 개
둥구나무 낭낭가지
빈 까치집
노을 지는 먼 하늘
울며 가는 기러기
/
호랑가시나무를 기억하는 저녁
둑방 아래 자전거를 타고
차르르 차르르 포플러 나뭇길 간다
점박이 쫑쫑이가 반갑게 달려오던 길
철길 건널목 넘어 새 동네 구판장 지나
파아란 하늘 담은 연못을 돌아
탱자나무 비탈길 들어서면
집으로 내려오는 거기,
아버지가 심은 벚꽃 나무 한 그루
해마다 봄이 오면 속절없이
하얀 꽃잎 눈발처럼 흩날리고
그 나무에 그네 타던 아이들 웃음 소리
큰길 포플러 나무 우듬지까지 닿아
온 동네 새들 그 웃음소리 물고
아 나무에서 저 나무로 지저귀며 날아가던 곳
노오란 판자 대문을 밀면
마당귀에 해거리하는 늙은 감나무와
펌프가 선 우물가 어머니가 가꾸신 파초와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다투어 피던 집
한밤에도 앞집 뒷집 제수 음식이
담장을 넘어오고 가고
육이오 사변 때 혼자 피난 내려왔다던
아랫방 주물공장 박사장이
젊은 부인 앉혀놓고 한잔 술에 지그시 부르던
‘눈물 젖은 두만강’ 옛 노래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던 집
도시계획 구역에 밀려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나올 때까지
외진 담장 아래 심어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성당에도 가지 않는 나에게 일년 내내
고백성사를 올리게 한 크리스마스트리 나무
밤늦게 술 취한 내가
탕자처럼 횡설수설하며 오줌 누던
호랑가시나무 문득 기억하네
빈집 되자 누가 먼저 뽑아가 버린
내 키만 한 푸른 그 나무
나는 아직도 여기서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다 저녁, 잊어버린 호랑가시나무가
나를 불러 세우네
/
일기
나에게 전하는 편지
너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
논실리
산 겹겹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봇도랑물 찰랑찰랑한 낮은 다리 건너
아득한 논길 따라갑니다
심심한 버드나무 그늘을 지나
잠자리 떼 날으는 고추밭 둔덕,
수숫대 흔들리는 산비알 긴 다락밭 너머
거기 꼭꼭 숨어라
까치집 매달린 당산나무 보일라
씨이롱, 씨이롱, 매미 울음소리 들리는 그리운 풍경
시방 기동 못 하는 울 어머니
꿈결에도 친정가는 먼 논실리
논실리
참 반가운 시를 만났습니다.
고향
/
팔려간 소
젊은 삼촌이
나 몰래 새벽에 몰고 나가
덜컥 팔아먹은 소
목매기 때부터 내가
망태기 한가득 꼴 베어와
배불리 먹여 키운 소
어둑한 외양간에 우두커니 섰던 제에게
여물을 주고
고단한 등허리 쓰다듬으면
두 눈 지그시 감고 꼬리 흔들던 소
동무들과 온 동네 쏘다니다가
해거름에사 집마당 들어서면
내 발자국 소리에
움머~하고 부르던
우걱뿔이 소
낯선 길 헤매이다
고향 옛집 찾아가면 거기
바람이 더듬는 고샅길쯤에서
아직도 나는 워낭 소리 듣는다
/
못골 가는 길
-봄
우시장 너머 철길 따라가면
경남 함안여중 미루나무 꼭대기에
겨울 내내 달려 있는 빈 까치집과
손금처럼 아득한 못골 길이 보인다
샛강 얼음도 풀리고
버들가지 물오르는 산들바람 따라
낮은 산모롱이 돌아오는
아슴한 기적소리 들리면
어느덧 봄 아지랑이에 졸음 오는
옹기종기 눌러앉은 집도 보인다
보리밭 파아란 농로 따라
아이들 몇이 하모니카 불며 가는
노고지리 지저귀는 못골 가는 길
진달래 언덕에 피는 못골 가는 길
//
권충욱 시인님께
선생님의 시집,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귀한 시집 출간을 함께 기뻐하며
마음을 담아 축하 드립니다.
우시장, 철길
미루나무, 까치집
샛강, 버들가지
산모롱이, 기적소리
아지랑이, 옹기종기
보리밭, 하모니카
노고지리, 못골
진달래 등
시어 하나 하나가 참 정겹습니다.
현관 문을 열면
다가오는 밤꽃 향기와
서촌 들판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노랫소리와 함께
한 줄 한 줄 시를 읽는 맛이 참 새롭습니다.
고향 생각도 나고요.
인생 6학년!
마음을 설레게 하고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고향 시!
정말 감동입니다.
늘 강건하시고
앞으로도
귀한 작품으로
함안문학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6년 6월
시향 가득한 서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