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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객체는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것이고 입장차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이야기 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명리학에서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주체니 객체니 하는 것 그다지 떨것도 멀리할 것도 아닌 것이다.
주체와 객체(이하 "주객")를 왜 나누어야 하는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장차이"다. 세상은 무엇을 중심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환자가 의사에게 찾아갔다면 병을 고치러간 환자 입장은 병을 고쳐달라는 주체가 되고 의사는 객체가 된다. 반면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는 병을 진단하고 고쳐야 하는 주체가 되고 환자는 객체가 된다. 이렇게 환자와 의사가 만났지만 서로의 입장에 의해서 주체와 객체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객의 문제를 우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인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체이고 객체이다. 더 단순히 표현한다면 줄것이냐 받을것이냐? 주는 쪽을 주체로 한다면 주체가 아쉬운 것이고 객체는 미운 것이다. 받는 입장에서 본다면 주체는 고마운 것이고 객체는 고마운 것이다.
이처럼 주객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입장차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지고 부지불식간에 행해지며 이미 몸에 녹아서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굳이 언어화하여 표현하고자하니 괜히 어려워 보일 뿐인 것이다.
목생화를 주객을 나눈다면 목은 화를 보니 반가운 것이고 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반대로 화 입장에서는 나를 계속 유지시켜주니 나의 기반을 만들어 주고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준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를 식신생재로 나눈다면 식신 입장에서는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있음을 의미하고 재 입장에서는 입지를 튼튼히 하는 기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관견관을 주객으로 나눈다면 상관 입장에서는 고정되고 정형화된 틀을 고쳐나가야 된다는 것이고 정관의 입장에서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주객이라는 것은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보아야 하는 입장과 같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