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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아는 것이고 극은 모르는 것이다.
사주가 상생으로만 되어있는 자는 아는 것만 한다. 사주가 상극으로 되어있는자는 모르는 것만 한다.
전자를 꾸준히 열심히 한다고 하고 후자는 이것저것 한다고 한다.
상생과 상극이 같이 되어 있으면 모르는 것을 꾸준히 해서 아는 것으로 만든다. 이를 두고 개척자라 하고 선각자라 하고 다른 이들보다 앞선 자라고 한다.
식신제살은 극이다. 살에 대항 하고자 하는 것이니 식신이 왕해야 한다. 식신이 왕하다면 살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상극되어 알지 못하니 성공할지 실패할 지는 모른다. 식신이 왕하면 이길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나에게 이득이 될지 상처뿐인 영광이 될지 알 수는 없다.
그 살이 귀신인지 친구인지 과거인 현재인지 모르고 그저 나를 극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거하려 들었으니 앞뒤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행위가 될 것이다.
재생살이 되어야 비로소 살이 구분되고 가늠이 되니 칼로 베어야 할지 가위로 잘라야 할지 불로 태워야 할지 판단이 서는 것이다. 재생살 되지 않는데 식신제살 하는 것은 병 걸렸다고 굿판 벌리는 것이고 시험 전날 날밤 까는 어리석은 짓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생이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고 어떠한 방법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판단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고 여유이며 식견이 되는 것이다.
상관패인도 마찬가지이며 편인편재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간이 신왕해야 상관을 생하여 아니 제대로 제해서 나의 능력으로 만드는 것이고 관살이 편인을 생해야 편인의 해악을 아니 편재로 제해서 부조리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겁재 역시 마찬가지로 인성이 있어 겁재를 생해야 겁재의 해악을 아니 정관으로 제해서 부조리의 근본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생이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시세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 자식이 불편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주변을 파악하고 익숙해져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에 베는 것이다.
몸에 베었으니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방법이 나오고 상극까지 되었다면 현재에 머물지 않으니 더욱 개선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상극없는 생은 평범하니 상관 없으나 상생없는 극은 얼음 두깨를 생각치 않고 강을 건너는 무모함을 가졌으니 자신의 모자람을 영원히 알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용감한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한번 쯤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