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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생은 1인칭적 시점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내가 중심이 되니 상대와 세상을 왜곡한다.
내가 편한데로 생각하고 정의를 내린다. 자기중심적 사고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야 하는 것이고 상대의 의중은 중요하지가 않다. "평양감사도 지가 좋아야 한다"는 말도 봄생에게 통하는 속담이다.
본의 아니게 강압적이 되고 상대가 스스로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 봄생인것이다. 봄생이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상대는 봄생에게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한 웃음을 하고 무엇이든 나누어줄 수 있을듯한 봄생의 미소에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빠지고 뭐 하나라도 챙겨주지 못해 안달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기쁨은 적고 고통은 크기 마련인데 봄생은 기쁨이 무엇인지 깨닳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 안에 이미 잃어버린 동심과 순수했던 감정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 봄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생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되고 어린애가 되고 순수했던 옛시절로 돌아가 엄마에게 푸념하듯 마음을 열게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봄생의 일인칭적 시점 때문인 것이다. 뭘 모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봄생의 일인칭적 시점인 것이다.
가을생은 2인칭이다.
상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한다. 상대가 중심이 되니 나를 왜곡하고 자아를 왜곡한다.
양심의 기준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악인이 될 수도 선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식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것이 가을생이고 삶의 의미와 기준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가을생인 것이다.
철저한 2인칭적 시점은 카멜레온처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보고 변절자라고 하고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느냐라고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도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가을생은 참으로 냉정하고 이기적인 이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한없이 천사같이 사람을 다둑이다가도 냉혈한 독사처럼 사람을 괴롭히고 외면하기도 하니 시대와 상황에 철저히 순응하는 2인칭적 시점의 가을생은 어쩔 수 없이 외면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가을생은 오로지 지금의 상황에 적응한 죄 밖에 없다. 누구보다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한 죄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럼 가을생의 속내를 알지 못한다. 세상에 가장 억울한 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가을생일 것이다.
여름생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객관적인 화자가 될려고 하고 철저히 이성적 판단에 의존해서 행동 하려고 한다.
자신이 판단하고 얻은 정보가 객관적이길 믿고 확인하며 스스로 확신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 화왕절인 것이다. 세상은 객관적이지 않기에 화왕절은 정보부족이나 주관을 객관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렇게 하고 저런 스타일은 어떻더라 내가 경험해보니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럴거야 라고 자신의 경험을 마치 객관적 정보처럼 활용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편견과 확신에 사로잡혀 살게 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이 없는데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이 결국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왕절에겐 항상 "징크스"가 존재한다. 스스로 객관화 했다고 믿었던 것이 습관처럼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많은 편견과 자기모순에 빠져 사는 것이 화왕절인 것이다.
그래서 화왕절은 나쁜 아빠를 닮지 않으려 애쓰고 그와 비슷한 사람만 보면 자지러 지기도 하고 한 때 정말 사랑했던 사랑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미친듯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란 대중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고 세상의 객관적인 능력이라는 잣대에 부흥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빈부를 논하고 성격을 논하고 잘난자와 못난자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니 자신이 못난자라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미 딜레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니 인생에 있어 그것 만큼 힘들고 고단한 여정도 없을 것이다.
여름생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는 논리의 그물에 걸려 스스로 허우적되며 살아가는 외눈박이 거인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할 때 여름생은 비로소 그 굴레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여름생에 있어서는 방종이 되니 결코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새장을 열어놔도 나올줄 모르는 새와 같은 것이다.
겨울생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모든 것을 통찰하고자 하고 자기식대로 해석하며 기승전결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짜며 자신의 인생을 각본대로 살고자 하는 이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반성하며 산다. 그 누구보다 실수가 적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며 신뢰할 수 있는 이로 각인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하면 그들이 감동하고 나의 뜻이 관철될 수 있는지 겨울생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연구하니 그에게 의지하고 감동하며 신뢰의 싸인을 보내게 된다.
그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게 만드는 것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겨울생인 것이다. 이를 포장이라고 하고 영악함이라고 하고 오랜 연륜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변의 움직임을 자신의 행동반경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자 하니 항상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주변인들은 이러한 겨울생의 통제를 감사히 여기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겨울생이 강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유혹하고 공포를 유발시켜 불필요한 곳에는 가지 못하도록 할 뿐이다. 신이 있다면 전지적 작가시점의 겨울생일 것이다.
내가 필요하다면 가져다 쓰는 것이고 필요가 없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맞는 것을 맞다고도 하고 틀리다고도 한다. 이는 그들이 요구한 것이니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떼었다 붙였다 하면 되는 것이다. 레고블럭처럼 간단한 것이 겨울생의 전지적 시점인 것이다.
때로는 정말 불쌍하게 때로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신처럼 때로는 생각 없는 광대마냥 상황에 따라 변신을 꽤하는 것이 겨울생인 것이다.
봄생도 물론 위처럼 변신한다. 상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광대다.
여름생도 물론 위처럼 변신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모범생이다.
가을생도 물론 위처럼 변신한다. 상대가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변인이다.
겨울생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 변신하니 가장 현명하고 똑똑한 자가 된다. 주인장이다.
사람은 각자의 시점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봄생이 화를 본다면 모범생을 지향하나 모범생이 될 수는 없다. 모범생을을 이해할 뿐 모범생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할 뿐이다. 정말 누군가가 나를 잘 이해해 준다면 그것은 그가 나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은 그런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다.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할 뿐인데 도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을뿐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단순한 것이다. 몇달을 고민해서 낸 결론이 몇년전 내었던 결론과 다르지 않듯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한다면 그보다 행복한게 없겠지만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인류의 발전은 더뎌지거나 멈추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본다면 모두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그나마 아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착각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고 착각 속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한 법이다.
진실을 아는 것은 뿌듯하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 될것이다.
진실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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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수키 작성시간 17.03.13 굉장한 통찰인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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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진월 작성시간 17.12.2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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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진월 작성시간 18.01.12 윤회론을 믿는 제 입장에서 진실이란 혹은 진리란 목왕절생 화왕절생 금왕절생 수왕절생으로 모두 다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억겁의 세월동안 윤회하며 가능한 모든 사주팔자로 다 살아본다면 진실이 무언지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거대한 구의 바깥 한 점에서 구를 바라보면 구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구를 둘러싼 모든 점에서 각각 그 구를 바라보고 그 경험을 모두 합하면 온전한 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마치 제가 다른 것들을 공부하고 난 후에 이글을 다시 읽으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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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호야호 작성시간 21.05.0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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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지엘 작성시간 23.02.13 이 글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인 "진실은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이 뇌리에 강하게 남습니다.......
의미심장한 화두가 담긴 글을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