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쓰기 메모 입력 폼 내용 입력된 글자수 0/600 + 비밀 등록 상세 리스트 열심히 사는 것도 타고나는 것이다. 타고난 사람은 일분 일초를 쉬지 못한다. 열심히 살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사는 이에게 쉬엄쉬엄 살라고 하는 것과 느긋한 이에게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것 둘 다 각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열심히 사는 것도 느긋하게 사는 것도 다 각자의 능력인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존경하지는 않지만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고 닮고 싶지는 않지만 존경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율배반이 아니라 음양이라는 전재로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일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자신을 객관하 하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할 수록 삶은 힘들어진다. 세상은 불균형한 자들이 모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니 스스로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비하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오지랍이 넓다고 한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세상 모든 사람은 열심히 산다. 그렇기에 억울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음에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열심히라는 단어는 주관적인 단어이기에 명리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평가의 덕목으로 쓰기는 부적합할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석가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예수는 자신을 따라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전자는 식상생재고 후자는 재생관이다. 석가는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예수는 줄을 잘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예수가 훨씬 현실적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세상이 공평한 이유는 능력있는 자는 잘 살고 없는 자는 못살기 때문이다.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공정한 경쟁이란 없다. 반칙도 능력임을 깨닳았을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춘이가 되는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1 수생목은 쉬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고 화극금은 일깨워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유명강사가 되려면 수생목에 능해야 한다. 씹지 않아도 넘길 수 있게 강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강의를 소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각 자의 몫이 될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교육을 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수생목이고 후자는 화극금이다. 수생목은 달콤하나 화극금은 고통이다. 대부분 수생목을 선호한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9 답글 0 보이는 것이 있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있음이다. 사람이 있음은 귀신도 있다는 것이다. 음양 모두 그 가치가 있으니 양도 살아있음이고 음도 살아있음이다. 저승이 없다면 이승도 존재할 수 없음이니 음양이다. 그 중간에 혼재하여 방황하는 것도 있을 것이니 눈에 보일듯 말듯한 존재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기 위한 출발선에 선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6 답글 1 살인상생은 큰 바위산을 이고 사는 것과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와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살인상생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2 남자다움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여성다움이란 앞뒤없는 성원이 필요하다. 알면서 행하는 코메디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그래서 세상의 질서는 기우뚱 하며 잡히는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마음은 수고 정신은 화다. 감성은 목이고 이성은 금이다. 토는 중재자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전세계 몇십억 인구 중에 한명이 나다. 이를 두고 하찮다 할 수도 소중하다 할 수도 있다. 숫자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과학의 사전적 의미는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From 네이버) 이다. 이를 마치 절대적 잣대처럼 들이대며 명리를 구석으로 몰아 세운다. 과학을 신앙인양 명리를 미신처럼 모는 마녀사냥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명리학자는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한다. 과학자 역시 자신의 한계에 안타까워 한다. 이는 명리학이나 과학자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습인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이 영원하니 지금의 모습은 백년후의 미개인이다. 과학은 논리이지 전부가 아니다. 명리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은 근현대의 가장 합리적 논리적 잣대중 하나일 뿐이다. 명리 역시 공존해야할 대상일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1 누군가 나에게 사주가 과학적 관점에서 근거가 없다고 따지려 든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사주를 봐줄것이다.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그 사람의 몫일 것이다. 답이 없는 것에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심리학자는 심리를 교정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명리학자는 인간의 마음을 포용의 대상으로 수용한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심리학자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명리학자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과학은 가설을 검증하고 추론하며 객관적 현상과 사실을 증명하는 일련의 과정을 중요시 하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방법론이고 학문적 체계이기도 하다. 음양오행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사물을 인식하는 출발점만이 다를 뿐 추구하는 바와 방법론은 같다. 세상을 통찰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은 같으나 방법론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음양오행은 과학적이지 않다가 아니라 과학과 다른 방법론을 취한다가 맞을 것이다. 서양은 보이는 것을 동양은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 했으니 이 또한 음양인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4 답글 0 연애란 모르는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역시 음양이다. 합으로 만난 것이니 끌리고 아직 상극이니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남자는 책임있는 모습을 여자는 믿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진도는 순조롭게 된다. 불꽃이 튀어 늘 함께 있고자 한다면 상생이 지나친 것이니 곧 싫증이 난다. 연애는 남녀란 음양이 만나 합이라는 사랑의 감정에 북받히는 것이다. 감정의 거래가 성립이 되고 감정의 손익계산이 서로를 힘들게도 기쁘게도 한다. 음양합은 상대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감정을 존중할 때 지속될 수 있다. 유머감각이 중요한게 아니라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상대를 알고 이해하려는 것이 합인 것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3 답글 0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실수를 깨닳을 뿐이다. 작성자 선운 작성시간 13.02.02 답글 0 이전페이지 91 92 현재페이지 93 94 95 다음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