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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작성자버니맨|작성시간24.12.19|조회수21 목록 댓글 0

‘논리’와 ‘룰’, 그리고 ‘로직’에는 영혼이 없다. 결정론이기 때문이다. 결과 내지는 결정된 이후의 것, 즉 결과값에 무슨 영혼이 있겠는가. 

 

귀납적인 현재 사회는 로직으로 치닫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빗대어 이것은 실상 미래가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래도 이미 결정론적이기 때문이다.(데이터마이닝을 생각해보라). 이를 통해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로직 속에서 또 결정론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더욱 견고해 질 것을 알 수 있다.

 

결정론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모든 세계관을 결정론적으로 만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유행을 만들고, 트랜드를 만들고, 프레임을 만든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포괄적 측면) 소수의 잠재성이 제외되거나 칼로 썰어져 버려지게 된다. 로직 속에 머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아름다움’조차 쓰레기가 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쓰레기에 관심이 많았다. 맞다. 난 편인이고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본다. 곧 정신과 영혼이다. (고스트 아님, 쏘울임)

 

비지니스를 전공한 사람들은 로직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다. 물론 이것은 나같은 바보가 천재를 바라보는 싯점이겠다. 그들은 철저히 귀납적 결정론만을 가지고 움직인다. 여기에는 그 어떤 창의성도 없고, 포용력도 없으며 돈과 권력과 판세 그리고 대세에 대한 기울기만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현재의 기울기만 강화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사람들이 생산하는 것은 기존의 확률이 높은 것의 확률을 높여가는 것이다. 무엇이던지 확실성이 높은 것은 잠재성이 낮은 것인데, 확실성이 높은 것만 추구하게 되니 전체적 잠재성이 사라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재밌는 것은 여기에서 완고한 보수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수가 상대적으로 확실성이 높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이조차 귀납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생체적 능력의 임계점이 같다는 것을 젊을 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들을 위해 표시도 나지 않을 ‘작은 결정’을 해야한다는 것. 얼마 전, 황당함을 아직도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정치의 이야기이다. 왜 이렇게 한숨이 나올까. 계속 한숨만 나온다. 오~! 역행이 이런 것일까? ^^; 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g8UyZtXKCTM?si=CkkcOEqs1t-dwbn4

부게 베셀토프트 - Bridge over Troubl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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