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관/인으로 구성되는 세계와 비/식으로 구성되는 세계는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있는 서로 다른 두 세계로 볼 수도 있고, 물 안의 세계와 물 밖의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거울의 이쪽저쪽은 똑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거울 속에서는 완벽한 왼손잡이로 존재하고 있다. 왼쪽 빰의 점은 오른쪽 빰의 점으로 바뀌어져 있다. 나랑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울 속의 나는, 180도 바뀐 완전히 바뀐 나의 모습인 것이다. 극과 극은 연결된 것이라고 했던가.
재/관/인으로 구성되는 세계와 비/식으로 구성되는 세계는 마치 제사상에서의 이쪽과 저쪽과도 같다. 제사상 위의 촛불을 경계로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본다. 촛불을 경계로 내 쪽의 공간만 이승인 것이다. 촛대너머에 있는 수저의 위치는 이쪽에서 내가 수저를 드는 위치로 놓는다. 촛불을 경계로 모든 게 180도 바뀌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승에서는 왼손잡이가 정상적이라고 본다. 저승은 이승과 마치 거울처럼 바뀌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승에서 왼쪽이 상석이라고 하면, 저승에서는 오른쪽이 상석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뫼비우스 띠와 같은 생각이 육신의 음양배치에도 맥이 닿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 육신의 해석 폭은 뫼비우스의 효과처럼 엄청나게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꼬인 상태의 투트랙 개념도를 푼 상태의 투트랙 개념도로 고쳐 볼 수도 있다. 뭔가 정리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겠지만, 그냥 극과 극은 극과 극으로 연결되어 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선운의 육신에 대한 별난 견해에 대한 재조명을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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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의 유형보기’ 자동생성 엑셀파일 사용법에 대해서는 조만간 공유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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