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란 익숙한 것이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동네이다. 태어나고 보니 이미 이런 식으로 내 몸은 구성되어져 있고, 내가 평생 생활해야 할 터전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펼쳐져 있는 것이다. 굳이 고민할 필요도 따로 연마할 필요도 없는 일상 그 자체이니, 사람은 거기에 익숙해져 간다. 인간은 습관적 동물이다. 자연스러움에 거슬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세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기존 틀에 훌륭하게 순응하면서도 지겨워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철저하게 지지에 의해 움직이고, 천간에는 반응할 뿐인 것이다. 천간의 현상을 사람은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생소한 것에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전할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아무리 천간에서 동한다고 한들 사람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지지는 계절적 순환을 말한다. 봄 다음은 여름이요 여름 다음은 가을이니,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키워서 가을에 걷어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봄에 거둘 수 없는 법이고, 여름엔 씨 뿌려봐야 바싹 말라서 자라지도 못한다. 이처럼 지지란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알려준다. 누구나 목이 오면 새로운 마음이 부풀고, 화가 오면 들떠서 오두방정을 떨고, 금이 오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고, 겨울이 오면 어디든 파고들려고 한다. 이것이 생활이고 인간사인 것이다.
지지는 여러 오행이 혼잡 되어 있고, 섞여 있다. 시간의 순환을 담당하며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담당한다.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지지라고도 하겠다.
사주는 크게 개인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영역으로 이원화해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적 인간으로도 매일매일 생활하고 있고, 사회적 인간으로도 나날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갈 때 대세가 먼저이고 인간의 행동은 그 다음이다. 천간은 대세를 보는 것이니 객관적인 상황만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지는 인간의 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 환경의 변화와 행위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 (5)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