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로만 살라함은 세상에 역행하지 말고 순리대로 적응하여 살며, 그저 주어진 대로 평범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주어진 대로 시킨 대로 살 리 만무하겠지만, 그렇다고 지지의 논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이 그러하듯, 특별할 것도 없고 변화라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것이 삶이다. 이러한 것이 또한 지지이다. 집에 거처하면 지지인 것이고, 출근하면 지지가 움직인 것이다.
대외적인 활동이 시작되면 천간이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내가 스스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천간의 움직임에 지지가 반응한 것일 뿐이라고 명리는 본다.
지지는 그저 정해진 순리에 따라 흐를 뿐이니 천간에 영향을 줄 수는 없음이요, 천간은 스스로 움직이니 지지는 그 움직임에 반응하고 의미를 부여한다고 명리는 본다.
지지는 천간에 의해서 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빨라지기도 한다. 알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길 수도 있으니, 지지에게 있어 천간은 평범한 삶에 예고할 수 없는 변화와 재미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지지의 해야 할 일이 천간의 행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지지와 천간은 조응하고 각자의 역할을 찾은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역행하거나 오버한다면 서로의 시간차가 발생하고 역할의 전도현상이 발생하니 포기하거나 늦어지거나 혹은 서두름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본다.
지지가 천간에 투간 되었다 함은 군주를 얻은 형상이니 나의 뜻이 수용되는 것이다. 지장간이 천간에 투간 되지 못한 것은 정해진 대로만 가라는 것이니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지장간은 개인의 잠재적인 능력이나 앞으로의 계획정도를 해석해 볼 수 있는 모델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지장간이 천간으로 투간 되었다면 지장간과 천간을 구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장간 모델에 그려져 있는 형상이 나의 뜻으로 온전히 수용되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선운 왈 “지장간이란 그 사람이 어떤 것을 가져 왔으며, 내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으며, 그 이면에 어떤 식으로 순환되어 나에게까지 돌아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해석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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