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관 기준에 따른 길신/흉신 구분]에서 흉신과 길신을 살펴보면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느낌이 먼저 든다.
‘재생관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흉신이었던 육신이 ‘비 재생관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길신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재생관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흉신이었던 육신은 ‘재생관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길신의 느낌이 강하다.
먼저 각 육신의 길신과 흉신을 ‘비 재생관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맥락을 연결시켜 보기로 한다.
비견, 식신으로 흐르는 흐름은 편재, 편관, 편인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식신은 일간으로부터 생을 받는다. 식신은 일간으로부터 이어지니 일간의 개인 의지를 반영한다. 육신의 관계도에서는 일간이 숨어있으므로 일간과 음양오행에서 동일한 형태인 비견으로 맥락을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 비견-식신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부류는 편재-편관-편인으로 이어지는 제도권의 아웃사이드로서의 성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 성향이 강한 야생마는 결코 길들여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비견과 식신으로 대표되는 ‘비 재생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최우선 시 하는 개인적 인간을 의미한다. 피부를 경계로 내 피부 안쪽의 것만을 ‘나’라고 인식하고, 내 피부 바깥쪽의 것은 모두 타인으로 간주하는 인간이다. 개인주의자 또는 이기주의자라고 지칭되며, 자기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부류이다.
반면, 재성과 관성으로 대표되는 ‘재생관 인간’은 사회적 시스템을 잘 따르는 사회적 인간을 말한다. 제도권 내에 이미 만들어 놓은 정규 교육과정을 잘 따르고, 사회가 제시해 놓은 규범 규칙 등에 잘 적응하며 생활하는 부류이다. 사회전체를 한 유기체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가 중심이 되는 ‘우리’라는 인류애적 포괄적인 공동체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다.
겁재, 상관으로 흐르는 흐름은 정재, 정관, 정인으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겁재의 생을 받는 상관의 흐름으로 시작한다. 겁재라는 외부의 목소리에 항상 마음이 쏠리고 휘둘리는 팔랑귀 성향을 보이는 상관으로의 흐름이다. 정재-정관-정인으로 이어지면서, 외부 사회체제가 마련해 둔 기존 체제에 잘 순응하고 순종하는 모범생으로서의 성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여 진다.
‘재생관 인간’으로 구분한 [사회 위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재와 정관은 길신이다.
기존 사회적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는 정재는 타인의 말에 잘 반응하고 동참해 줄 수 있는 상관과의 연결이 훨씬 자연스럽다. 자신의 의견과 고집이 강한 식신은 야생마와도 같아서 정재라는 사회적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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