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관 인간’ 부류의 맥락과 그 맥락상에서의 극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비견이 편재를 극한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일탈하는 행동을 자제한다는 의미한다. 비견이 더 왕하면 이러한 과정에서 이익 다툼과 불화가 생기게 될 것이고, 편재가 더 왕하면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여 원만히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편재가 비견을 본다는 것은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는 자신이 구속당한 형상이다. 주변이 생각하는 평균에 맞추어야 하고 상황에 맞추어야 되는 간섭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자기 스스로 주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 인생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이들이 많이 생긴다는 말이다.
겁재가 정재를 극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만족 못하고, 좀 더 확장시켜보려는 도전적 욕구와 경쟁심이 발동한다는 의미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이라도 해보려는 열정이 생긴다. 마치 오징어 수송용 활어차 수조에 오징어의 천적인 꽃게를 같이 넣어 두면 오징어의 생존 본능이 자극되어 폐사율이 훨씬 줄어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든다. 내게 이득이 없는 타인 구제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오히려 유대하지 않고 독자적이고 화합 못하고 부정적이 되니 매사에 모난 돌 형상이 된다.
정재가 겁재를 본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주변과 유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려는 형상이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사회적 역할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모난 돌이 되니 싸가지로 전락하는 형상이다.
정재를 쟁재하면 거처를 없애버리는 형상이다. 거처를 정하지 않은 것이니 내가 머물 정해진 공간이 필요 없다는 것이고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유할 수도 있고 다양하게 적응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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