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재가 재생살하고 정재가 재생관 한다는 것은 사회에 음으로 양으로 제대로 역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양이 양을 생하고 음이 음을 생하고 있는 것이라 정이나 사사로움이 없다. 사회적 관점에서의 흉신이 흉신을 생하니, 정체된 사회 시스템에 자극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관점에서의 길신이 길신을 생하니, 사회 시스템 테두리 내에서 역할과 지위에 힘쓰는 모습이다. 정상적인 사회조직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원만히 커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편재가 정관을 생하거나 정재가 편관을 생하는 것은 음양으로 생하는 관계가 되었으니, 그 속에 온갖 술수와 음양 관계에 놓인 남녀관계와 같은 드러내기 껄끄러운 내용들이 결부되어 있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편의 봐주기, 부정부패의 여지가 다분히 생기게 된다. 끝까지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고 중도 탈락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편재가 정관을 생한다는 것은 필요한 곳에만 나의 에너지를 쓰지만 그 기준이 내가 중심이 되니 내 기분에 따라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다는 의미이다. 지금 나의 기호나 욕망이 중심이 된다. 관을 향해서 달려가는 마음이다. 내가 사회로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사회가 나를 채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회사가 나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 정말 쫌상들이 많다.
정재가 편관을 생한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바삐 움직이며, 해결사 노릇을 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항상 주변에 많다는 의미이다. 위기가 닥치면 정도보다는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술수를 쓸 수 있다. 정재가 정관을 생하는 관계에서는 이런 융통성을 부릴 줄 모른다. 주어진 길에 충실하다. 음양 관계로 조성되느냐 않느냐의 결과이다.
정재가 편재를 본다는 것은 유행에 대한 편재의 발랄한 감각을 금전화 시키고 유통시켜 금전으로 축적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정해진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정재가, 편재의 신선한 감각을 접목시켜 새로운 발생을 현실화 시켜보려 시도하는 모습이다.
정재가 편인을 본다는 것은 편인이 식신을 도식하는 작용을 못하도록 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편인의 도식작용은 편재가 막을 수 있다. 정재는 정인을 극하는 것으로 일간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성실히 살고자 하는 모양을 만든다. 따라서 편인의 역할로 식신이 무력해지니, 일간은 식신생재 하지 못하고 편인에 물드니 나태해 지는 것을 의미한다.
편인이 정재를 본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정재의 현실 감각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편재월은 정인을 극하지 않으니 재극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정인의 관인상생은 방해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편재가 정인을 본다는 것은 편재의 감각적이고 자유로움이 인정받은 꼴이니 더욱 더 왕성해지는 모양이 된다.
정인이 편재를 본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포장하고 이용하고 상품화시켜 활용코자 한다는 의미이다. 편재의 자유분방한 감각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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