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도가사상은 장자에서 ‘기(氣)’라는 개념이 더해지면서 더욱 풍부해졌다. 후한 말 왕필(王弼) 등은 도가의 ‘무(無)’ 개념을 더욱 철학적으로 발전시켜, ‘무(無)가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은 무에서 독립적으로 변화(獨化)한다’는 독화론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노자의 ‘도’ 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결국에는 중현학(重玄學)으로 그 대미를 장식한다. 중현학은 도가와 불교 사상을 결합한 철학으로, 대표 학자로는 곽상(郭象)이 있다. 그는 왕필의 사상을 발전시켜, ‘도(道)의 본질은 이중적 무(重玄)이며,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재(自在)한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후대 선종(禪宗) 불교와도 연결된다.
선운은 “편관은 세상의 가치를 바꾸고 흐름을 바꾸려 든다. 요리, 예술, 기술 등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최고 소리를 듣는 자이다. 돈을 쫓지 않고 그 분야에서 실력을 키우는 자이다. 타협하지 않고 지랄맞은 성질을 부린다. 그 과정에서 도퇴되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장자(莊子)의 열어구(列禦寇)편에 ‘吮癰舐痔(연옹지치)’라는 말이 있다. 고름을 입으로 빨고 항문을 혀로 핥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역겨운 일을 하면서까지 아첨함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조상(曹商)이란 자가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수레 100대를 하사받았다. 그리고는 장자의 비범함을 알고 장자에게 찾아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면서 이를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자 장자왈,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사를 부를 때 종기를 터뜨리고 부스럼을 없애주는 자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핥아서 치료해 준 자는 수레 다섯 대를 주었다고 하더군. 치료해 준 부위가 험해질수록 수레를 더 많이 얻었다는데, 너는 대체 어디를 빨아줘서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었냐?”라고 일침을 놓는다.
편관은 기량이 최고이면서도 장자처럼 자신의 소신에 반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여유를 보여준다.
편관은 외부 단속자이다. 집안에서는 관대하나 외부인들이 잘못하는 것은 모두 지적한다.
노자 도덕경에 ‘天道無親 常與善人 (천도무친 상여선인)’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친하다고 누구를 특별히 봐주는 일이 없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과 늘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친인척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할 것도 챙길 것도 아니니 집안에서 기강을 잡을 일도 없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라고 말했다. 태어나게는 했지만 내 것이라고 소유하지 않고, 이루게는 했지만 댓가(代價)를 기대하지 않고, 길러내기는 했지만 쌓아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이니, 부모라고 해서 ‘효’라는 기준으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내 것이 아니니, 자식은 내게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 자식이라고 누구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다. 내부적으로 관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재생살의 모습이다.
장자는 내편 소요유에서, ‘至人無己 信人無功 聖人無名 (지인무기 신인무공 성인무명)’이라고 했다. 지극한 경지에 이른 지인은 일신(一身)의 안녕(安寧)을 초월했고, 믿음이 두터운 신인은 생색을 내지 않으며, 후덕한 성인은 명성을 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모두 다 이기심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들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과 닮은 자식을 낳는다. 유전적으로 자신과 똑닮은 개체를 복재해 낸다. 그래서 내 자식은 내 소유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리게 된다. 그래서 ‘生而不有(생이불유)’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지는 만물을 낳는다. 그런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자식들을 낳는다. 그래서 내 것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生而不有(생이불유)’가 되는 것이다. 노자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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