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관으로 이어지는 재생관이란 내게 부여 된 역할에 책임지고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사회공동체 내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개인적인 나를 찾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내가 소속되어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잘한다. 조직 속에서 아랫사람을 다룰 줄도 안다.
논어 자로편에 ‘庶矣哉 富之 敎之’ (서의재 부지 교지)라고 했다. 백성이 많으면, 먼저 그들을 부유하게 해주어야 하고, 다음은 물질적 풍요함이 인륜(人倫)에 따를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정치하는 이들에게 말했다. 정치의 목표는 안민(安民)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재생관이란 내게 주어진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그 역할에 맞는 행동은 무엇인지, 내 주변인들과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디까지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사회적 영역과 한계를 잘 알고 그 속에서 그에 걸맞는 행위를 해 나간다. 때와 장소를 잘 구분하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그 사회가 제시하는 가장 바른길을 한눈팔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간다. 그 결과는 그 사회 속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
논어에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라고 했다. 공자왈, 요즘은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보다는, 남의 이목 때문에 공부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학문이 즐겁지 않고 괴로워진다고 꼬집었다. ‘爲己(위기)’는 자신에게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고, ‘爲人(위인)’은 남에게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예’로 승화시키는데 두지 않고, 달콤한 당근인 부와 권세에 치중한다는 세태를 지적하는 글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해 사회의 기준에 따라야 하니, 어찌 내 수양을 위한 공부로 남을 수 있겠는가. 취업을 위한 스펙 등 남들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을 위해 공부해서 출세하려 하는 것이 현실적인 모습이다. 명리 육신에서 ‘爲己(위기)’는 천간 정관으로 나타나고, ‘爲人(위인)’은 지지 정관으로 나타난다.
육신에서는 천간의 정관과 지지의 정관이 이 두 가지 성향을 모두 해석해 내고 있다.
선운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것이 재생관이고, 가장 악랄한 것이 재생관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재생관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희생양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재생관이다. 내가 잘되면 못되는 사람이 생기고 내가 못되면 잘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재생관이다. 세상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누군가는 혜택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음양이다.
선운은 “재생관은 계약이고 거래지 내조가 아니다. 내조는 식상, 인성이다”라고 말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재생관하면 된다. 재생관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미래의 가치까지 분석해서 판단하는 능력이다. 각자의 역할이 왜 존재하는지 이해하고 나의 상황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치지향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공존하고 때로는 적대할 줄 아는 처세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면 재생관이 되는 것이다.
재생관적 관점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과감히 수행하고,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그만둔다. 그래서 실행도 빠르지만 포기도 빠르다. 투자에서도 들어갈 때와 빠질 때를 명확히 알고 행한다. 시대와 시류를 읽는 능력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시중(時中)이다. 타이밍이다. 시기와 상황 그리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행동하라는 의미이다. 반대는 무기탄(無忌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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