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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선종

작성자라라라|작성시간11.10.30|조회수124 목록 댓글 0

정묘 4년 춘 정월 갑인 삭에 조하를 쉬었다. 을축에 고주사 비서감 임창개를 요에 보냈다. 기사에 유사에게 명하여 산천 묘사에 제하여 신병이 싸움을 도와주기를 빌었다. 갑술에 회경전에서 친히 초제를 지냈다. 무인에 동녀진 장군 아노한 등 19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기묘에 소태보로 이부상서를 삼았다. 경진에 밀진사 합문인진사 김한충을 요에 보냈다. 2월 경인에 임개로 어사대부를 삼고 고경으로 어사잡단을 삼고 최사설로 시어사를 삼았다. 갑오에 개국사에 행차하여 대장경이 이룩되었음을 경찬하였다. 정유에 연등으로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였다. 동여진 장군 괴팔 등 19인이 와서 마를 바쳤다. 계묘에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3월 병진에 구산사에 행차하여 승을 공양하였다. 기미에 왕이 흥왕사에 행차하여 대장경이 이룩되었음을 경축하였다. 신유에 서여진 추장 소은두 등 13인이 와서 토물을 바치거늘 작을 사하였다. 계해에 최석으로 권판상서이부사를 삼았다. 임신에 일본의 상인 중원 친종 등 32인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갑술에 송의 상인 서전 등 20인이 와서 신주 화엄경판을 바쳤다. 병자에 태일 (천신)을 문덕전에서 친히 초제하고 풍우가 조순하기를 빌었다. 무인에 경계를 석방하였다. 경진에 선정전에 거동하여 정사를 보살폈는데 문하시랑 평장사 최석 김량감과 중서시랑 평장사 유홍이 시정의 득실을 진주하였다. 하 4월 병술에 송의 상인 부고 등 20인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무자에 중서시랑 평장사 왕석이 졸하매 3일간 철조하였다. 경자에 귀법사에 행차하여 대장경이 이룩되었음을 경찬하였다. 을사에 금강경 도장을 건덕전에서 7일간 설하고 비를 빌었으며 무신에 또 보제사에서 빌었다. 5월 정사에 두번 우제를 지냈다. 정묘에 왕이 흰 난삼을 입고 현릉에 배알하여 죽책을 올렸다. 무인에 인왕도장을 문덕전에서 설하였다. 경오에 경릉에 배알하고 임신에 창릉에 배알하여 모두 죽책을 올렸는데 책문에「선조를 제향하는 엄숙한 의식은 희역에 풍성한 천제(은천)을 숭상하였으며 신을 감동하게 하는 도리는 우서에 지성을 귀히 여겼읍니다 효의 생각이 일어날제 마땅히 비사(신사)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그릇 유충우매한 몸으로 선왕의 가유(연이)를 계승하게 되었사오니 시서에 느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와 날을 택하여 배건의 예를 거행하나이다. 백관에게 집사 할 것을 명하여 성대한 의례를 협찬하게 하였사오며 구주의 토산물을 다하여 써 향기로운 제전을 갖추옵고 우러러 영명하신 조감을 바라오니 극경한 마음을 굽혀 받아 들이옵소서 하늘에 계셔서는 영위를 다투어 빛내사 굽혀 대복(순하)을 내리시고 역세에 있어서는 경화(대화)를 침(유의 뜻) 선하사 창기를 보전토록 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갑술에 최석으로 수국사를 삼고 김량감으로 판상서호부사를 삼고 최사량으로 참지정사 겸서경유수사를 삼았다. 을해에 김행경으로 문하시랑 동중서평장사를 삼았다. 을묘에 회경전에 친히 초제하고 비를 빌었다. 6월 임오에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였다. 을유에 소재도장을 회경전에서 7일간 설하였다. 병신에 법왕사에 행차하였다. 신축에 경계(경죄수)를 석방하였다. 추 7월 계축에 문황으로 서북로 병마사 겸지중군병마사를 삼고 이자위로 동북면 병마사 겸지행영병마사를 삼았다. 병진에 내정에서 초제하였다. 기사에 왕이 흥왕사에 행차하였다. 경오에 동남도도부서가 주하기를「일본국 대마도의 원평 등 40인이 와서 진주 수은 보도 우마를 바쳤읍니다」고 하였다. 임신에 선정전에 거동하여 시사하였는데 최석 김량감 유홍 최사량이 시정의 득실을 진주 하였다. 8월 계미에 선정전에 거동하여 사형을 청단하였다. 을유에 왕륜사에 행차하였다. 기해에 숭경궁을 고쳐 보령이라 하고 경흥원을 원희궁이라 하였다. 병오에 서경에 행차하였다. 정미에 어사대부 임개로 서북로 병마사를 삼고 사재경 윤익상으로 지동북로 병마사를 삼았다. 9월 경술 삭에 왕이 회교역에 머물었는데 밤에 호위의 군영에서 불이났다. 신해에 시신을 대동강 누선에서 향연하였다. 계축에 장락전에 거동하여 시사하였다. 무오에 요가 고주관내관찰사 고혜를 보내와 생신을 축하하였다. 갑자에 최석으로 검교태보를 삼고 최사량으로 검교 태자태사를 삼고 문황으로 검교 태자태부를 삼고 이자위로 검교사공을 삼았다. 계유에 흥복사에 행차하였다. 병자에 경계(경죄수)를 석방하였다. 무인에 연등도장을 흥국사에 설하고 또 궁성내외의 거리에 점등하였다. 동 10월 기묘 삭에 흥국사에 거동하였다. 계미에 중흥사에 행차하였다. 을유에 내전에서 친히 초제 하였다. 정해에 왕이 관풍정과 구제궁을 유람하고 드디어 영명사에 행차하여 행향하고 용선을 타고 대동강에 이르렀다가 밤이 되어서 이에 돌아왔다. 임진에 팔관회를 설하고 영봉루 부계에 거동하여 관락하고 드디어 흥국사에 행차하였다. 고주사 예빈소경 유신을 요에 보냈다. 계사에 친왕과 시신을 부계에서 향연하였다. 을미에 흥복 금강의 두 절에 행차하였다. 병신에 홍복 인왕의 두 절에 행차하고 드디어 제년 행차하여 누선을 타고 주연을 베풀고 물 흐름을 따라 대동강에 이르러 활 쏘는 것을 구경하였다. 백좌도장을 상경 회경전에 설하고 승 삼만을 구정에서 공양 하였다. 무술에 군신을 장락전에서 향연하였다. 11월 을묘에 서경으로부터 돌아왔다. 병진에 위위소경 유석을 요에 보내어 생신 하함을 사하였다. 임술에 팔관회를 설하고 법왕사에 행차하였다. 기사에 전중소감 김덕균을 요에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신미에 유단으로 분사병부상서 지서경유수사를 삼고 황종각으로 위위경 서경부유수를 삼았다. 정축에 상서우복사 임희열이 졸하매 하루동안 철조하였다. 12월 기묘 삭에 출추사 시어사 최사설을 전 진 나주도에 보내고 상서병부원외랑 이위를 경 상주도에 보내고 합문기후 윤관을 광 충 청주도에 보냈다. 기축에 형부시랑 최저를 요에 보내어 천안절을 축하하였다. 경인에 최석으로 수태위 판상서이부사 감수국사를 삼고 김량감으로 수태위를 삼고 유홍으로 수사공을 삼고 최사량으로 수국사를 삼고 문황으로 지중추원사를 삼고 이자위로 동지중추원사를 삼고 김충의로 호부상서를 삼고 박인량으로 한림학사 승지를 삼고 이예로 한림학사를 삼았다. 갑오에 경계를 석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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