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나갈 때 나타나는 증상들
누가복음 9장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12제자들에게 주신 능력 가운데 우선 귀신을 쫓는 능력부터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이라는 단어 하나만 사용하지 않고 “능력과 권위”라는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강조해서 설명한 것인데, 우리가 흔히 언급하고 있는 ‘은사’라는 단어는 바울적 표현이라는 점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은사’라고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공짜로) 주시는 것이라는 점에 강조를 두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수동적인 사람이 되게 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 자신이 너무도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이 점을 강조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은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고,
은사라는 말 대신에 권세 또는 권능 그리고 권위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의 권위라는 단어를 우리말성경은 ‘권세’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신적 권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누가의 입장에서는 권세인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그 권세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이 권세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가 귀신을 쫓는 권세부터 언급한 까닭은 그 권세가 복음 확장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의 나라를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귀신을 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적을 몰아내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있어서 필수적이기에
우선 귀신을 쫓는 일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권능이 다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 귀신을 쫓는 권세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 과연 귀신이 나갔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나가는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여기에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눅 9:39)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행 8:7)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니” (막 9: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 1:16)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11)
귀신이 쫓겨나가는 장면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이 되어야만 사역을 종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예를 보면 ‘갑자기 부르짖다’ ‘경련을 일으키다’ ‘거품을 흘리다’ ‘몹시 상하다’ ‘크게 소리 지르다’
‘죽은 것 같이 되다’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귀신이 쫓겨나가는 현상을 이와 같이 묘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알아차리는 일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때 처음에는 실력이 좋은 사람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하게 됩니다.
능숙한 솜씨로 시범을 보이는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보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하려고 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이런 현상을 보면 귀신이 쫓겨나간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 축사의 현장에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귀신은 여유를 주지 말고 쫓아내야 합니다.
귀신에게 틈을 주면 자신들이 방어할 구실을 찾아내어 교묘하게 사역자를 속이게 됩니다.
그러면 축사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귀신은 축사하려고 오는 사역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며
축사자도 역시 귀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 강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탐색전이 시작되고,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면 본격적인 영적 싸움이 시작됩니다.
귀신이 약하다면 그 때부터 위장술을 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순간을 모면하고 살아남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 사용합니다.
그 중에 거짓으로 나간 척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귀신들의 위계입니다.
소리도 지르고 경련도 하고, 부르짖고, 거품도 뿜어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귀신이 나갔다고 판단하고 섣불리 축사를 마무리하게 되면
사역자가 떠난 다음에 다시 들어와 괴롭히게 되며, 이렇게 위장술로 모면한 귀신은 더 강한 귀신들을 불러들려
그 환자의 사정이 전보다 더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시 쫓으려고 하면 쉽게 나가지 않고 결국 실패하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귀신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소리를 지르는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소리를 어떻게 지르는지 알지 못합니다.
큰 소리로 “아악~~~~~~~~~”하고 지르기도 하고, “나 죽네~~~~~”하기도 하고,
“악!”하고 단발마적으로 지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끄응!”하고 신음하듯 하기도 하고, “제발 이러지 말아!”라면서 애원하듯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입을 악물고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형태를 다 포함하여 성경은 “소리 지르며 나간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 온몸을 부르르 떨듯이 진동합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몸을 떨고, 흉악한 일을 목격하면 분노해서 사지를 떨지 않습니까?
그처럼 부르르 떱니다. 여러 차례 몸을 떨 때 얼굴은 몹시 일그러지고 괴로워합니다.
상체만 떨기도 하고 온 몸을 떨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떠는 힘이 강해서 잡고 있던 사람들이 튀겨 나가기도 합니다.
몸을 떨 때 강력한 영적 진동이 일어나 곁에 있던 사람들이 혼절하여 쓰러지거나 넘어지기도 합니다.
거품을 흘리는 경우,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기도 하고, 위 속에 있는 음식물을 토하기도 하며,
거품이 일어나면서 썩은 냄새를 뿜어내기도 합니다.
입에 게거품을 품듯이 부글거리기도 하지만 기침을 할 때 가래를 토해내듯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역시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은 요동하며, 경련을 일으키고 소리 지르면서 토해냅니다.
이 모든 행위가 복합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분리되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몹시 상하게 하는 경우, 축사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머리를 바닥에 찧고 손으로 할퀴고 갖은 자해행위를 하면서 눈동자는 희게 뒤집어지고, 물건을 내던지기도 합니다.
무릎을 갑자기 강렬하게 꿇어 쿵 소리가 날 지경입니다. 흉기를 들고 설치며 위협하기도 합니다.
식식거리면서 분난 사람이 이성을 잃고 나다니는 것 같아서 무척 위험합니다.
성경은 ‘몹시’라는 단어로 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쫓겨나가지 않기 위해서 사역자를 이와 같은 자해 행위를 하면서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런 귀신의 상하게 하는 행위에 주눅이 들면 축사는 실패하게 됩니다.
죽은 것 같이 되는 경우, 역시 사역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간혹 어설픈 축사자들이 축사를 흉내내다가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례 때문에 축사자는 환자가 죽은 것처럼 되어버리면 덜컥 겁을 먹게 됩니다.
축사 사역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겁을 먹는 일입니다.
축사자가 겁을 먹으면 귀신은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사자로 하여금 겁을 먹고 위축되게 하려고 몹시 상하게 하거나 갑자기 죽은 자처럼 되는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처럼 되어버린 모양을 보고 겁먹고 축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축사는 마무리가 고비입니다.
99% 귀신이 항복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이와 같은 현상들인데 이를 완전히 축사가 되었다거나
겁을 먹었다거나 해서 축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게 되면 다 죽어가던 귀신이 기사회생하게 되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쫓아내는 일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축사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귀신이 모두 쫓겨나갔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우선 환자의 눈을 살펴야 합니다.
귀신이 충만했을 때는 눈동자가 미친 사람 눈 같지만 귀신이 쫓겨나가면 눈동자가 맑아집니다.
초점이 흐리던 눈동자에 선명한 초점이 생기고 맑아집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맑은 눈인지는 설명할 수 없고 실제로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 차례 경험을 하게 되면 분별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일그러진 얼굴에 평안이 깃들게 되고 피부가 밝아집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미묘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은 위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면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초보 축사자는 반드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축사자 곁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섣불리 다루면 귀신은 더욱 강해져 쫓아내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입니다.
돌팔이 의사가 사람을 상하게 하듯이 경험이 미천한 사역자는 귀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치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도움을 청하는 귀신들린 환자들의 경우, 여러 차례 축사를 경험한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루기가 더욱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경험 앞에서는 귀신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도우심과 경험으로 무장되면 귀신은 쫓겨 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귀신이 들렸던 사람은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귀신을 쫓겨나갔지만 그 후유증이 오래 갑니다.
후유증은 귀신들린 상태와 별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가족들은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귀신이 없어도 상당기간 동일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귀신이 들렸던 기간에 비례해서 그 후유 장애가 남기 마련이며,
이를 치유하기 위한 회복 치유는 축사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귀신들림이 오래 진행된 환자의 경우 완쾌를 방해는 요인이 됩니다.
정신과 치유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마치 격렬한 사건 현장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 ‘외상후장애’처럼
‘후유장애’가 귀신들림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장봉운 목사님 (영성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