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 Break the generation curse ' by Marilyn Hickey Ministries'
성경/출20:5,신7:9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1/저주 아래서 벗어나십시요. 영의 눈이 밝아 신령한 지혜와 총명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오.어떻게 원수들의 사악한 역사를 깨트리고 승리할 수 있는지 영적 원리를 발견합시다.승리의 근거는 '(계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입니다. 우리가 저주 아래 있으며,사단이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공격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들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인 것들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호4:6저주를 찾아내어야 합니다.저주를 찾아내는 신령한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이를 위하여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아 영안을 열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축복과 저주를 말씀하십니다.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될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여지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입니다.오늘날도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리고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의 말씀은 결단코 변개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백절불굴의 믿음을 가지시고 인내심을 가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저주가 역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축복을 막는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주를 풀 축사가 필요한 것입니다.요컨데 과거의 죄악들로 인하여 생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하나님은 저주와 축복들을 우리 앞에 놓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반역입니다.반역의 결과로 토하여 지는 것입니다.(레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반역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인 저주는 한세대에서 다음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조상의 죄로 인하여 내가 죄인이 되거나 정죄받는 것은 아닙니다만 죄가 성경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그 불순종의 대가와 결과를 치루게 되는 것이기에,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2/무엇이 저주를 가져 옵니까?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실제로 '가계를 통해 내려온 저주들 혹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들'이 조상의 때부터 시작된 문제들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들 때문입니다.이같은 것을 깨닫고 우리의 영적 권세를 주장함으로써 저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그 저주를 깨트리기 위해 오셨음을 주장하고 선포했기 때문에 우리는 치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술취했습니다. /여기에 조상의 저주 즉 한가정의 저주가 시작되는 생생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잠26: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까닭없는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저주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알콜중독자요/ 벌거벗은 것은 /동성연애를 의미한다. *가나안이 패역한 짓을 헹하다. 그들은 함의 후손입니다.함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가나안입니다.가나안이 패역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함의 장자인 가나안족속을 저주하였던 것입니다.그들은 동성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붓과 구스는 검은피부-아프리카,미스라임-베이지색-애집트,가나안인은 백색)'(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에서 저주를 촉발시킨 것은 노아 자신이 술취한데 있었습니다.노아가 술취했고 마귀와 죄에게 틈을 보이고 기회를 내어 준 것입니다.사람들은 술 마시는 일을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로 생각합니다. 3/축복과 저주의 계곡 우리는 축복과 저주 어느쪽을 선택할 것이냐 최종적으로 결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①우상숭배나 무당에 관련된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②부모를 대적한 자들 ③무자비한 자에게도 ④성적인 범죄자들 ⑤폭력에 대하여 위의 저주는 <만일 너희가 복받기를 원하고,너희 자손이 복받기를 원한다면 죄를 짓지 말라.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만일 죄를 범한다면 이 저주들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너희가 이것을 알겠느냐?' '아멘.우리가 알겠나이다.우리는 어떤 축복들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저주들이 있는지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저주를 가져오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①강한 자와의 싸움입니다. 마12:29-32 집은 세대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선포하자. '이 더러운 마귀야,너는 내 말을 들을찌어다! 나의 자녀들은 너의 소유가 아니야.예수 이름으로 내가 너를 결박한다.너는 더 이상 내 자녀들을 넘볼 수 없느니라.'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넘보는 마귀의 저주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깨트려 버리고 끊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야 사단 마귀야!나는 이제 저주 아래 있지 않아.나는 지금 예수님의 보혈의 권세 아래 있다!' ②더 악한 일곱 귀신들 마12:43-45 -내가 나왔던 내 집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누구의 집입니까?마귀는 당신의 집,당신의 세대,당신의 자녀,당신의 후손-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마귀는 당신의 자녀들을 쫓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고,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으며,우리의 집,가정,자녀들을 이제 주님께 속해 있으며,주님이 거처하시는 집인 것입니다. 4/속죄소 저주를 무효화할 수 있는 길입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피가 저주에 대한 해답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에덴 동산밖에 살았지만 그와 그의 자녀들은 예배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으니 즉 두 그럽이 지키고 있는 하나의 특별한 장소,그 장소가 바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속죄소(MERCY SEAT)의 예표였던 것입니다.거기서 두그럽은 의(righteousness)와 공의 (justice)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속죄소입니다.예수님은 저주를 깨트리기 위하여 그의 피를 흘리셨던 것입니다. 가나안족속의 저주를 보십시오. 가나안은 노아의 홍수에서 살아 났으나 저주받게 되었습니다. / 가나안족속의 멸망이 예언된것입니다.죄는 저주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기생 라합은 저주를 파쇄하고 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기브온 족속도-그들은 거짓말쟁이,강간자들,속이는 자들로 이 이름의 뜻은 뱀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가나안 사람들이었으나 살아났습니다.(여호수아9,10장)-우리는 당신의 하나님을 원합니다고 합니다. 모압여인 룻도 그렇습니다. 저주는 피로 깨트려진 것입니다.피의 제사로 나아간 그들이었습니다.피는 어떤 저주도 깨트리는 것입니다. 유태인은 셈의 후손입니다.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저주를 짊어지심으로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것입니다. 노아의 후손에 임한 저주는 알콜에 기인한다면 여기서 자유합시다. '사단아,너와 너의 알콜 중독의 악한 영들은 나의 기도를 들으라.지금까지는 네 맘대로 휘들렀지만 이제 너의 권세는 파쇄되어졌다.이젠 더 이상 나와 내집에 속한 어느 누구도 알콜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예수의 이름으로 너의 저주는 파쇄될지어다.나의 삶을 방해하는 간사한 계략과 방해도 지금 즉시 그칠지어다. 나는 과거에는 알콜 중독자였으나 이제 나는 구원받았다.조상의 저주는 이제 파쇄되었다.나의 자녀,나의 손자들,그리고 나의 증손자들,내 가족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오늘 깨끗케 하셨으며,항상 깨끗케 하시기 때문에 결코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므로 사단아,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한다.지금 즉시 우리 가정을 떠날찌어다.' 5/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저주 저주들은 한 세대를 거쳐 다른 세대로,조상 대대로 전이되고 전달되어집니다.세속적인 보험회사들도 벌써 이 사실을 알고 가입하려는 사람들에게'혹시 가족 중에 심장병을 앓았던 사람은 없습니까?신장에 문제는 없습니까?고혈압이나 당뇨는 없습니까?'라고 물어 봅니다. ①조상들의 죄가 자손 3,4대 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는 과실 책임의 법칙입니다.연대책임입니다. (잠26:2)저주 뒤에는 죄가 있습니다.죄는 항상 저주를 가져옵니다.어떤 사람의 삶 속에 저주가 나타날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죄의 뿌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②가뭄과 질병들 ******사울의 집에 임한 저주가 깨트려지고 풀리니 기근이 사라졌습니다. ③유전적인 질병들 ④신접한 자들 속지마시오.이는 이상하고 더러운 악한 영인 것입니다. 항상 성령님을 찾고 그분과 가까이 하시오.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런 것들을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가르치십시요.그들은 이런 악한 것들과 조금이라도 관계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6/헤롯가문의 저주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그는 이두메인으로 에돕족속이었습니다 그는 저주받은 족속에 속합니다.에서는 하나님을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①헤롯에게 동방박사들 즉 지혜자를 보내셨습니다.이는 발람의 예언입니다. ②헤롯 안티파스 ③헤롯 아그립바 ④헤롯 아그립바2세 헤롯 아그립바2세는 그의 가문의 마지막 세대였습니다.그들은 한나라의 통치자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왕위를 잃고,베수비우스 산에 있는 한 농토를 구입하여 평생을 수치스러운 유배생활로 마감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그곳은 농사짓기에 너무나 좋지 않은 곳입니다.왜냐면 화산이 폭발하여 모든 땅을 삼켜 버렸고 동시에 헤롯가문의 종말을 고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저주를 깨트리기 원셨습니다.헤롯 가문의 모든 세대를 다루셔서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그들은 모두다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결국 그들은 다 사라졌습니다.이두메인도,에돔인도 다 저주에 삼켜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7/가정의 저주들과 축복들 하나님은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하나님은 항상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으며,창세기에서는 친히 네가지 신성한 제도를 세우십니다. ①자유의지 (창2:16) ②결혼 (창2:18-25) ③가정(창3:16,창4:1,2) ④국가 (창11:6-9)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는 순간 저주는 임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가죽옷을 해입혀 줌으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바로 피흘림을 통한 벙법입니다.그 길을 통해서 속죄소에 나아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날려버린 에서 헷족속은 가나안족속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믿지 않는 자들은 완전히 죄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사람들 어린양의 피 불신자와의 결혼 저주를 끊어버리라--그렇지 않으면 진멸 당하리라. 아간이 지불한 엄청난 대가 하나님만 의지하라.그리하면 저주가 끊어지리라. 8/저주를 돌이켜 축복으로 우리의 생각은 치열한 전투장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저주하여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문제들에서 실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오.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을 회개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당신이 저주를 되돌려 놓는 방법인 것입니다. 9/하나님께 응답하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사에 해답을 주십니다. 유전적인 질병의 저주를 깨트리라. 우리 세대를 자유케 합시다. 쓴뿌리를 던져 버립시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회개합니다.저는 제 마음 속에 쓴 뿌리들을 허락하지 않고,그런 원망과 분노를 품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적인 기도를 올려야할 것입니다. 당신이 회개하 때 자유케되고 조상의 저주는 끊어집니다.만일 과거 조상의 저주들을 지금 당장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자손들을 자유케 할 뿐만 아니라,일곱배나 더 악한 것들이 당신에게 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0/욥과 그의 가족 욥은 쓴뿌리를 겪은 또 다른 사람입니다. 욥은 처음에는 자기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긍정적인 사람들과 사귀고 우울과 패배로 찌든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당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욥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불평과 쓴뿌리는 쌍둥이와 같습니다. 네가 진리를 알찌니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제는 하나님께서 욥을 다루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저주를 돌이켜 축복으로 바꾸십니다. 욥은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또 하십시오. <너희들은 이런 일에 빠지지 마라.마귀가 이것을 가지고 너희들을 유혹하려 할 때에 너희들은 마귀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악한 마귀들아,너희는 즉시 물러갈찌어다!나는 조상의 저주아래 있지 않다.나는 새로운 아버지,하늘의 아버지의 축복 아래 있는 자이다.나는 새로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선포하라.>
11/선과 악 여러 가정을 살펴봅시다. 오므리의 가정 오므리의 아들 아합(그의 아내 이세벨) 참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죽으리라 무자비한 왕,아하시야 어느날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의 큰 궁전을 거닐고 있다가 '역시 나는 위대한 왕이야,그야말로 나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고 중얼거리다가 창문 난간에 기대어 내다보다가 떨어져 심히 다쳤을 때 이 말을 하고 엘리야는 '왕이여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아하시야는 죽었습니다. 여호람과 엘리사 여호람은 우상숭배와 악을 더 행하였습니다.전대보다 더 악했다. 그가 모압왕과 싸우러 나갈 때 유다왕 여호사밧이 선지자에게 묻기를 좋아 하지 않았으나 엘리사에게 묻었습니다.거문고를 타는 가운데 엘리사가 예언하였습니다. '너희는 개천을 파라 너희가 기적을 볼 것이다.' 아침에 소제 드릴 때 기적적으로 개천에 물이 가득차게 되었고, 산위에 있던 모압군대에게는 이것이 태양에 반사되어 피빛으로 보여 이스라엘이 모두 죽어 피를 흘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전리품을 줍기 위하여 무방비상태로 산아래로 내려와 보니 물을 마시고 원기가 왕성한 이스라엘 군대에 괴멸당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기적을 보고도 그는 조상의 죄를 끊고 회개하지 않고 더 우상숭배를 하다가 결국은 예후에게 암살 당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선과 악을 뒤섞은 아달랴 이세벨과 아합의 딸이요 여호람의 동생입니다.그녀는 남왕국의 요람왕과 결혼합니다. (오므리-아합-아하시야-여호람-아달랴-그녀의 아들 아하시야(5대))
불신자와의 결혼을 말려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경건한 여호사밧의 혈통과 이방의 이세벨의 혈통을 받아 양립할 수 없는 두가지 적대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달랴는 여호람이 죽자 손자들을 다 죽이고(요아스만 제외됨)왕이 되어 6년간 집권한 악랄한 여왕이 됩니다. 선한 왕,요아스이로써 오므리 가문의 악한 씨앗이 끊어집니다. 요아스는 좋은 왕이었습니다. 왜? (왕하12:2) 요아스는 자기 생애를 하나님에게 헌신하였습니다.그렇게하여 조상의 저주는 끊어지게 되었습니다.언제든지 당신이 주님께 나아오기만 한다면 주님은 당신의 저주를 담당하시고,그것을 축복으로 만들어 놓으십니다.그래서 다윗의 위는 끊어지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이를 이어 왕위에 계심으로 영원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12/레갑 족속의 신앙 왕하10:15-23 자기 주변에 온통 우상숭배가 횡행할 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했고 우상숭배를 미워했고 아합과 이세벨에게 대항하여 일어 섰습니다. 여호나답-하나님께 응답한 사람 하나님은 그에게 '네가 나에게 진실하기를 원하느냐,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포도주를 입에 대지 말라. 둘째 땅을 사지 말며, 셋째는 유목민이 되어 염소와 양떼를 치며 셍활하라.그리고 너의 자손들도 이렇게 가르치라.그러면 내가 너의 가족을 보호할 것이요.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아하시야가 왕이었지만 예후란 사람이 등장하여 엘리사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로 들어가 아합의 집안을 진멸하고 북왕국의 왕권을 차지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예후는 님시의 손자요 여호사밧의 아들이었습니다.여호나답에게 도움을 청합니다.예후는 이세벨을 죽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나답을 봅니다.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몇세대를 거쳐 그들의 조상 레갑족속이 하나님과 한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였는가를 봅니다.그들은 하나님에게 신실하였습니다.예례미야가 유다방백들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있기에 레갑족속들을 모아 본보기로 신실함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시험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영원한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침략하여 멸망시키고 모든 족속들을 포로로 잡아갈 떼 레갑족속만 본토에 남겨 두었습니다.그들은 유목민이기에 기근으로 유다에 모두 내려가 있었기에 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정복하였을 때 그는 유목민은 살려두라고 명령을 하였기에 레갑족속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나답의 자손들은 이렇게 하나님에게 신리하였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을 사람이 저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당신은 오늘도 여리고에 레갑 족속이 살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레갑 족속들은 지금껏 끊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아직까지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그것이야말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축복이요,그들이야말로 축복받은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라 말입니까?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천대까지 아르러 그들을 축복하리라.'실로 레갑 족속들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축복을 받고,자손 대대로 그 축복을 물려주며,과거의 저주를 깨뜨려 버린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3/의의 가정 이제 당신은 조상의 저주에서 자유케 되기를 원하고,지금 당장 당신의 행위를 바로 잡기를 원할 것입니다.당신은 당신에게 악한 짓을 행하고,당신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을 것입니다.당신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그들을 원망과 분노의 쓴뿌리를 가지고 대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과 자손들이 당신으로부터 축복만을 물려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런것들을 경계하십시오. 부정한 이윤을 추구하지 마십시요. 우상숭배를 하지 마십시요. 악행을 버리시오. 겸손하시오.-명성과 권력을 멀리하시오. 선을 추구하시오. 이것들을 추구하시오. 쓴뿌리를 버리시오. 옳은 길최선의 태도는저주를 축복으로 주린 영혼에게 쓴 것이라도 달다.하나님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하여 굶주려 있나이다.목말라 있나이다.당신은 어떤 기적을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기도하십시오. 병에서 자유하라.더이상의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고백으로 꾸짖고 대적해야 합니다.어떤 저주에게도 묶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주를 끊었습니다.저주가 변하여 자손 천대까지 이르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저주를 축복으로 돌려 놓은 것입니다.지금 당장 돌려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지상논쟁-가계저주론을 말한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의 저자인 이윤호 목사가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치유세미나를 개최한 것과 관련, 달라스 교계에 '가계저주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본지 152호 9월 12일자 10면 참조). 이 논쟁은 김홍기 목사가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 총장에게 세미나 개최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서신을 발송하고, 이윤호 목사가 이에 대응하는 답변형식의 서신을 여러 번 주고받음으로써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저주론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에 가계저주론에 대한 김홍기 목사와 이윤호 목사의 입장을 각각 실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가계저주론 사상은 비성경적
김홍기 목사(탈봇신학교 목회학 박사,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 철학박사학위 과정, 21세기교회성장연구원 원장)
지난 9월 11일 미국을 뒤흔들었던 끔찍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계저주론에 매료된 사람들은 미국인 조상의 죄와 관련된 하나님의 저주가 먼저 그들의 생각에 떠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계저주론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 및 자연적인 재앙들을 '가계를 통해 내려온 저주들' 혹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주들'과의 인과 관계를 통해서 보려고 하는 극단적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타인의 잘못과 직접 연결지어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경향은 현대의 가계저주론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에스겔서 18장 1절에는 당시 유대 사회에 편만해 있던 이와 비슷한 잘못된 속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죄와 관련되어 유포된 이 소문은 아버지가 지은 죄의 값을 아들이 치룬다는 뜻이다.
그러나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고 맹세하시고 있다. 그리고 이어 4절에서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말씀하시고, 13절에서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시며, 20절에서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시며, 24절에서 '그가 (악인)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의 값은 범죄한 본인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지 그것을 대물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다시는 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이처럼 죄의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는데 왜 가계저주론자들은 조상의 죄와 저주가 후손에게 대물림이 되어 후손들의 삶에 여러 가지 불행과 고통과 재앙을 유발하고 있으니 그 저주를 끊어야 된다고 함부로 주장하고 있는가? 가계저주론자들은 그들 주장의 근거를 출애굽기 20장 5절에 있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는 말씀에서 찾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죄와 저주의 대물림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 원어의 직역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아비로부터 하나님을 미워하는 아들에게로 이르는 삼 사대를 벌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이 말씀은 조상의 죄의 영향을 받아서 조상의 죄와 같은 죄를 짓는 사람들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서 말씀하는 것이며, 삼 사대라는 말은 저주의 대물림이 아닌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끼칠 강한 영향(effect) 혹은 결과(consequence)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후손은 삼 사대까지 하나님을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이 조상의 영향을 받아서 조상과 같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로 살아갈 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가계저주론자들은 이러한 말씀의 참된 의미를 저주의 대물림으로 왜곡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여러 권위있는 정통 신학자들의 글을 편파적으로 인용하며 마치 그들이 이곳에서 죄와 저주의 대물림을 주장하기나 한 것처럼 자신들의 주장의 들러리로 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용한 정통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죄의 심각성과 결과(대물림이 아닌 결과 그 자체) 그리고 죄의 개인적인 책임을 두루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볼 때 가계저주론 사상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나 조상의 죄와 저주의 대물림 교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마저 적용하는 것을 볼 때 그만 아연실색할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가계저주론자들도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는 말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역사적인 정통 교회들이 믿고 가르치던 바 '그리스도께서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신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은 저주로부터 실제로 해방되었다'를 교묘히 정면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분상 저주에서 해방되었지만 조건적으로는 저주 아래서 살고 있다고 주장(신학적 논리적으로 커다란 모순으로서 후에 이것에 관해서 자세히 언급을 할 것임)하므로 역사적 정통 교리와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가장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적 논리적 오류에 기초한 기만적 해석에 불과할 뿐, 실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대물림 받은 저주(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저주, 즉 죄의 개인적인 책임은 가계저주론에서 상대적으로 감소된다)의 존재와 영향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구속의 의미를 변질시키는 면에서 왜곡된 것이고, 그 설명에 있어서 기만적이며, 그 본질에 있어서 파괴적이고 (신자의 삶을 근거 없는 저주와의 전쟁으로 규정함으로), 역사적인 정통 교리 입장에서 볼 때 이단적 교리인 것이다. 또한 가계저주론의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 싸움을 변질시키며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를 부패시키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정통 신학을 파괴하는 악성 신학 바이러스로서 한국 교계 차원에서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커보키안이라는 죽음의 의사 (Doctor of Death)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자살할 때 고통을 덜 느끼도록 독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다. 그는 사람들을 독살하는 일을 계속해서 여러번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자기의 고집을 꺽지 않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계저주론'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은 가계 치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이 '근거 없는 저주'를 처방해 주는 수단을 결코 정당화 시켜 주지 못한다. 죽음의 의사 커보키안이 사람들을 돕는다는 미명 아래 독살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처럼 저주의 메신저들도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근거없는 저주'를 처방해 주는 일을 정당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계의 복과 저주의 진리' 균형적 강조 및 신학적 변증
이윤호 목사(전 인도네시아 선교사, 풀러신학교 철학박사, 미국기독교치유상담원 원장)
성경에 38번이나 복과 저주란 단어가 동일한 구절에 동시에 등장하듯이, 복은 저주의 상응하는 개념으로, 복과 저주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축)복을 받는다'는 말에는 상당히 익숙해 있고, 한국 교회는 물질 (축)복, 건강 (축)복, 자손 (축)복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는 '저주를 받는다,' 혹은 '저주를 내린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좋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 죤 스타트가 주장하는 대로, '저주하는 하나님보다 축복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가계의 저주에 대한 견해는 사람들에게 '자못 생소하게 심지어는 잔인하게 들린다?갈라디아서 강해, 94면).
사실상, 한국 교회는 부모가 순종할 때 자녀들이 받는 (축)복에 대해 강조해 왔다. 이는 철저하게 성서적 진리로써, 교회가 이에 대한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가계의 (축)복'이란 진리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각 교회마다 어김없이 오늘날 미국의 부강을 청교도들의 신앙덕분이라고 설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상들의 순종과 신앙으로 인해 백성과 후손이 받는 축복이 진리라면, 조상들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백성과 후손이 받는 저주 역시 진리이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상급으로 보응하신다(룻 2:12)(잠 22:4, 롬 2:7, 사 40:10, 62:11 참조). 반면에, 하나님은 악을 행하며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 심판으로 보응하신다(사 3:11, 골 3:25). 한 개인의 순종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과 심판은 한 개인의 현세 및 내세에 이루어지고, 또한 그들의 후손에게 주어진다. '가계의 저주'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갚으신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
종교 개혁자 칼빈은 부모의 죄를 후손에게 치르게 하는 이유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 너무 엄중해 현세의 범주에 국한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기독교강요, 제2권, 332면) 성경 역시 조상의 죄로 인해 후손이 받게 될 심판에 대해서 증언한다(출 20:5, 34:6-7, 레 26:39, 민 14:33, 욥 5:3, 18:19,21, 21:21, 시 21:10, 37:28, 109:9-15, 잠 14:11, 사 14:20-22, 렘 32:18, 애 5:7, 롬 5:7,12).
나는 이에 대해 구원론과 불일치, 종말론적 증언과 부조화,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와 불일치 등 세 가지로 변증하고 싶다.
첫째, 구원론과 불일치. '신자들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구원론으로 바꾼다면, '신자들의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는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이다. 따라서 구원이 칭의, 성화, 영화의 3단계로 점진적이라면, 죄의 결과인 저주로부터의 회복 역시 점진적이다. 신자의 저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계속 연속되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성경은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구원의 점진성에 대해 설명한다(롬 13:11, 히 6:9).
둘째, 종말론적 증언과 부조화. 신자들이 율법을 포함한 죄의 저주에서 신분적·위치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상태적·경험적으로는 해방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저주의 고난(the curse of suffering)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고 가르친다(롬 8:19-21)(D. R. McConnell, A Different Gospel, pp. 158-159). 성경은 또한 모든 저주로부터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증언한다(빌 3:20-21, 고전 15:51-53, 요일 3:2).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계시록 22장 3절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때에야 비로소, '다시는 저주가 없게된다(No longer will there be any curse).' 신자가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미래시제를 주목해 보라! 따라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해 신자가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은 신자의 신분·위치 혹은 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지, 신자의 현재 상태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신자들이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혹은 미래에 '완성될' 것과 현재에 '미완성'된 중간 상태의 종말론적 긴장의 삶을 살고 있다.
셋째,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와 불일치.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는 우리가 저주로부터 이 세상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장로교 대요리문답> 제153문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변한다.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범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중보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장로교 소요리문답> 제 85문 참조). <장로교 대·소요리문답>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외적 혹은 보통 방편인 말씀, 성례,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율법의 저주'를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저주'에서 이미 신분적·위치적으로 속량되었지만(요 19:30, 갈 3:13-14), 우리 신자들은 아직도 상태적·실제적으로 저주아래 살고 있다.
'가계의 복'이 존재한다면 '가계의 저주' 역시 존재한다는 신학적 설명만으로도 가계의 복과 저주의 신학적 정당성이 충분히 입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에 대한 신학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가계의 복과 저주'의 말씀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저주받지 않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임이 자명하다. 불신자들에게 '지옥'의 말씀을 증거하는 목적이 그들이 '지옥'에 가지 않고록 경고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가계의 복과 저주'의 핵심적 진리는 '가계 저주론'이 아닌 '가계치유'를 통한 '가계 축복론'임을 천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