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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계월의 '그대를 보내며(送人)' - 이빈섬.

작성자콩밝空朴|작성시간14.02.25|조회수262 목록 댓글 0

기생 계월의 '그대를 보내며(送人)' - 이빈섬.

대동강상송정인 (大同江上送情人)
양류천사불계인 (楊柳千絲不繫人)
함루안간함루안 (含淚眼看含淚眼)
단장인대단장인 (斷腸人對斷腸人)

대동강에서 정인(情人)을 보냅니다
버드나무 천 가지로도 묶지 못하는 사람이여
눈물 맺힌 눈이 눈물 맺힌 눈을 봅니다
애 끊는 사람이 애 끊는 사람과 마주 서서

***** 평양기생 계월(桂月)의 ‘송인(送人)/님을 보내며’

계월은 영조때 사람으로 당시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한성부좌윤 이광덕의 애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는 고려 시인 정지상의 ‘송인’과 닮아있다. 아마도 계월은 정지상의 시를 읽었으리라.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언덕 풀빛 더 푸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슬픈 노래가 일어나네
대동강물은 언제 마르리
이별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정지상의 ‘송인’

정지상은 담담하다. 이 시인은 슬픔을 억누를 줄 안다. 꾹꾹 누르면서 태연한 표정으로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줄 안다. 고개를 들어 강변의 언덕을 쳐다본다. 비가 막 그쳤으니 물빛이 풀빛에 올라 진초록이 반들거린다. 온 언덕에 눈물이 번진 것 같다. 같은 풀빛이지만 그게 더 진해보이는 건, 물빛이 오른 까닭이요, 지금 내가 무척 울고싶은 탓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긴 언덕을 쓰윽 눈길로 훑으며 고인 눈물을 되넘기고 있는 중이다. 강변의 이별이야 나 혼자 겪는 일은 아니다. 늘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남포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 있고, 슬픈 울음들은 노래처럼 가슴에서 일어나 나루를 웅웅거린다. 그 일어나는 노래에 겨워 고개를 숙였다. 

눈물 한 방울이 그때 뚝 떨어졌나 보다. 물방울 하나가 강물에 사라진다. 그때 중얼거린다. 대동강물이야 언제 마르겠는가. 해마다 이별이 있고, 그 눈물들이 이렇듯 다시 보태져서 흐를 게 아니던가. 운다는 표현이 이토록 아름답게 에둘러 표현된 일이, 인류의 시사(詩史)에 있었던가. 강물 전부를 끌어와, 눈물 한 방울로 농축시킨, 시의 에너지도 놀랍지만, 그래도 결코 자기 눈물을 보이지 않은 채, 남의 얘기처럼 읊조리고 있는 저 꼭꼭 여민 슬픔. 

시인 계월 또한 이 시를 달달 외고 있지 않았으랴. 평양기생인 그녀에게도 대동강은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별리(別離)의 나루인 것을.

그는 여자다. 졸지에 날벼락같은 이별을 맞은 기생이다. 정지상처럼 눈물을 참지도 않고, 슬픔을 에두르지도 않는다. 정지상은 이별을 이미 받아들였지만, 계월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몸부림 중이다. 대동강 위에서 정인을 보냅니다. 이 여자는 남자를 따라 배 위에까지 올라와 있다. 어찌 뭍에서 그냥 손 흔들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마주 보고 있고 싶다. 그게 대동강상의 '상(上)' 한 글자에 다 드러났다. 

출렁대는 배 위에서 벌써 마음이 어지러운 판이다. 정인(情人)이란 말을 님이라 번역하면 재미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情)이란 마음이다. 그러나 그냥 마음이 아니라, 몸을 허락하고 하룻밤 사랑을 허락하는 마음이다. 기생이란, 애인이라는 이름까지 붙일 수도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더 정이 통해야 그게 애(愛)라는 이름으로 바뀔까. 알 수 없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야 더없는 믿음이었지만, 이 이별 뒤에는 아무 것도 보장할 수 없다. 시간만 더 있다면 이 정인이 나를 사랑해서 못 떠나도록 할 수 있을 텐데...그러나 그는 떠난다. 아직 배는 계류되어 있지만 곧 떠날 것이다. 그녀 옆에는 버들가지가 휘휘 늘어져 바람에 하늘거린다. 버들가지 천 개라면 이 사람을 묶을 수 있을까. 이 아이같은 마음. 붙잡고 싶어 죽겠는데, 눈에 버들가지가 보이니 그거라도 어떻게 해서 배를 계속 묶어둘까. 이 마음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인을 묶을 수 있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정인의 마음도 나처럼 아플까. 나처럼 슬플까.

그래서 그를 본다. 눈물 어룽어룽하는 사이로 흔들리는 정인을 본다. 내 눈에 고인 눈물처럼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게 함루안간함루안이다. 마음이 같다는 걸 확인하는 일만큼, 이 이별에서 여인에게 위로가 되는 건 없다. 앞의 함루안은 내 눈이 아니라, 그의 함루안이다. 이게 포인트다. 그가 눈물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물 그렁그렁한 채로 그를 보고 있어도 안될 건 없지만, 주어가 저쪽이어야, 정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내 마음이 살아난다. 그도 아프긴 아프구나. 그도 슬프긴 슬프구나. 그와 나는 똑같은 마음이구나. 저 눈물은 가슴 속에 저미는 아픔이 돋아올린 것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아픈데 전들 아프지 않으리? 

창자(애)를 끊는 듯한 아픔이 어찌 나만의 것이리. 단장인대단장인의 앞 단장인은 바로 나다. 가슴 아파 죽을 것 같은 내가, 가슴 아파 죽을 것 같은 당신을 마주하고 서 있네. 함루안 구절은 마음이 건너오는 경로이고, 단장인 구절은 현실을 찍은 사진이다. 마음과 현실을 맞춰보며, 여인은 기약하기 어려운 사랑의 실낱 희망을 발명해낸다. 함루안을 반복하고 단장인을 반복함으로써, 이 복잡하고 애절한 양쪽의 심경과 풍경을 찍어낸 이 여자, 이 시인, 대체 누구던가. 정지상의 송인 못지않다. 꼭꼭 여민 정지상이, 절절이 풀어낸 계월로 살아났다. /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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