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시詠懷詩 생각을 시로 읊다 / 완적阮籍(210-263)
야중불능매夜中不能寐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기좌탄명금起坐彈鳴琴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박유감명월博帷鑒明月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청풍취아금淸風吹我襟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고홍호외야孤鴻號外野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상조명북림翔鳥鳴北林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 숲에서 우짖는다.
배회장하견徘徊將何見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사독상심憂思獨傷心 근심스러운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
완적阮籍의 자는 사종嗣宗이다. 보병교위步兵校尉로 있었기에 흔히 완보병阮步兵이라 부른다. 완적은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였는데 부친은 “건안칠자建安七子”중의 한 사람으로서 조조 밑에서 관리를 지냈다. 완적와 모친은 서로 의지하여 살았는데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완적은 시서詩書를 좋아하였으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즐겼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완적은 개성적인 인재로서 호방하고 타고난 성질이 굴레 벗은 말 같고 즐거움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봉건예법을 반대하였는데 행위가 괴이하고 방탕하여 천지天地를 방처럼 가옥을 저고리로 여기며 알몸으로 있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책방에 다가서면 그는 “어찌 나의 바지 덧천에 들어 왔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봉건예법을 멸시하고 부정하였다. 그는 봉건예법에 구속된 유생들을 얕잡아 보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완적의 눈동자는 흑백이 분명하였는데, 뜻이 맞는 정겨운 벗이 찾아오면 청안靑眼으로 대하고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백안白眼으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완적은 언론의 자유가 없는 어두운 시대에서 살았다. 사상적으로 괴롭고 답답하였고, 사회 환경은 그의 성격을 괴이하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늘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으면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았고, 산이나 물놀이를 나가면 해가 져도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하였다. 술을 마시고, 거문고 연주를 즐겼으며, 형태를 내부에 감추고, 고생 속에서 낙을 찾았다.
학술 사상방면에서는 도가를 떠받들었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사상을 밝히기 위하여 유명한 논문을 썼다.『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은 그의 철학논문의 대표작이다.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저작으로는 시문詩文과 전문적인 집자集子가 있다.
완적은 또 현학자이기도 했다. 『역경』 ․ 『노자』 ․ 『장자』 등 몇 몇 작품에 대하여 모두 정밀하고 깊은 연구를 했으며, 도가사상의 유물론적 성격에 대하여 다른 현학자들처럼 노장사상의 소극적인 면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긍정적 이건 부정적 이건 옳게 평가를 내렸다. 일부 현학자들은 어두운 정치에서 반항하지도, 지적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고난을 잊어버리라고 하고 기회를 보아 평안을 도모하려 하였다. 이와 반대로 완적은 술독에 빠져 미친 척하기도 하고 큰 소리고 울고불고 하기도 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가 반항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일부 현학자들과는 다르게 피와 살이 있는, 눈물도 흘릴 줄 아는 훌륭한 사나이였다. 철학사상을 체현한 주요한 글로는 『통역론通易論』 ․ 『통노론通老論』 ․ 『달장론達庄論』 ․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