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리아 에보라의 <Café Atlantico>,
진한 그리움을 견디는 방황하는 영혼들의 피난처
익숙해진 일상의 장소를 벗어나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오감(五感)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낯선 사람, 낯선 억양, 낯선 건물, 낯선 풍경들을 이미지로, 소리로, 냄새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 첫인상에 의해 부여된 일정한 편향을 가진 느낌으로 낯선 것에 대한 자극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몸과 마음을 쉽게 지치게 만들곤 하죠. 그래서일까요? 낯선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쉴만한 물가처럼 편안한 까페부터 찾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런 인사발령으로 익숙해진 삶의 현장을 쫓기듯 뒤로 하고, 남동쪽 먼 땅, 울산으로 전근을 왔을 때 제가 처음으로 찾아가고 싶었던 곳도 까페였습니다. 익숙한 음악이 흘러주길, 그것도 나의 취향이 가미된 음악이, 추억의 음악이면 더욱 좋구요! 마음의 위로를 찾고 싶고, 향긋한 커피향기에 몸을 맡기고도 싶은 그런 곳이 바로 우리가 찾는 까페인 듯합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아직까지 그런 까페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신은 인간에게 상상의 힘을 주셨습니다. 지금, 비록 이 글을 여관방에서 쓰고 있지만 얼마 전 찾아갔던 바닷가, 바다 위로 기적처럼 떠올랐던 무지개를 목격했던 그 바다를 떠올리며, 일생에 한번이나 볼까 말까 한 그 무지개를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는 해변의 까페를 상상해봅니다.
오는 3월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는 “맨발의 디바”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모르나의 여왕”, 쎄자리아 에보라가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습니다. 지난 내한공연 때는 공연장의 음향시설이 좋지 않아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이번 공연은 가장 적절한 공연장에서 열리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고 기대가 무척 커지기도 합니다. 마침 이 공연에 맞춰서 그녀에게 세계적인 성공을 안겨다 주었던 1999년 발표앨범 <Café Atlantico>가 다시 발매도 되고 그럭저럭 3월에는 쎄자리아 에보라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질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저도 쎄자리아 에보라의 앨범 <Café Atlantico>에서 멕시코의 대표적인 볼레로 “Maria Elena"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쎄자리아 에보라의 삶과 이 앨범 <Café Atlantico> 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느 덧 올해로 예순 일곱 살에 접어든 쎄자리아 에보라에게 <Café Atlantico>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장소일까요? 그리고 그녀에게 이 앨범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쎄자리아의 팬이라면 그녀가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유년기를 거쳐 세 번의 이혼을 겪은 불행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카보 베르데를 구성하는 열 개의 섬 가운데 하나인 상 빈센트의 항구도시 민델로에서 요리사인 어머니와 바이올린 연주로 생계를 꾸려가던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쎄자리아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고아원에 맡겼고, 그곳에서 쎄자리아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애정이 결핍된 유년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면, 그곳 고아원에서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을 접했다는 사실입니다. 3년 뒤 그녀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Eduardo라는 이름을 가진 선원과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서 카보 베르데의 전통음악인 ‘콜데라’(Coldera: 모르나보다 경쾌한 댄스풍의 혼혈음악)와 ‘모르나’(morna)를 배웠는데, 이것이 쎄자리아가 민델로의 여러 바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구 마을 민델로에서 그녀는 사랑으로 충만한 행복감을 그리 오래 누리진 못했습니다. 자신의 유명한 노래에서 “만일 내가 젊은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선언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녀에게는 절망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던 거죠. 독한 술과 담배에 의지해 살아가는 삶이 이미 십대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술과 담배와 ‘모르나’는 어떠한 감정의 움직임도 느낄 수 없는 쎄자리아의 무표정한 얼굴과 함께 쎄자리아의 이미지를 특징짓곤 합니다. ‘흐느끼다’라는 영어의 동사 ‘mourn’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morna'이지만 그녀가 부르는 ‘모르나’에서는 가슴을 무겁게 눌러 내리는 슬픔보다는 절박한 고통의 막바지에서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버려 슬퍼도 울 수 없는 사람의 영혼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의 그림자를 느끼게 됩니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부르는 이별과 상처와 그리움의 노래들은 그녀의 깊은 목소리에 실려져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아련함의 세계로 이끌어갑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간절히 원하지만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모르나’의 핵심 정서인 ‘소다드’(sodade)에 이르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다드’라는 정서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오랫동안 흑인노예무역의 기지가 되면서 서아프리카 해안으로부터 끌려온 흑인노예들, 그리고 이곳을 드나들던 뱃사람들이 섞여져 탄생한 후예들이 20세기에 들어 척박한 땅의 저주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유럽과 미국으로 향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집단적 운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카보 베르데 사람들의 ‘집단적 운명’ 속에서 파생된 사랑과 이별의 아픔, 상처, 재회의 기쁨 그리고 달콤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진 ‘집단적 회상’은 ‘모르나’라고 하는 카보 베르데의 블루스를 통해서 재현되곤 하는 것이죠.
쎄자리아는 30대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카보 베르데 최고의 인기가수로 사랑을 받게 되었지만 그녀는 이 시기부터 10년 동안 또다시 사랑의 실패로 인해 깊은 슬픔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녀가 술과 담배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10년간의 세월은 사랑의 상실에 따른 ‘소다드’의 깊이를 더욱 천착하는 좌절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흔네 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엔 그녀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방향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던 카보 베르데 출신의 음악인 바나(Bana)의 따뜻한 격려와 후원에 힘입어서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리스본의 지역 여성들의 모임에서 쎄자리아의 초청공연을 성사시킨 것도 바로 바나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행운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프로듀서로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던 주제 다 실바(José Da Silva)가 그녀에게 파리로 갈 것을 권했던 것이죠. 그의 도움으로 전설적인 파리의 올랭삐아 극장 무대에 맨발로 서서 공연함으로써 파리의 청중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죠. 드디어 “맨발의 디바”의 전설이 시작된 겁니다.
Café Atlantico!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지중해’라는 이름을 가진 까페나 레스토랑을 보긴 했지만, 대서양이라는 이름의 까페는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대서양 까페, 까페 대서양이라........’
'Café Atlantico'는 실재하는 장소는 아닙니다. 다만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곳일 뿐, 그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채, 진한 그리움을 견디는 영혼들이 꿈꾸는 피난처와 같은 곳입니다. 거친 폭풍과 비바람으로부터 안전한 곳, 대서양의 어느 끝, 어느 해변쯤에 고즈넉하게, 또한 평화롭게, 그렇게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곳일 뿐입니다. 아니 그렇게 존재하고 있기를 바라는 지친 영혼들의 마지막 희망과 같은 곳일지도 모릅니다. <Café Atlantico>는 또한 세계 곳곳의 항구에서 오랜 뱃길 여행에 지친 선원들, 여행자, 그리고 항구를 주변으로 거친 삶을 살아가는 막노동꾼, 창녀, 호객꾼과 같은 비천한 인생들의 지친 삶에 작은 위안을 주는 선술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쎄자리아에게 ‘Café Atlantico’는 자신이 어린 나이에 직업가수로 데뷔했고 실패한 사랑을 달래기 위해 독주를 마시고 담배를 물었던 민델로 항구의 선술집을 의미할테지요. 그리고 앨범 <Café Atlantico>의 컨셉은 바로 이러한 추억과 안식을 위한 피난처에 흐르게 될 음악들로 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열네 곡의 곡들 가운데서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곡이 바로 “Maria Elena”입니다. 이 노래는 멕시코 작곡가 로렌소 바르셀라타(Lorenzo Barcelata)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멕시코 대통령 폴데스 힐의 부인인 마리아 엘레나에게 바쳐진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3년 브라질 출신의 기타 듀오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Los Indios Tabajaras)의 연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인 장국영이 맘보춤을 출 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이 바로 이들의 연주였습니다. 스페인어 가사는 원작자인 바르셀라타가 쓴 것인데요, 힘세고 배짱이 두둑한 사나이를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생각하는 멕시코의 노래치고는 너무나 절절하고 달콤한 사랑의 고백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심장
나의 정열의 태양
내 환상의 여인이여
내 사랑을 당신께 바칩니다
푸른 희망은 내 삶에 아름다움을 줍니다
내 삶은 당신이 준 천국입니다
당신은 나의 마음
나의 정열의 태양
내 사랑아, 나의 존재는 당신의 것입니다
내 마음을 모두 당신께 주었지요
당신은 나의 믿음, 나의 신, 나의 사랑입니다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이런 사랑의 고백을 한다면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인들은 없을 듯한데요, 하지만 이렇게 절절한 사랑의 고백을 하는 멕시코 남성들은 결혼만 하고나면 많이 달라진다고 하지요. 멕시코 남자들의 속마음은 아주 복잡한 것 같습니다. 원래 이곡은 남자가 여자에게 바치는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그래서 실크처럼 감미로운 흑인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목소리로 듣는 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Café Atlantico>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쎄자리아 에보라 자신도 냇 킹 콜이 부르는 ‘마리아 엘레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쎄자리아 에보라가 불러주는 ‘마리아 엘레나’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바이올린의 아련한 선율과 기타의 트레몰로, 분위기 있게 감아주는 피아노,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긋나긋하면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쿠바 뮤지션들이 연주해주는 다양한 타악기들의 연주가 좋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물 흐르는 듯 흐르지만 굴곡진 삶을 이겨낸 쎄자리아 에보라의 그윽하면서도 여유 있는 목소리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맨발로 무대에 서서 ‘마리아 엘레나’를 부를 그녀를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첫 내한무대에서는 중간 휴식 때 그냥 무대 위 소품처럼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궁금합니다.
글. 심영보 (CBS 음악전문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