資本
capital
경제학에서 자본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나, 어떤 경우에도 자본은 플로 변수로서의 소득 개념과 대조되는 스톡 변수로 취급된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본은 인구·숙련·능력·교육 등의 비물질적 요소와 토지·건물·기계·장비 등을 포함하며, 또한 기업과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중간재·완제품까지 포괄한다. 기업에서 자본의 개념은 대차대조표의 한 항목을 구성하며, 기업 활동을 통해 생산되지 않은 기업 순가치의 일부분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 자본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금융자산과 대조되는 실물자산만을 의미한다. 두 개념은 상이한 것같이 보이지만 무관하지는 않다. 폐쇄경제에서 사회 전체의 대차대조표를 통합하면 모든 부채는 상쇄된다. 이는 모든 부채가 어떤 대차대조표에서는 자산이며, 어떤 대차대조표에서는 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합된 대차대조표의 한 변에는 사회 전체의 실질자산의 가치가 기록되고, 다른 변에는 순가치의 총액이 기록된다. 이것이 경제학의 자본 개념이다.
기업이 보유한 재화와 가계가 보유한 재화를 구분할 수 있는데, 대체로 자본개념은 전자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생산된 재화와 자연물을 구분할 수 있는데, 여기서도 자본이라는 용어를 전자에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본은 또한 인적 자본과 비인적 자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예제 사회에서 인간은 가축이나 기계와 같이 자본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자유경제사회에서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가치가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회계체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사회적 자본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총 스톡 중 회계체제에 포함되는 부분과 포함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적 자본을 자본 스톡에서 제외시킨다.
자본은 또한 유동자본과 고정자본으로 나뉜다. 고정자본은 토지·건물·기계 등의 생산 과정에서 그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 자본을 말한다. 유동자본은 생산중인 재화, 원자재, 판매될 완제품과 같이 재화의 형체가 변형된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의 상대적 구조, 즉 다양한 재화들의 존재비율에 관한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실물자본 스톡은 높은 보완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숙련된 기술자나 원자재가 없다면 기계는 쓸모 없게 된다.
고대와 중세의 학자들이 이자와 고리대업의 윤리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자본 개념이 경제사상의 중요한 범주가 된 것은 고전학파 경제학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A. 스미스는 분업의 촉진과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자본 축적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생산이 소비를 초과함으로써 축적이 진행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리고 자본의 대상물을 만드는 생산적인 노동과 노동의 결과가 직접 소비되는 노동을 구분했다. 그는 농업 사이클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수확이 끝나면 한 사회는 일정한 양의 곡물 스톡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 스톡은 자본가들이 소유한다. 그것의 일부분은 자본가 자신과 하급 관리인들의 소비를 위해 보유하고, 그 나머지는 다음 한 해 동안 생산적인 노동자들의 소비를 위해 사용된다. 그결과 다음해의 수확이 끝나면 곡간은 다시 채워지며, 이때의 곡물 스톡은 잉여생산물을 포함한 상태로 보존된다. 총수확물 중에서 자본가들의 소비를 위해 비축되지 않는 부분이 '임금기금'이다. 수확 후의 곡물이 증가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다음 해의 실질임금은 상승하게 된다. 이와 같은 농업 사이클 모델은 매우 단순하여 산업사회에서의 플로와 스톡의 복잡한 관계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최후의 고전학파 경제학자인 J. S. 밀은 임금기금설을 폐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기금설은 다소 현실적인 복잡한 관계들을 거칠게나마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며, 임금기금설은 이후의 학자들에 의해 보다 정교한 형태로 재등장하게 되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소득을 임금·이윤·지대라는 세 범주로 구분하고, 여기에 생산의 3요소인 노동·자본·토지를 대응시켰다. 특히 D. 리카도는 생산된 생산수단으로서의 자본과 자연적 요소로서의 토지를 엄격히 구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현대에 와서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1870년경 오스트리아 학파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조류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형성되었는데, 이 학파는 종종 한계주의 학파라고 불렸다. 이러한 조류는 상당히 국제적이어서 영국의 W. S. 제번스와 프랑스의 L. 발라와 같은 인물들도 포함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본이론은 E. 뵘 바베르크의 저작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의 저서 〈실증적 자본이론 Positive Theory of Capital〉(1889)은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경제 과정은 '본원적인 생산요소'를 상이한 수명을 갖는 자본재에 체화(體化)함으로써 가치 또는 효용을 창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본원적 요소의 체화와 최종 소비재 사이에는 생산기간이라고 하는 시간상의 간격이 존재한다. 인구의 균형상태에서 총인구(자본 스톡)는 인간의 평균수명(생산기간)과 연간 사망자 또는 출생자(소득)를 곱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소득이 일정할 경우 생산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자본재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뵘 바베르크 이론은 균형상태에서만 의미가 있다. 자본이론의 주요문제들은 그 성격상 동태적이며, 따라서 비교정태분석은 제한된 의미밖에 가질 수 없다.
한계주의 학파는 영국의 P. H. 윅스티드, 스웨덴의 K. 빅셀, 미국의 I. 피셔 등 세 사람에 의해 거의 완성되었다. 빅셀과 피셔는 특히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교화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상의 가장 큰 공헌은 자본과 이자의 관계에서 가치평가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실물자본이 소득의 흐름을 창조한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이자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문제는 실물자본의 가치가 그것으로부터 발생하게 될 미래가치의 총액보다 작은가에 대한 설명이 선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은 기다림 또는 숙성(maturity)과 관련된 선택 문제를 해명하는 데 공헌했다. 포도주처럼 천천히 숙성하는 재화를 시판할 최적의 시점을 찾아내는 일이 이들의 관심사였다. 한계이론에 따르면 어느 품목의 순가치증가율이 이자율과 동일하게 되는 시점이 최적 시점이다. 따라서 이자율이 6%일 때 포도주의 순가치가 7%로 증가한다면 더 숙성되도록 기다리는 것이 이익이 된다. 그러나 기간이 오래될수록 가치의 증가율은 낮아지므로 가치의 증가율이 이자율 수준으로 떨어지는 시점이 인내의 결실을 맺는 시점이다.
J. M. 케인스의 자본이론에 대한 기여는 근본적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이다. 그러나 케인스 혁명이 경제학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저축은 자동적으로 투자로 이어진다는 당시의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믿고 있던 전제를 폐기했다. 그에 의하면 저축이 곧바로 자본축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자본축적을 위해 소비를 억제하려는 시도는 생산이 일정할 때만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의 억제가 생산을 축소시킨다면 자본축적은 줄어들게 된다
비록 이자이론이 1950년대 후반에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자본이론은 20세기 후반의 경제학자들의 주요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문제가 계속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비동질적 재화의 총량을 측정하는 문제이다. 실물자본의 총량에 대한 단일한 척도는 각 품목이 달러·스털링·프랑·페소 등과 같은 일정한 화폐단위로 표현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문제는 급격한 기술혁신으로 생산물의 상대가치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품목들까지 변화하게 되면 더욱 복잡해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근사적인 해결만이 가능하며 완전한 측정은 불가능해진다.
이와 관련된 회계학상의 문제는 고정 가격을 갖지 않는 자본자산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대차대조표의 몇몇 품목의 경우 그 가치는 전기(前期)의 가치에 기초해서 평가된다. 따라서 일반 물가수준이 변하게 되면 화폐단위로 표현된 각 품목의 구매력도 변하게 된다. 이 문제는 재고상품의 가치평가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 전통적인 선입선출법(First In, First Out/FIFO)에서 재고상품의 가치는 최종 구매품의 가격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 재고상품의 가치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며, 그결과 이윤을 과대 평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은 부분적으로 후입선출법(Last In, First Out/LIFO)이라는 또다른 가치평가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후입선출법에서 재고의 가치는 최초에 구매된 상품의 가격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단기적인 가격변동으로 인한 가치변동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장기적인 실질가치의 변동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현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본가치의 측정방법은 주의 깊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
자본축적률을 결정하는 요인이 2번째 문제이다. 실물단위로 측정한 투자는 생산과 소비 간의 차이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자본축적의 원천으로서 절약을 강조했다. 생산이 일정하다면 축적률(투자율)을 증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의 감소뿐이다. 반면 케인스는 소비의 감소보다는 생산의 증가를 강조하여 투자재의 생산을 자본성장률을 결정하는 중심 요소로 간주했다. 현대 경제발전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생산구조의 문제, 즉 다양한 생산활동간의 상대적 비율의 문제이다. 균형성장론은 개발도상국이 상호관련되어 있고, 협력적인 공·사기업에 광범하게 투자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교육제도의 정비를 통한 양질의 노동력 공급을 중시한다. 한편 경제의 한 부문이 주도적인 성장을 함으로써 경제의 다른 부문의 발전을 자극한다는 불균형성장론이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광산과 수력발전소에 대한 대규모투자는 사회 전반의 생산을 자극하고, 그결과 보완적인 산업 분야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소득분배를 이윤 생산자로부터 금리 생활자나 채권 소유자에게로 이동시키는 디플레이션이 투자와 자본의 성장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대공황이 발생한 1932년 미국의 실질투자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에 비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투자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존재하는 경우 투자 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 이때 아파트·공장에 대해서는 과다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학교·공공시설 등에는 투자 부족이 나타난다.
경제 과정의 생산기관과 시간구조가3번째 문제이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단순한 공식들로는 해결될 수 없으므로 보다 유용하고 정교한 이론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의사 결정은 미래로 파급되는 효과를 가지며, 마찬가지로 현재의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은 과거에 시행된 의사결정의 결과이다. 기존의 자본구조는 과거의 의사결정이 체화된 것이며, 현재의 의사결정의 바탕이 된다. 그런데 서로 모순되는 의사결정이 종종 이루어지는 것은 의사결정과 그 결과 사이에 시차가 존재함으로써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모순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기순환과 같은 인류 역사의 순환구조를 잘못된 의사결정의 결과가 누적되어 위기 시점이 도래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이나 불황과 같은 위기는 사회의 지배력을 재배치하여 새로운 축적의 시기를 낳는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구조의 왜곡이 매우 심해지게 된다.
한 사회의 스톡과 플로 사이의 관계, 보다 좁은 의미로는 자본과 소득의 관계가 4번째 문제이다. 소득은 일정기간 동안 자본에 부가되는 총량을 의미한다. 실물단위로 나타내면 이것은 생산의 개념과 사실상 동일하다. 따라서 소득 플로의 총량은 자본의 구조나 자본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사회의 실질 총소득은 인구의 크기, 숙련도, 자본장비화의 정도에 의존한다. 경제적 후생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1인당 실질소득인데, 이것은 노동생산성과 1인당 자본량에 의존한다. 특히 인적 자원, 기술, 교육에 대한 투자의 결과가 자본 스톡에 포함되는 경우 경제적 후생과 1인당 자본량은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