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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현상학 권위자 중 하나, 노동하는 철학자. 최경호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6.10.19|조회수574 목록 댓글 0

‘현상학적 지평에서 규정한 선’ 펴낸 최경호씨


동아일보 2001.05.28. 송평인 기자


“낮엔 공사장에 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글을 씁니다.”


최근 ‘현상학적 지평에서 규명한 선’(경서원)이란 색다른 책을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최경호씨(49). 최씨를 만나려면 경기 부천시 상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을 찾아야 한다. 그는 여기서 목공으로 일하고 있다.


“좋은 십장을 만나 행복하다”는 최씨는 서울대 철학과 73학번. 82년 같은 대학원에서 현상학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관련분야의 번역작업을 해왔다. ‘후설사상의 발달’ ‘신체의 현상학’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현상학적 운동 1,2’(공역)등 4권의 번역서를 갖고 있다. 그러나 번역만으로 생활이 될 리 없었다. 언젠가부터 공사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최씨는 학생시절 후설의 저작을 일일이 복사해 문단별로 잘라 오려내고 노트에 띄엄띄엄 붙여서 행간(行間)까지 읽겠다는 집념으로 현상학을 공부했다.


“하나의 시를 알려면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외워 시인의 마음이 돼야 합니다. 저는 현상학 이론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훗설의 마음을 따라가보려 했어요. 결국 훗설이 평생에 걸쳐 했던 작업이, 나라는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실재가 스스로를 내비치도록 하는 것, 즉 선험적 자아를 넘어서려 했던 시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90년대 들어 그는 선(禪)에 관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97년 집안에 틀어박혀 보름 동안 죽기 살기로 선에 몰입한 후 나름대로 의식의 새로운차원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씨는 주로 새벽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글을 쓴다. 해질녁까지 일하다보면 저녁에는 녹초가 돼서 글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공사가 많은 봄부터 여름까지만 일을 하고 그렇게 모아놓은 돈으로 가을 겨울을 지내면서 글을 쓴다. 그러나 ‘현상학적 지평에서 규명한 선’을 쓴 4년간은 예외였다. 1년 반 동안 꾸준히 공사판에 나가 생활비를 벌었다. 그리고 나서 2년 반 동안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해 최근 책을 완성했다.


“끊임없이 뭔가를 지향하고 규정하려고 하는 선험적 자아를 뛰어넘어 무아(無我)에 이르려는 시도가 선입니다. 선험적 자아라는 능동적 의식주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최소한 ‘몸’은 남습니다. 모든 관념을 버린,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아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아의 의식속에 만물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 드러냅니다.”


최씨는 십장을 따라 오가는 단순한 목공에 불과하다. 하지만 “목수의 손감각은 머릿속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어느새 현대도시 속의 선사(禪師)가 돼 있다.


학생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한전숙(韓筌淑)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씨의 현상학적 지식은 국내 어느 전문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돈의 속박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철학하는 태도는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노동속에 활짝 피어난 철학자 최경호씨

최경호씨 '존재에서 규명한 선(禪)' 펴내

서울대 철학과 입학했다 언어장애로 박사 포기


조선일보 2004.05.13. 이한우 기자


부끄러운 고백에서 시작한다. 2월 초에 나온 한 권의 책에 관한 고백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한 줄 소개도 하지 못한 800쪽짜리 책이다. 최경호 지음 ‘존재에서 규명한 선(禪)’.


무지 또는 무심함을 일깨워준 것은 경북대 철학과 신오현(申午鉉) 교수가 보내온 한 통의 이메일. “한국 철학의 역사에 획기적인 신기원을 이룩한 대작으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동료 학자에게 인색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 학계에서 원로교수가 박사학위도 없는 재야학자의 저서에 흥분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메일을 보냈다는 것부터 사건이다.


책을 찾아내 저자 소개를 읽는다. ‘최경호는 현상학을 연구하다가 선에 관심을 두면서 거기에 몰입하다. 2001년 여름 작업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선과 존재라는 주제를 붙잡아 마음을 가다듬고는 그 해 겨울부터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 이 책을 완성하다.’ 이게 전부였다. 저서목록에는 ‘죽어서 다시 태어난 바람아’ 등 시집 3권도 포함돼 있었다.


수소문 끝에 만난 최씨는 말을 심하게 더듬고 있었다. 최씨의 후배인 서울대 철학과 이남인(李南麟) 교수가 의사소통을 도왔다. 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시를 쓰기 위해 1년 만에 중퇴하고 73년 다시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큰 시련이 닥친다. 원인 모를 언어장애가 온 것이다.


“79년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데 전제조건이 붙었어요. 언어 교정을 받으라는 것이었지요.” 두 달간 교정을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불가능했다. 20년 전 한국 학계는 그랬다. 박사를 하는 것은 교수가 되려는(학자가 아니라!) 준비였고, 강의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아예 들어오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언어 교정을 받아 보니 그게 결국은 마음을 억제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을 억제하다 보니 자유롭게 사고할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저는 그때 자유로운 사고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그에게는 ‘재야(在野)’학자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당장 생활고가 찾아왔다. 90년대 초부터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한양대 산학기술관 신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하는 철학자’다.


“봄 여름에 일하고 가을부터는 수고를 씁니다.” 말 그대로 그는 손으로 원고를 쓴다. “컴퓨터 안 해요. 컴퓨터를 치면서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새벽에 글 쓰고,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책 읽고 잠든다. 2년 전에 첫 저서 ‘현상학적 지평에서 규명한 선(禪)’이란 책을 냈고 이번이 두 번째 저서다.


첫 책이 말 그대로 자신의 선 체험에 대한 현상학적인 서술이었다면 이번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통해 다시 한번 선 체험을 학술적으로 풀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하이데거 철학의 극복을 겨냥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뜻하는 현존재(Dasein)에 집착했기 때문에 무아(無我)의 경지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철학 교수의 꿈은 완전히 접은 것일까? “책을 쓰고 나면 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합니다. 그때 한 6개월 막노동하고 나면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노동 안 했으면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강단에 서는 것은 사양합니다.”


공사장 동료들도 그가 철학을 위해 막노동하는 걸 안다. “이번에 책 나왔을 때 동료들이 ‘나도 고등학교 나왔으니 철학책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주변에 돌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대요.” 인터뷰 내내 자리를 함께했던 이남인 교수는 “선을 주제로 현상학적 기술(記述)을 충실하게, 밀도 있게 해나간 ‘탁월한’ 저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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