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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박홍규 선생의 철학에 대한 관점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6.06.02|조회수269 목록 댓글 0
질문

우연한 기회를 통해

소은 박홍규 선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논문이나 저작이 거의 없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니나

철학 학계에서는 누구나가 그 학문적 깊이에 경탄하는 위대한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작을 면밀히 검토해 보지는 않았으나

대략적으로 웹검색으로 훑어보니

철학이란 실증과학의 데이터를 메타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인데

이 철학의 본령에 가장 충실한 철학자가 플라톤, 베르그송이며

이에 대한 고찰을 방편으로 삼아

박홍규 본인의 독창적인 철학을 전개한다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박홍규 선생의 철학에 대한 성격 규정에 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학원생 :: 박홍규 선생은 탁월한 고대철학 연구자이시지요. 플라톤과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시킨 몇 안 되는 한국의 철학자이기도 하고요.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실제로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걸 정립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에 대한 박홍규 선생의 규정, 그리고 서양 근대철학사에 대한 박홍규 선생의 해석, 이 두 가지는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1. 먼저 철학에 대한 박홍규 선생의 규정에 대해서. 박홍규 선생은 철학을 "사물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십니다. 여기서 사물은 "모든" 사물들을 가리킵니다. 박홍규 선생에게 있어서 철학은 늘 모든 사물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고, 그 점에서 철학과 개별 학문은 차이가 나지요. 여기에 대해선 이의 없습니다.


문제는 모든 사물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이라는 부분입니다. 이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는데, 그야말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정의입니다. 어떤 사물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려면 그 사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지요. 17세기 말까지도 이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학문의 전문화가 폭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나 라이프니쯔같이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지식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고요. 그러므로 철학이 만일 오늘날에도 "모든 사물들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면, 철학은 불가능하거나 사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유원님도 철학에 대한 이런 정의를 받아들이시는 것 같던데, 글쎄요, 그런 정의를 고수하면서 철학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요? 정직한 사람이라면 철학을 포기할 겁니다. 아니면 철학이 아닌 다른 것을 공부하거나요.


2. 두번째, 서양 근대철학에 대한 박홍규 선생의 해석에 대해서. 박홍규 선생에 따르면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 대륙 합리론(이성론) - 영국 경험론 - 칸트 - 독일 관념론으로 이어지는 서양 근대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철학의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잘못된 철학입니다. 박홍규 선생에 따르면 고전적 철학의 핵심적 특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데이터"에 충실한 철학입니다. 각각의 사물들에 대한 일상적, 또는 개별과학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지식들의 근거를 지워주고 그 지식들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철학이지요.


그러나 근대 철학은 데이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주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 (데카르트), 세계를 인식하는 나 (칸트), 세계를 의식하는 나 (헤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박홍규 선생이 보기에 데이터가 아니라 자아로부터 시작하는 이런 철학들은 다 잘못된 철학입니다. 그래서 박홍규 선생은 데카르트, 로크, 버클리, 흄,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을 모두 무시하지요. 이런 박홍규 선생의 독특한 해석에 따르면, 근대에서 고대 철학의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은 철학자는 근대 초기의 갈릴레오, 그리고 훌쩍 뛰어넘어 19세기 프랑스의 오귀스뜨 꽁트라는 겁니다. 그리고 20세기 현대 철학에서는 박홍규 선생의 영웅, 베르그송이지요.


박홍규 선생의 이런 견해는 분명히 흥미있고 독창적인 견해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서양 근대 철학이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근대에 서양 과학이 그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아요. 박홍규 선생에게 있어서 철학과 개별과학은 늘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강조하시는 것 중 하나가, 고대 그리스에서 개별 과학이 발전되기 전에 먼저 존재론이 성립되었다는 것이지요. 바로 철학과 개별과학의 밀접한 관련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박홍규 선생 자신의 철학 체계 관점에서 볼 때, 선생의 근대철학 해석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베르그송 철학을 바탕으로 한 박홍규 선생의 철학 자체를 평가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이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도봉 :: 대학원생/ 적으신 글을 관심있게 읽었는데, 두어 가지 분명치 않은 부분을 설명해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1) '모든 사물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것이 (이것은 사물에 대한 실증적-전문적-과학적 인식을 함축하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가능하지만 지금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2) 철학을 '모든 사물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 것이 그때는 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통할 수 없다고 쓰셨습니다. (1)은 이해를 했는데 (2)에서 막힙니다. 그러면 철학의 정의와 과제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인가요? 그러니까 "지금은 옛날이랑 달라서 온갖 것을 다 전문적으로 아는 게 불가능하니 철학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인가요?


두번째 물음은 철학과 개별과학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에서 적으신 바에 따르면 박홍규 선생은 철학을 "각각의 사물들에 대한 일상적, 또는 개별과학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지식들의 근거를 지워주고 그 지식들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는 활동으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보면 개별과학을 토대로 해서 철학이 성립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적으신 바에 따르면 박홍규 선생은 "고대 그리스에서 개별 과학이 발전되기 전에 먼저 존재론이 성립되었다"는 걸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철학(존재론)을 토대로 해서 개별과학이 성립합니다. 박홍규 선생의 글을 직접 안 봐서 그런지 헷갈리는데 앞과 뒤가 안 맞는 게 아닌가요?



대학원생 :: 도봉님/ (1) 철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일급의 철학자들은 다들 자신들의 규정을 가지고 있지요.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탐구라는 데에는 모든 철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이 근본적인 문제들이 무엇인지, 이 문제들을 탐구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지, 그런 탐구가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지, 산출한다면 어떤 종류의 지식을 산출하는지, 이 모든 것이 논쟁의 대상이며, 철학자들마다 다른 답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답들에 따라 각각의 철학자들이 규정하는 철학의 정의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 서로 다른 정의들이 철학자들이 사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헤겔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리고 박홍규 선생의 철학 정의에 대한 제 비판의 요지는 말씀하신 것이 대강 맞습니다.


(2) 박홍규 선생이 철학과 개별과학의 관계를 선후 관계로 생각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철학과 개별 과학들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박홍규 선생이 말씀하신 "고대 그리스에서 개별 과학이 발전되기 전에 먼저 존재론이 성립되었다"라는 주장의 뜻은, 고대 그리스에서 나름대로 "완성된" 개별 과학이 수립되기 전에 먼저 존재론이 성립되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박홍규 선생은 또한 플라톤의 형상 이론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존재론의 성립에 개별과학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강조하고 계십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플라톤의 형상 이론이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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