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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은 성직자인가? 전문직인가? 노동자인가?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6.06.02|조회수2,924 목록 댓글 0
교직은 성직자인가? 전문직인가? 노동자인가?

김상수


논란이 되고 있는 교직의 성격은 세가지로 나뉜다. 다 아시다시피 1) 성직자관 2) 전문직관 3) 노동자관이다. 구구한 자기고집으로 각각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대해 대구교대 정재걸 교수는 딱잘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직을 보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성직자관, 전문직관, 노동자관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이 세 가지 교직관을 같은 범주의 것으로 보아, 그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거나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교직관은 교직이라는 직업이 갖는 세 가지 ‘속성(Attribute)'을 나타내는 것이지, 상호 배타적인 ‘요소(Element)'는 아니다. 가령 아스피린이라는 알약이 있다고 하자. 이 약의 속성은 (1)소화제가 아니라 감기약이다, (2)캡슐형이 아니라 당의정식 알약이다, (3)부작용이 없다 등으로 열거될 수 있다. 우리는 감기약으로서 아스피린을 논의할 수도 있고, 당의정으로서 아스피린을 말할 수 있고, 부작용의 측면에서도 말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 속성을 서로 비교하거나 이 중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직은 타인에의 헌신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성직의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교직은 장기간의 교육과 지속적인 연수를 필요로 한다는 측면에서 전문직으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교직은 자신의 노동력의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노동직으로 분류될 수 있다. 따라서 교직은 성직이 아니라 전문직이라든지, 혹은 전문직이 아니라 노동직이다 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교직은 성직이 아니라 세속직이라든지, 전문직이 아니라 일반직이라든지, 노동직이 아니라 경영직이라든지 하는 주장은 가능하다. 이것은 같은 범주 속에 포함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입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한 주장인 것이다.

위와 같이 그는 교직이라는 케릭트에 부과되는 다른 이면으로 본다. 그리고 각각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교직을 입체적으로 관찰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왜 교직이 세 측면이 거론되고, 각각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각각의 주장은 어떠한 배경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가? 그리고 그에 따른 파장은 어떠한 것인가? 에 있다.이러한 심층적인 분석이 결여되면 우리는 교직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는 교사들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될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은 학자들에겐 별의미가 없겠지만 교사당사자들과 행정가들의 정책결정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한 연구는 교육학자들이 많이 하겠지만 내 나름의 생각을 적어 본다.

1) 성직자관

성직(聖職)으로서의 교직은 한마디로 우리게 아니다. 유럽의 기독교의 문화속에 학교가 존속해 오면서 생겨난 교사관이다. 유럽의 교직자란 다들 교회와 관련되는 사람이다. 지식을 독점하고 전수한 이들은 수도사나 목회자들이다. 동시에 교수이고 교사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 진리=기독교 >와 가까웠다. 그들의 삶의 공간인 학교이자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다.

일례로 중세의 대표적인 2대 대학인 파리대학은 신학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짜여졌다. 이 학교는 12세기에 창립되었는데, 노트르담 성당 부속학교에서 시작하여 주로 노트르담 교구에 의해 운영되었다. 중세대학의 특징은 교권, 속권과 함께 학권으로서 강력한 권위를 가졌다. 쉽게 말하면 학교를 우습게 생각하면 다칠만큼 강력하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학교를 성스럽고 파워플하고 상아탑적인 어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형을 이룬다.

종교적 권위가 인간의 권위로 옮아가는 근대후기 19세기까지도에서도 학교내의 종교교육은 여전하였다. 독일의 중등 최고교육기관인 김나지움에서도 라틴어, 희랍어 수학 역사등과 나란히 종교를 가르쳤다. 따라서 학교가 성스러운 곳이란 것도 바로 이런 유럽의 수도원적 학교전통에서 연유한다.

아직 연구가 미진하지만 우리조상들의 교직관을 문헌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분명한 것은 <교직 = 성직>이라는 도식은 분명 없다. 논어를 읽어도 없고, 맹자에도 없다. 大學 이라는 교육기관의 설립목적과 지향점을 제시하는 유가경전을 읽어 봐도 없다. 성균관 향교 서당에서의 연구자료를 읽어 봐도 그런 냄새가 안난다. 앞에서 말한 겨우 문화와 역사의 전수적인 차원이나 유교적 엄숙주의적인 것밖에 없다.

교직을 신성시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사명감이나 근무태도에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요즈음 가뜩이나 얄팍한 교직관으로 혹은 수업만 딱 하고 아이들을 무미건조하게 대하는 직업인으로 학교를 오가는 사람들을 볼 때 꼭 지녀야 할 교직관이다. 나의 경우에 있어 교직의 성직으로의 이해는 인류의 지적문화유산의 전수자로서의 교사 또는 재창조자 라는 인식을 한다. 교직은 성스럽고 또한 장엄하다. 숭고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이보다 더한 인간의 길이 있을 소냐!

나는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교사를 도구화 시키는 전략으로, 혹은 교사의 인권을 교묘한 신비적인 것으로 포장해서 억압적인 메카니즘으로 써먹을려는 발상은 나쁘다. 교활하다. 옛날엔 교사들이 속았는지 몰라도 오늘날의 교사들은 속지 않는다.

<무명용사의 예찬>와 비슷한 <무명교사의 예찬>이라는 시를 쓴 미국의 <반 다이크>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무명교사의 기도>나 그와 유사한 표구들이 학교나 관청에 많이 내걸린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한다.



2) 전문직관



우리나라의 경우 교직이 전문직이냐 아니냐를 두고 교육학자들 , 교사 그리고 사회인들은 각기 달리 본다.



학자들은 교직이 전문직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속으로야 어떻튼 분명히 전문직이라고 한다.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교육학이라는학문체계가 있고 이런 교육학문을 체득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대하는데 전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직인 일이 아니라면 아무나 다할 수 있는 일이고 아무나 다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교육이라는 학문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둘째로는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교육학자들의 목소리는 그들 자신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그들이 유학간 미국학교에 듣고 배운 바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교사를 전문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최근에 어느 영화를 보았는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 대화중에 전문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확인했다. 마치 우리나라 삼성 금성 테레비가 미국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아서 일상대화중에 쓰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 사회인들은 어떻게 보는가? 두 층을 형성하는 것 같다. 중고둥학교 교사는 준(=아마추어)지식인이고 초등학교교사는 전공이 없는 빈 쭉정이로 본다. 앞의 것은 전공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반면 초등교사는 전공이 없이 국어 수학 음악 아무거나 다 가르친다. 앞의 것은 지식의 체계성이 있는 반면 뒤의 것은 지식의 활용에 관심에 있다. 학창시절의 경험으로 봐도 중고등학교의 수학 영어 물리과목들의 스트레스는 기억하지만 초등학교 교과공부의 어려움은 기억하지 못한다.



교사들의 교직을보는 눈은 세 갈래이다. 1) 교직이 전문직이다. 아니다 2) 준전문직(=아마추어 전문가)이다. 둘다 틀렸다. 3) 교사는 노동자일 뿐이다. 라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냉소적인 것이 많이 배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초등이든 중등이든 많은 교사들은 전문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일이 가르치는 일을 본령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맨날 행정업무나 허드렛일로 근무시간을 채우기 때문에 전문직이라는 생각을 지워 버린다. 그리고 침묵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성취지향적인 교사들과 아카데미를 추구하는 교사들은 소리높여 전문직을 외치고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특히 초등학교는 전공영역이 없다시피 하니까 그 반작용으로라도 더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그래서인지 이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러면 전문직이란 무엇이냐? 기준은 무엇인가?



리버만(M.Liberman)과 스틴넷(T.M.Stinnett), 휴겟(A.J.Huggett), 호일(E.Hoyle) 연구가 있는데 대개 비슷하다. 리버만을 위시하여 위 3인의 다른 점 몇가지가 추가된 것이다. 자격증요구나 현직연수를 통해 전문성의 계속적인 성장이 요구된다는 점 그리고 평생동안 봉사한다는 특성이 보완된 것에 불과하다. 전문직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변동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상황적인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교직의 전문직을 강조할 때 리버만의 전문직 8가지를 취한다. 나도 취한다. 일단 살펴보자.



1. 전문직은 독특하고 분명한 그리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2.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 지적이다.

3. 장기간의 전문화된 훈련이 필요하다.

4. 전문직 종사자 개개인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 집단 모두에게 광범위한 자율권이 있다.

5. 전문적인 자율성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진 판단과 행동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진다.

6. 경제적인 보상보다는 제공되는 서비스에 강조를 둔다.

7. 전문직 종사자들의 포괄적인 자치기구가 있다.

8. 불분명하거나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례에 의해 명료화되고 재해석되어 온 윤리강령이 있다.



나로서는 1 2 3 5 에는 별 이견이 없다. 문제는 4 6 7 8 이다. 4 - 교사의 자율권은 하나도 없다. 기껏 학급 게시판의 환경꾸미기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정도이다. 6 - 돈을 말하는 것은 추저분하지만 그래도 중급수준은 돼야하지 않은가? 그임무가 막중할 진데 7 - 글자그대로의 자치기구가 있는가? 교총은 대대로 관변인사였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왔다. 교총에 가입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본다. 아무것도 없다. 8 - 윤리강령만은 52년도에 4개까지 있건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홈페이지 윤리강령을 읽어보세요 ) 등이다. 8개 항목 중에서 50%가 해당없음인데 과연 교직이 전문직이란 말인가?



밖을 둘러보자. 교사는 전문직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잠재우는 전세계적 합의를 도출했다. 아주 최근이다. 바로 1966년 10 월 5일에 유네스코와 세계노동기구 ILO에서 <교원지위에 관한 권고 - 전문직으로 간주되야 한다>라고 세계만방에 선언했다.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승인 각국정부에 교사를 전문직으로 인정하자 인정해주자는 촉구이라는 점이다. 말만 그럴싸했지 전세계적으로 교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이다. 불쌍하고 측은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논란이 이어져 온 것에 혹은 교사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의미인지는 아니면 세계교원단체의 압력행사에 의한 일인지는 자료가 없어서 모르겠다.



교육법74조와 교육공무원법 38조 1항에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노력할 권고할 뿐 법률적으로 전문직이라는 표현은 없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교육학자 정범모는 <교직과 교사>에서 <교직은 아직 전문직이 아니다. 그러나 교직은 전문직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범모가 62년도에 이말을 했는데 지금은 전문직이 되었는가?



2) 노동자관



나는 교직이 노동자라는 말을할 때 아주 기분 나쁘다. 나의 공부와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기껏 <노동 일>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나에겐 껄꺼럽다. 나의 행위의 가치가 용역에 불과하고 그 용역의 댓가로 돈을 벌어 먹는다는 것이 아니꼽다. 내가 공상가나 동양인의 명분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싫다. 나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동양인의 가치태도로는 교육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선대(先代)의 지적문화유산을 내 후손에게 물려주고 그들이 올바른 인생살아 가도록 도야함에 있다. 교육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도 밥을 먹어야 하고 담배도 사펴야 한다. 곧 장가도 들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 들여야 한다. 이런 글을 쓰려면 책도 사봐야 하고 내 머리 속에 다양한 경험을 채워 넣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하는 수 없다.



교직의 노동자라는 인식의 대두는 마르크스라는 위대한 사상가의 덕에 힘입은 사회학적 연구성과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서구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 엄청난 부의 불균형과 인간의 핍박이 있어 왔고, 잃어버린 인권과 돈을 나눠갖자는 생각을 했다. 이들의 모습을 가슴아파했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5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폐종양에 쿨럭거리면서도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벤또를 들고 다니며 아침에서 밤까지 공부하고 집필했다. 그가 팔걸이 의자에서 죽은 이후 막시즘(Marxism)은 서구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서구적인 이데올로기가 태동되었고 그러한 정신문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다. 교직의 노동자라는 인식은 마르크스의 덕이 크다. 분명 교사들은 혹사당했고 그들의 권리와 복지를 저지당해 왔다. 교직이 전문직이 아니라는 냉소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원로교원들이 교직이 노동자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그들은 <교직=노동자>라는 사람을 <빨갱이>로 인식한다. 왜일까? 내가 봐서는 그들의 삶의 과정 중에 6 25라는 민족동란 중에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인 행동과 문화의 파괴 살육을 목격했던 체험과 반공교육에 길들여진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반공교육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냉전주의의 소산이며 육영수여사가 총맞아 죽어 가는 광경은 반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리의 맹세>처럼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반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할 민족사적 책무로 생각했던 것이다.



법률적으로 교직은 노동직이다. 헌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의 주체는 근로자이고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불문하고 - 를 제공하는 자이다. 교사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이므로 노동기본권의 주체가 된다. (근로기준법14조)



교총과 전교조가 교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20세기에는 없던 우리 교육계의 신선함이다. 마땅히 가져야할 우리들의 권리이다. 이 두 단체가 나에게 덕이 되는 것은 틀림없고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교총이 싫다. 전교조도 내 길이 아니다. <끝>



참고문헌 :

1. 박진규 외 2인, 신세대를 위한 교육학개론, 지선사, 2000.

2. 이찬교 외 2인, 교육의 이해, 한국방송대출판부, 2000.

3. 정재걸, 오두역거 성리학의 사제관계 , http://vision.taegu-e.ac.kr/~jgjung/

4. 이찬교 외 2인, 교직과 교사, 한국방송대출판사, 2000.

5. 하승수외 1인,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사계절, 1999.

6. J.K. 갈브레이스, 김은우 역, 불확실성의 시대, 동아문예, 1987.

7. 정진일, 철학, 형설출판사, 19992.


<논평>

선생님의 주장과 같이 저도 교직을 성직, 전문직, 노동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교직을 "배타적 독점"의 성격을 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비교하는 논의를 가장 싫어합니다. 교사는 전인을 육성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공자가 군자불기라는 말을 했듯이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배타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전인을 육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교직은 훌륭한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의 교육을 이수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구교대 정재걸 교수 교육사철학전공 )
이번에 올린 교직관에 관한 글은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있게 참 잘 썼네.
자신의 의견 개진에서도 어느 정도 타당한 근거를 들며 논리적으로 서술하려는 자세도 좋았고---.
그런데 교사가 '전문가'인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나와 견해가 달라서 붓을 들었네. 모학자의 전문가의 특성 8가지를 들어서 조목조목 따져드는 논리전개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데 그 전문가관이 어떤 관점에서 나왔는가, 얼마큼 타당한 것인가도 따져봐야겠지만, 교사의 다양한 양상을 하나로 획일화해서 교사일반론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칫 관념론에 흐르기 쉽다는 우려도 있지.
생각해보게 유,초,중,고등교사마다 양상이 다르고, 동서문화의 격차에 따른 교사들 양상이 같을 수 없는데 이를 몰아서 일반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쉬운일이겠는가.
김선생과 나는 초등교사 출신이니 초등교사라는 제한을 두고서 교사관을 생각해보기로 하세. 김선생도 이야기했듯이 중등교사와 달리 초등교사는 모든 교과를 다 가르치는 사람이니 전공이 따로 없고 따라서 전문가도 아니다고 남들도, 본인들도 생각하기 쉽지. 그러나 학문의 체계성과 전공성을 떠나 교육대상인 아동의 특성에 더 가치 비중을 두는 현대 교육의 패러다임 속에서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교육대상인 학동기 아동의 특성에 기준해볼때 그 또래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과 내용을 다년간 연찬한 사람이란 점에서 분명히 전문가이지.
또, 어떤 사물을 볼때 보는 사람의 위치, 자세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듯이 똑같은 교사를 놓고 볼때도 보는이에 따라 다양할 수도 있지.
난 9년간 초등교사를 하고, 6년간 중등교사, 그리고 14년째 대학교수를 하면서 돌아볼때 초등교사는 분명 전문가라고 생각하네. 전문가로서의 긍지와 사명의식 속에서 계속 더 연찬할 의무도 있고---.
좋은 글을 보내주어서 고맙네 (한국교원대 신헌재 교수 국어교육 전공)

90학번 김상수, 날 기억하나 모르겠군. 나는 대충 기억이 나는데. 글을 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글을 많이 올리는 것 같던데....

교직관에 관련된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추가하면, 교직이 성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서양에서는 중세, 즉 이 때 교사 역할을 하던 사람은 말 그대로 성직자들 이었기 때문에, 교직을 성직으로 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교의 영향하에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즉, 도덕적,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타났다. 즉, 전문적인 교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러라도, 소위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은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문직관.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완전한 의미에서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다르지만(지배집단의 경우). 영어로 이야기하면 semiprofession 또는 emerging profession이라고 불린다. 즉, 완전한 의미에서 전문직이 아닌 준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전문직의 기준으로 자율성, 전문 단체를 통한 자격 기준등에 대한 통제, 전문 기술,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교사들은 이러한 대표적인 4가지 기준의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직도 아니다.

그러나 교직은 반드시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충 대강 교육대학원 다니지 말고 제대로 노력해서 다니고............. 등등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배 박종필 (미국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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