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우 외(2003). 『교육과정이론』. 교육과학사.
pp.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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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은 1949년에 나온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 (Basic Principles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라는 제목으로 된 조그마한 책자에 제시되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당시의 교육과정에 관한 논의를 종합하여 교육과정의 ‘고전 모형’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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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교육과정 기본 모형을 제시하였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문 분야로서의 교육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일러의 모형을 공부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교육과정’이라는 제목이 붙은 교육과정 분야의 교과서는 거의 예외없이 타일러의 모형을 유일 절대적인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모형은 너무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 그 책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소개하는 그 모형이 원래 타일러의 그 책에서 나온 것임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은 채, 그것을 마치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이른바 교육과정의 ‘고전 모형’인 것처럼 소개한다.
타일러의 그 책에 제시된 바에 의하면,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는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타일러는 그 기본 요소들을 네 개의 질문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1) 학교는 어떤 교육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2)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교육경험이 제공될 수 있는가, 3) 이 교육경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4) 위의 목표가 달성되었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질문으로 표현되는 요소들은 교육과정의 일반적인 용어로는 1) 교육목표의 설정, 2) 학습경험의 선정, 3) 학습경험의 조직, 그리고 4) 평가로 불린다. 그리하여 타일러의 모형에 의하면, 교육과정은 교육목표의 설정에서 시작하여 학습경험의 선정과 조직을 거쳐 평가에 이르고 평가의 결과가 다시 다음의 교육목표 설정으로 이어지는, 그 네 요소 사이의 순환과정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학문분야로 탐구한다는 것은 이 네 가지 요소로 불리는 일이 각각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그 일을 원만하게 해내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타일러의 그 조그마한 책은 그 네 가지 요소를 하나씩 설명하면서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조사해서 알아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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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나열하고 있다.
타일러의 모형에 들어 있는 그 네 가지 요소가 각각 어떤 것인가를 자세하게 알아 볼 필요가 없이 위의 설명만으로도, 그것이 어째서 교육과정의 유일 절대적인 모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교육과정을 그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얼른 생각해 보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 또는 더 평범한 용어로, 교과 ―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 를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에는 거의 예외없이 타일러의 모형에 나타나 있는 그런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교과를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에도, 다른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또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 일을 할 때에는 이 목표가 먼저 분명히 결정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며, 그것을 하고 난 뒤에는 목표가 어느 정도로 달성되었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비추어 다음 목표를 결정해야 한다. 교과를 가르치는 일, 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을 이것과 다르게 규정할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타일러의 모형에 관해서는 한두 가지 불가사의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만약 타일러의 모형이 그토록 ‘일반적인’ 모형이라면, 그것이 드러내려고 하는 교육과정 모형은 교과가 가르쳐지는 경우, 또는 ‘교육과정 운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들어맞는다고 보아야 한다.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불리는 그 일은 줄잡아도 서양의 경우에는 희랍시대부터 그리고 동양의 경우에는 공자 이래로 끊임없이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일러의 모형이 제시된 것은 1949년이다. 역사상 그토록 오랫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이며 그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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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인데도 타일러가 제시한 것과 같은 ‘종합적 교육과정 모형’이 역사상 그토록 늦게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물론, 타일러 자신이나 그의 모형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모형은 타일러 개인의 독자적인 창안이 아니라 역사상 교육을 하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을 하나의 ‘모형’으로 정립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 중의 아무도 그런 모형을 제시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이 그토록 유일 절대적인 모형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 중의 누군가는 그 모형을 생각해내고 발설했을 법한데도 유독 타일러가 그것을 제시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그런데도 타일러의 그 모형은 제시되자마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서 교육과정에 관한 사고를 지배하였다. 교육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아무도 제시한 일이 없는 그 모형이 그토록 광범위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또한 타일러의 모형을 둘러싼 불가사의이다. (타일러의 그 작은 책자는 그의 강의 개요를 약간 손질하여 내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타일러의 모형을 들여다 볼 때 당장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모형의 네 가지 요소를 표현하는 질문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타일러 자신의 질문을 보면, 비록 어휘는 다르지만, 그 네 가지 요소는 결국 교육목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학습경험의 선정과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실제적’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일러의 모형은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모두 ‘앞으로 해야 할 일’로 보고, 학문적 탐구분야로서의 교육과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일을 원만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들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타일러의 모형이 교육과정의 유일 타당한 모형으로 간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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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형에 의하여 규정되는 교육과정 연구의 성격 또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교육을 해 온 많은 사람들은 타일러의 모형에 나타난 그 일을 해 왔는가? 또는 반대편에서 말하여, 타일러의 모형은 이때까지 사람들이 해 온 교육을 실지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럴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은 교과를 가르치는 일도, 예컨대 상품 제조회사가 제품을 만드는 일이나 상품 판매회사가 제품을 파는 일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무슨 일인가를 하는 활동, 즉 실제적 활동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적 활동을 할 때에는 상품의 제조나 판매의 경우가 그렇듯이 무슨 제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팔아야 한다는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슨 수단을 강구한다든가, 그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가를 ‘평가’하는 일이 순차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은 흔히 목표-수단-실행-평가(OMOE, Objectives-Means-Operation-Evaluation)로 표현되는 실제적 활동의 일반적 모형을 그대로 교육과정에 적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과를 가르치는 일도 결국 실제적 활동의 한 가지라고 생각해 보면, 이때까지 교과를 가르친 사람들은 누구나 타일러의 모형을 따르고 있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로,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 실제적 활동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실제적 활동에 전형적으로 적용되는 모형(즉, OMOE)으로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실제적 활동에도 그것이 다루는 내용에 따라 그 성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교과는 그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이 ‘지식’으로 되어 있으며, 지식을 전수하는 일은 예컨대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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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있을 수 있다. 교육과정 모형이 참으로 ‘교육과정’의 모형이 되려면 지식과 그 밖의 실제적 활동에서 달성하려고 하는 목표 사이에 과연 아무런 차이가 없는가에 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로, 타일러의 모형은 역사상 교육을 해 온 사람들이 실지로 어떤 일을 해 왔으며, 무슨 생각으로 그 일을 해 왔는가를 기술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처방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타일러의 관점에서 보면, 이때까지 교과를 가르친 사람들은 그가 제시하는 모형을 따랐다기보다는 오히려 따르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만큼 그 일을 잘못했거나 적어도 충분히 잘 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이때까지 사람들이 타일러의 모형이 처방하는 대로 교과를 가르쳐 왔다면 애당초 그 모형을 정립하거나 제시하는 일이 의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일러의 모형은, 어느 편인가 하면, 이때까지 있었던 교육을 깡그리 무효화하고 거의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올바르고 효과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장차 이러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이때까지의 교육은 그야말로 깡그리 무효화되어야 할 정도로 잘못되었는가? 물론, 어느 시대의 교육이든지 결함이 없는 교육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그 결함이 반드시 타일러의 처방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가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가령 ‘교육목표의 설정’이라는 요소에 관하여 타일러가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자.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데는 그것을 도출해낼 수 있는 ‘원천’이 필요하다. 타일러는 그 원천으로서 1)학습자에 관한 사실, 2)사회에 관한 사실, 3)교과 전문가의 견해, 4)철학, 5)학습심리의 다섯 가지를 들고 각각의 원천에 관하여 무엇을 어떻게 알아보아야 하며 그것이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데에 어떤 시사를 주는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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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학습자에 관해서는 학습자의 필요와 흥미를 알아보아야 하며, 사회에 관해서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인의 활동과 생활 조건, 그들의 가치관 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교과 전문가의 견해’가 무엇을 뜻하는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의 철학과 학습심리는 앞의 세 가지 원천에서 도출되는 목표가 바람직한가, 그리고 그것은 학습자의 성장이나 발달에 관한 심리학의 원리에 비추어 타당한가를 검토하는 데에 필요하다.
교육목표에 관한 이런 종류의 발언은, 교과는 학습자와 사회의 필요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우리 귀에 익숙한 것만큼이나 자명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이 있다. 학습자의 필요와 흥미가 다양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학습자의 필요와 사회의 필요 사이에 마찰이 있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이 경우에는 어느 원천을 따라야 하는가? 물론, 그 대답은 그 다음의 교과 전문가의 견해나 철학에 있다. 그러나 교과 전문가 사이나 철학 사이, 또는 교과 전문가의 견해와 철학의 입장 사이의 차이는 누가 조정하는가?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교육목표 설정에 관한 타일러의 처방은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듣기에 그럴 듯한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교육목표’ ―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건 간에 ― 라는 것이 참으로 타일러가 말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면, 아무도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타일러의 그 제안이 원칙상 실천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 타일러가 말하는 바와 같이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면, 그것이 설정되기 전에는 교육 ― 즉, 제대로 된 교육 ― 을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타일러가 말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교육목표가 설정될 때까지 연기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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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의 교육목표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과를 가르쳐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대하여, 실지로 시행된 교육목표는 어느 것이든지 타일러의 주장에 들어맞는다고 말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타일러의 그 주장이 아무런 처방적 의미가 없는 사후 요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교육목표의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육을 해 왔다는 바로 그 점에서 그릇된 교육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은 교육과정의 ‘일반적’ 모형으로서,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것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그 모형이 들어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타일러의 모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교육과정 운영은 ‘실제적’ 활동이요 따라서 실제적 활동 일반에 적용되는 모형은 교육과정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타일러의 모형에 의하여 규정되는 교육과정에 이론적 이해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가? 이것은 타일러의 모형에 비추어 볼 때 교육과정을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타일러의 모형에 의하면 교육과정은 이론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적 작업의 대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타일러의 모형에는 ‘교육과정 연구’라는 말이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연구는 실제적 작업에 필요한 기초 조사에 지나지 않으며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현상 그 자체의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타일러의 모형에서도 ‘이론적 이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앞의 교육목표 설정에서 보았듯이 교육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학습자와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아보아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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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결국은 학습자와 사회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이론적 이해’는 실제적 작업과 직접 연결된 것이며, 따라서 실제적 작업에 연결되지 않는 한 하등의 의의를 가질 수 없는 ‘이해’이다. 그러나 이해는 예컨대 형식도야이론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의 ‘이해’가 아니다. 형식도야이론에서는 비록 소박하고 원시적인 수준에서나마 교과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것을 배움으로써 사람은 어떤 상태로 되는가 하는 이론적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내어 놓고 있다. 가령 교과의 의미 하나만 두고 생각해 보더라도, 이론적 이해라는 것은 성격상 끝이 없는 것이어서 한 단계의 이해는 다시 새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키면서 무한히 확장되고 심화된다. 타일러의 모형에는 이런 의미에서의 이론적 이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교육목표 설정이라는 요소가 그렇거늘 하물며 학습경험의 선정이나 조직 또는 평가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요소들은 그 용어가 이미 시사하는 바와 같이 실제적 작업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이 요소들에 있어서는 ‘학습자나 사회에 관하여 알아보는 일’조차도 필요하지 않다. 학습경험을 선정하고 조직해 본 사람, 그리고 평가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그러한 작업을 할 때 모종의 이론적 이해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 무엇인가 의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론적 이해가 아닌 실제적 식견이나 판단일 것이다. 실제적 식견도 결국은 이론적 이해에서 나온다는 말은 아마 맞는 말이겠지만, 그 양자 사이에는 ‘실제를 위한 이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한때 미국의 어떤 학자가 ‘교육과정의 언어는 실제적 언어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써서 상당히 널리 호응을 받은 것은 아마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교육과정의 언어’라는 것은 교육과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또는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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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교육과정에는 ‘이론’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으며 흔히 ‘교육과정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지로는 요령이나 수칙에 불과한 것에다가 ‘이론’이라는 영광스러운 단어를 억지로 뒤집어 씌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이 학자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면, 학문적 탐구분야로서의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비유컨대 컴퓨터 사용 설명서(manual)와 같은 내용을 공부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 학자에게는 불행한 일일지 모르지만, 교육과정에는 방대하고 무한한 이론적 이해의 여지가 있다. 그 학자의 말은 오직 타일러의 교육과정 모형을 유일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맞는 말이 된다. 사실상 그의 그러한 주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타일러의 모형을 아무런 비판적 성찰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일러의 모형이 이룩한 공헌을 들자면 그것은 교육목표와 평가를 밀접하게 관련지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공헌’이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말뜻 그대로인가 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 이후 그 모형의 발전은 주로 교육목표와 평가의 관련에서 이루어졌다. ‘교육목표의 설정’이라는 요소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원천’이 아니라, 타일러의 용어로 교육목표의 ‘표현 방식’에 있다. 타일러에 의하면, 교육목표는 예컨대 민주시민의 양성과 같은 관념적인 어휘로 표현될 것이 아니라, 평가의 단계에 와서 학생들이 해야 할 구체적 행동으로 자세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육목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평가의 내용이다.
오늘날 대학의 교육학 관련 교과목 운영에서 ‘교육과정’은, 통상 그것과 별개의 과목으로 취급되어 왔고 또 마땅히 별개의 과목으로 취급되어야 할 ‘교육평가’와 결합되어 ‘교육과정 및 평가’라는 하나의 교과목을 이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학교 교육과정의 운영(즉, 교과를 가르치는 일)과 그 결과를 시험하는 일은 원칙상 별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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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며 따라서 양자는 각각 다른 종류의 탐구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명백히 이질적인 두 개의 분야가 하나의 과목으로 합쳐질 수 있다는 발상은, 비록 그 조치가 대학 교과목 운영의 편의상 불가피하게 취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교육과정의 학문적 성격에 관한 통념을 반영한다. 오늘날 ‘시험’이라는, 하등 유치하거나 저급하다고 말할 이유가 없는 단어가 거의 완전히 ‘평가’라는 단어로 대치되고 있는 것은, 시험과는 달리 평가는 ‘목표의 달성 정도를 평가한다’는 표현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목표와 직접 관련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타일러의 모형이 교육과정에 관한 사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교육과정과 교육평가가 교과목 운영의 편의에 의해서만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도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