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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자료

장상호. 학문공동체의 지적 풍토에 관한 소고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6.11.16|조회수354 목록 댓글 0

장상호(1993). 학문공동체의 지적 풍토에 관한 소고. 『서울대학교 사대논총』, 47, 25-59.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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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師大論叢 제 47輯 (1993. 12. 31)


學問共同體의 知的 風土에 관한 小考


張 相 浩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학문 역시 그 사회적인 조건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특수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데, 학문의 편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집단이라면 아마도 학문공동체(academic community)일 것이다. 이것은 학문을 위해서 학자들이 특별히 만든 집단이기 때문에 여타의 집단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다. 예컨대, 지적인 탐구의 작업은 결국 개인적인 창조활동이며 항상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립된 판단을 요구한다. 이 점에서 학자들은 집단규율이나 집단에의 충성 같은 것으로 묶여 있는 세속적인 집단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을 학자들이 어떤 종류의 사회적인 영향도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혹은 사회적인 세력은 항상 학문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인 생활을 하기 마련이며, 집단은 그 특징에 따라 우리의 삶을 고양해주거나 저해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학문공동체란 학문생활을 촉진하고 보장해 주는 삶의 터전을 그 구성원에게 마련해 주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된다. 역사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학문의 목적과 생각을 가진 소수의 동지들이 집단의 기능을 이용하여 그들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에서 창설한 제반 학문공동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모여서 그들의 학문활동을 촉진하거나 지원하는 독자적인 규범과 문화를 만들고 서로 친교하고 교류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집단을 창설하는 최초의 구성원으로부터 보다는 그들이 출생하기 이전에 창설되어 이미 상당한 역사를 가진 집단에 소속함으로써 학문공동체에 참여한다.

  학자와 그들이 소속한 학문공동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자들이 최초에 그들의 목적과 의도에 맞도록 집단을 창설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후자는 전자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형성된 집단은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그 나름의 조직, 활동, 기준, 그리고 구성원의 충원과 교육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성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新參者는 이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견습함으로써 그 집단원리를 받아들이고 학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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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일원으로서 대열에 참여한다. 그 특성에 따라 거기에서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의 특성도 달라질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학문공동체는 그 규모와 종류, 전통의 면에서 다양하기 때문에 한 개인은 그 선택에서 현명함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범위에서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선택지의 범위에서 비롯할 수도 있고 혹은 그 선택을 행사하는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어떤 특정의 학문공동체에 소속하여 일생동안 그 집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강요에 의해서 학문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경우는 상정하기 어렵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은 단지 집단의 노예로서보다는 그 나름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집단의 형성에 다소간 참여하는 여지를 언제나 가지고 있다. 학자는 사회 속에서 활동하지만 그 존재양태를 그 사회 속에 전적으로 맡겨 놓지는 않는다. 따라서 학문적인 업적이 오로지 집단의 속성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은 극히 과장되고 편파된 생각이다. 같은 학문공동체에 소속한 학자가 서로 다른 학문적인 업적을 보이는 것은 집단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조건이 동일하다면 공동체의 지적인 풍토에 따라 그 구성원의 학문적인 업적을 달라질 것이다. 그 풍토가 옳다면 거기에서 위대한 학문의 결실이 맺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학자와 특정한 학문공동체가 각각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학문공동체와 그것을 둘러싼 좀더 큰 의미의 일반적인 환경 간에도 모종의 영향관계를 가질 것이다. 다양한 명칭의 학단, 학파, 학회, 학과가 우리 사회 안에 있다. 이들은 자체의 自律的인 傳統을 다소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자체적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은 그 방법, 가치, 축적된 지식 등을 내포하는 그 자체의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 자율성의 폭과 행사는 그것이 처한 역사적인 시기, 그 시기 중의 다른 사회적인 복합체와 맺는 밀접한 관계 등에 의해서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학문도 시대의 산물로서 그 시대적 조건과 상황을 곧바로 초월하기는 어렵다. 학문은 원래 고대 희랍에서 발원해서 오늘날 그것은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서양의 역사에서 시대에 따라 학문의 번성함이 달랐듯이 지리적으로 봐서 학문의 역사적 기반이 약한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그 사회와 그 사회를 둘러싼 여건에 의해서 학문이 어렵게 될 것이다. 특정한 학문공동체의 전통과 그들이 생산해 내는 지식은 당대의 문화적인 자원, 사회구조, 그리고 그들이 위치한 좀더 큰 범위의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공동체를 전적으로 그 시대적 상황의 종속물로만 보는 발상은 위험하다. 예컨대,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상부구조로서의 학문이 사회경제체제에 예속되는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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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유물사관적인 지식사회학을 믿을 필요는 없다. 어려운 시기에 훌륭한 학문공동체가 형성되고 그 시대를 전향적으로 이끌어 나간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학문공동체는 그들에게 허용되는 그 나름의 자율성을 가지고 다른 삶의 과정과 전체 사회의 변화에 기여한다. 같은 시대적인 상황에서도 그 자율성의 범위는 학문공동체에 따라 달랐고 그만큼 그 공동체 나름의 노력과 열성이 그 자율성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사실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를 개관할 때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학문의 중심지가 시대별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학자의 이동도 포함된다. 自然科學의 경우를 보자(Mason, 1962). 학문의 발원지가 희랍이라는 사실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중심지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예컨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희랍 과학의 중심지는 아테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다. 아테네는 그 전성기를 지난 후에 스파르타에게 패배당했고 마케도니아에 격파당하면서 이전의 활기를 잃었다. 학문의 꽃을 피웠던 희랍의 최후의 철학자인 Aristoteles는 마케도니아인이었으며, 그의 제자였던 Alexander 대왕은 아버지의 정복정책을 계승하여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거기에 알렉산드리아시를 세웠다. 정치적인 정복자의 뒤에는 학자들이 뒤따랐다. Alexander는 출정 때에 언제나 공학자, 지리학자, 측량기사를 대동하였으며 박물학이나 지리학에 관한 막대한 양의 지식을 수립하였다. 이로 인해서 과학의 새로운 경험적, 실제적 경향이 알렉산드리아시에 다시 싹을 내리게 된다. 이 지역에서 학문적인 전통이 재건되고 그 풍토위에서 정밀천문학, 의학, 생물학 등이 번창할 수 있게 되었다. 서유럽이 중세의 암흑기에 빠져 있을 때 그곳에 설립된 도서관과 연구소가 과학의 맥을 잇고 그 활성화에 공헌했다.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과학의 중심지는 북유럽으로 옮겨진다. 그 이동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무역의 확장과 항해상의 새로운 발견과 관련지을 수 있다. 16세기 및 17세기 초에 과학발전을 위해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북부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그 후 17세기 동안 과학의 중심지는 이곳에서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이익을 본 대서양에 가까운 지역, 다시 말해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남부 영국으로 옮아갔다. 18세기를 통해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자연철학자는 자연과학계의 선두에 서 있었다. 19세기의 초기 수십 년 동안 프랑스는 세계과학계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그들은 그 노력을 계속하지 못했다. 이것은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국가적인 지원상황 및 국내사정이 과학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1850년대에서 60년대가 되자, 영국이 또 다시 과학계의 선두에 선다. 이 선두의 위치는 다시 일반인의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국가적인 과학교육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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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책과 관련된다. 이 기간 동안 영국에서 수많은 아마추어 학회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논의의 맥락에 비추어 유념할 만하다.


  “1812년에는 리버풀 문학과학학회가 설립되었고, 1818년에는 리즈에도 학회가 나타났다. 4년 후에 세필드에도 학회가 구성되었고, 또한 같은 해에 보다 크고 중요한 요크셔 과학학회가 개설되어 요크셔 전체를 관할하게 되었다. 그 후 지방적인 문학과학학회는 10년마다 5개, 10개, 15개 심지어 20개까지 불어나, 세기말까지에는 100개 이상의 학회가 생기고, 주요 도시마다 자체의 과학기관을 갖게 되었다. 이 학회의 대부분은 아마추어 과학자, 공장주, 전문직업인들의 조합이었는데, 그들은 과학지식의 공부와 그 응용에 열성적이었고, 일반적으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경제적 발전과 문화향상에 이바지했다(Manson, 1962; 박성래 역, 1979, pp. 460-461).”


  아마추어적인 학문공동체의 출현은 곧 학문의 순수한 기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지도적인 위치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19세기 말경에는 독일이 이 두 나라를 능가한다. 독일인은 18세기의 공백의 시대를 청산하고 역사발전에 관한 새로운 감각과 이해를 발전시켜 수많은 연구자회의를 창설함과 동시에 과학에 관한 많은 양의 전문잡지를 발간한다. 처음에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적정한 결합과 조화 속에서 추진된 이 운동은 차츰 양대세력이 날카롭게 분열됨으로써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학자들 중에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등장하여 국가사회주의 곧 나치즘을 옹호함으로써 그들의 견해와 근대 과학정신 사이에 근본적인 모순이 생겼고 독일의 과학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국가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사상과 그에 동조하는 군사부면의 과학은 권장되는 한편 그 교의에 어긋나는 이론은 억압되고 배척되었다. 그로 인해서 과학자들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유능한 과학자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그 후 우리 세대가 주지하다시피 미국과 소련의 과학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이전까지는 과학의 후진국으로서 서구라파의 영향 속에 있었다. 그 기원을 비추어 보면 미국과 소련은 그 형성기의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두 가지 다른 과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주의와 경험주의를 따랐고, 소련은 프랑스의 이론적인 경향의 영향을 받았다. 이론 배경 속에서 그들은 세계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20세기의 경쟁하는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과학적인 활력을 얻게 되었다. 미국의 학문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주된 계기로서 우리는 유럽의 가장 위대한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국가사회주의를 피하는 새로운 국가로서 미국을 선택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독일의 이론적인 전통을 가진 일급의 수많은 물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사회학자, 고전학자,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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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해 옴으로써 미국의 학자들은 이제 유럽에 유학할 필요도 없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그들의 세련된 학문의 전통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Bloom, 1987). 한편, 러시아 혁명을 거친 소련은 과학적인 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로 과학자를 양성하여 사상 유례없는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의 학문은 유물변증법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했기 때문에 그에 어긋나는 천문학, 화학, 의학, 심리학, 인류학, 그리고 제반 인문과학 등이 국가적으로 비판받아야 했고 그 만큼 그 분야의 지식은 낙후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문명으로부터 발원하여 번창한 학문은 오늘날 전세계에 파급되고 있다. 이국적인 외래전통과의 만남은 한 전통에서 항상 도전이 된다(Shils, 1981). 수천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전통이 그대로 수용될 리는 없다. 과학은 고대희랍과 르네상스와 같은 역사를 거친 유럽의 특수한 문화적 풍토와 사회적인 조건에서 왕성하게 촉진되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사회에서 서구의 학문은 그 지역의 토착적인 전통에 의해서 수락, 수정, 혹은 배격을 받을 것은 당연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제 민족은 그 스스로도 그것을 발명해 낼 수 있는 조건에 거의 다가와서야 다른 민족의 발명물을 차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서양의 학문이 동양에 전파될 때 그 순수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사실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편의상 서양의 “Science”나  “Wissenschaft”를 동양의 “學問”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지만 그들 간에는 서로 혼동해서는 안될 엄청난 이질성이 있다. 서양학문의 동양에로의 전파는 西勢東漸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일본은 비교적 일찍 서양의 학문을 자발적으로 수용한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그 실제적인 문제라든가 주제의 전통보다는 연구의 기술부문의 전통을 주로 수용하였다. 지금까지 일본이 택한 서구전통의 선택적인 수용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현대교육을 통해 서양의 학문에 접촉하였다. 인도의 성과는 일본의 경우보다 덜하다. 아직도 인도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국내에서 보다는 외국에서 더 높은 학문적인 업적을 보이고 있다. 동양문화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은 서양의 제국주의적인 세력에 굴복하는 방식으로 서양의 학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문화권에 있었던 한국은 주로 일본과 특히 미국을 통해서 서구의 학문을 수용했다. 이처럼 이동하는 학문의 전통과 토착의 동양적인 문화와의 접촉은 어떤 모양으로든 서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서구전통의 확대는 지금으로서는 어떻든 동양의 전통을 약화시키고 있는 형편이며, 이 두 문화가 종적 상대성보다는 횡적 상대성으로서 서로 상대를 부정하지 않는 방식의 조화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세계문화의 다양화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는지가 큰 과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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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학문의 종류에 따라 이질문화에 이식되는 양상이 다를 수 있다. 자연과학의 전통은 여타의 지적인 전통보다 그 전통의 발상지 이외의 사회나 문화 안에서 존립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우선 자연과학은 이미 지적했듯이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보편성을 추구하였고 그 지식을 그들의 고유한 개념과 기호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의 영역을 넘어서서 여타의 지역으로 쉽게 이식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이나 세계관 자체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서서히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없는 이질적인 문화권에 그것을 파급하는 노력은 실패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자연과학도 토착의 문화전통에 깊숙하게 수용되기에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사회과학이나 인문계의 학문전통은 보통 국가단위의 공동체나 문명의 과거에 집착하고, 그 전통의 일부를 형성하는 특별한 업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타국이나 타 문명에 쉽사리 이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서구에서 교육받은 동양의 인문과학도나 사회과학도들에게서 종종 그들이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이론과는 다른 생활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 속에서 이론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서양의 풍토를 반영하는 사상이나 이론들을 그들이 교육받은 대로 단지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실은 과학의 발전이 제반 학문공동체와 그것을 둘러싼 제반 환경, 즉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교육적, 지리적 요인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소산임을 말해 준다. 이미 검토했듯이 학문은 결국 학자들의 창조적인 활동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학문활동은 학자 자신의 개인적인 역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규모의 요인들과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학문의 발전, 학자의 개인적인 창의력, 특정한 학문공동체의 상태, 그리고 여타의 큰 범위의 제반 여건들 사이에 단순하고 어떤 일방적인 인과관계를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학문이라는 실재의 구성에 작용하는지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좀더 긴 시간과 정교로운 개념화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범위의 논의보다는 이 가운에 어떤 제한된 부분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면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이제부터 나는 학자라는 개인과 일반적인 사회적인 환경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그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는 구체적인 학문공동체의 단위에 우리의 관심을 국한시키고 그것이 학문발전의 매개적인 기능을 하는데 요망되는 일반적인 풍토를 주문하는 순서를 택할까 한다.

  학자들이 그들의 학문활동에 적합한 집단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할 때 그 집단의 단위는 우리가 위에서 막연하게 이야기했던 것보다 그 규모면에서 훨씬 작다. 역사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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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거슬러 올라가면 Platon과 그의 제자들이 생활했던 아카데마이아(Academeia), Aristoteles와 그의 제자들이 머물렀던 뤼케이온(Lukeion)에서부터 이미 그런 삶의 단위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중세에는 교회, 대학, 도서관 등이 있었다. 지식인들이 자주 모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들의 사상을 교류하는 비교적 비형식적인 장소도 있다. 17, 18세기에 등장했던 프랑스의 로코코 살롱, 런던의 코피하우스에서 지식인들이 서로 속박 없이 그들의 사상을 교류할 수 있었다(Coser, 1965). 정기적인 회합을 통해서 자기들만의 공통의 관점과 동지적인 공감을 나누는 “클럽”, 그리고 각종 학회도 우리가 관심을 가질 소규모의 학문공동체다. 현대에 이르러 학문은 고도로 분업화되어 각종 硏究所나 大學에 집중되고 있다. 요즘의 대학은 학문분야와 직업교육의 종류가 거의 맞먹는 수많은 학과와 전공으로 분할되어 있다. 그들은 같은 캠퍼스 안에서도 서로간의 교류를 차단하고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학문공동체의 어떤 일반적인 특성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많은 대학총장들(예컨대, Newman, 1852; Flexner, 1930; Hutchins, 1936; Perkins, 1970)이 오래전부터 “진리탐구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오늘날 그런 이념정립의 지도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학은 이제 이념과는 다른 현실의 여건에 의해서 영향받고 있으며 그 여건의 소재는 산업, 군사, 상업 및 기타 직업구조 등 대부분 대학의 통제 밖에 있다. 그래서 California 대학의 총장을 지낸 바 있는 Kerr(1963)는 대학을 “university”라는 용어 대신 “multiversity“라는 造語를 써서 표현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학문공동체가 속한 구체적인 삶의 터전에는 그 구성원이 생활을 통해서 직접 그 집단적인 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복합적인 과정이 학문활동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목하 우리는 만약 그런 특수한 의미의 구체적인 공동체가 그 주된 목표를 진실로 학문활동에 둔다고 할 때 그 사회가 어떤 조건과 속성을 갖추어야 하느냐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

  학문공동체가 최소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자체 내에 학문하기에 적합한 자율의 터전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실천의 문제에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그 원칙에 있어서는 간단하다. 그것은 여타의 세계와 독립을 보장하는 울타리를 마련하고 그 고유한 활동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반 특성, 즉 가치관, 기구, 활동의 규범, 제도, 정신, 풍토 등을 그 내부에 장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과 속성을 떠나 집단이 학문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그 구체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제까지 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M. Polanyi(1959, 1964)는 이상적인 학문공동체의 속성으로서 실재와 진리에 대한 선험적인 의무, 권위의 통제하에서의 개인적인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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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발휘, 공동체의 대인적인 지식과 관련된 권위의 행사 등을 강조하였다. J. bronowski(1965)는 獨立性, 創造性, 不同意, 및 寬容性을 지적한 바 있다. R. K. Merton(1973)은 지식사회학적인 관점에서 普遍性, 共有性, 無私公正性, 조직화된 懷疑主意라는 4가지 제도적인 특징을 불가결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여타의 학자들(Barber, 1952; Storer, 1966, Mitroff, 1974)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제안들에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Merton은 명제의 진위가 그 주장자의 개인적인 속성에 의존해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Polanyi는 과학의 인격적인 특성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Barber는 합리성을 얻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중립성이 요망되는 것으로 강조하는 한편, Mitroff는 학문활동에서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불가결의 요소로 본다. 나는 이 글에서 그 속성들을 낱낱이 열거하기보다는 6가지 새로운 범주, 즉 진리에 대한 열정, 비학문적인 요소의 종속성, 창조적인 분위기, 자유로운 정보교환, 치열한 지적 경합, 교육의 활성화로 나누어 이제부터 나 나름대로 학문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특징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眞理에 대한 熱情


  어느 집단에나 그 집단을 지배하는 주도적인 목표와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학문공동체가 추구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진리다. 학자의 주된 과제는 진리를 찾고 밝혀내는 것이다. 학문공동체의 구성원은 우선 이 세상에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가 있다는 확신과 우리가 가진 현존의 어떤 신념체계가 그 진리를 대표하고 있다는 확신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학자는 한 순간 그의 발견이 진리에 도달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나 긴 안목에서 볼 때 그 확신은 항상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우리는 진리의 실재를 부정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학문을 할 때 진리에 도달한다는 당돌한 목표보다는 진리에 접근한다는 겸손한 목표를 가질 수 있으며, 그 접근의 상대적인 대비에서 우리는 실제로 그 진리와 접촉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가능한 진리체험은 현존하는 지식체계를 부정하고 더 나은 지식체계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얻어진다. 이 점에서 Merton이 말한 “체계적인 회의”라는 말이 오히려 진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현존하는 지식은 항상 얼마만큼의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발견하고 줄여 나가는 것이 우리가 정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진리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진리에 대한 확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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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현존하는 지식에 대한 체계적인 회의에 의해서 공고화된다.

  진리는 일종의 價値이다. 또한 가치는 일종의 감정이다. 따라서 정서적인 중립성을 학문적인 탐구의 선행조건으로 보는 입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진리에 대한 열정을 함께 하지 않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학문공동체의 모든 성원은 진리라는 특수한 가치를 사랑하고, 그것에 헌신할 강한 책임감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도덕적인 의무나 사회적인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리의 탐구가 남의 눈치나 인정, 혹은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그 순수성을 잃는다. 가치란 바로 자발적인 헌신과 굴복인 것이다. 진리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동안 획득되는 세련된 욕구다. 따라서 그 가치는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공동체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그 세련된 욕구를 발전시키는 풍토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런 가치관을 이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련된 열정만이 학문을 순수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공동체, 다시 말하면 학문의 그 고유한 가치인 진리의 규제원리에 복종하는 집단은 부귀공명의 세속적인 야심이나 학문 이외의 수도계적인 가치를 초월해서 그 고유한 활동에 충실하게 몰입할 수 있다. 진리는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대가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고귀한 가치다.

  진리와 진실된 삶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 점에서 Bronowski(1956)는 이른바 “진리의 습관(the habit of truth)”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학문공동체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밀한 것, 그리고 우리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접촉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솔직히 드러내는 삶의 태도를 가진 구성원이 그런 생활태도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안락을 희생시키면서도 진실을 소리높이 외치는 용기, 무자비하면서도 우정어린 솔직성, 주위의 기만과 허위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윤색하기를 거부하는 담백함 등이 구성원에게 체질화되어서 이 체질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사회라면 가히 그것은 가장 모범적인 학문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속적인 사회는 대개 그 집단의 이익을 내세워 그 진리의 습관을 억제하기를 강요한다. “애국”, “애사”, “도덕” 등 그럴듯한 말을 내세워 우리의 눈과 귀가 외면을 강요받고 있는 비밀스러움과 어두움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表裏不同은 처세의 비결이 아닌가. 학문공동체는 그런 世俗의 집단적인 특성을 초월할 수 있는 특수한 내규를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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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학문공동체가 불편부당한 입장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어떤 신념체계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인종, 종교, 사회적인 계층을 고려해야 수락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不偏不黨性을 말한다면 그 기대는 백번 옳다. Merton이 지적한 “보편성”의 기준도 그런 취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 불편부당성이 너무 확장적으로 해석되어 학문공동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모든 집단의 어느 편에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의 태도를 취하여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사실의 면에서 뿐만 아니라 당위의 면에서 옳은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학문은 편파적일 수 있다. 학문계가 진리를 최고의 가치로 표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타가치를 표방하는 세계에서 편파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학문공동체는 진리의 기준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정하는 법정과 같다. 법원의 판정은 법을 어긴 사람이나 집단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듯이 학문의 판정은 학문 외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학문의 판정은 가끔 상식의 세계에 결정적인 충격을 주면서 대중의 지적인 평화를 교란시킬 수도 있고, 진실을 은폐하거나 진리를 다소나마 억압하면서라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선의의 세력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학문공동체는 때로는 진리의 면에서 우군보다는 적의 편을 들 수도 있다. 때로는 도덕적으로 금지된 것을 의욕적으로 탐구할 수도 있다. 그만큼 학문공동체의 진리추구는 자체의 활동의 편을 들고 있으며, 그 태도는 진리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집단에게 그만큼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학문공동체는 진리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본질적인 속성에 충실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에서 타세계의 것과는 색다른 공헌을 할 수 있게 된다. 학문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진리의 내규를 따름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생활 속에서 진리의 가치를 대변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대외적인 측면을 말할 때 진리는 하나의 가치로서가 아니라 긴 역사적인 투쟁을 통해 쟁취한 구체적인 전리품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 뒤돌아 보면 진리를 위한 투쟁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 기념비적인 사례로서 우리는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을 기억한다(황의방 역, 1983). 유태인 출신의 한 군인이 기밀누설이라는 판결을 받고 유형되었을 때 무수한 지식인들이 그 진실을 규명하는 운동에 가담하여 결국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한 이 사건은, 얼핏 보기에는 하나의 단순한 역사적인 에피소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학문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귀중한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이로써 지식인들이 수년간 진실규명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서로 동맹할 수 있었으며 설사 정치권력, 사회질서라는 차원에서 국가에 유해하다고 하더라도 진리와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귀중한 역사적인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 지식인들은 생리적으로 허위를 들추어내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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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서 왔다. 그들은 진실을 거부하는 전체주의적인 체계에 대해서 때로는 그들의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진리를 위해 저항하였다(Wilkinson, 1981). 그들은 권력이나 압력의 강제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리를 은폐하려는 검열관과 지식인들 사이의 숨바꼭질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온갖 허위와 부조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단지 집단 내부의 정신적인 은둔의 도구로 삼고 대외적으로 침묵하는 학문공동체는 짠맛이 없는 소금처럼 이미 그 존재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2. 非學問的인 要素의 從屬性


  학문공동체는 학문만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구체적인 학문공동체를 들여다 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온갖 삶의 다양한 측면이 복합되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 생물적인 활동,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과정이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어느 경우나 복합적이며, 학문공동체는 그런 제반 삶의 요소와 더불어 고려되어야만 현실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특정한 학문공동체내에서 학문활동과 그 여타의 과정은 어떤 관계양상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가? 이에 대한 해답은 두고두고 연구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지만 그들이 한 폭의 잘 그려진 그림에서 前景과 背景의 관계와 같은 상태로 공존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우리의 욕구나 가치는 전체적인 생활에서 가능하면 양립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調和論

은 언제나 무난하지만 현실의 가장 바람직한 일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제반 생활의 요소는 조화보다는 갈등을 일으킨다. 여기서 학문공동체내에서 학문활동과 여타의 비학문활동 간에 양립이 불가능한 경우 어느 것이 수단이고 목적이냐 하는 가치선택의 문제가 제기된다. 갈등상황에서 학문을 목적으로 볼 것인가, 수단으로 볼 것인가의 여부가 학문활동 자체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온다. 만약 학문이 어떤 다른 것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 후자의 목적이 달성될 때 학문의 가치는 중단된다. 혹은 학문이라는 수단보다 그 목적을 위한 더 나은 수단이 등장할 때 학문의 지위는 격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학문공동체의 조건으로서 이 목적-수단 간의 관계에 대한 별도의 주문을 해야 한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적어도 이 특수한 사회에서는 학문활동이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하고 여타의 과정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학문은 예컨대, 그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치적인 조건, 풍부한 연구비와 연구시설을 보장하는 경제적인 조건, 그리고 그 활동을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구와 제도를 가진 사회적인 조건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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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나 학문을 위한 부차적인 지원체계 이상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들이 그 수단의 범위를 넘어서서 학문활동보다 더 우선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 학문공동체는 그 자체의 본질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학문 외적인 제반 조건은 학문활동이라는 전경을 보조하는 배경으로서 그 존재성은 시인하되 그들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인간사는 대부분 해답은 쉬우나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천은 어렵기 때문에 도전의 매력을 갖는다. 학문활동은 모든 학문 외적인 동기에서 가능한 벗어나 자유롭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이런 활동은 우리가 말해온 世俗的인 活動과 다르고, 따라서 세속적인 방식으로 성공할 수도 없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학문공동체는 그 구성원이 비록 세속계에 살면서도 그 세속적인 제약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학문적인 가능성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정치적인 세력, 경제적인 부, 사회적인 지위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때로는 그것의 박탈이 우리의 생활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여 좀더 깊은 실재를 포착하는 이론을 추구하는 학자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다만 학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세속의 것들을 학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의해서 이용당해서는 학자의 본분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과거에는 연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아마추어 과학자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다. 예컨대 Kepler는 점성술로써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천문학을 연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활이 전문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가 대규모화됨에 따라 더 이상 그 전통이 유지될 수 없다. 말하자면 학자는 이제 연구비는 물론 전문인으로서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조건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이익을 노리는 기업체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세력 등 학문 외적인 체제의 맥락 속에서 작업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체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주변에 학문활동을 표방하는 무수한 단체들이 있다. 외부사람들은 그 명분대로 그 속에서 숭고한 인격체만 모여서 모종의 학문내재적인 활동에 충실할 것으로 막연하게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에 그 기대를 배반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드러남으로써 세인의 학문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대학입시부정사건, 학회장선출에 따른 비리, 표절시비, 수입과 명성만을 쫓는 학자들의 속물성 등이 심심찮게 폭로되면서 일반대중은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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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그 이면에서 다양한 학문 외적인 목적을 추구해 온 집단이라는 실상을 늦게나마 직시하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학문발전을 우해 퍽 다행한 일로 여겨진다. 첫째, 상처의 고름은 터져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것은 내부로 곪아 들어가는 상처보다는 위험하지 않다. 그 동안 학회 내부의 비학문적인 실상과 대중의 인식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제 대중은 많은 학자들이 시정의 잡꾼, 사기꾼들이 무색할 만큼 세속적인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그런 실상이 사회전체에게 비정상적인 것으로 비친 것이 다행스럽다. 학문계 내부에서는 거의 그런 일들이 정상적인 일로 타성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의 학자나마 그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또 대중이 그것을 추잡하게 본다면 그래도 발전의 싹은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학문공동체는 학문활동은 소홀히 하고 대신 세속적인 출세를 우선시하는 사이비 학자들을 배제하는 숙정작업을 추진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학문공동체의 울타리 내에서 학문 외적인 관심이 지배력을 가질 때 어떤 모양의 타락상이 전개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로 하자.

  규모가 큰 학문공동체의 경우 행정과 같은 정치적인 지원체제가 필요하다. 학문의 자유, 즉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는 조건은 학문공동체가 그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 학문의 자율성도 공동체 내부의 대외적인 결속의 결과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인 과정이 수단이나 지원체제로서가 아니라 그 단위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관심이나 세력으로 뒤바뀔 때, 그 학문공동체는 타락과 부패의 길을 밟게 된다. 국내의 학회나 대학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지도자 선출을 두고 헤게모니 쟁탈이 일어나는 양상은 그 좋은 예다. 연구보다는 세속적인 지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학회장이나 총장 등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 다음에는 학문과 무관한 정치적인 파벌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선거의 論功行賞의 방식으로 족벌체제가 형성된다. 그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그들이 지배하는 각종행사에서 연구업적이 뛰어난 회원은 소외된다. 정치지향적인 사람들은 쉽게 공동체 외부의 정치세력과 결탁해서 그들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다음 단계로, 학문 외적인 주문과 지시가 아무 저항도 없이 내부에 들어오고 이제 정치적인 입장과 학문은 공모한다. 지식이 권력의 추구에 이용될 때 그 본질을 잃고 필연적으로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타락은 대개 진리란 단순히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과 짝을 맞추어 더욱 가속화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학문적인 지식과 이데올로기의 경계는 모호하게 된다. 특정한 사상이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채택되거나 배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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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치적인 일치와 세력을 위한 학문의 조작이 가져오는 이런 폐해의 역사적인 사례는 히틀러 치하에서의 독일, 사회계급의 개념에 바탕을 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Bronowski, 1965, 1977; Polanyi, 1964).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사례를 항상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오늘날의 연구는 재정적인 지원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용어로 말하면 학문공동체 내에는 일정한 정기 간행물이나 서적, 연구조성비나 급료, 수업이나 연구에 사용되는 시설과 건물이라는 물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무시하고 훌륭한 이론이나 사상이 생산될 수 있기를 오늘날 기대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재정지원은 이제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치전도, 즉 진리의 추구를 물질적인 풍요의 수단으로 삼을 때 발생한다. 우리의 생활에서 물질을 창출하고 배분하는 경제활동은 필수적이다. 경제활동은 유용과 무용을 따져서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피하는 경제의 원칙을 준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의 성공은 경제적인 가치와는 다른 가치에 의해서 평가되며 또한 경제활동과는 다른 활동으로 그 가치를 실현시킨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세계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돈벌이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어떤 학문을 숭상하지 않거나 싫어할 필요는 없으나 돈벌이 때문에 그 학문을 숭상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적어도 학문을 목적으로 생활하는 학문공동체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생활태도다. 비록 일반 사회가 拜金主義에 물들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학문공동체만큼은 탈속의 정신적인 삶의 가치를 옹호하는 세력이 되어야 하고 바로 그런 풍토에서만 학문이 지속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은 필요한 자금의 조달과 학문의 활동을 제도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연구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제공하고 연구자는 필요에 따라 그 자금을 인출해서 쓰면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금제공자는 특별한 주문을 하게 되고 연구자는 진리의 탐구보다는 그 특수한 학문 외적인 목적에 대해서 의무감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국가규모의 지원에서는 그 주문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대량살상 할 수 있는 무기의 개발이라는 속셈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연구자는 제공되는 자금을 연구의 목적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그 학문공동체는 학문을 위한 단체인지 혹은 경제의 수단인지가 모호하게 되며, 그 어느 것에도 충실할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 온다. 이 점에서 개별적인 정부에서 제공하는 연구비는 국제적인 학문공동체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서 배분되어야 한다는 Bronowski(1977)의 제안은 비록 공상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설사 국제적인 규모는 아닐지라도 한 단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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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공동체가 자체의 內在的인 價値에 비추어 연구의 자금을 동원하고 배분한다면 연구자와 자금제공자간의 이질적인 목적이 밀약과 협잡이 아닌 정당한 방식으로 동시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공동체도 일종의 사회이기 때문에 역할, 지위, 계급의 요소를 갖는다. 그 본원적인 역할을 말할 필요조차 없이 훌륭한 연구업적을 쌓는 것이며, 그에 따라 위계가 정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지위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업적에 부수하는 항목이 될 것이다. 만약 세속의 사람들이 그것을 出世라고 본다면 출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학문공동체내에서의 출세는 학문의 기준에 충실함으로써 훌륭한 학자로서의 명예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학문공동체의 위계가 결정되고 또 그 관행이 정상적인 방식을 압도할 때 그 집단은 타락하기 시작한다. 흔히 학문공동체 내에는 학문을 그 자체로서의 보상보다는 세속적인 출세의 한가지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당한 방식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 세력의 후원, 인간관계, 사회적인 신망, 세력의 규합 등에 호소하여 높은 요직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연구보조금의 배정, 여러 종류의 포상, 리더쉽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영향력이 성공할 단계에 이르면 업적이 보직을 결정하기 보다는 보직이 업적의 지표가 되어 학문적인 분위기는 세속적인 기준과 다를 바 없는 쪽으로 변질된다. 이런 학문집단의 전형적인 징후는 세속적인 지위와 학자의 지위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자의 지위를 최종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더 큰 명예가 따르는 직종으로 전환하는 출세가도의 중간 정류장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학문의 이름으로 외부의 기득권집단의 비위를 맞추고 그 대가로서 다른 매력적인 직책이 주어질 때 서슴없이 그 공동체를 언제든지 떠난다. 이런 분위기에서 훌륭한 연구업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진리탐구가 그 실질내용을 이루지 못하고 수단과 형식치레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교수에게 있어서 보직은 불가피할 때 억지로 맡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은 보직을 자청하여 찾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소문이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대학은 그만큼 타락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세속의 명리를 초월하여 학자를 자신의 최종적인 목표로 생각하고 오직 탐구에 열중하는 학문공동체가 아쉬운 현실이다.


  3. 創造的인 零圍氣


  학문은 그것이 가진 동적이고 창조적인 성질로 인해서 인간의 가치관 형성에 공헌한다. 개개의 학문은 끊임없이 낡은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오늘날의 지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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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학문의 세계에서 뚜렷한 전통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조차 생긴다. 그러나 세상에 전통이 없는 사회가 있을 수 없다. 그 모순을 해소하는 용어가 “反傳統의 傳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Shils가 전통이라는 주제를 다룬 저서(김병서, 신현순 역, 1992, p.309)에서 쓴 용어로서 이것처럼 학문의 전통에 부합한 멋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학문은 늘 지식의 탐구과정에 과오가 있을 수 있음을 시인한다. 아무리 확실한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증거를 얻음으로써 우리가 범할 수 있는 과오의 양을 줄일 수 있다. 수 세대에 걸쳐 축적한 체험, 지식, 규범은 그만큼의 무게로써 우리에게 지혜의 선물을 안겨주지만 그것에 대한 집착은 지금 요구되는 좀더 높은 수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지혜는 앞으로 전진하는 길의 토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진을 구속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지혜가 최종적인 것이라고 볼 때 그것은 전진을 구속하는 장애물이 된다. 학문의 위대한 창조는 각 단계에서 미래지향적인 세력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학문은 전통이 부여해 준 지혜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고차원의 지혜를 그것의 참된 전통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학문공동체는 모름지기 이 같은 고유한 自己矯正性의 내규와 전통을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통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학문공동체는 이미 그 나름의 지식체계와 내규를 중심으로 그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혁신적인 이론이 제시될 때 그 타당성이 기존의 기준에 비추어 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새로운 것이 전통의 것과 지나치게 이탈할 때 내부적인 동요에 직면한다. 이런 초기 단계에서 세력의 중심은 언제나 현존의 체계에 있다. 진리에 관한 이론 가운데 整合說(coherenc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새로운 발견이나 지식의 타당성이 기준의 것과 얼마나 일관성이 있느냐에 비추어 평가된다. Kuhn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과학적 혁명의 구조(1962)>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보수성을 띠는지를 해명하였다. 그가 말한 이른바 “正常科學”의 위력이 이 단계에서 작용하며 그 체계가 견고하면 할수록 새로운 것이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러나 서양학문의 경우 그 정상과학은 이른바 “革命科學”의 출현에 의해서 대체된다. 이것이 서양의 학문이 발전되어 온 역사이며, 전통이다. 이 불가결한 요소가 학문공동체에서 활성화될 수 없을 때 그것은 교조가 지배하는 집단으로 변질될 위험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런 혁명적인 경향은 특히 동양권의 학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양에서는 사상적으로 다분히 전승적이고 훈고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이곳에서는 어떤 뛰어난 사상이 제시되면 그 창도자의 사상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그것을 원형 그대로 계승하고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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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인 전통처럼 여겨져 왔다. 그 사상을 수정하거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사람들은 정통을 이탈한 邪說者나 僞作者의 취급을 받아 공동체내에서 생존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고대에서 서양의 것보다 훌륭한 사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학문은 서양학문과 같은 발전을 기약할 수 없었다. 또한 이 전통이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동양의 학자들은 서양의 학문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주로 모방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남들이 수행한 연구결과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定設로 보고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학문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동양의 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위태롭게 느끼고 자아를 주장하는 것 자체를 오히려 혐오하는 편이다. 한편 타인의 생각, 특히 외국의 선진학자의 생각은 그 자체로서 객관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땀흘려 지식을 생산하기보다는 선진국의 전례만 따라가면 된다는 지금과 같은 풍토에서 서양의 지식을 능가하는 새로운 학설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분명 기적에 속할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정설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현존하는 어떤 지식이라도 절대적인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학문은 문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체하고 문제가 있는 곳에서 번창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학문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발전하는 학문의 전단에는 옛날부터 으레 큰 의문보호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명할 때 이전의 지식은 무효화되었다. 연구는 언제나 진리를 향해서 진행중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미완성적이고 逆轉可能性을 지닌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의 연구는 그 역전에 공헌할 수 있을 때만 인정받을 수 있다. 중력, 질량, 에너지, 진화, 유전, 무의식, 계급적 구조, 언어체계 등… 이들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를 포착하기 위해 학자들이 만들어 낸 창작물들이다. 그 실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착하는 개념들은 오직 학자들의 대담하고 당돌한 상상력에 의해서만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후의 산물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더 깊은 실재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중간 단계의 것들로서 우리는 그들을 기초로 항상 한 단계 앞서 나아갈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선행자가 멎었던 곳은 그릇된 선입견일 수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후행자의 과업이다. 선행자는 그들 나름으로 최선의 지식을 우리에게 선물하였고 우리는 그 유산을 수정하고 첨가하여 더 나은 것을 후손에게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혁신의 정신을 전통으로서 이어받은 우리의 후손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지양함으로써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공동체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보다는 노력 안들이고 그 결실을 이용하기에만 급급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학문의 발전이란 애초부터 기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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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이렇게 보면, 학문공동체에서 특별하게 우대받아야 할 인물들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진다. 학문을 한답시고 평생동안 남의 학설을 소개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학문의 계승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학문의 발전에 공헌했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그런 인물들로만 구성된 학문공동체는 마치 더 전진하기를 중단한 기관차와 같다. 대다수는 학문의 진보에 거의 혹은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기관차의 승객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그 기관차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존의 선입견을 버리고 끊임없이 자유롭게 새로운 생각을 실험하는 모험가들이다. 그들은 현실의 내부를 뜻밖의 새로운 시각으로 투시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존재의 내부에 숨은 신비와 경이를 열어 보인다. 이 작업은 결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학자들은 불충분한 증거, 다년간의 노력과 고통스러운 실패, 낙담과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이들은 대개 학문공동체에서 소수에 속한다. 독창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기성의 학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배반할 뿐만 아니라 동료의 아성에 공격을 가한다. 이러한 내부적인 긴장관계와 위협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학문공동체는 훈고적인 다수와 이런 혁신적인 소수가 어떻게 조화를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으나 대개 학문공동체에서 나이 많은 집단이 보수적이며 실제의 실권을 가지고 있다. 이 집단이 창조적인 新進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그 학문공동체의 성격이나 진로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전통에 도전하는 논문은 기존의 원로나 전문가의 심사를 받을 것이고 그들은 기성의 개념에 능통하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을 배척하기 쉽다. 이처럼 혁신적인 개념이 빛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는 그 개념이 만나는 수용환경에 의해서 좌우된다. 학문의 발전을 두고 보면 한편의 창조적인 논문이 수천, 수만의 기성 논문보다 값질 수 있다. 따라서 전통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소수의 혁신자들을 관용하고 그들의 독창성에 대해서 응분의 높은 가치를 인정해 주는 학문공동체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혁신을 수용하는 집단의 특성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이미 Bronowski가 제시한 바 있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지적인 풍토로서 독립성(independence), 독창성(Originality), 부동의(dissent), 관용(tolerance)을 든다(1965, pp. 61-63). 그는 이 특성들을 학문활동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윤리를 내세운다. 새로운 것은 서로 독립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때 쉽게 발견될 것이다. 학문공동체의 성원은 기존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정신을 가지고 창의적인 지식을 생산해 내야 한다. 학문이 종교나 정치적인 선전활동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은 “자명한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自己修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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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할 수 있다는 데서 찾아진다. 따라서 부동의가 허용되는 정도가 학문공동체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학문하는 사회에서는 유별나게 관용성과 개방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실상 우리는 기존의 지식을 떠나 새로운 것을 모색할 때 무수한 시행착오, 불확실성, 두려움에 봉착한다. 혁신적인 생각이라고 항상 그 타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망상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우리는 그 실패를 관용해야 한다. 새로운 학설은 미래의 엄청난 가능성에 비해 항상 부족하고 근거가 박약하며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의 것을 부정한다. 학문공동체는 그 모호함 속에 숨겨져 있는 혁명적인 논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 적의에 찬 상대의 주장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수용력이 필요하다. 현상을 타개하려는 집단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그런 방향전환에 소요되는 실수를 관용하고 애매함에 대해서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을 갖춘 학문공동체가 실제로 얼마나 있을까? 특히 한국과 같은 동양권의 문화적인 전통을 가진 사회일수록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부정적이다. 그만큼 우리 가까이 있는 학문공동체는 전통을 쇄신하는 전통의 수립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4. 자유로운 情報交換

  학문은 학자 개개인이 스스로 창조를 이룩하는 작업이다. 앞서 우리가 독립성을 창조의 한 조건으로 본 것은 개개인의 창조성이 집단의 응결력이라는 사회적인 과정으로 인해서 저해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집단 전체의 통일된 의견과 공동작업을 강조하게 되면 대개 창조력이 감퇴하고 능력이 하향화될 우려조차 있다. 그러나 학문공동체의 성원은 다른 의미의 집단적인 효과를 서로 간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서로의 독립된 생각을 자유롭게 疏通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개체가 하등의 공통된 관심도 없이 격리되어 있다면 굳이 그들이 공동체에 소속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누차 강조했듯이 우리의 지식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감금되어 있기보다는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발표하고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獨斷에서 벗어나서 좀더 넓은 지적인 지평에 도달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집단 전체로서 반드시 어떤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가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고 소통함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연마하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연구의 타당성이 독립된 개개인이 참여하는 신랄한 토론에 의해서 점검받는 과정은 학문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보여진다. 학문공동체는 그 정보교환의 場으로서 구성원 개개의 생각을 자극하고 촉발시켜 좀더 차원 높은 공동의 지식으로 확대시킬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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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 의견의 교환에서 지켜져야 할 조건의 하나는 민주적인 절차이다. 우선 구성원의 어느 누구도 침묵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구성원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집단의 압력이라는 외부적인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가 자유롭게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신념의 상대성이 드러나고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오류와 편견을 발견하기가 용이해진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은 고정관념과 독단적인 신앙에서 해방하여 좀더 포괄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기회의 평등도 중요하다. 만약 그 표현의 기회가 한편에 치우친다면 공정한 토론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그 기회의 배분이 집단의 세력분포와 관련이 있다면 그만큼 그 집단은 사상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장소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표현된 것은 공개되어야 한다. 그 토론의 내용이 외부로부터 차단된다면, 다시 말하면, 요즘 말로 “對外秘”의 성격을 갖는다면 그 집단은 학문의 보편성을 파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처럼 사상의 포현에 자유가 허용되는 집단은 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를 놓고 우리는 그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설사 현실에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학문공동체의 구성원은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극단의 경우 생명의 위협이 있다고 하더라도 학자라면 그가 진정 그의 학자적인 양심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용감하게 발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민주적인 절차라는 요건은 외부 조건보다는 학자적인 양심의 문제로 귀착된다. 민주적인 절차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되는 것이다. 진정 진리를 사랑하는 학자나 학문공동체라면 금서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다거나 자신에게 이단죄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큰 장애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로운 정보교환을 위한 다른 하나의 조건은 서로 共有하는 言語를 확보하는 것이다. 학문은 일상적인 지식의 피상성을 벗어나서 좀더 깊고 보편적인 실재에 접근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체계적인 개념과 사유가 학문에서는 불가피하다. 그 사유내용을 담는 용기가 언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사유내용은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언어가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지역마다 당시 그 지역의 특수한 사회적인 인식체계를 반영하는 상이한 지방어가 있으나 그들은 학자들의 인식체계를 소통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따라서 학문공동체는 많은 경우에 그 나름의 인식활동을 보장해 주는 고유한 언어를 발전시키고 그 언어를 매개로 그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과학자가 그들의 경험을 실험으로 만들고 그들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도량형의 통일, 계산과 측정의 공통어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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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의 수정, 내부의 갈등과 절충이 있을 수 있지만 바로 그런 과정 자체가 특정 학문공동체가 일반의 사회에 대해서 그들만의 공통된 세계를 구축하고 결속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유럽에서 대학의 지식공동체는 라틴어에 의해 결합되었다.(Boorstin, 이성범 역, 1987, pp. 283-285). 라틴어가 대학의 언어로 존재하는 한 적어도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통일된 유럽의 대학체계가 존재할 수 있었다. 교수와 학생들은 이 라틴어를 매개로 그 소속국가나 국지적인 언어공동체에 제약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교류할 수 있었다. 인식대상이 서로 다른 분과학문은 또 그 나름의 단위를 중심으로 고유한 개념과 언어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매개로 공통의 사상을 형성하면서 대내적으로 결속한다. 학문공동체의 언어는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비밀스러운 부호로서 낯설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집단의 배타성이라는 차원에서보다는 인식의 종류와 수준이라는 면에서 불가피한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공동체의 의사소통은 일차적으로 정보의 교류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들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고 높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학문에서의 의사소통은 이런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범위를 벗어나 열띤 토론과 비판이 가미되어야 한다. 어떤 동일한 현상을 놓고 서로 대립된 의견이나 가설이 나오는 것은 학문의 속성상 바람직한 것이다. 상식은 사회적인 동의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지식은 진리에의 복종이 중요하다. 그 다양한 견해는 서로 그 진리기준에 부합한지의 여부를 놓고 논평과 비평을 방아야 한다. 상대의 생각이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은 학자의 의무다. 또한 현실에 대해 자신이 지닌 관점에 적대적인 정보를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학자의 능력에 속한다. 학문이 지식의 자기수정이라는 내규를 지켜야 하는 한, 논문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어떤 지식을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활발한 의견대립은 불가피하다. 대립적인 세력의 생생한 상호작용과 찬반토론, 그리고 긍정적인 경향과 부정적인 경향의 교환이 없는 학문공동체는 그만큼 침체의 늪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 세력들 간의 대립은 어디까지나 진리탐구, 즉 좀더 높고 나은 인식의 획득이라는 자체의 고유한 내규와 울타리 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 범위를 벗어난다면 이미 세속의 분쟁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옛날에는 학문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저택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 모여 그들의 관심사를 논의했으나 오늘날 매체의 급속한 발전이 그 공간의 제약을 제거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인쇄는 인간으로 하여금 문명의 축적된 기록을 한층 더 용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먼 거리에서 서로 논쟁도 가능하게 하였다. 전문잡지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각종 학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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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에게 자신의 논문을 기고할 기회를 준다. 논문이 발표되고 얼마 동안의 숙고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그 논문의 주장을 의심하거나 거부할 근거를 가진 의견이 논문으로 공표된다. 그리고 상당한 사색의 기간을 얻어 그에 대한 변호가 이어진다. 이것이 이른바 紙上의 論爭으로서 인쇄매체가 이전의 일대 일의 대면이라는 즉응성과 원시성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물론 전문지의 심사위원이나 편집자가 신용할 수 없다거나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원고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편파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좋은 이론이나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공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는 전자매체는 거의 무한대의 정보를 시간과 공간의 제역이 없이 교환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방대한 연구업적이 삽시간에 세계각처에 공급되고 있다. 말하자면 유효한 생각이나 연구업적이 고립될 우려는 점차 소멸되고 있다. 그만큼 이제 학자는 사상 유례없는 기술상의 특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知的 所有權에 관한 것이다. 지식은 될 수 있는 한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Merton(1949)은 학문공동체의 내규로서 “공유성(communism)”을 강조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오늘날의 경제생활에서 불가결한 조건인 사적인 재산권의 보호와 갈등을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른바 “著作權”이 인정된 것은 최근의 사건이다. 중세만 하더라도 학자들은 책을 읽을 때 저자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원저자는 자기의 것이라는 영예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책을 베끼는 사람은 다른 저자로부터 빌린 것을 “인용”했다고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식이 힘이고 재산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을 소수집단이 독점할 이유가 점차 증대되고 있다. 창작활동도 일종의 노동으로서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모순된 사항을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 아마도 이에 대한 해답은 세속계와 수도계 중에서 어느 것을 본위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세속의 논리는 당연히 私有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공동체와 같이 진리탐구를 본위로 하는 특수집단에서는 경우에 따라 그 세속의 논리를 초극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떤 절충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해답은 사실은 경험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려져야 한다. 그 사실은 차후 더 밝혀나가야 하겠지만 하나의 원칙은 그 제도가 지식의 진보에 어느 정도 더 공헌할 수 있느냐를 따져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의 학자들(예컨대, Mitroff, 1974)은 비밀의 유지를 긍정적인 요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학자들은 한동안 그의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작업에 몰입할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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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사실 이런 의미의 비밀성은 학문의 발전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비밀유지가 어떤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결부될 때 엄청난 도덕의 문제를 야기시킨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학문공동체에서 개인의 창작열과 지식의 공유라는 문제를 절충하는 하나의 방안은 저자들에게 선취권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구성원 혹은 더 나아가서 사회 전체에 공개하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최소한 우리는 남이 수십 년에 걸쳐서 피땀 흘려 창작해 낸 지식을 일시에 손쉽게 자신의 것으로 훔치는 이른바 “剽竊”은 학문공동체에서 금기시해야 할 것이다. 특정 지식이나 이론은 일단 그것을 창작한 사람의 소유로 인정해 주고 그것을 가능한 한 널리 보급해서 누구나 그 지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학문공동체에서는 창작보다는 모방에 열중하는 구성원이 많아질 것은 불을 보듯이 자명하다.


  5. 치열한 知的 競合


  오래전에 Schelling은 그의 <학문론(1803)>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바 있다.


  “학문의 세계는 아무런 민주정치가 아니다. 더더구나 衆愚政治도 아니다. 그것은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귀족정치다. 가장 우수한 자들이 지배해야 한다(정진 역, 1978, p. 48).”


  이 말처럼 학문계의 정곡을 파악한 것도 드물 것이다. 오늘날처럼 평등이 중시되는 시대에서 위의 발언은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Schelling이 살던 시대가 오늘날과는 달랐기 때문에 민주시민의 이식이 결여된 탓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인권의 평등을 강조하는 요즘의 세태에 이 말이 주는 귀중한 교훈은 무엇인가? 그 하나는 우리가 종사하는 세계에 따라 우리가 복종해야 할 준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평등이란 세속적인 생활,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준칙이다. 그러나 그 준칙이 우리생활의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높고 높은 미지의 실재를 추구해 나가는 수도계에서는 그 준칙의 적용이 장애가 될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세계에서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수천 명의 어리석은 학설이나 학자가 한 명의 현명한 학설이나 학자를 당해 낼 수 없다. 따라서 평범한 것이 아니라 특출난 것,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것이 여기에서 준별되고 존중되는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평등의 원리를 적용하는 사회에서는 학문계의 전열에서 새로운 실재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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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수의 천재들에게 특권을 부여할 여지가 없다. 학문공동체는 그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실질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준칙과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명한 자가 지배해야 한다고 가르친 Platon의 정치철학은 학문계의 경우 이 시대에도 타당하다.

  현대는 사상 유례없는 대중의 힘이 지배하고 있다. 대중의 힘은 質보다는 量에 의존한다. 요즘은 학문의 업적을 발표한 논문의 숫자로 판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생각하자. 학문의 역사를 통해서 획기적인 발전을 촉발하거나 공헌한 연구는 전체의 논문 가운데 극히 제한될 비율에 불과하다. 물론 어떤 신념이나 주장도 어차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상의 한가지 소산이며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덜 된 지식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학문공동체와 같이 그 단위를 집단으로 잡을 경우 그 과정상의 다양한 수준의 것을 동시에 수용할 수는 없다. Kuhn이 잘 지적했듯이 지식은 누적되기보다는 혁명적으로 대치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 혁명을 일으키는 학자는 소수다. 그 소수의 탁월한 안목이 대중의 상식과 기존의 학설을 그 자체의 역량에 의해서 지배하고 그 반대가 성립될 수 없도록 하는 내규가 적어도 학문공동체에서는 준수될 수 있어야 한다. 학문계에서의 발전이란 제반 관념이 서로 경합하면서 더욱 발전된 이론만 생존하며 다른 것들이 도태되는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원리란 이렇다. 새로운 이론이 나와서 그것이 이전의 것과 충돌하고 그 중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거나 틀린 것으로 판명될 시험대에 오른다. 만약 더 발전된 이론이 나올 때 그것이 학문계를 대표하며 과거의 것은 헛것으로서 재고품 목록에서 제외되거나 폐기처분된다. 도태된 학설은 역사적인 의미 이외의 다른 의미를 얻지 못한다. 이 경우 한 편의 양질의 지식이 수백의 불량한 지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양질의 소수의 연구가 그보다 낮은 수준의 다수의 연구보다 우세할 수 있는 논리가 적용되는 학문공동체, 그리고 이런 치열한 경합과 在庫整理가 재빨리 이루어지는 학문공동체일수록 그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학문공동체의 황제와 귀족의 지위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그 공동체의 건전성을 진단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 지위를 결정하는 규준은 사회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業績(achievement)에 의존하는 길과 歸屬(ascription)에 의존하는 길의 두 가지가 있다. 건전한 학문의 왕국에서는 전자의 기준을 따른다. 업적을 따져서 능력있는 자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 소수의 공적만이 인정되고 나머지는 단지 시녀, 보조자, 간격을 메꾸는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나 그 지위가 귀속적인 것이 아닌 이상 영구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기준에 의한 弱肉强食은 냉엄하다. 황제와 귀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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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도전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주와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항상 秀越하려는 개인적인 의지와 노력을 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한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시녀와 보조역은 능력을 갖추어 나가면서 언제나 그들이 모시는 상관의 지위를 찬탈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야 한다. 치열한 학문적인 경쟁의 대열에서 영원한 선진과 후진 혹은 영원한 스승과 제자는 있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의 지위를 추월하는 일은 학문발전을 위해 경하할 일이다. 구성원은 서로 벗이 되고 후원자가 되지만 경쟁관계에서는 우정관계를 희생할 각오도 갖추어야 한다. 보통의 사회에서는 집단의 응결력이라는 명분에서 의견의 수렴이라는 것이 강조되지만 학문공동체에서는 구성원 간에 조화될 수 없는 방향으로 생각이 달라질 때 서로가 상대를 틀렸다고 공개하고 비판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의 기준에 맞지 않은 불충분한 논문과 허점이 드러난 이론이나 주장이 보호받거나 숨겨져 있을 어수룩한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대하거나 혁신적인 발견이 잘못으로 인하여 사라져 버리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을 줄이는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서 능력있는 구성원은 자신이 얼마동안은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조만간에 다른 구성원을 납득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가차없는 학문적인 약육강식의 풍토가 지배하는 학문공동체일수록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대결과 비판정신이 희박한 동양적인 전통에 비추어 얼른 수용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문계에서의 경쟁은 세속계의 것과 크게 대조된다. 세속계에서는 제한된 권력, 재산, 지위를 가지고 경쟁하기 때문에 그 대상 자체가 학문계의 것과 다르다. 학문의 경우, 거의 무진장한 진리를 쟁취하는 경합이다. 그 경쟁의 방식 역시 완력, 대인공격, 무지에의 호소, 동정심, 대중심리의 이용, 파벌의 조성 등을 이용하는 세속계의 방식과 판이하다. 꾸준한 탐구와 상상력이 승리의 비결이다. 그러나 학문공동체에서도 세속계적인 경쟁이 미묘한 양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암암리에 세속적인 의미의 세력경쟁이 얼어나고 그 승자가 판정자의 지위를 누린다. 이 경우 그 추종자가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진리기준보다는 굴종 아니면 위협이 발언의 배경을 이룬다. 때로는 외부로부터 연구비를 조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일단의 연구집단이 형성되고 그 연구결과는 자금 조달자의 이름으로 발표된다. 실제로 조수가 연구를 수행하고도 출판물에 그의 이름이 실리지 않는 수모를 참는 것은 오로지 경제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한 선택이다. 연구를 위한 자금조달보다는 자금조달을 위한 연구라는 도착현상이 생길 때 차라리 연구공장이라는 말이 적절하게 들린다. 후진은 學德보다는 취직처의 보장이라는 매력 때문에 선진을 따른다. 또한 때로는 공동체의 서열이 단지 연령, 봉직의 연한, 사회적 지위나 배경 등 학문 외적인 기준에 의해 고정되어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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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유능한 젊은 학도들이 혁신적인 주장을 세우기보다는 선배들의 시중을 들거나 눈치를 보아야만 한다. 혁신은 선배에 대한 변절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세속에서는 어떻든 다수가 지배한다. 당국은 논문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양에 의해서 공적을 판정한다. 이처럼 학문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출세주의자들의 득세와 그에 따른 행태는 진정 학문을 하려는 소수의 집단을 상대적으로 소외시킨다. 그로 인해서 연구는 활기를 잃고 대신 냉소주의(cynicism)가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풍토가 학문공동체를 지배한다면 그 공동체는 건전한다고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학문계에서의 경합이 세속계의 것에 비해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한 번 더 유의하자. 세속계의 것은 겉치레의 논리가 적용된다. 가식, 위선, 과장 등이 정당한 전략이 되며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인 부귀영화 역시 외면적인 조건의 형식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학덕은 비가시적이며 암묵적인 것이기 때문에 겉모양으로 쉽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학덕은 자족성이 있기 때문에 그 소지자가 구태여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의 최상의 경지를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편이지만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다수의 눈에 그것이 뜨일 리 없다. 그 수준이 높을수록 그 분야를 이해하는 사람의 수는 일반적으로 적어지며 그만큼 엄밀한 심사를 할 전문가나 동료가 드물게 된다. 이 때문에 학덕이 천하에 알려져서 높은 평판을 받는다는 사건이 말처럼 그렇게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학문이 반전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세속적인 경쟁보다 그 판단의 공정성 면에서 다른 하나의 불리한 조건을 구성한다. 누차 강조되었듯이 지식은 근본적으로 불일치와 반이성을 통해서 발전한다. 차이와 불일치는 지식의 혁신에 공헌한다. 학문계에서는 항상 기존의 패러다임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가 나타나서 새로운 이론을 일으켜 세운다. 그 수준차이는 언어의 차이와 판정기준의 차이를 포함하며 선진과 후진은 서로가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합리성의 대립에서 그 중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최종적인 판정은 어떤 탁월한 최고권력의 중재보다는 오로지 대립하고 있는 학자들 자신에 호소해야 한다. 그런데 대개 선진의 수보다는 후진의 수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여기에 합의와 일치라는 세속적인 기준이 적용될 때 언제나 불리한 것은 선진 쪽이다. 이 때문에 그 세속적인 기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학문공동체가 당면한 큰 과제로 남아 있다.


  6. 敎育的 過程의 活性化

 

  우리는 이제까지 학문공동체에게 많은 주문을 해 왔다. 그러나 그 많은 조건들은 이제부터 검토할 다른 하나의 조건을 추가하지 않는 한 불충분한 것이 되고 만다. 그 하나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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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결한 조건이 바로 교육이라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傳家의 寶刀처럼 등장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누구나 말하는 상식적인 것과는 다른 어떤 한정된 의미의 자율적인 세계를 지칭하고 있음도 아울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육”이라는 말을 쓸 때 학교라는 것을 쉽게 연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인식방식이 학교교육은 물론 교육학 자체의 正體性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장상호, 1986, 1990). 그 대신 나는 교육을 이 지구상에 존재한 수많은 수도계의 발전을 촉매하는 특색있는 과정으로 본다(장상호, 1991). 여기서 修道界란 이미 앞서 쓴 용어이기 때문에 더 구체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다양한 능력에 의해서 자신의 위대성을 확장시켜 온 다종의 세계들, 예컨대, 학문, 예술, 기예 등을 말한다. 이런 접근은 우리가 이제까지 논의해 온 학문계가 교육계와 다른 것임을 가정한다. 다시 말하면, 학문은 수도계의 하나이며 교육은 학문을 포함하는 모든 수도계를 소재로 진행되는 특수한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문계는 교육계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특수한 素材에 불과하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사회에서 우리가 논의해 온 서양의 학문이 교육의 소재가 된 것은 역사적으로 최근에 속한다. 교육은 수도계의 각 발전 단계에서 우리가 그 발전에 참여하는 주체적인 활동으로서 현재의 수준을 부정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을 실현시키려는 배움의 과정과 그 배움을 선진의 입장에서 촉구하는 가르침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나는 여기서 말하는 배움과 가르침을 각각 “上求”와 “下化”라는 용어를 써서 지칭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그 용어사용을 피한다). 이 두 과정은 어떤 내적인 필연성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보강한다. 이 상호작용의 과정에는 관련되는 수도계에서 특정한 두 사람 간의 수준차이가 가정되며, 동시에 그 가정을 추후에 확인하는 절차가 내장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인간성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것은 모두 가치로운 것이지만 그 위대함의 수준은 여러 가지다. 그 수준차이는 특정한 사태를 평가하는 기준의 차이를 포함해서 엄청난 이질성을 갖는다. 예컨대, 높은 수준에 있는 先進은 後進이 “어렵다”고 하는 것을 “쉽다”고 말한다. 혹은 한 편에서 “진리”라고 하는 것을 다른 편에서 “허위”라고 부정한다. 이 때문에 선진과 후진의 만남은 갈등과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교육은 그 수준차를 근거로 그 나름의 의미와 보람을 가진 독특한 인간관계와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여기서 지칭하는 교육의 특성과 원리를 이해하는 길을 택해 보자. 특정한 수도계를 놓고 서로 선진과 후진임을 주장하는 “갑”과 “을”이 서로 “스승”과 “제자”라는 교육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갑”은 가르침에 종사하고 “을”은 배움에 종사한다. 가르침의 비결은 스승이 자신의 수준을 제자에게 직접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승은 자신의 수준을 제자에게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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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바람직한 것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틀린 것도 제자의 수준에서 보면 옳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직 후진은 자신의 현존하는 수준을 틀린 것으로 볼 만한 좀더 세련된 體驗構造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주된 활동은 제자가 더 나은 체험구조를 습득하도록 함으로써 제자가 배움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그 배움 이전과 이후의 체험내용이 어떻게 다른지를 스스로 대비해 보고 이후의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스승이 제자의 수준을 자신의 수준으로 “轉向”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제자가 그에게 이전에 없었던 높은 체험구조를 배움에 의해서 실현시키고 그 새로운 기준을 자발적으로 선택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스승과 제자의 수준이 몇 단계의 큰 차이가 있다고 할 때 스승은 제자에게 그가 밟아 온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쳐 오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 수준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제자가 더 나은 기준으로 쇄신해 가는 단계는 많아지고 그만큼 교육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교육적인 활동을 서로가 지속한다면 그 관계를 성립할 당시 가정했던 선진과 후진이라는 관계가 입증되는 셈이 된다. 만약 앞의 경우에 “갑”이 후진이고 “을”이 선진이었다면 그 교육적인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의 원리는 학문의 원리와 가끔 모순될 수도 있다. 앞서 우리가 논의한 바 있는 “경쟁의 원리”를 상기해 보자. 학문계에서는 각 단계를 거쳐 지식을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 최종의 것을 취하고 이전의 것을 폐기하는 약육강식의 원리를 따른다. 말하자면 오르고 나서는 오르는 데 사용된 사다리를 버리는 방식이 적용된다. 그러나 교육은 그 최종의 단계나 그 이전의 단계를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자체의 素材로 이용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서로 몇 단계의 수준차이가 있는 교육적인 관계에서 스승이 자신의 지식을 제자에게 직접 내면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교육의 원리에 어긋난다. 가르침이 겨냥하는 목표는 제자의 다음 단계이다. 말하자면, 가르침의 표적이 스승보다는 자제의 수준에 맞게 설정된다. 따라서 이제까지 학문이 발전되어 온 각각의 단계는 그 원래의 역사에서 입증되어 왔듯이 얼마만큼의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교육의 활성화란 이처럼 각 단계를 학문의 원리에 따라 폐기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알맞게 교육의 소재로서 충분히 활용하는 지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특징에 비추어 교육은 세뇌, 선전, 조건화, 교조화, 사회화, 혹은 문화화라는 말로 논의되어 온 온갖 行動統制의 수단과 구분된다. 교육 이외의 행동통제의 방식들이 갖는 공통된 특징은 모종의 최종적인 단계를 설정해 놓고 그 단계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실현시키려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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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방법들은 그 나름의 과정적인 내규와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결과에 의해서 그 활동이 정당화된다. 사회화나 문화화는 현재의 체제가 규정하는 표준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교육은 그 자체의 과정적인 절차와 활동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과정적인 활동 자체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제 여기까지 교육의 고유한 특징을 지적하고 그것이 어떤 권능에 의해서 앞서 우리가 학문공동체의 바람직한 속성으로 지적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실현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우선 먼저 우리는 眞理에 대한 熱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진리란 타인이 혹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 규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주체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이다. 학문적인 탐구의 규칙은 그 적용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학자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학자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 기능에는 좋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추구하면서 추측하는 것, 문제해결의 방법을 알아내는 것 등을 포함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정당화를 자기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다. 진리의 최종적인 심판자가 학자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강조한 Polanyi(1964)는 학문활동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트럼프를 가지고 혼자서 노는 유희자는 거기서 매회 자기가 적절하다고 정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혹은 다른 비유를 들어보면, 과학자는 형사, 경찰, 재판관, 배심원 등의 역할을 혼자서 모두 하는 놀이에 가깝다(이은봉 역. 1990, p.53).” 이 말이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는 진리란 어떤 객관적인 절차나 학문공동체의 판단보다는 그 구성원 각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겨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질은 강요가 아닌 방식으로 습득되어야만 하며, 교육은 다른 어떤 방식보다 그 독립적인 자질을 주체적으로 습득하는 요소와 절차를 더욱 많이 포함하고 있다.

  다음에 우리는 非學問的인 要素의 從屬性을 요구했다. 비학문적인 요소와 학문적인 요소의 경합은 결국 가치의 경합을 의미하며, 후자가 전자보다 우세할 때 이 종속성의 조건은 자연히 충족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학문공동체에서의 문제는 얼마나 그 구성원이 진리라는 가치를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느냐,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생활에서 얼마나 지배적인 가치로서 무게를 갖게 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문의 수단으로서 교육과 문화화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진리는 어떤 절대적인 수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전의 지식체계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지식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체험되는 것이다. 교육은 학문공동체가 그들의 개별적인 수준에 맞춰 각 단계마다 점진적으로 진리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그만큼 교육이 세속보다는 학문에 대한 애착심을 고취할 가능성을 많이 갖게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이에 비해서 非敎育的인 方法, 예컨대, 문화화는 학문공동체가 인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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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에 구성원이 일률적으로 일치하거나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 의해서 지식을 습득한 구성원은 진리의 기준보다는 사회적 기준에 큰 비중을 두기 쉬우며, 그만큼 세속의 비학문적인 요소에 경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제 創造的인 零圍氣 문제로 들어가 보자.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Kuhn은 학문공동체를 논의할 때 이른바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상정했다. 이는 과학에 종사하는 공동사회에서 일정기간 동안 본보기가 되는 연구문제들과 그 해법을 마련해 주는 공인된 과학적인 업적으로서 그 특징의 하나는 폐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 공동체는 그들이 가진 지식이 종착점이라는 착각을 하기 쉬우며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때 자신의 내규에 비추어 평가한다. 따라서 그 “정상과학”이 한 시대를 지배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학문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교육이 필수적으로 요망된다. Kuhn은 그의 저서(1962)에서, 교육을 우리가 앞서 그것과 구분하려고 했던 문화화와 동일시함으로써 교육이 그 패러다임적인 병폐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즉 그의 눈에는 교육이 다음 세대에게 당대에서 인정받는 정상과학을 직접 주입시키는 고착적인 과정으로 비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앞서 잠시 검토했듯이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다면 그 공동체는 정상과학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저변확대에 성공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Kuhn이 말하는 “정상과학”을 보수적인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길게 바라보면 한 시대의 정상과학을 지배하는 패러다임도 그 이전의 단계에 비추어 보면 “혁명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문제는 공동체가 전반적으로 택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革新과 保守의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다. 교육의 양면인 배움과 가르침은 각각 혁신과 보수의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면서 그들 간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배움의 과정이 강조될 때 한 시대의 패러다임은 혁명적인 패러다임을 추구하고 수용한다. 한편, 가르침의 과정이 강조되면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면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 즉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수준보다 낮은 학문의 입문자의 편에서 볼 때 그 기존의 패러다임은 보수적인 것일까, 아니면 혁신적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의외의 대답을 얻게 된다. 그 해답이란 말할 필요도 없이 학문의 初步者에게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보수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너무도 혁명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발견의 규칙을 따르는 배움과 검증의 규칙을 따르는 가르침이 하등의 제약이 없이 현존의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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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이를 두고 “교육의 자유”라고 말한다면 어떨까?)가 주어진다면 Kuhn이 지적한 바와 같은 딜레마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쫓는 다수의 학자들이 가진 보수성 때문에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이론을 제시한 소수의 학자들이 무시받는다면 이는 양자에게 모두 불행한 일이다. 교육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배움에 실패하고 후자는 가르침에 실패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진에게 혁신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존 패러다임이 그것에 대한 전진적인 배움의 통로를 허용하지 않고 조급하게 문화화와 같은 급격한 방식으로 전수됨으로써 그 진가를 진정으로 감식하기보다는 그것을 맹종하는 인구만 늘어나게 만드는 문제는 역시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가르침에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문의 저변확대는 그 패러다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중이 거기에 이르는 배움을 단계별로 습득하도록 돕는 가르침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자유로운 情報交換이라는 조건의 경우도 교육의 과정에 보완되어야만 그 취지가 분명하게 살아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정보교환 자체가 교육이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나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그보다는 좀더 심층적인 과정을 포함한다. 교육은 학문의 결과로서의 명제들의 집합을 무조건 내면화하기보다는 그것을 생산하고 해석할 수 있는 체험구조를 점차적으로 습득해 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학문적인 체험은 언술로 표현할 수 없는 暗黙的인 要素를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Polanyi, 1958). 그 체험은 언어적인 소통보다는 제자가 스승의 밑에서 徒弟的인 生活을 통해 실습함으로써만 전수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 결과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생산해 낸 명제가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명제를 감상하는 행위는 그것을 창조한 행위를 재생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유사한 체험구조 내에서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만약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적인 체험요소가 적다면 그만큼 그들 간의 언어적인 소통에서 오해의 요소는 증가한다. 우리가 서로 많은 말과 글을 주고받음에도 불구하고 논증에 실패하는 것은 바로 그 소통의 전제인 체험구조의 일치라는 조건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언어는 발전한다. 같은 용어가 수준에 따라 다른 맥락적인 의미를 갖는다. 교육은 이런 사태에서 체험의 수준면에서 제자의 체계가 스승 쪽의 체계로 전환하는 경험을 마련함으로써 언어적인 소통의 성공을 보장하는 전제를 충족시킨다. 앞서 과학의 중심지역의 전환현상을 묘사할 때 거기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중요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교육적인 교류가 없이 단지 지식내용을 언어에 의해서 전달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것임을 방증해 준다.

  학문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知的인 競合의 경우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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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된다. 교육이 수반되지 않은 지적인 경합은 참으로 위험하다고까지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 지적인 경쟁이 갖는 취약점을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사회적 체제의 불안정성이다. 수준이 다른 학자들의 지적인 경합은 서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진전되기 때문에 순전히 사회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그 내적인 凝結力

의 약화라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적대하는 소집단을 가진 대집단은 와해되기 쉽다. 둘째는 지적인 경합에서 선진과 후진은 서로 다른 合理性의 基準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 사회적인 합의의 면에서 보면, 선진이 후진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학문에서는 그 지식의 수준과 그것을 소지한 학자의 수는 반비례한다. 이때 후진의 합리성이 선진의 것을 다수의 힘이라는 논리로 압도한다면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는 그 경쟁의 목표와 기준이 세속의 것에 비해 모호하다는 점이다. 누가 더 선진인지는 적어도 그 수준에 이르지 않고는 판별되기 어렵다. 짐작할 수 있듯이, 교육은 그 속성상 이 세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妙策을 지니고 있다. 교육은 서로 모순되는 수준을 가진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며, 따라서 여기서 모순은 와해보다는 유대를 강화시키는 조건이 된다. 또한 교육적인 관계에서는 선진이 스승이라는 위치에서 그에 합당한 권위를 인정받는다. 이로써 선진은 항상 소수라는 불리한 조건이 극복된다. 교육의 과정은 그것이 소재로 삼고 있는 수도계의 기준에 비추어 제자가 스승의 합리성에 자발적으로 승복하도록 진행된다. 학문의 경우 그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이 진리라는 기준과 가치가 될 것이다. 가치란 강요가 아니라 습득에 의해서 그것에 복종할 수 있을 때 그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적인 경합에서 교육이 갖는 최상의 매력은 이 세계에서는 경쟁에서의 敗者에게 별다른 榮光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교육을 통해서 제자가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을 경우 그 사실은 스승의 패배보다는 오히려 스승의 승리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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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Abstract


Some Reflection on the Intellectual Climate of Academic Community


Chang, Sang-Ho

Department of Education

College of Educ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Individual scientists belong to various types of academic communities which are also bound to larger social and historical contexts. The causal paths among the three terms are complex, each affecting others with certain degree of function autonomy. It is assumed that an academic community can facilitate the activities if its members only when it has certain traits. With a review of previous studies and new additional arguments, the six traits are proposed as desirable. They are the passions for truth: the subordination of supportive systems to the academic activities: the creative group climate: the free exchange of knowledge among members: the severe competitions for academic excellency: and the vigorous educational activities. The special emphasis is given to the educational process to indicate the fact that the other traits could often bring ineffective or deteriorative results without the appropriate educational mediations amo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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