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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자료

교육학으로서 유학: 가르침과 배움의 여명 #5(유학과 성리학의 구분)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7.01.28|조회수151 목록 댓글 0

조무남(2004). 『교육학론』. 학지사.

제2장 교육학으로서 유학: 가르침과 배움의 여명 중 pp. 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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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은 가르침과 배움의 학(學)이다. 교육학의 본래의 모습이다. 공자는 가르침과 배움의 학을 대변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그의 학문이었고 삶이었다. 맹자와 순자는 물론이거니와 공자를 따른 모든 유가들은 당대의 교사들이었고 교육이론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은 그 모습을 스스로 바꿔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유학의 변용(變容)이다.

   유학의 탈바꿈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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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최고선[至善]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중용』은 인간의 본성을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 하였고, 이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최고선의 근본을 이루는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유학은 선현(先賢)의 지혜를 후대에 가르쳐 전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일에 초점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의 탄생이고 유학의 탈바꿈이었다.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性)을 이(理)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理)는 이치, 원리 또는 이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유학에 바탕을 두면서, 선(善)과 이(理)의 본질을 묻는, 이른바 ‘철학’이 탄생하는 모습이었다. 이 탄생은 우선 맹자로부터다. 공자와 달리 맹자는 이론적 차원에서 인(仁)의 의미, 성(性)의 본질을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나 유학에 철학적 자리가 마련된 것은 송(宋)나라에서 발달한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송나라의 주자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성리학은 ‘성(性)은 곧 이(理)’[性卽理]라는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다. [각주 49: 성리학은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로부터 시작되어 주자에 이르러 체계화되었다. 이를 본래의 유학, 곧 선진유학(先秦儒學)으로부터 구분하여 신유학(新儒學)이라 한다. 선진유학은 동양에서 교육학의 원형으로 남는다면, 신유학은 선진유학에 뿌리를 둔 동양철학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성(性)은 곧 이(理)이기 때문에 성(性)을 따르는 것이 선(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선은 이제 가장 완전하게 이성을 따르는 상태를 일컫게 되었다. 주자는 말하였다. ‘이 세상은 이(理)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사물이 존재한다’고.

   그 후 성리학자들에게 남겨진 문제는 사물에 내재하는 이치[理]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일[格物窮理]이 되었다. 이는 틀림없이 유학과는 다른 새로운 학문의 시작이었다. 성리학자들은 가르치고 배워 최고선을 실현하는 교육자들이라고 하기보다, 이(理)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철학자들이었다. 선진유학이 인간에게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묻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 실천적 학문이었다면, 새로이 탄생한 신유학으로서 성리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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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理)의 본질을 형이상학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이론적 철학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학과 철학의 분기점을 긋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사이를 이분법에 의해서 날카롭게 나누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성리학의 밑바탕에는 항상 유학이 깔려 있고, 유학에는 항상 개념의 의미를 묻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동양철학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왕양명은 물론,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성리학에서다. 이황의 『성학십도』와 이이의 『격몽요결』은 사실 교육학 책들이다.

   우리나라에 유학이 들어온 시기는 정확치 않다. 역사적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이 은(殷)의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주(周)의 건국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유학의 이념에 바탕을 두어 만든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洪範九疇]으로 나라를 폈다는 설이 있다. [각주 50: 홍범구주(洪範九疇)는 『書經』의 ‘주서’(周書)에 나오는 어구다.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보편적 규범을 뜻한다.] 이 법이란, 말하자면, 팔조목 가운데 정치와 관련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齊)나 노(魯)나라와 인접되어 있었고, 백성들의 왕래 또한 빈번하였다. 그리고 기자(箕子),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각주 51: 張志淵(1975) 朝鮮儒敎淵源.] 이는 우리나라에 유학이 최초로 어떤 경로를 통해 전래되었는지를 말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문헌에서 유학의 흔적이 뚜렷한 것은 신라, 고구려, 백제시대에 이르러서다. 삼국시대 중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자제들을 당(唐)나라의 국학(國學)에 유학시켰다. 국학은 경학(經學)을 교과의 핵심으로 삼는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각주 52: 張志淵(1975) 朝鮮儒敎淵源, p. 11.]

   이치(理致)를 궁구(窮究)하는 것은 동양철학의 뿌리로서 성리학의 근본 문제다. 그 결과, 성리학은 공자가 중시하던 도덕적 수양과 인류의 평화[平天下]를 추구하는 실천철학, 그리고 교육학으로서의 유학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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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을 발달시켜 최고선에 이르게 하는 교육학으로서의 유학과 인간과 우주의 근본원리로서 이(理)의 본질을 탐구하는 성리학 사이에 깊은 간극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육학으로서 유학은 항상 최고선의 범주에 속하는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규범과학으로 남는다. 그러나 유학의 변용으로서 성리학은 형이상학적 사변을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으로 남는다. 교육학으로서 유학은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비하여, 유학으로부터 탈바꿈을 한 철학은 이론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들의 특성이 어떻든, 우리가 여기서 주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이 두 학문의 출현이 동양의 역사에서 사고의 혼돈 속에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학문의 분화를 의미한다. 학문의 분화는 학문이 발달하는 과정이다. 둘째로, 이 두 학문의 비교에서, 우리는 교육학이 이론적 학문이라기보다 규범적 실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육학의 원형으로서 유학의 특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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