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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읽기: 교육학의 문장과 개념의 중층구조 #6(교육학 문장의 유형)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7.01.28|조회수68 목록 댓글 0

조무남(2004). 『교육학론』. 학지사.

제5장 교육학 읽기: 교육학의 문장과 개념의 중층구조 중 pp. 14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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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학을 구성하는 문장은 크게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우선 교육학은 사실적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진보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학습동기는 학습자의 흥미와 깊은 관계가 있다’라는 문장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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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사실어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문장이기도 하다.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사, 그리고 요즈음 등장하게 된 교육공학 등의 이론들은 모두 사실에 관한 이론들을 바탕으로 한다.

   교육에는 교육에 관련된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이 거기에 존재하는 한 사실에 관한 진리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고 하여 교육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이 곧 가치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잘못이 있다. 교육학은 단지 사실적 진리만으로 구성되는 학문이 아니다. 거기에는 당위적인 것이 있다. 교육학은 당위가 간섭하는 독특한 학문이다.

   다음으로, 교육학의 문장에는 사실어를 포함하되, 그 술부가 ‘해야 한다’와 같이 당위적인 문형을 취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교사는 학습자의 흥미를 존중해야 한다’가 그런 경우다. 나는 이런 문장을 ‘사실적 당위 문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사실적 문장은 사실어로 구성되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실적 당위 문장은 어떤 사실이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으니 그 사실을 교육에서 소중히 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런 문장은 사실을 교육적 관념으로 해석하여 표현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학을 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교육학은 실천적 학문이고, 사실적 당위의 문장은 교사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실천을 위한 처방을 내리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은 교육에 관련된 가치와 사실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그런데 교육학에서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문장과는 전혀 다른 특수한 문장을 자주 만난다. 교육학을 구성하는 세 번째 유형의 문장이다. 이를 나는 ‘교육적 관념의 문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주어가 교육적 관념을 표현하는 단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인격은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나 ‘학습의 자유는 항상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문장은 교육학에서 가장 심층에 자리하는 기본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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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은 결국 이런 문장으로 구성되는 마음을 획득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교육적 관념의 획득 말이다. 교육학의 바탕은 교육적 관념의 문장으로 채워진다. 이 문장은 교육학을 구성하는 다른 문장에 비하여 독특하다. 이 독특성을 우리는 도덕적 문장의 예를 살피는 과정에서 확인한 바 있다.

   도덕적 문장의 유형에서 우리는 도덕적 관념어가 주어로 형성되는 문장을 살핀 바 있다. ‘인간존중은 좋다’, ‘사랑은 좋다’, ‘정의는 좋다’와 같은 문장이다. 이런 문장은 얼른 보기에 어색한 듯 하다. 그러나 의미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전혀 없다. ‘인간존중’, ‘사랑’, ‘정의’는 그 자체로 좋은 것에 해당된다. 이런 좋은 것이 모여 윤리적 선을 형성한다. 교육학에서도 매한가지의 말을 할 수 있다. 학생의 ‘(인격적) 존중’, ‘학습의 자유’는 교육적으로 좋은 것에 해당되는 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 교육의 목적으로서 최고선을 형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적 존중은 좋다’, ‘학습의 자유는 좋다’라는 교육적 관념의 문장을 쓰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교육적 관념의 문장은 사실의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실적 당위의 문장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육적 관념의 문장은 오히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감성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교육적 관념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교육적 가치’ 또는 이 책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교육적 실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가치는 교육에 들어오는 사실들을 보고 비교하며 거르고 다듬는 기준이 된다. 어떤 사실이 교육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는 뜻이다. 이런 구분 없이 사실을 그대로 교육에서 받아드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치 과거에 행동주의 이론을 그대로 교육에 응용하려고 하였듯이 말이다. 그래서 교육적 관념의 언어와 교육적 관념의 문장은 사실을 ‘기술하는 문장’에 비하여 ‘이해하는 언어’ 또는 ‘이해하는 문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육적 관념의 문장은 마음의 눈으로 읽는 문장이다. 읽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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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일의 일종이다.

   교육학의 문장은 육신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업’과 ‘학습’과 ‘교과’와 ‘교사’와 같은 사실어가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람됨’이나 ‘사랑’ 그리고 ‘인간존중’과 같은 관념어로 구성된다. 교육학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중층구조(中層構造)다. 그리고 이 중층구조의 맥락에서 우리들은 사실어로 구성된 문장에서 교육적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사실어와 관념어, 사실적 문장과 관념적 문장의 관계도 함께 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사실어에 교육적 관념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하하고, 이 부하적 의미가 사실어의 의미를 따라다니고 간섭한다. 교육적 관념이 학교에서 하는 일들을 간섭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하는 일들은 교육과 멀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무의미해진다. ‘교육이 없으면 학교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슬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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