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육학 자료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 모델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7.03.03|조회수501 목록 댓글 0

유재봉(2002). 『현대 교육철학 탐구: 자유교육에 대한 비판 및 대안 탐색』. 교육과학사. 

pp. 81-90.


81

Ⅳ.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 모델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시도한 듀이, 프링, 쉐플러 등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건 간에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에 관한 구체적인 견해와 통합방식은 다소간 상이하다. 이하에서 그들의 통합모형을 차례대로 검토해보자.

   먼저, 듀이는 교육에 있어서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진 최초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통합에 관한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데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그는 ‘철학이론에 있어서 갈등은 교육에 있어서 직업적 요소의 적절한 위치와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1916, p. 358)고 말한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지금의 논의의 맥락에 비추어 말하면, (자유)교육은 직업적 요소를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다소간 분명하나 어느 정도로 고려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듀이의 입장은 한마디로 ‘자유교육적 직업교육’ 혹은 ‘직업교육적 자유교육’(liberal―vocational education or vocational― liberal education)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마음과 육체,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이론과 실제, 여가와 노동 등의 분리를 거부하듯이,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구분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화이트헤드(Whitehead, 1950)의 견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화이트헤드는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분리하는 것은 ‘플라톤적 문화의 해악적 요소’로 본다(p. 77). 그가 보기에, ‘기술교육(technical education)과 자유교육을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유적이지 못한 기술교육은 부적절하며, 기술적이지 않는 자유교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82

즉, 기예(技藝)와 지성(知性)의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가지지 않고 전달되는 교육이란 없다’(p. 74).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종류의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을까? 듀이는 직업교육의 개념을 재고(再考)함에 의해, 즉 직업과 관련된 일련의 용어들을 넓게 규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예컨대, ‘직업’(vocation)이라는 것을 ‘삶의 활동이 그것이 성취하는 결과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명백한 의미 있는 방향으로 삶의 활동을 이끌어 가는 것’(1916, pp. 358-359)으로, ‘직업으로 모종의 일에 종사한다는 것’(occupation)은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구체적 용어로, 그것은 기계적인 노동이나 돈벌이가 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적인 분야나 기업에 종사하는 것은 물론 일체의 기술적 능력, 특수한 과학적 능력 그리고 효과적인 시민의식을 발달시키는 일을 포함하는 것’(p. 359)으로 광범위하게 규정한다. 말하자면, 듀이의 경우 (직업)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산업이나 직업분야에 일할 사람들에게 단순히 기술적인 준비를 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여러 가지 형식의 작업활동에 포함되어 있는 지적, 도덕적 내용을 가르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이 점에서 그에 있어서 ‘직업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교육은 통제의 능력과 민주주의적 자유가 가장 잘 드러나는 교육’으로 볼 수 있다(Scheffler, 1995, p. 37).

   그러나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이원론을 통합하려는 듀이의 시도가 그가 생각한 만큼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직업과 직업교육을 넓은 의미로 재정의한 것 외에,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려는 어떤 구체적인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듀이의 주 관심은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리와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교육이 어떤 의미에서 간에 직업교육과 같은 사회적, 실제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고,

83

또한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듀이의 난점은 용어 문제이다. 그는 자유교육 혹은 교양교육이나 직업교육과 같은 어떤 구분도 거부한다. 의미론적 측면에서 그의 심각한 문제는 ‘직업교육’이란 말을 너무 포괄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유(교양)교육과 직업교육 간에 아무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념적 구분 면에서나 실제상황에서건 간에, 교육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이상은, 비록 그 자신은 부인하겠지만, ‘유토피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Hook, 1971).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이의 아이디어는 직업교육에 관한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 즉 지력이 인간활동과 동떨어져서 가장 잘 행사되는가, 아니면 그 활동 안에서 가장 잘 행사되는가의 문제와 개인의 교양이 이기적인 상황하에서 가장 잘 보장되는가, 아니면 사회적 조건하에서 가장 잘 보장되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Dewey, 1916, p. 374). 이 문제에 대해 그는 명백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입장은 아마 (자유)교육은 인간의 활동과 현재의 사회적 실제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프링의 견해는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간극을 그에 관련된 용어들을 재규정함으로써 줄이려고 한 점에서는 듀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재규정하는 개념의 대상과 정의 방식에서 서로 다르다. 듀이가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직업교육’의 개념을 재규정함으로써 간극을 메우려고 한 반면에, 프링은 ‘자유교육’의 개념을 재규정함으로써 둘 간의 간극을 좁히려고 했다. 또 다른 차이는 듀이는 두 교육 간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데 비해, 프링의 경우는 그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프링은 ‘직업교육은 상당히 신축성이 있는 용어로, 교육과 직업세계로의 준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많은 다른 방식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자유교육과 직업교육 사이에는 많은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Pring, 1993, p. 60).

84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에 관한 프링의 기본적인 입장은 자유교육에 기초해 있으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교육에서 직업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vocationalising liberal education)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직업교육화’(vocationalising)라는 말에 집착한 나머지, 자유교육을 좁은 의미의 직업을 위한 제한된 훈련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조화하려는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1)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2)교육의 주축은 자유교육이나, 동시에 (자유)교육은 직업교육과 같은 사회적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3)그러므로 자유교육을 직업교육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다음의 인용문은 이 점을 보여준다.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는 상당히 다른 출처의 비판들, 즉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 이상으로부터 제외되고, 교육이 실제 직업세계와 단절되며, 다음 세대의 사회적, 도덕적 통합의 실패와 공공기관에 있어서 공적 책임성의 부족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에 대한 반응으로 교육의 ‘직업교육화’는 언어적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교섭작용으로 기술되고 평가되는 만큼 교육과정 계획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아니다(1993, p. 64).


   프링은 여기에 이중적 고민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고민은 한편으로는 (자유)교육 내에서 직업적 요구를 반영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 획득되는 지식의 구조와 내용, 촉진되어야 할 대표적인 덕과 성향, 그리고 따라야 할 권위 면에서 상이한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직업교육의 목적은, 자유교육의 목적과는 달리, 지식 그 자체의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85

미래의 삶에 요구되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다. 직업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자유교육의 그것과는 달리, 지식의 형식으로 대표되는 이론적 지식보다는 직업세계에 요구되는 지식, 기술, 태도 등을 획득하는 데 초점이 주어질 것이다. 직업교육의 정당화는 내적 혹은 내재적 정당화보다는 외적 혹은 실제적 정당화에 의존할 것이다(1993, pp. 66-76; 1994, pp. 16-18; 1995, pp. 186-188). 그러면 프링은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를 어떻게 시도하고 있는가?

   프링은 자유교육의 개념을 재검토함으로써 통합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듯하다. 자유교육은 흔히 직업교육과 대립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자유교육은 직업교육 혹은 직업준비와 양립할 수 없거나 상치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양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련의 이원론 ― 이론과 실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등 ― 과 동일한 이유에서 잘못된 것이다. 프링은 ‘자유’(liberal)라는 말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유’라는 말은 합리성의 추구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반적인 능력, 예컨대 생각, 감정, 행위, 기술 등을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의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 아이디어는 결국 (자유)교육은 직업교육과 같은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교육은 직업적 요구와 같은 인간의 중요한 사회적 실제를 반영하고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교육의 관점에서, 프링의 통합안은 교육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셋째, 쉐플러의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안은 프링의 것과는 다소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프링의 입장이 직업교육의 도전에 직면해서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를 시도하고 있다면, 쉐플러는 거꾸로 직업교육의 ‘자유교육화’(liberalising)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86

쉐플러의 통합안을 ‘직업교육의 자유교육화’(liberalising vocational education)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쉐플러의 견해는 교육이 사회적 요구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프링의 견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프링이 교육에서 직업교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유교육의 개념을 확대하고 있는 데 비해, 쉐플러는 직업의 세계도 (자유)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쉐플러의 입장은 직업준비를 포함한 모든 교육이 자유교육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프링의 주장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자유교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쉐플러가 보기에, 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활동은 지적활동을 위한 능력이나 성향의 발달과 같은 모종의 준거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능력과 성향은 직업세계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교육 자체가 장차 직업생활에 필요한 지적 능력이나 성향을 가르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직업교육은 본래적 의미의 교육과 구분되는 ‘일종의’ 교육(a kind of education)이거나 특정 직업준비에 목적을 두는 ‘특별한’ 교육(a particular education)으로 볼 수 없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직업교육’이란 말은 순전히 동어 반복이거나 군더더기(sheer redundancy)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Scheffler, 1995, p. 45). 그러면 어떻게 직업교육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말의 반복을 피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가능성은 직업이라는 말을 ‘특정 직업’처럼 좁은 의미로 규정함으로써, ‘교육’과 ‘직업’을 분리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교육의 개념을 직업준비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방식이다. 즉, 교육의 의미를 직업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유교육에서 강조되기도 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나 성향을 형성시키는 일로 보는 방식이다. 쉐플러는 후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있어서, 교육이 하는 일은

87

신뢰성, 정직성과 같은 인격적 특성과 다양한 직업세계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지적 성향과 기술을 함양하는 일이고, 이러한 인격적 특성이나 지적 성향과 기술 등은 직업세계에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에 관한 쉐플러 아이디어의 특이성은 교육이 적어도 어느 정도 직업적 요구를 포함하는 현재의 사회적, 실제적 필요를 만족시켜야 하되,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특정 직업을 위한 기술이나 기교를 가르치기보다는 여러 실제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상황에서 스스로 지식을 조직하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1995, p. 54). 더 나아가 쉐플러는 교육이 직업세계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실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된다는 주장을 훨씬 넘어서, 직업의 현장 전체가 학생들에게 (자유)교육의 장 혹은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직업교육을 자유교육화함으로써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려는 쉐플러의 시도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첫째로, 그가 교육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려는 의도를 수용하더라도, 직업현장의 (자유)교육화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로, 설혹 직업교육을 자유(교육)화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직업교육의 측면에서 볼 때, 쉐플러의 시도는 실제 직업 세계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듀이의 이상이 너무 ‘유토피아적’이라는 후크(Hook)의 비판은 쉐플러에게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88

   지금까지 우리는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에 관한 세 가지 모델, 즉 듀이의 ‘자유교육적 직업교육’ 혹은 ‘직업교육적 자유교육’ 모델, 프링의 ‘자유교육의 직업교육화’ 모델, 쉐플러의 ‘직업교육의 자유교육화’ 모델을 검토했다. 이들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교육에서 직업적 요구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동일하며, 또한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간극을 메우려는 방식이 직업교육이나 자유교육과 같은 주요 개념들을 재해석하거나 확장함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주요 개념들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

89

   그러나 앞의 세 가지 통합 모델 중 어느 것을 취하더라도, 그것을 완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직업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모르기는 해도 여전히 직업적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직업주의자들은 아마 노동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을 요청할 것이다. 둘째, 자유교육론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교육의 개념을 상당히 불분명하게 만든다고 비판할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자유교육론자는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 노력을 교육 혹은 학교를 말살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할 것이다. 오우크쇼트(1972)는 비판적인 비유인 ‘춤추는 학교의 특성’을 통해, 교육은 결코 사업 혹은 장사가 될 수 없고, 학교는 사업장 혹은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교육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학생들을 인류의 문화유산 속으로 입문시키는 일이며, 이 점에서, 학교는 ‘사업장’ 혹은 ‘시장’(market places)보다는 차라리 ‘수도원’(monasteries)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 극단적인 입장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듯이 보인다. 수도원에서의 교육은 사회적 실제와 동떨어져 무기력하거나 언어적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시장에서의 교육은 교육의 본질적 목적과 자율성을 상실할 염려가 있다. 셋째, 학교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앞의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통합안은 우리가 학교교육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직업교육을 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해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앞의 모델은 여전히 이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 막상 그러한 방식으로 교육하려 할 때,

90

어떻게 해야 할지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교육에서 직업적 요구를 반영하려는 몇 가지 제안들은 여전히 이론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난점을 안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합안들과 그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도전을 줄 수 있다. 하나는 직업준비와 같은 사회적 요구에 당면하여, 교육의 개념에 관한 검토와 개념적 수준에서 교육을 보는 관점의 변화를 요청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은 사회와 교육의 실제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실제적 요청과 과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러한 분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교육과 학교교육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Dewey, J.(1916). Democracy and Education, New York: Macmillan.  

Hook, S.(1971). John Dewey and his betrayers, Change, 3, 22-26. 

Oakeshott, M.(1972). Education: the engagement and its frustration, in R. F. Dearden, et. al.(eds.), Edu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reason,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Pring, R. A.(1993). Liberal education and vocational preparation, in R. Barrow and P. White(eds.), Beyond Liberal Education: Essays in Honour of P. H. Hirst,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Pring, R. A.(1994). Liberal education and vocational education: a conflict of value, in J. Haldane(ed.), Education, Values and the State, The Victor Cook Memorial Lectures, Centre for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University of St. Andrews.

Pring, R. A.(1995). Closing the Gap: Liberal Education and Vocational Preparation, London: Hodder & Stoughton.

Scheffler, I.(1995). Reflections on vocational education, in V. A. Howard and I. Scheffler(eds.), Work, Education and Leadership: Essays in the Philosophy of Education, NY: Peter Publishing Inc.  

Whitehead, A. N.(1950). The Aim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2nd ed.), London: William & Norgate Ltd.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