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호(2000). 『학문과 교육(하): 교육적 인식론이란 무엇인가』.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제 1장 정초주의에 대한 대안
1.1. 고전적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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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정초주의에 대한 대안
인식론이나 방법론은 넓게 말한다면 학문적인 지식의 성격, 그 탐구와 형성, 그리고 평가기준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인식에 대한 혹은 방법에 대한 인식은 가능하다. 그러나 첫 번째의 인식에 비해 두 번째의 인식, 즉 인식론과 방법론은 아직도 어느 수준에서 지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두뇌가 그 자신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듯이 우리는 매일 인식활동을 하고 놀라운 학문적 성과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에 대한 설명에 이 있어서 매우 낮은 단계에 있다. 전통적인 인식론이나 방법론은 그 흐름의 전반적인 형태에 비해서 너무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이거나 혹은 스스로의 언어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인식은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그것의 특수한 종류의 하나로서 인식론도 당연히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인식론은 앎에 관한 앎으로서 인식의 자기성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앎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리고 참된 앎과 거짓된 앎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등등 우리는 앎 자체에 대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 자체가 인식론이 아직도 발전할 소지가 많은 분야임을 말해준다. 인식론에 있어서 최종적인 해답이나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다양한 학설들은 발전하는 인식론의 다양한 수준을 반영하고 있고, 우리는 오직 상대적인 것에 대한 성실한 연구를 통해서만 발전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인식 혹은 인식론에 있어서 특정한 하나의 관점에만 큰 비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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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 않고 다양한 관점들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인식 혹은 인식론으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절차를 취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을 보다 발전된 인식론으로 등장시키려면 그것이 이전에 전통적으로 이루어진 철학적 인식론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가 제안하려는 교육적 인식론은 이전의 인식론과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새로운 탐구영역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 근거라는 것은 우선 현존하는 인식론이 봉착한 문제가 될 것이다. 교육적 인식론은 전통적인 제반 인식론에서 제기된 난점과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연속선상에 있다. 이 때문에 본 장에서는 우리의 교육적 인식론을 제안하기에 앞서 이제까지의 인식론적인 전통과 그것이 당면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철학적 인식론자들은 역사적으로 사실의 세계에서 일어났었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해명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철학적 취향에 맞도록 재구성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이들은 인식의 과정에 포함된 복잡한 문제나 그들의 전문적 능력 밖의 주제는 생략하거나 혹은 선험적인 것으로 가정하여 넘어가는 편법을 취하였다. 그들의 논의는 결과만을 놓고 보면 너무도 그럴듯한 정합성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철학자로서 불가피하고 당연한 처리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하나의 헛된 가공에 불과할 것이다.
그 중 오늘날 크게 문제되고 있는 것이 전통적 인식론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정초주의(foundationalism)이다. 지금까지 서양의 인식론은 대체로 절대적 확실성이나 절대적 오류 불가능성이라는 이념 아래 전개되어 왔다. 철학자들은 인식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처음부터 아르키메데스적인 기점을 전제하고 그것에 대립하는 불확실하고 회의적인 모든 요소들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개념적으로 배제해 나가면 종국에는 의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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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가 없이 확실한 인식의 체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삶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의 불확실성을 철학의 본령으로부터 축출하였다.
인식에 모종의 질서와 정초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저변에는 항상 그 궁극적 기반의 결여에서 나오는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상대주의, 무질서, 혼돈, 그리고 혼란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불안을 해소하고 절대적인 근거나 기반을 찾는 과정에서 정초주의자들은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는 독립하여 미리 고정된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인식의 토대를 찾아 왔다. 즉 세계의 속성들이 어떠한 인지활동보다 먼저 확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상하고 재현하는 인식활동을 가정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지닌 표상의 타당성을 판정할 수 있는 궁극적인 법정은 표상의 의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실재와 완벽하게 대응하는 지식을 얻어내는 엄밀한 방법을 발견했다고 공언하고 그 주장과 이념에 반대하는 철학자를 상대주의자로 매도하였다.
그 전형적인 예들이 인식론의 중심을 차지해 왔던 경험론, 합리론, 칸트의 인식론, 그리고 현상학과 분석철학 등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정했던 바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철학적 인식론이 철학자의 관심을 충족시키고는 있지만 이 현실적인 부적합함은 그 어느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식론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은 어느 분야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듯이 인식론이 다시 한 번 그 발전의 출구를 발견해야 하는 위기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식활동은 언제나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에 대한 우열의 판단 역시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학문의 세계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인식론은 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당분간 좌초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런 인식론의 발전적 과정을 전제하는 입장에 서서 정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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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떠난 새로운 인식론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판명할 수 있는 절차나 방법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정초주의자들이 그토록 금기시해 왔던 상대주의를 그 대안으로 떠올린다. 상대주의자들은 다른 이론과 비교하여 한 이론의 우위성을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초시간적인 합리성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 과학이론을 평가하는 기준은 개인과 사회에 따라 변화며, 개인이나 집단이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이론의 우위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개인과 사회에 모두 상대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정초주의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무정부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설사 지식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인 우열을 판별하는 가능성조차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평가기준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하고 거기서 학문적 탐구의 바른 길을 찾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지식의 상대성을 인정한다면, 누가 어떤 자격을 가지고 이론의 우열을 판단할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주장해 왔던 해답은 주체가 배제된 모종의 객관적인 절차였다. 이제까지 인식대상과 인식의 대응을 모두가 따질 수 있다는 신념이 하나의 확신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더 이상 사실 자체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에게는 실재에 곧바로 접촉할 길이 애초부터 차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대응설적 가정을 받아들일 때 이 사실은 절망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식이라는 것을 좀더 현실에 부합한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새로운 인식론의 출발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지식이라고 불러 왔던 것도 기실 실재에 대한 그림이 아니라 실재와 우리 자신의 상호작용의 한 양상이라고 보면 지식의 우위를 판단할 주체는 그 판단에 앞서 해당 지식들을 먼저 증득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로 지식의 판단에는 그것을 습득하거나 습득하도록 돕는 과정이 불가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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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정초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교육적 인식론을 건립하려고 한다.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어떤 인식론도 성립될 수 없다. 새로운 인식이란 인식자 자신의 변화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것이 새로운 실재를 밝힌 것이라면 그 실재를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실재성을 입증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은 인식주체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 비교하고자 하는 지식을 증득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들 간의 상대적 우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전통적인 인식론의 붕괴와 더불어 등장하고 있는 무정부적 상대주의와 자의적인 주관주의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한 심정을 해소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 해결의 단초는 변증법, 해석학, 프래그머티즘, 신과학철학 등의 전통에서 교화라는 이름으로 이미 상당부분 시사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모로 그 해결의 중심부에 있는 교육의 과정을 시사하면서도 그 자체의 구심점과 내재된 인식론적 논리를 체계적으로 끌어내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그들의 입장과 교육적 인식론이 만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식론적인 개념 자체도 일관성 있게 재조정되어야만 한다. 그 점에서 본 장은 교육적 인식론으로 향하는 과도기적 논의로 보아야 할 것이다.
1.1. 고전적 인식론
인식론은 멀리 기원전 5세기의 희랍에서부터 지식의 정의, 형성과정, 그리고 정당화와 관련된 제반 물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그 이후 인식론의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거짓 믿음의 가능성을 배제하느냐에 있었다. 그 가운데 여기서 검토하려는 정초주의의 입장은 그 논의의 발전과정에서 확실한 것을 찾을 수 없다거나 공인된 사상을 의문시하는 회의주의, 혹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하나 이상의 상반된 관점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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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인정하는 상대주의와의 끊임없는 논변을 통해서 정립되어 왔다.
상대주의는 철학사적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주장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선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식될 수 없고, 오히려 인식하는 의식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최초의 선언이다. 이런 관점은 당시 소피스트들에 의해 널리 채택되었으며, 그들은 상대주의적 관점에 의해서 절대적 지식 혹은 진리를 부정하였다. 인식론은 이처럼 객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회의론과 혼란을 견제하면서 참된 지식을 얻고 또 평가할 수 있는 질서를 찾으려는 동기에서 점차 발전하였다. 서양 지성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은 인식의 보편적 질서를 찾고자 하였다.
보편적 합리성과 객관성을 찾으려는 열망은 중세의 신학과 결부하여 극단의 형태에 이르게 된다.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약 천년간 기독교가 유럽의 사회적 · 문화적 세계는 물론 개인적인 삶을 지배하는 동안 인식의 분명한 기점은 신으로 확정되었다. 절대적 진리와 가치가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독단과 신학적 세계관이 이전까지의 모든 회의론을 추방하였다. 인식에 대한 모든 평가가 자명한 기점에서 연역되어 나왔기 때문에 불확정성을 가정하는 학문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믿음, 헌신, 기도, 선한 일, 그리고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과 복종이 중요한 이 시대에는 희랍의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독립적인 철학은 더 이상 존속되기 어려웠다. 신학과 자연과학을 분리시키려는 베이컨(F. Bacon: 1561~1627)과 근대철학의 대표자로 등장한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학의 어두운 동굴을 빠져 나오려는 새로운 인식론적인 입장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들은 17세기에 출현한 근대 자연과학과 더불어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그 근간을 이루었던 입장이 합리론과 경험론이다. 이 모두는 신학적 확실성과 고대 희랍에서 시원한 학문적 탐구를 구분하려는 당시의 시대사조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 서로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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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의견의 상대성을 벗어나서 결정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구성한다는 취지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그런 입장은 데카르트에 이어 로크(Locke: 1632~1704), 칸트(I. Kant: 1724~1804)로 이어지는 근대 인식론의 전개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런 정초주의적 이상은 오늘날에도 현상학과 분석철학 등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이고 확실한 인식을 위협하는 요소의 등장은 언제나 인식론의 위기였다.
인식론은 그때그때의 위기를 맞아 해체와 재정립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인식론의 발전단계마다 이전의 인식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더 확실한 지식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스콜라주의에 대한 데카르트와 로크의 경우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칸트가 경험론과 합리론의 일면성을 공격한 경우에도 인식에 대한 정의 자체부터 포함하여 모든 것이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정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헤겔(G.W.F. Hegel: 1770~1831)에 의해서 일면적인 것으로 부인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현상학자들과 분석철학자들이 이전의 철학적 지식과 인식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 역시 해체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더 나은 인식론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단계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런 발전은 이전의 인식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가정, 개념적 혼동, 혹은 실재에 대한 무의식적 곡해가 점차 드러남으로써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이전의 인식론이 해체되고 새로운 것이 정립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상이한 인식론들 사이의 차이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로 공유하는 개념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개념은 그 체제 안의 맥락에서 규정된다. 이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인식론을 제안한다는 것은 이전의 것과 총체적으로 다른 것을 정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식론의 발전 역사에서 각 단계의 인식론은 그들 나름의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하에서 정초주의적 이상이 어떻게 진전되어 왔는가를 그 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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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기 위해서 세부사항들은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도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 약술에는 두 가지 점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오직 정초주의적 특징을 부각시킨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수한 이론 가운데 연원이 분명한 대표적인 몇 가지만을 든다는 점이다. 그들을 주목함에 있어서 중요한 준거의 하나는 그것의 내적인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가 추후의 시도에 의해서 어떻게 해소될 수 있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오늘날 봉착하고 있는 또 다른 위기를 뛰어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1.1.1. 데카르트의 합리론
합리론자들은 지식을 실재의 내재적 본질이 직접 포착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생각의 연원은 플라톤의 형상(eidos) 혹은 이데아(idea)의 개념에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 플라톤은 형상을 불변하고 한결같으며, 따라서 생성 또는 소멸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상정했다. 이에 더하여 이 불변의 것은 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파악된다는 것이 강조된다.
현대적인 의미의 합리론은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인정받는 데카르트에 의해서 확실하게 정립되었다. 중세와 현대의 건널목에서 사상적으로 방황하는 와중에 확실한 지식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정초 위에 세우려는 방법론적 야망을 가졌던 그는 <방법서설>이라는 저서를 통해 모든 객관적인 학문의 가능성을 선험적 주관의 명증성 위에 정초하려고 하였다. 그는 자의 필증성에 있어 발생적 측면은 도외시하고, 다만 공리와 같은 공허한 발판을 그것의 확고한 기점으로 전제한다.
자신의 생애를 단일하고 통일된 새로운 학문의 확립에 바치기로 결심한 데카르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확실성의 열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절대적 확실성에 이르는 방법만이 스콜라 철학과 종교적 독단론인 중세의 암흑을 추방하고, 철학자들 사이 그리고 교회와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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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사이의 극심한 논쟁을 종식시키고, 종국에는 궁극적이고 확실한 진리에의 도달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바로 의심을 통해 영원 부동한 지식의 구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열망했다. 그는 <성찰>에서 확고한 지식의 최종거점을 이른바 ‘아르키메데스의 일점’에 비유하였다.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아주 거짓된 것임을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경우처럼 모두 멀리 하련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확실한 것을 인식하게 될 때까지, 혹은 다른 것은 못 해도 적어도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까지 이 길을 가련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구 전체를 그 장소로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확고부동한 점밖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나도 다행히 단 한 가지 것이라도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면, 큰 희망을 품어도 괜찮을 듯싶다(최명관 역저, 1983, p82).
명확한 지식에 대한 데카르트의 열망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지식의 성립가능성을 보장하는 토대가 존재한다는 믿음에까지 도달한다. 그의 방법론은 그런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는 <방법서설>에서 ‘방법’이라는 것을 이렇게 규정한다.
방법은 확실하고 쉬운 규칙들이다. 이 규칙들의 덕택으로 이것들을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을 참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을 것이요, 또 쓸데없는 노력을 함으로써 지치는 일이 없이 도리어 그들의 지식을 점차적으로 쌓아 올리고 늘이면서,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참된 인식에 이를 것이다(최명관 역저, 1983, p250).
데카르트는 이른바 ‘방법적 회의’라는 전략을 택한다. 우리가 종전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의문시하는 데서 모든 연구는 출발한다. 그는 회의의 방법을 통해 독단과 환상, 검증되지 않은 신념 등을 배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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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토대 위에 명석 판명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에는 물론 중세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 미신적인 것 등이 당연히 포함된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도 인간의 이성능력에 대해서는 큰 믿음을 갖고 엄밀한 이성적 방법에 의해서 참된 인식을 검증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감각기관은 우리를 속인다. 예컨대, 감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태양의 크기는 유리창의 테두리 안에 있다. 이 때문에 감각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며 감각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대신 이성적 정신 혹은 오성이야말로 인식의 근원적인 능력이다. 감각과는 달리 태양의 진정한 크기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다. “내가 깨어 있을 때든 잠잘 때든 2 더하기 3은 항상 5요, 사각형은 네 변 이상을 갖지 않는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이처럼 그는 모든 학문으로 하여금 수학적 성격, 즉 과학적 성격을 띠게 하려 하였다. 그에게 있어 과학의 통일은 수학적 공리에 기초한 합리론적인 통일이었다. 그는 16세기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가 우주에 대한 새로운 지동설로 천문학을 변혁시키고, 17세기 갈릴레오(G. Galileo: 1564~1642)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을 토대로 하는 이성에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방법의 관건은 모든 사실들을 연역적이고 논리적인 하나의 체계로 정돈하는 것이다.
합리론은 먼저 순수하게 형식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하며, 그 전제 자체의 확실성이 어떤 것인지를 묻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먼저 확실한 기초를 마련한 후에 그 위에 점차적으로 인식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확실한 기점을 데카르트는 인식주체인 자신의 존재성에서 찾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자명한, 그리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제1의 원리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인식론에 있어서 어떠한 의심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진리는 하나의 의식적인 주체로서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진리이다. 그리하여 데카르트적 사고는 주관주의를 근대철학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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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인식하는 자와 인식된 것 사이의 이원론, 우리의 인식과정과 별도로 존재하는 세계라는 관념을 사용한다. 모든 자연현상은 물질적 실체의 기계적 운동으로서 필연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지배를 받는다. 물체의 모든 운동은 시계의 작동처럼 기계적 충격에 기인한다. 우리의 신체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며, 운동하지 않으며, 시계장치의 어떤 부분도 아니다. 생각하는 실체는 추론하고 기억하고 부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의지를 가지며, 이 때문에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진다. 그런 확실한 자아를 중심으로 우리는 나의 신체, 태양, 신, 물질적 세계 등의 존재를 추론하고 증명할 수 있다.
합리주의자들에 있어서 진리의 궁극적인 척도는 명증성에 있다. 모든 증명이 그 전제의 진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명백한 진리로 인정되는 것이 있다면 아무런 증명이 없이 직접적으로 명백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명백한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에서 발단한 명제 역시 너무나 자명하게 보이므로, 그 길 이외의 것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합리주의의 원조인 데카르트는 이런 방식으로 신의 존재까지도 입증할 수 있었다. [각주 1: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다. 첫째는 이른바 본유관념에 의한 방법이다. 우리가 나면서 지니고 있는 신의 관념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원인이 현실로 가장 큰 실재성을 띠고 있는 신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것, 둘째는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존재가 불완전한 것이라고 하는 데서 그것이 더 한층 완전한 존재를 나타내고 있음을 귀결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른바 ‘존재론적 증명’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최고 완전자인 신의 관념은 본질적으로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되물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근거한 전제 자체가 진정 자명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데카르트는 자아 외부의 세계를 자아의 명증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상호주관적 명증성의 차원으로 확장하지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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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여기에는 유아론적 독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만인에게 직접적으로 명백한 것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명백한 것인가? 타인들이 자명한 근거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것의 인식론적인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많은 것들이 아주 명백하게 보이는 순간 우리에게 그 반대는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후의 경험에 의해서 이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틀린 것이거나 불확실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또한 나에게 명백한 진리가 남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론상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아르키메데스적인 기점에 대해 당장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1.1.2. 영국의 경험론
경험론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효시이다. 그도 역시 데카르트의 경우처럼 어떻게 하면 학문, 특히 자연과학을 중세적인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그 해결방안을 이성에 기반한 주관적 확실성에서 찾은 데 비해, 베이컨은 감각지각이 인식의 획득과 검증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원리를 정립하였다. 여기에는 감각기관에 의한 직접관찰과 도구사용 및 실험에 의한 간접관찰이 포함된다.
이런 경험론적인 전통이 이후에 데카르트가 추구한 정초성을 의심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계기가 된다. 경험론의 전성기는 로크(J. Locke: 1632~1704), 버클리(G. Berkeley: 1685~1752), 그리고 흄(D. Hume: 1711~1776)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당시에 이루어진 뉴턴의 업적을 설명함에 있어서 데카르트와 견해를 달리하였다. 데카르트는 그것을 합리성에서 찾았지만 이들 경험론자들은 그의 방법이 오히려 정반대였다고 설명한다. 경험론자들은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단순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추출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과학적 지식이 새로운 과학적 도구를 통해 관찰된 감각적 경험 자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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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유럽의 대륙에서 합리론이 득세할 무렵 영국의 로크는 플라톤에서 출발하여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1225~1274)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는 합리론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철학의 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인간에게는 그런 선천적인 능력이 애초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정신은 출생과 더불어 관념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다. 로크는 우리의 마음이 공허하며 결국 외부에서의 감각적인 투입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마음을 ‘백지표(tabula rasa)’로 규정하였다. 이 백지 위에 경험에 의해서 글씨가 쓰여지는 것이다. 인식의 기원은 외적 대상들에 의해서 형성된 인상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자극과 반응의 연합에 의해 형성된 습관의 한 형태이다. 여기에는 외부적인 자극 혹은 투입이 감각을 통해서 원자료로 그리고 순수하게 피동적으로 수용된다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더 나아가 로크는 모든 권위와 전통을 거부하고 감각적 증거만을 토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지식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론적 정초주의에 대해서도 차츰 의문이 대두되었다. 예컨대, 버클리는 경험론의 논의를 더 밀고 나아가 철학자들이 흔히 말해 왔던 객관적이고 궁극적인 실체 자체에 대한 경험의 난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거짓이며,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물질적 실체의 존재는 오직 실체들이 지각되고 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자연법칙들이 물질적 실체들의 법칙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엄격히 말하면 단지 우리들 자신의 지각들 또는 관념들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경험주의적 의문 속에서 흄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사상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자기 존재 증명과 신의 존재 증명을 무의미한 것으로 거부했다. 그는 정신적 또는 물질적 실체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부정한다. 그는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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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결과라는 관념을 파괴함으로써 데카르트의 기계적 인과론에 반대했다. 그리고 인식에 있어서 데카르트적 정초성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들의 모든 과학적 지식은 전혀 참된 것이 아니고 확실성도 갖지 않는다.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감각기관에 의해 우리에게 부여된 것들을 참이라고 느끼는 우리들의 신념에 기초하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데카르트가 인식의 확실성을 위해 확립한 정초를 파괴하는 일의 선봉에 섰다.
흄은 모든 관념이란 그것에 대응하는 인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인상이 없는 관념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경험을 구성하는 원자인 개별적 인상들의 조합에 불과한 관념은 유사성, 시공간의 인접성, 그리고 인과적 추론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라는 관념은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절대성과 필연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우리 정신의 사유방식 혹은 주관적 습관과 강제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어떠한 인과원칙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이성적 증명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내일도 태양이 떠오를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논리적인 필연성에서 나올 수 없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모순도 없다.
여기서 비로소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구분된다. 흄은 사실의 문제에 관한 한 이성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보고 이성을 수학과 논리학의 영역에 국한시킨다. 이런 근거로 그는 사실에 대한 명제와 관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제를 구분하였다. 후자는 수학적 명제의 경우처럼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이성은 단지 논리적 · 수학적인 증명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는 공허한 추상적 · 형식적 진리일 뿐이다. 아울러 그는 철학자들이 주로 다루어 왔던 도덕 판단은 오직 무엇이 동의할 만한 것이며, 무엇이 우리들과 다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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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에게 유용한 것인가에 대한 감정과 정서에 기초할 뿐인 것으로 치부하였다.
근대 영국철학에서 이어온 경험론은 이처럼 말 그대로 모든 인식을 경험에 환원시킨다. 이제 인식의 기점은 데카르트적인 이성에서 감각적 관찰과 경험으로 전환된다. 영국의 경험론은 특수하게 그 근원적인 경험을 보고 듣는 것과 같은 감성적 지각에서 구하고 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확실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해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소박한 경험주의 혹은 귀납주의자들은 관찰이 과학적 지식을 세울 수 있는 확실한 토대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누구든지 그의 감각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관찰언명을 확증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 속에서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의 객관적 검증의 논리를 제시한다. 그들은 관찰보고의 참과 거짓은 이론적 수준의 문장에 호소함이 없이 직접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가정하였다. 그러나 진정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경험론자들에게 그토록 명백해 보이는 경험도 아직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처음부터 그렇게 명백한 개념이 아니다. 경험론이 아르키메데스적 기점으로 삼는 감각적 경험은 과연 신뢰로운 것인가? 경험론자들의 주장대로 우리의 감각이 그처럼 분리되고 고립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우리의 마음이 그토록 수동적인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지각할 때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이해의 틀에 따라 바라보게 된다. 말하자면 근원적으로 보고 듣는 모든 인간의 지각은 언제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유도된다. 그러니까 관찰도 우리가 사전에 가지고 있는 생각 혹은 개념의 틀과 독립된 것일 수 없다. 여기서 다시 경험론의 정초성에도 의문의 여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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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칸트의 인식론
17세기와 18세기의 인식론에 있어서 정초주의의 기점은 합리론에서는 이성이었고, 경험론에서는 경험이었다. 이런 기점은 서로가 다른 것을 배척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주장되었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칸트의 해답은 그 중 하나에 있지 않고 양자 모두를 극복하는 데 있었다. 칸트는 서로 대립적인 합리론과 경험론 양자를 종합하려고 하였다. 이는 특히 전통적 신념들을 파괴하는 흄의 회의론에 ‘대답’하고, 또 다른 의미의 인식의 정초를 발견하는 작업이 되었다. 이 작업에서 칸트는 단순히 양자를 적당히 무마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답변은 인식론에 있어서 위대한 ‘전환’이라고 불리는 업적을 성취하게 된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인식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경험을 벗어나서는 어떤 지적인 의미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도입한 데 있다. 그는 합리론과 경험론은 부분적인 관점에 불과하며, 선험적 관념이 감각적 자료를 여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경험의 의미를 두 가지 점에서 제약하였다. 하나는 최종적인 근거는 오감에 의존해야 한다는 식의 경험주의적인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오성적인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런 제약과 역량을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으로 가정함으로써 인식의 또 다른 정초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작업에는 오성의 적절한 용도와 사변적 형이상학에 나타나는 이성의 적절치 못한 용도의 경계를 구분하는 복잡한 개념적 변화가 포함된다. 먼저 개략적으로 말한다면 그는 오성이 어떻게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단순한 지각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컨대, 그는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감각적 자료는 우리의 감성적 직관과 오성의 형식에 의해서 여과됨으로써 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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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았다. 감각이 경험의 내용을 제공하듯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범주가 경험의 형식을 제공한다. 이로써 잡다한 감각내용이 하나의 통합된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를 ‘통각의 선험적 통일(transcendental unity of apperception)’이라고 칭한다. 이런 착상과 새로운 개념화는 이전의 경험론과 합리론을 비판하는 가운데 정립되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감각인상으로만 환원시키는 흄의 인식론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안다는 것을 단순히 감각인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 흄의 생각을 거부하였다. 칸트가 본 지식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앎은 반응의 연합이나 습관들로 환원될 수 없는, 그리고 감각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은, 그러나 논리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관념들을 포함한다. 깊이 생각해 보면 감각적 인상을 조직하고 대상경험과 과학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모종의 본유적 개념이 필요하다. 흄은 우리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관에 관한 어떠한 감각인상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의 인과적 법칙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정신 자체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관의 개념을 부과하기 때문에 경험론자들이 생각하는 감각적 인상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부분이 칸트의 체계에서는 ‘순수오성’의 개념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정신개념이 플라톤의 이데아개념이나 데카르트의 본유개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칸트에 따르면 그들은 독립적인 실재의 구조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의 구조일 뿐이다. 이것들의 기본이 되는 관념을 칸트는 ‘범주’들이라고 불렀다. 그 범주들은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기보다는 오직 인식론적으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 범주들이 없이는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바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바의 세계이다. 즉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만드는 세계인 것이다. 우리들이 외부에서 받아들인 인상들은 비록 외재하는 것들의 영향이지만, 관념들을 그것에 적용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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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세계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합리주의나 경험론이 그러했듯이 칸트의 인식론 역시 가장 확실한 지식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정초주의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칸트의 새로운 해법이 이전의 전통과 다른 점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인식의 영역을 한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는 바의 사물들과 그 자체로서의 사물들, 현상적인 세계와 실체로서의 세계,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바의 세계(phenomena)와 우리의 지식 너머에 있는 그 자체로서의 세계(noumena)를 구별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우리가 물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고 순수개념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에게 나타나는바 대로의 사물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학문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분명히 밝힌다. 그는 감각에 주어질 수 없는 초감각적 실재들은 참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칸트의 선험철학에서 모든 인식의 대상은 물 자체가 아니고 언제나 인식하는 주관에 투여된 대상에 국한된다. 후자에 대한 인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상에 대한 판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호주관적이며 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내세우는 객관적 경험의 근거이다. 칸트는 이 점에서 자연과학이 무엇이 확립된 것이고 무엇이 확립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합의함으로써 별다른 탈 없이 점진적으로 성공을 거듭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과학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직 현실적이거나 가능한 경험세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현상에 대한 이론을 관찰과 실험에 근거하여 검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선험적인 개념이나 범주에 의해서 정리되고 검토된 경험만이 세계에 대한 표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당시까지의 사변적 형이상학은 어떤 결론으로 인도해 주는 믿을만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물론 칸트는 형이상학의 가치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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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그것은 순수한 예지적 실재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는 진정한 학문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에 대한 진정한 지식은 경험에 토대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은 이러한 지식을 가능한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사변적 형이상학의 착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경험적 근거를 따질 수 없는 이런 주장은 곧 이율배반과 모순, 오류 등을 가져오는 근원이 된다고 본다. 그의 비판철학의 주된 과제는 이러한 사이비 과학의 공허함으로 폭로하는 데 있었다. 이런 급진적인 입장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적 언설은 일종의 동어반복을 고안해 내고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용어를 분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참된 지식과 객관적인 인식가능성의 조건으로 그 당시 발전하는 자연과학의 객관적 방법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칸트 당대의 자연과학 역시 이미 이전의 합리론과 경험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외적인 자연계는 흄과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감각 인상을 통해서나, 데카르트와 합리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명석 판명한 이성적 관념들과의 일치를 통해서는 그 자체의 법칙들을 부여하지 않는다. 칸트는 뉴턴의 법칙이 설정한 질서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오성개념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자연이 인간정신에게 그 자신의 법칙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 고유한 법칙을 자연에 부과하여 모든 감각적 질료들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개념이 우리의 모든 경험, 곧 자연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을 형성하고 조직하고 구성한다는 인식론의 새로운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인식대상은 언제나 주관의 창조물이라는 이런 입장의 전환은 그 이후의 과학철학과 과학적 인식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요컨대, 칸트는 당시까지 철학이 구축해 왔던 논의를 불신하고 자연과학에 인식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식론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간단히 말하여 그의 인식론적 체계의 구축은 이렇게 진전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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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먼저 인간의 대상 인식은 감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상을 먼저 인식하는 인간 주체의 순수한 조건들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면서 칸트는 이러한 탐구를 ‘선험적(transcendental)’이라고 이름지었다. 그 선험적 탐구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선험적 범주들이다.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 확고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적어도 칸트에 있어서는 선험적 범주들이다. 그것들은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으면서도 경험의 발생시에는 소위 ‘지식’으로 나타나는 선천적(a priori) 지식이다. 공간과 시간은 감각경험의 선천적인 필수조건들이다. 이런 감각직관을 통해 나타나는 대상을 칸트는 ‘현상’이라고 한다. 오성은 현상들과 직접 관계하여 그것들을 자신의 판단 안에서 통일한다. 반면 이성은 현상과 직접 관계하지 않고 다만 간접적으로 혹은 매개적으로 관계할 뿐이다. 말하자면, 이성은 오성의 개념들과 판단들을 받아들여 그것들을 보다 고차적인 원칙에 비추어 통일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있어서 경험을 초월하거나 초감각적 실재를 기술하는 어떠한 형이상학도 학문적인 인식이라고 정당하게 주장될 수 없다. 그런 시도는 궤변적인 논증, 논리적인 오류, 혹은 이율배반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미리 실패로 운명지어진 것으로 본다.
이런 복잡한 우여곡절을 거쳐 칸트는 우리가 가진 지식을 이른바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으로 구분한다. 분석적 판단은 “모든 물체에는 延長性이 있다”라는 명제의 경우처럼 술어가 주어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판단이다. 그러나 종합적 판단은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는 명제의 경우처럼 주어에 대해 그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술어를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이 경우 주어와 술어의 연결관계는 긍정되지만 술어는 주어로부터 단순한 분석에 의해서 끌어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경험 속에서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주어진다. 이런 경우 그 판단은 후천적으로(a posteriori) 종합적이다. 이런 도식에 의해서 칸트는 단순히 분석적인 것은 아니면서도 선천적인 종합명제를 주장했다. 예컨대 수학, 순수기하학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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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인식론은 철학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것은 현대철학에 이르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현대철학에서의 인식론은 대체적으로 데카르트적 전통을 이어받은 현상학과 흄의 전통을 이어받은 분석철학 혹은 논리실증주의로 양분된다. 그러나 이런 현대철학의 특징은 칸트의 인식론을 거쳤다는 점에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두 가지 인식론적 조류를 간략히 소개하려고 한다. 그 이전에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칸트적인 요소를 이어받고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현상학과 분석철학이 출현한 계기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철학이 과학의 발전에 비해 침체되어 있다는 불만에서 비롯하였다. 이들 학파는 이제까지의 철학 및 과학적 사변이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출현하였다. 철학은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또한 칸트는 이전의 철학을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할 근거를 탈취하였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디로 가야 하며, 그 방법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철학의 새로운 활로는 자연과학이나 그 전범을 따르기로 한 심리학 이외의 영역에서 도출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은 결국 인식의 문제를 이전의 철학보다 더욱 엄격하게 설명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적어도 심리학보다는 더 엄격한 방법적 원리를 철학이 확보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은 철학이 이제까지 무의미한 사변으로 표류했음을 비판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엄격한 정초주의적 특징을 드러낸다. 그들은 칸트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거하고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에 관심을 국한시켰다. 그리고 그런 혁명적 과업을 완수함에 있어서 이들은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전개한 프로그램과 유사하게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사고의 명료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현상학의 창조자인 후설(E. Husserl: 1859~1938)이 내세운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현상학’이나 논리실증주의가 내세운 ‘과학의 통일’ 등의 기치는 모두 이전의 철학보다는 더욱 확실한 인식론적 단초를 확보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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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각자의 방법이 갖는 확실성과 객관성을 확신하더라도 현상학과 분석철학 간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van Peursen, 1972). 이들 간에는 마치 합리론과 경험론이 인식의 근거를 다른 곳에서 찾았듯이 인식론상의 큰 대립이 있다. 여기서 다시 칸트 이전에 있었던 것 같은 인식론 내부의 균열이 엿보인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들은 칸트를 거치면서 정초성이 좀더 세련되는 양상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설을 필두로 하는 현상학은 데카르트적인 회의와 주관성을 전승하고 있는 데 반해, 분석철학 혹은 논리실증주의는 흄의 경험론을 전승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인식의 정초성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가 서로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심각한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논리적인 구조를 찾는 과정에서 현상학자들은 그것을 주체의 특수한 행동의 하나로 봄으로써 주관적인 축에 강조점을 둔다. 이에 비해서 분석철학자들은 논리적 과정을 주체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객관적인 축에 비중을 둔다. 후설이 관계를 수립하고 개념을 정의하는 데 직관을 말하고 논리적인 통찰을 중시하는 반면에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지각이나 혹은 논리적인 조작규칙을 수단으로 한다. 이 때문에 현상학적 방법은 분석철학자의 눈에 지나치게 환상적이고, 직관적이며, 불합리하고, 논증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분석철학자의 실증적 방법은 현상학자들에게는 동어반복의 규칙이나 끌어들여 재단하고 분석하는 데만 몰두하여 철학 자체를 말장난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각각을 이제부터 검토해 보기로 하자.
1.1.4. 후설의 현상학
현상학의 창시자는 후설(Husserl, 1913, 1950, 1954, /1965)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주로 그의 주장을 토대로 현상학의 정초주의적 특징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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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볼 것이다. 후설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학의 등장과 더불어 위축되고 모호하게 된 철학의 정체성을 새로운 토대 위에 확고하게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객관화하고 자연화하려는 유럽문화의 경향을 위기로 간주하고, 이른바 ‘제 1 철학’,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그리고 과거에 철학이 그래왔듯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제시하는 보편학을 정립하기 위해 현상학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철학을 완전히 다시 시작할 필요성에서 출발한 일종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단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의 확실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현상학은 한마디로 현상(phenomena)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타나는 것으로서의 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 전환만 보아도 후설이 종전의 형이상학을 거부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현상이란 개념은 이전의 인식론에서 썼던 것과는 다른 의미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과 칸트는 본질적으로 숨겨져 있는 가상적인 존재(noumena)의 대칭어로 현상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나 후설에 와서 현상이라는 개념은 전혀 다른 이론적 의미로 탈바꿈한다. 후설에게 현상은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본질(essence)에 대한 명칭이다. 그는 이런 의미의 현상 자체, 즉 본질이 사실적인 사고과정과 경험적인 검증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인식되는 방법으로 이른바 ‘현상학적 환원’을 제안하였다.
현상학적 방법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은, 주관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모사하거나 반영하는 단순한 표상작용이 아니라 그런 대상을 있게 하고 형성하는 생산적 기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제 모든 존재는 주관에 의해서 구성된 존재로서만 그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 주관은 칸트에서처럼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칸트의 선험철학을 더욱 확장하고 철저하게 완성시키려고 한 후설의 의도를 알게 된다. 이제 칸트의 범주는 구성되어야 할 현상으로 바뀐다. 개별적인 현상 ‘X’는 개별적인 학자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재라고 가정될 수 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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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에 대한 파악은 종국적으로 개별 학자들의 이론적인 구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상학이 칸트가 인식론적 토대로 삼았던 선험성을 벗어나고 있다면, 후설은 이제 그 인식의 최종적인 토대, 즉 정초성을 완전히 벗어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현상학적 구성의 작업을 인정하면서도 구성의 결과는 불변적이어야 한다고 봄으로써, 역시 최종적인 거점에 대한 집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의 본질은 상상적 변이를 통해서 실현되는 대상의 술어들 가운데 불변하는 것에 의해 성립된다. 그것이 바로 현상학에서 파악하려는 현상 ‘X’이다. 그 현상에는 우리가 흔히 수학과 논리학에서 취급하는 추상적인 실재도 포함된다.
현상 ‘X’는 후설에게 특별한 의미에서 일종의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눈으로 감지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관념에 의해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간단한 예가 직각 삼각형이다. 직각 삼각형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본질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는가?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직각 삼각형이 있다. 이 삼각형의 가능한 형태들을 무한대로 변화시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직각 삼각형 각각의 개별적 특성과 독립된 그것의 본질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의 본질은 그것에 대한 모든 술어들의 합이며, 그것의 상상적인 삭제 또는 제거는 삼각형의 소실을 가져올 것이다. 이 점에서 삼각형은 관념적 객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상학은 본질을 파악함에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인식태도상의 철두철미한 전환을 요구한다. 우선 후설의 현상학은 스스로를 사실학과 구분하여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개별적인 존재자, 즉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본질을 바라보는 것은 엄밀히 구분된다. 감각적 지각의 소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계속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동일한 것만이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경험적인 소여를 비경험적인 타당성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논의의 과정에서 그가 말하는 이 환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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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드러나겠지만 이것은 실재가 우리들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그것이 물체화되기 이전의 우리의 지향적 경험을 낳는 축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처방한 현상학적 방법이다.
현상학은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의문시하고 어떤 것이건 간접적으로 주어지는 타당성에 근거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 후설은 먼저 한 점의 의혹도 없는 확실한 인식을 추구했던 데카르트적인 회의의 방법을 한 단계 진전시켜 무전제의 원칙을 적용하였다. 그 점에서 그의 인식론은 역시 철두철미하게 정초주의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현상학은 절대적으로 그 어떤 공리도 전제하지 말아야 한다. 기존의 모든 신념과 가정이 갖는 타당성을 정지시키고, 다시 거기에 선험적 주관의 영역을 확보하여 그것으로부터 확실한 인식을 구성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처방하였다.
현상의 본질구조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이전의 인식들을 일단 접어두어야 한다. 여기에는 자연주의적 선입관, 생활세계적 인식, 세계에 관계되는 이전의 학문적인 체계가 포함된다. 이런 것들이 대상의 본질적 특성을 근원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은폐로부터 벗어나는 여러 단계가 바로 환원이라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환원이 제반 인식체계의 전면적인 포기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상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세계의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은 본질을 파악하려는 현상학적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장애가 되는 것이다.
후설에 의하면 질료적인 실재는 오직 의식의 상관자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접하는 외부적 대상을 곧바로 실재 자체인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일상적 세계를 최후의 대상세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참된 인식은 의심의 여과를 거치지 않은 뿌리깊은 사고의 습관이나 정신적 한계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문제시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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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자연과학적 태도이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른바 ‘판단중지’라는 특별한 방법이 도입된다. 이것은 질료적인 실재를 절대화하는 우리 사고의 가면을 벗기고 그것을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판단을 중지한다 함은 제반 정립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정립이 지닌 어떤 자연적인 성질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설은 그 환원을 마치 수학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항을 괄호 속에 집어넣는 것에 비유한다. 선험적 판단중지는 바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것을 은폐하고 있는 사고체제나 습관을 잠시 괄호 안에 넣어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상식은 필요하다. 또한 자연과학은 그 한계 안에서 탐구대상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들을 쌓아 오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인식의 존재나 가치 자체를 현상학이 송두리째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후설이 진정 관심을 갖는 것은 상식이나 자연과학의 한계 밖에 있는 대상을 인정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또 다른 철두철미한 방법론이다.
현상학은 선험적 자아의 순수직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본질에 도달하여 그것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 분야는 현상이 드러나는 그대로를 솔직히 받아들이자는 정신을 바탕으로 삼는다. 현상학은 대상들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들에 관한 연구이다. 말하자면 현상학은 기본적으로 직접 현전하고 있는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특징을 갖는다. 후설은 대상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전함으로써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거나 혹은 전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은폐되어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판단중지나 현상학적 환원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면 그 결과로 인식자에게는 데카르트의 경우처럼 확실한 자아 혹은 의식만이 남게 된다.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의 일면적인 명백성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특성은 은폐되어 있다. 우선 대상의 본질은 경험주의자들이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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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처럼 우리와 분리된 세계에 대한 표상 혹은 인상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 그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감각적 기관에 주어지는 경험의 사실성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순수 가능성의 작용으로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실험이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선험적으로 순수화된 현상의 자유로운 지평과 그에 따른 특유한 의미에서의 현상학적 공간이 열린다.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이른바 현상을 출현시키는 현상학적 구성의 작업을 수행한다. 구성적 작업에 의해 산출된 통일체들은 하나의 통찰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 구성된 대상이 바로 ‘현상’인 것이다.
현상학의 가장 큰 주안점은 인간과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접촉점, 즉 주관-객관의 약정적인 분리 이전의 근원적인 관계를 재정초하려는 것이다. 후설이 추구한 현상은 정확히 주관이 근원적으로 객관과 관련되어 있고, 객관이 근원적으로 주관과 관련되어 있는 경험적 접촉점 또는 중심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통적인 실체의 범주는 관계의 범주로 대체된다. 현상학에서의 ‘본질’은 모든 현사실적 사실성과는 무관하지만 그것에서 구성적으로 생겨나는 대상성이다. 여기서 철학에서 통상 말해왔던 ‘실재’란 그 자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인된 작용의 상관자를 의미하게 된다. 그 관계는 형식상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두 실체(예를 들면 인간과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세계는 일차적으로 관계 속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반성적 논리의 수준에서만 그들을 분리된 실재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각주 2: 후설은 실증과학이 중립적 사실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원래의 것과는 동떨어진 단순한 추상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상학에서 경험적 사실성은 인식주체의 주관적 의식이 사실적 체험으로부터 본질 직관에까지 참여하는 과정과 직결된다. 후설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의 의미는 단지 의식의 현상 [각주 3: 이것은 실증주의적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계적 인과율을 벗어나며 심리학적인 이해를 벗어난다. 오히려 이것은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설정된 후설 나름의 고유한 개념인 것이다.]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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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의식은 지향성을 갖는다. [각주 4: 이 사실을 후설에게 일깨워 준 사람은 19세기 스콜라풍의 철학자 브렌타노(F. Brentano)였다.] 즉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은 의식하는 작용과 의식되는 대상의 양극을 갖는 주관과 객관의 상관관계로 성립한다. 후설은 전자를 ‘노에시스(noesis)’, 그리고 후자를 ‘노에마(noema)’라고 칭하고 그들 간의 상관성을 중시했다. 후설에 있어서 관념의 진리성은 그 관념을 구성하는 현상학적 자아의 주체적 자각에 의해서 확인된다. 그는 명증한 자기현존의 직접적인 확실성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가 말하는 명증성은 노에마의 표상과 노에시스의 의미부여가 일치하거나 혹은 순간적인 포개짐이 이루어질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런 명증만이 반복되는 진리의 보증수표가 된다.
이처럼 후설에 있어서 진리의 확인은 개인의 자각에 근거한다. 후설은 명증성을 사념 작용과 이 작용의 대상인 ‘그 자체’로 현전하는 것, 즉 진술의 현실적 의미와 그 자체 주어진 사태가 일치하는 체험이며, 이 일치의 이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명증성과 진리를 상관적인 등가적 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데카르트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앞에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도달한 것이 현상학적 잔여로 남은 소위 ‘선험적 자아’, ‘선험적 주관성’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입장을 환원하고 나면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자아에 도달한다. 여기서 후설은 데카르트적 출발점, 즉“나는 존재한다”라는 내적 명증성을 이어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후설 자신이 말하는바 그의 철학의 아르키메데스 점에 도달한다. 후설은 철학사에 나타나는 모든 상대주의는 이 내적 명증성 위에서 무너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체험이 체험되는 그대로 지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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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인식’은 바로 내적 명증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동안에는 체험의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 이와 같이 후설은 명증성을 일종의 객관적인 필연성과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였다. 명증적인 타당성은 사실세계의 변화에 하등의 영향도 받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것은 심리적인 의미 혹은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오류의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술 자체의 논리적 내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후설의 현상학은 모든 존재에 내재하고, 일상적인 세계 안에 숨겨져 있고, 익명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로고스가 인식주체에게 명백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진리란 존재의 양태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그는 진리가 본질상 지향성 자체의 충족에 간직된 것으로 보았다. 이 충족은 이중적인 의미의 진리로 수행된다. 하나는 지향된 존재자 자체의 자기부여(진리 자체)의 충족이고, 다른 한편 이 충족은 동시에 작용지향성 자체의 충족이다. 이런 한에서 하나를 통해서 다른 하나의 지향이 충족되고 진리(이성으로서의 진리)에 이른다. 후설의 인식론에서 주목할 점은 명증성을 통해서 이론적 인식을 궁극적으로 논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얻는 이론적 지식은 더 이상 부정될 수 없는 순수한 것으로 가정된다.
후설의 현상학은 지식의 형성과정과 진리의 발견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종전의 어떤 인식론보다 한 발 앞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문제는 그 구성이 한번에 종료될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선험주의는 ‘필연적인 확실성’과 진정한 ‘단초’, 새로운 토대, 철학에서의 아르키메데스적인 점을 약속해 준다. 그러나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노출된 본질은 후설이 가정했던 것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과 완전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것은 선택과 논쟁, 그리고 수정에 개방되어 있다. 확실성과 완전성에 대한 약속 자체가 현실에 비추어 지나친 것이라는 것은 후설 자신의 학문적 탐구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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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이 불변의 본질을 추구하고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후설이 현상학적 방법을 썼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그의 전기와 후기의 사상적인 변천을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선험적 주관성의 구조가 필연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후설도 추후에 자신의 경력에서 발견된 오류가능성을 시인하고 있다. 그는 주요 저작에서 자신의 방법을 새로운 각도에서 첨가 · 수정 · 확장하기를 거듭했다. 이처럼 인식은 아무런 선입견도 없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 의미를 물려받고, 또 미래에 구성될 의미에 참여하는 한 모든 인식은 근원적으로 시간의 변화과정에 놓여 있다. 역사의 모든 전제를 넘어서서 현전에 대한 순수직관을 열정적으로 추구하여 근본적인 기점을 찾으려고 했던 후설의 실패는 곧 현상학적 방법 자체의 한계를 말해 준다.
후기 후설에 있어서의 본질은 영원한 이념도, 자율적인 자아의 선천적인 구성물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주관들이 역사적 시점에서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도달한 합의물일 따름이다. 이 점이 바로 현상학이 끝없이 열려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자, 자기완결적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제안으로, 그리고 해결이라기보다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후설이 말하는 현전을 이후의 철학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시한다. 이 점은 그의 계승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평자인 하이데거(M. Heidegger)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1.1.5. 논리실증주의
현상학과 동시대에 출현했지만 그것과는 판이한 전통을 이어받은 현대철학이 있다. 그것은 논리실증주의, 분석철학 혹은 과학철학이라고 불리는 인식론적 조류이다. 이것 역시 20세기 전반에 철학이 그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그 해법의 뿌리는 로크와 흄을 위시한 영국의 경험주의자들과 후에 인간의 지식과 판단을 논리적으로 분석한 칸트적 전통에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단하여 주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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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동조세력을 형성함으로써 하나의 철학적 학파로 정착하게 된 이 사조는 과학적 진리의 확실성이 실증적인 근거에서 얻어지는 것처럼 철학적 인식에 있어서도 실증적 확실성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엄격한 논리적 과정으로서의 귀납적 소여와 논리가 이론을 확정하거나 반박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한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논리실증주의의 한 가지 특징은 지식을 발견의 과정과 분리시켜 정당화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서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결과의 확인을 일치시키려는 현상학적 방법과 특별히 대조되는 측면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역사적 조건과 발견의 맥락을 선험적 전제사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들은 지식의 형성과정보다는 그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취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이런 일반적인 입장은 다음의 라이헨바흐(H. Reichenbach, 1951)의 언명에 잘 반영되어 있다.
불합리한 추측으로서 가설-연역적인 방법의 신비로운 해설은 발견의 맥락 [각주 5: 인용문에서 강조를 나타내는 부분은 본문의 것이다. 이하에서도 그런 관례를 따르기로 한다.] 과 정당화의 맥락을 혼동한 데서 비롯한다. 발견의 행위는 논리적인 분석을 회피한다. 천재의 창조적인 기능을 인계해 받아내는 ‘발견의 기계’가 고안될 수 있는 어떤 논리적인 규칙도 없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을 설명하는 것은 논리학자들의 과제가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의 모든 것은 주어진 사실과 그 사실들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그에게 제시되었을 때 그들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환언하면, 논리는 정당화의 맥락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관찰적 자료와 관련하여 한 이론을 정당화하는 일은 귀납적 이론의 주제이다(p.231).
위의 언명에서 잘 밝혀졌듯이 논리실증주의가 지식을 발견해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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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그 결과를 정당화하는 작업을 구분한 것은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철학의 독특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적어도 라이헨바흐가 보기에는 전자는 심리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귀납적 이론을 추구하는 학문의 관심사이다. 거기에는 어떤 확실한 정형이 있을 수 없으며 다분히 우연적인 인과관계의 해명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논리학자나 철학자들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본다. 이런 이유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후자만을 자신들의 특별하고 고유한 탐구영역으로 국한시키는 입장을 택했다. 이것은 지식의 발견과정 자체를 심리적인 것과 구분해서 철학의 본령을 찾으려고 했던 현상학의 시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서, 일단 말썽의 소지가 많고 귀찮은 부분은 철학의 영역에서 제거해 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한 전력이다.
인식의 문제를 그렇게 갈라놓고 해결할 수 있는지는 교육적 인식론과 관련하여 더 자세하게 비판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런 편리한 해법을 따르면, 과학적 발견은 이론과 가설의 발견, 발상, 착안, 구성 등에 관여하고, 정당화는 그 이론과 가설의 평가, 검증, 확증 등에 관여한다. 이처럼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이 아니라 그 인식의 결과를 놓고 그것을 그들 나름의 특유한 희망과 선험적 요청에 따라 재구성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과학의 합리성은 어떤 시기에도 타당한 비역사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지식의 결과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해답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일단 의미 있는 지식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가운데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할 지식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들은 상당 부분 전통적인 경험주의의 입장에 선다. 우선 전자의 과제와 관련하여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의미 있는 지식을 결국 경험적인 내용을 가진 명제와 그 논리적인 일관성을 분석할 수 있는 분석적 명제의 두 가지로 압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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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er, 1936, 1959). 이것은 이전에 흄이 이미 시사한 것 그대로이다. 흄에 따르면 분석적 명제는 ‘관념들의 관계들’을 진술하는 명제들이며, 종합적 명제는 ‘사실들’을 진술하는 명제에 해당한다. 같은 방식으로 칸트는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을 구분한 바 있다.
우선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종합명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귀납주의와 객관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전통적인 실증주의는 과학적 지식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객관적 지식의 체계라고 인정하였다. 권위와 편견, 감정과 습관에 근거한 진술과는 달리 과학적 진술은 관찰과 실험적 증거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은 관찰주체와는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과학이 경험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할 때 그 경험은 이론과 무관하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가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경험이 이론을 평가하는 심판관 구실을 하며, 경험을 기술하는 ‘기초언명’은 공공적인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것으로 믿는다.
귀납주의에 의하면 과학은 관찰과 더불어 시작된다. 관찰자로서의 과학자는 자연을 충실하게 관찰하고 특수한 사실로부터 보편적인 법칙을 얻어낸다. 관찰의 결과는 이론에 대해서 객관적이기 때문에 이론선택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경우에 관찰결과에 의존함으로써 의견의 불일치를 객관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처럼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확정된 종합적 명제가 증가하면 그만큼 지식은 탄탄하게 누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합명제와 구분되는 분석명제란 무엇인가? 이것은 수학이나 논리학의 경우에 볼 수 있듯이 일종의 同語反覆(tautology)과 같은 명제이다. 이것은 사실에 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지만 언제나 참인 명제이다. 예컨대, “우리 아버지는 남자이다”라는 명제는 그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남자인 것을 알기 위해서 관찰을 하거나 따로 경험적인 자료를 얻을 필요가 없다. 다만 아버지와 남자의 논리적 관계를 따지면 그 진위가 가려지는 것이다. 개념상 아버지는 부모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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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남자에 속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논리적인 필연성에 의해서 남자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세상에 관한 사실의 문제를 떠나서 다만 기호나 언어의 변환규칙만을 따짐으로써 지식의 확실성을 규명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나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종래의 사변적이고 선험적인 철학을 진정한 의미의 학문의 영역에서 추방시킨다. 분석철학자들은 철학의 논쟁이 대부분 언어사용의 모호함과 부정확함에서 생기는 것으로 규정하고 오랫동안 철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아 온 형이상학의 학문적 지위를 박탈한다. 이를테면 전통철학이 주로 취급했던 ‘존재’, ‘무’, ‘선’ 등은 의미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 즉 분석적 명제나 종합적 명제의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에 유사대상(quasi-object)으로서 진술과 주장의 ‘진’과 ‘위’를 구명하는 학문적 지식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일종의 위장된 종합적 명제로서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세계 내로 도입하고 표현하려 함으로써 의미 없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논리실증주의는 모호한 철학적 전통을 청산하고 어떻게 하나의 학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종래의 단순한 경험론이나 실증주의와는 달리 기호논리학에 의거한 논리적 분석을 사용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즉 분석철학자들이 과학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의 분석적 측면을 명료화하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철학의 과업은 사실이나 자연적인 조작을 기술하는 것에 있지 않다. 철학이 과학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개념이나 용어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규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과정에서 과학을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논리적인 언어를 제 나름대로 만들어 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그들은 과학에 관한 경험적인 영역과는 거리를 두려는 시도를 모색하였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는 경험적인 생활과 역사적인 가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논리적으로 구조화된 언어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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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집중하려는 경향이 현저해졌다.
이런 새로운 입장에서 논리실증주의자들 혹은 그것에 동조하는 분석철학자들은 그들이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확보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이 말하는 철학의 임무는 우선 철학 안에 있는 명제의 의미를 명백하게 밝히고 무의미한 비경험적, 형이상학적 요소를 배제하는 데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오늘날 확실한 지식을 정립하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대해 메타학문적인 지위를 얻고자 하였다. 넓은 의미의 실증주의적인 과학철학은 과학적 지식이 모든 지식의 범형이라는 전제하에 그것을 정형화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그들은 과학철학을 ‘과학의 논리’로 규정하고 주로 고전적 경험론과 현대의 기호논리학을 이용하여 과학적 이론의 논리적인 구조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은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의 몫이라는 사실이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큰 자랑이다.
작업대상을 분석명제에 한정시켜 인식의 문제를 해명하려는 태도 속에는 이른바 상대주의에 대한 절대주의 혹은 주관주의에 대한 객관주의의 강력한 선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은 분명히 우리가 말하는 정초주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논리실증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언어를 특별히 강조한다는 점이다. 명제나 개념의 모호함에 대한 그들의 분석은 주로 기호나 언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를 중심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따라서 언어에 반영된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그 구성에 오류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논리실증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분석철학이라는 운동으로 일어났는데, 그 중심인물은 무어(G. Moore), 러셀(B. Russell), 그리고 그의 제자인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등이다. 이런 특징은 비트겐슈타인의 기념비적 저서 <논리 · 철학논고(1922)>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인식의 문제를 언어의 한계 내에서 규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언어관에는 소박한 점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저서에서 언어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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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간단히 생각했다. 같은 방식으로 러셀(1964)은 대상언어를 가정하였다. 이것은 세계 내의 실재적인 대상과 우리의 인식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전제하는 경험론과 조화를 이룬다. 문장이 그림이고 그들이 묘사하는 실재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언어의 분석에 의해서 인식의 진리성을 검증하는 절차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경험주의적 가정이 암묵적으로 추가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지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은 1900년경 이른바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을 변호했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언어의 기본요소는 현실의 기초적인 ‘원자적 사실’과 일치한다. 그들의 검증가능성의 원리에 의하면 유의미한 언명은 원리적으로 경험에 의해 확인될 수 있는 ‘원자적 사실’을 기술하는 요소명제나 원자명제의 진리함수이다. 이제 철학자의 과제는 명제가 지시하는 사실성 자체를 떠나서 주어진 개념과 공리 및 규칙 가운데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을 드러내는 분석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국한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분석철학자들은 지식을 그것의 구성요소인 개별적인 법칙이나 명제로 환원시키고, 그 요소명제들의 개별적인 진리함수에 따라 전체적 지식의 진리함수를 찾아내는 방식을 취한다. 과학의 명제를 분석해 들어가면 최후의 원자명제에 도달한다. 원자명제는 더 이상 분석해 낼 수 없는 명제이다. 이것은 원자적 사실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세계는 그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가정된다. 이런 도식에 따라 분석철학자들은 언어의 의미를 지배하고 있는, 언어사용에서 나타나는 규칙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는 오직 명제들 상호 간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드러나며, 현실을 지시하는 명제의 경우에는 일련의 모순 없는 명제들을 통해서 사태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언어사용의 규칙은 대략 이런 것이다. 원자적 사실들은 ‘그리고’,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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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라면’과 같은 말로 결합되어 분자명제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의 진리치는 원자적 명제의 진리치와 그것의 논리적 관계에 의해서 쉽게 결정된다. 가령 ‘p 또는 q’라는 명제가 참인 것은 ‘p’와 ‘q’라는 두 개의 구성체 중에서 적어도 하나가 참인 경우에 해당하며,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한한다는 규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논리적인 규칙에 따라 초기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적 언어들은 보다 간단한 진술들과 개념들의 합성물로서 그들의 진위를 개별적으로 검증해서 전체적인 지식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제까지 검토해 왔듯이 논리실증주의는 그 체제 내에 인식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모든 장치를 완벽할 정도로 구비하고 있다. 일견 여기에 불확실성이 개재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역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의 사실에 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분석적 지식과 종합적 지식은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분석철학자들은 그것을 가정하고 전자에서 그들의 역할을 찾고 있지만, 그들의 입장 역시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어렵다. 세계는 진정 원자적 사실로 구성되어 있는가? 세계와 우리의 지식은 그들이 가정한 바와 같이 직접적인 대응관계가 있는가? 지식은 참이거나 허위로 양분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지식은 참인 명제의 단순한 총합에 불과한 것인가? 언어는 원자적 사실들에 대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서 논리실증주의는 이제 더 이상 넘어가기 어려운 장애에 봉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