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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자료

플라톤: 이데아론, 폴리스론 (이정우)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8.01.25|조회수1,471 목록 댓글 0

플라톤: 이데아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세속적으로는 그와 대척적(對蹠的)인 인물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이란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영혼의 고결함에 감복한 플라톤은 세속적 기득권을 버리고 철학자가 된다. 소크라테스가 한평생 윤리의 문제(행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플라톤은 윤리학만이 아니라 형이상학과 정치철학의 본격적인 체계를 세웠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체계의 추구보다는 행위 자체를 추구했다면, 플라톤은 거대한 철학체계를 추구했다. 플라톤은 최초의 철학체계를 세웠다.

플라톤은 한평생 정치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이 때의 정치란 폴리스를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정치 개혁을 위해 몇 번 시라큐스에 관여했으나 환멸만 느끼고 돌아온다. 아카데메이아(고유 명사)를 세워 교육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남긴 물음들에 대해 형이상학적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서구 철학사에 길이 영향을 끼치게 될 형상철학(形相哲學)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퓌타고라스의 자연철학 등이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젊은 시절 드라마 작가였던 플라톤은(때문에 그는 호메로스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슬퍼하고 있다) 그의 철학 저작들을 드라마 형식으로 썼다. 이를 플라톤의 대화편들이라 한다. 대화편들이라는 형식은 변증법(dialektikê)이라는 사유를 구현하고 있다. 이것은 대립, 모순, 갈등, ...에서 시작해 대화를 통해 보다 높은 통일성을 획득해 가는 방법이다. ‘문답술’이라고도 번역되나, 더 깊은 함의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나. 한 사람의 논술이 아니라 부딪치는 견해들의 투쟁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국 작가의 입장에 의해 일정하게 정돈될 수밖에 없다.


초기의 대화편들은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상당 부분 보여주고 있다. 법정의 소크라테스를 기록한 『변론』, 탈출을 권하는 죽마고우인 크리톤과의 대화를 그린 『크리톤』, 경건(敬虔)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에우튀프론』, 영혼의 돌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알키비아데스』 등 여러 편들이 이런 성격을 띠고 있다. 소크라테스에 비교적 충실한 대화편들이기에 똑 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일정한 존재론적 가설이 제기되지도 않는다.

중기 이후부터 플라톤 자신의 가설 ― ‘형상=이데아’의 가설 ― 이 등장하게 되며, 그의 철학의 기본 형태가 완성된다. 형상(形相)=이데아 개념이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대화편은 『파이돈』이다. 사형집행일 바로 전날 감옥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전달해 주고 있는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 사유의 기본적 형태가 드러난다. 영혼불멸(靈魂不滅)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마리가 되어 이데아론의 전반적인 뼈대가 제시된다.


플라톤 사유의 출발점은 ‘감각적인 것(sensible)’과 ‘가지적(可知的)인 것(intelligible)’을 나누는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플라톤에게서 이 나눔은 단지 인식론적 나눔이 아니다. 우리 감각의 작용(aisthêsis)에 대응하는 존재들과 우리 이성의 작용(noêsis)에 대응하는 존재들에 대한 존재론적 나눔이다. 순수사유(노에시스)의 작용에 대응하는 존재가 곧 이데아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란 감각작용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보다 고차적인 순수사유에 의해 포착되는 존재, 따라서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탈물질적인 존재이다. 보다 쉽게 현대적인 예를 든다면, 수(數), 자연의 법칙들, 정신적인 가치들, 기하학적 구조들, 나아가 관계들, 집합들, 보편자들, ...등을 들 수 있다.

공깃돌 다섯 개의 색깔, 촉감, 냄새, ... 등은 우리의 감각으로 포착되는 대상이지만, 5라는 수는 우리의 이성에 의해 포착되는 대상이다. 수학에서 더 나아가 개념 자체, 본질 자체에 도달할 때 우리는 형상=이데아를 만나게 된다. 수학과 이데아론의 관계는 『메논』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노예소년이 기하학 문제를 푸는 광경을 묘사하면서, 수학의 보편성을 이데아론의 한 실마리로 제시하고 있다.

플라톤 이데아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용기의 이데아, 아름다움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 ... 궁극적으로는 선(善)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본데에 있다. 플라톤은 ‘~자체’가 존재한다고 본다. 현대적 관점에서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대목은 이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각의 세계에 살아가기 때문에 이 형상들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플라톤은, 상식과는 전혀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야말로 꿈과도 같은 세계이며 진짜 세계는 형상들의 세계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이 생각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개하는데 바로 유명한 ‘동굴의 우화’이다.

『국가론』(여기에서 ‘국가’란 폴리스를 말한다)에서는 인식의 4단계설에 입각해 다시 형상이론이 전개된다. 인식의 수준은 존재의 수준과 상응한다. 감각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이 양분되며, 다시 감각적 인식은 감각지(感覺知)와 경험지(經驗知)로 이성적 인식은 오성지(悟性知)와 이성지(理性知)로 나뉜다.(도표 참조) 플라톤의 인식론은 후기의 대화편에 속하는 『테아이테토스』에서 다시 상론된다.

그리스 사유의 특징은 존재 자체가 더 존재하거나 덜 존재할 수 있다고 본 점에 있다. 즉 실재성의 정도(degree of reality)를 사유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존재론에 이러한 인식론이 상응하는 것이다.


이데아의 존재론과 인식론은 또한 영혼론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파이돈』에서는 영혼론이 전개된다. 이데아를 파악한다는 것은 감각을 넘어선다는 것이며, 이것을 영혼론의 언어로 번역하면 결국 육체를 넘어선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인식론에서 순수사유/이성(nous)은 곧 영혼론에서는 영혼이 된다. 진리의 인식은 영혼의 정화를 전제한다. 이런 생각은 오르페우스교나 퓌타고라스교의 영향을 반영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

플라톤은 육체에 독립적인 영혼을 인정하며, 또 영혼이 이데아를 인식한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에 갇힌 영혼은 이데아를 잘 볼 수 없다. 때문에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은 육체의 껍질에 현혹되지 않고 영혼에 본래 각인되어 있는 이데아를 ‘상기(想起)’하는 것이다. 진리는 ‘a-lêthe-ia’인 것이다. 진리는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험이 진리 탐구를 자극한다.


『향연』은 현실세계에서 출발해 차츰 형상세계로 나아가는 구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데아론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이 대화편은 아름다움과 사랑에 관한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는 여사제(女司祭)인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우리는 이성(異性)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눈뜸으로써 아름다움과 사랑을 알게 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다 넓혀 나갈 것을 충고한다. 아름다운 법, 아름다운 국가, 더 나아가 자식의 아름다움과 사랑, 그리고 마침내 모든 종류의 구체적 아름다움이 그것에 비추어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된다. 그 아름다움의 형상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거시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며, 타자와 섞인 것이 아니라 순수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형상‘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는 달리 복수적(複數的)이며 또 현실세계와 일정한 상응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 점은 플라톤의 원숙한 대화편인 『소피스테스』편에서 전개된다. 이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우선 소피스트들을 여러 가지로 규정한다. 그러한 규정은 자연스럽게 “참으로 존재하는 것”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플라톤은 시뮬라크르와 이데아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다시 논의는 ‘무(無)’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이것은 파르메니데스의 극복이라는 맥락을 띠고 있다. 나아가 플라톤은 있음을 ‘dynamis(잠재성)’로 규정한다. 이것은 곧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가 부정했던 多와 운동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자 했음을 뜻한다.


플라톤의 형상이론은 한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평생에 걸쳐 계속 다듬어진다. 형상이론이 보다 정교화되려면 두 가지 문제, 즉 형상들과 현실적 사물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형상들 사이의 관계가 분명히 되어야 한다. 『파르메니데스』『소피스테스』『정치가』『필레보스』『파이드로스』 편을 비롯한 원숙기의 저작들은 이 두 가지 문제들을 다각도로 논구하고 있다.

이데아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 중 하나가 미메시스=모방이다. 플라톤 철학 전체를 미메시스=모방=재현=표상(representation)의 철학으로 규정해도 될 정도이다. 플라톤은 이 관계를 ‘관여(methexis)’라는 개념으로 논하기도 한다.(형상들 사이의 관계는 ‘결합’ 개념을 통해 논의된다)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현실적 존재들은 형상들을 모방하고 있다는 테제이다. 이 테제는 특히 『티마이오스』에서 전개되는 우주창조설(宇宙創造說)에 의해 뒷받침된다.

현실이 이데아를 모방하고 있으며 또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 사유의 요체이다. ‘idea’, ‘ideal’, ‘idealism’ 같은 말들을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플라톤 사유는 현실을 벗어나려 하는, 현실을 초월하려 하는 사유가 아니다. 이상적인 것, 형상적인 것을 통해서 현실을 바꾸어나가려 한 사유이다. 이데아의 의미는 현실을 초월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나은 상태로 바꾸어나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 있다. ‘paradeigma’라는 개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 철학이 추상적인 철학이며 초월적인 철학이라는 것은 단견이다. 오늘날까지도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가 대결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의 사유의 생명력을 증명해 주고 있다.




플라톤: 폴리스론


플라톤의 실천철학은 자신이 살던 아테네라는 폴리스를 어떻게 좋은 국가로 만들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떤 정치철학을 독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치철학이 성립한 장(場)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text’가 전제하는 ‘context’를 잘 읽어내야 한다. 물론 다른 분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인식론은 그 인식론이 성립한 시대까지의 과학사 및 당대 과학의 상황을 전제해서 이해해야 하며, 미학은 예술사 및 당대 예술의 상황을 전제해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 있어 텍스트가 전제하는 컨텍스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철학만큼 컨텍스트의 이해가 중요한 분야도 드물다.

플라톤에게 ‘국가’란 폴리스이다. 특히 아테네라는 특정한 폴리스가 어느 정도 전제된다. 그래서 그의 정치철학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도시(예컨대 서울)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장의 입장에 더 가깝다.

폴리스를 전제로 한 정치철학은 왕조(王朝)를 전제로 한 정치철학(예컨대 유교의 철학)과는 판이한 성격을 가진다. 헬라스 지방의 특성과 당대 폴리스들의 성격을 전제해야 한다.

헬라스 인들에게 헬라스 세계 바깥에는 ‘오리엔트’ 또는 ‘아시아’의 세계가 있었고, 이 세계는 이집트, 시리아, 앗시리아,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 등의 왕조들을 뜻한다. 따라서 헬라스의 세계와 오리엔트의 세계가 대비되는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플라톤 당대의 정체(政體)는 민주정이었으며, 여성과 노예는 제외되었다. 당시는 아테네의 전성기가 지나고 폴리스들 사이의 분쟁이 잦아지던 시절이었다. 소크라테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했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대화편들 곳곳에 등장하지만 Politeia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전개된다. ‘politeia’는 폴리스(론), 국가(론), 정체(론)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이상국가(理想國家)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상국가(론)으로도 번역된다.


『폴리스론』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극히 다채로우며 폴리스 건설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핵심 개념은 정의(正義)이다.

플라톤은 트라쉬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쟁을 통해 정의론을 전개한다. 그 핵심적인 주제는 “정의는 강자(强者)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대한 검토이다.

트라쉬마코스는 지배자들(즉 강한 자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률을 제정할 것이며,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그 법률에 따르게 한다. 따라서 정의란 지배자들이 만든 법에 따르는 것이 되고, 그 결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쉬마코스의 이런 주장에 대해 다각도로 논박을 펼치며, 트라쉬마코스 또한 만만치 않게 받아친다. 플라톤은 그 과정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 놓았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개념-뿌리들 2』(6강)에서 정리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논변 하나만을 제시한다.

플라톤이 사물들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기능(ergon)’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곧 사물들의 뛰어남(aretê)를 문제 삼음을 말한다.

또 하나 논의의 핵심에는 늘 영혼(psychê)이 놓인다. 그리고 영혼의 뛰어남이 핵심적인 가치로서 제시된다.(소크라테스의 가르침) 뛰어난, 올바른 영혼을 가진 인간이 행복하다.

정의롭다는 것은 개인으로 말하면 영혼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국가만이 행복한 국가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미국이 “정의의 이름으로” 세계를 핍박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통찰력을 뒷받침하는 것 같고, 또 뛰어난 영혼을 가진 인간이 행복하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현실 정치를 바꾸어나가기에는 너무 고원(高遠)한 사상으로 보일 수 있다. 플라톤 자신도 이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테스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이고 속된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박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은 올바로 살면 손해를 보고 정직하지 않게 살아야 잘 산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이유는 자신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며, 누구나 자신이 강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귀게스의 반지’의 예) 그러나 타인이 그 자리에 올라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 두렵기 때문에, 차라리 정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즉 악한 일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악한 일을 당하고도 보복할 수 없는 것이 최악이기 때문에(그리고 후자의 고통이 전자의 쾌락을 능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시인들(오늘날로는 소설, 영화 등)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묘사된 바이기도 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사람“인”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국가론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개인 차원에서의 정의 문제를 풀기 위해 보다 큰 국가 차원에서의 정의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 즉 이상국가를 그릴 필요가 있다. 이 논의가 전개되면서 플라톤은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온다.(그러나 핵심적인 결론에는 차이가 없다) 즉 『폴리스론』은 사실상 개인적인 정의=올바름의 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으로 돌아오며, 그 중간에 국가론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소피스테스』와 비교)


국가는 분업체계이다. 그래서 각인이 각각의 “성향에 따라(kata physin)” 적절한 일을 맡아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성향과 직업의 본질주의) → 역동적인 현대 사회에서 보면 너무 기능주의적.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어떤 면에서는 『폴리스』론 전체가 교육론. 교육론과 영혼론 그리고 국가론이 긴밀히 연결. 교육은 육아(trophê)와 (교양)교육(paideia)로 양분.

최초의 교육은 시가(mousikê)와 체육(gymnastikê)에 맡겨진다. 사실적인 이야기보다 허구적인 이야기가 먼저.(현대로 말하면 문학교육과 역사교육) 기존의 시가(호메로스가 대표)를 매우 비판적으로 봄. 인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 오늘날의 ‘커리큐럼’의 문제. 특히 신들을 불경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고. 신은 선의 원인이지 악의 원인이 아니다. 불행을 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오류.(“신은 사람들에게 화근을 생기게 하느니/ 한 집안을 송두리재 파멸시킬 양이면”) → 당대까지의 유일한 교양인 ‘mythos’와 그것에 근거한 시가(詩歌)를 비판하고 과학과 철학 교육으로 전환시키려 함.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시가는 윤리적으로는 오히려 해롭다. 문화는 윤리/도덕에 종속되어야 함.(아테네의 타락상이 반영됨) 저급한 표현들, 강렬한 표현들, 어두운 표현들을 교육시켜서는 안 된다. 또 유치하고 저급한, 지저분한 표현도 안 된다. → 오늘날의 청소년과 대중문화의 관계에 해당. 쾌락이 진리나 선을 능가할 수는 없다. → 잘못 가면 전체주의의 논리가 빠짐.(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모방의 타락. 한 가지를 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피상적으로 모방. 시뮬라크르의 문제. → 오늘날의 이미지 문제에 해당. 실물을 재껴 놓고 이미지들만이 난무하는 세상. 소피스테스를 진리를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이미지 조작자들로 봄. → 오늘날의 예: 역사의 상품화. 그 때 그 때의 이미지에 도취.

음악이 중요.(동북아 사상과 비교) 음악이 무너지면 폴리스도 무너진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폴리스의 영혼의 문제.

체육은 전사들을 기르는 것과 관련. 오늘날의 직업 군인이 아님. ‘체력은 국력’이라는 생각. 폴리스의 존망과 관련됨. 체육과 의술이 밀접하게 연관.


폴리스의 구조. 지혜를 필요로 하는 통치자들,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수호자들, 절제를 필요로 하는 생산자들. 각각의 일에 매진하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룰 때 정의가 성립. → 四主德

폴리스를 누가 다스릴 것인가. ‘hoi aristoi’가 다스려야 한다. 통치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 매우 엄격하고 고급한 과정을 필요로 함. 과학적 지식 및 철학적 사유를 닦아야 한다. 개인적 이익과는 단절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인물(철학자=지식인)이 통치자가 되었을 때에만 이상국가가 가능하다. → 조건들이 너무 가혹해 비현실적. 누가 프로그램을 짜고, 이 모든 과정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체제의 순환. 지자=치자가 무너짐. 귀족정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다시 참주정치로 몰락. 마지막으로 민주정이 나타남. 민주정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평가. 역사에 대한 쇠퇴론적 시각. 그러나 순환론적 시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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