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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자료

<김동렬의 구조론 연구> 구조론설명 1/2

작성자남영욱|작성시간08.01.25|조회수204 목록 댓글 0

구조론설명(1)

 

1. 구조론은 존재의 OS다

구조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원래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인 분류법’ 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점차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구조론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은 없다시피 하다. ‘거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컴퓨터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계산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첩형 전자계산기와는 별개로 구분되고 있다. 데이터의 처리를 컴퓨터의 주된 역할로 볼 수 있다.


컴퓨터의 조상은 주판이다. 기계식 계산기에서 전자식 계산기로 발전하였다가 지금은 데이터와 화상을 비롯한 광범위한 정보처리를 도맡고 있다. 컴퓨터의 영역은 갈수록 넓혀지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구조론은 철학이자 세계관이며 수학이고, 논리학이고, 미학이자, 언어학이다. 구조론의 발길이 닿지않는 분야는 없다. 왜냐하면 구조론은 곧 인덱스(index)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이든 각자의 주소지가 있다. 구조론은 모든 학문의 주소지를 규명한다. 구조론은 ‘차례’이고 ‘목차’이며 ‘접근경로의 지정’이다.


분류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은 없다. 구조론은 ‘분류의 근거’를 제시한다. 구조론은 컴퓨터의 OS와 같다. 그 모든 것을 ‘초기화’ 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혹은 정치든 경제든 사회의 그 어떤 분야이든 망라한다. 구조론은 그 모든 것을 초기화 세팅한다. 그 모든 것과 최초로 부팅한다. 그 모든 저장된 파일들을 읽어오는 접근경로를 지정한다.


요즘은 모니터 화면에 곧바로 아이콘을 띄우지만 옛날에는 트리(tree)를 사용했다. 지금도 ‘불러오기’는 트리구조를 일반적으로 이용한다. 구조론은 각자의 파일에 트리(tree)를 할당하는 방법으로 각자의 주소지를 지정한다.


2.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집이 한 채 있다. 그 집을 알고자 한다. 과연 집이란 무엇일까? 집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이미 지어져 있는 집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두번째 방법은 내 손으로 집을 한 채 건축하여 보는 것이다.


‘집’은 그 종류가 많다. 택(宅)이 있는가 하면, 실(室)이란 것도 있고, 당(堂)이라는 것도 있다. 옥(屋)과, 관(館)과, 우(宇)와, 주(宙)가 모두 집을 의미한다. 이렇게 종류가 많아서야 알아채기 어렵다. 정녕 집이란 무엇일까?


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종류도 많다. 주춧돌이 있는가 하면, 대들보도 있고, 서까래도 있고, 벽돌도 있고, 기왓장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여서 한 채의 집을 이룬다. 이렇게 숫자가 많아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간추려야 한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중복된 것은 제외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알맹이만 추려보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알맹이만 골라낼 수 있을까? 그것은 내 손으로 직접 집을 한 채 지어보는 것이다.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왕에 이루어져 있는 것을 잘게 해체하여 보는 과학의 방법이다. 둘은 그것이 존재하기 이전의 백지상태로 되돌려서 새로이 하나를 이루어보는 철학의 방법이다.


과학의 전자는 귀납법이요 철학의 후자는 연역법이다. 우리는 과학의 귀납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해체와 분석을 위주로 하는 과학의 방법으로는 주어진 사태의 절반 밖에 파악할 수 없다. 전모를 온전히 파악하려면 철학의 연역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널리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관찰과, 분석과, 과학의 방법으로, 우주(universe)라는 집을 해체하여 본다.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는 세계의 절반 밖에 볼 수 없다. 전체를 한눈에 보려면 직접 우주라는 집을 지어보아야 한다.


태초에 우주라는 집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태초로 돌아가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보는 방법으로 만이 전모를 볼 수 있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여 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이다. 구조론은 이 새로운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과학의 분석과 해체 방법으로 보면 집은 기초와, 대들보와, 서까래와, 벽돌과 기왓장들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이것이 전모일 수 있을까? 천만에! 틀렸다. 집을 직접 지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집을 지으려면 맨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은 대지(垈地)다. 땅이 있어야만 집을 지을 수 있다. 대지야 말로 집에 있어서 우선순위 1번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기왕에 지어져 있는 집을 해체하여 보는 과학의 방법을 사용할 경우 그 땅의 존재를 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땅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며, 집은 그 땅 위의 구조물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즉 실수로 무언가를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과학의 귀납에 의존할 경우,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할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 때문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핵심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역의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결코 건축의 핵심인 대지를 빠뜨린다든가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왜인가? 집을 해체하는 귀납의 방법을 사용할 경우 집을 온전히 해체하고 난 다음 맨 마지막으로 집터에 눈길이 가지만, 집을 지어보는 연역의 방법을 사용할 경우 맨 먼저 터부터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 과학의 귀납방법.. 맨 마지막에 집터가 남는다.

● 철학의 연역방법.. 맨 먼저 집터부터 닦아야 한다.


철학의 연역방법으로만이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다.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과 생략해도 되는 것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반드시 연역적 접근방법을 연습하여야 한다.


모든 집들 중에서 가장 근본되는 집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universe)이다. 태초로 돌아가서 우주의 창조됨으로부터 시작한다. 옛 사람들의 기록에 따르면 태초에 혼돈(chaos)이 있었고 질서(cosmos)가 그 다음에 나왔다고 한다.


혼돈은 집이 지어지기 이전 상태를 의미한다. 질서는 이미 집이 지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신은 ‘질서’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우주라는 집을 지었다. 그러므로 이 ‘질서’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구조론은 그 ‘질서’라는 건축재료의 사용법이다.


3. 질서의 콘텐츠들은 무엇인가?

세상은 질서로 설명할 수 있다. 질서의 구성 인자로는 ‘순서와 방향’이 있다. 우주의 건축재료는 질서이며 질서는 ‘순서와 방향의 짜임새’로 되어 있다.


이 원리를 자연에 반영하여 보자. 우주의 건축재료가 질서라면 자연의 건축재료는 물질이다. 질서가 순서와 방향의 조직이라면 물질은 시간과 공간의 조직이다. 여기서 우주와 자연의 양자는 서로 대응된다.


● 우주 ⇒ 질서 (순서와 방향)

● 자연 ⇒ 물질 (시간과 공간)


이 원리를 인간에 반영하여 보자. 우주와 자연에 대응하는 것은 세상이다. 세상은 창조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일이다.


● 세상 ⇒ 창조 (일과 구조)


여기서 창조는 곧 의미다. 혹은 가치이며 기능이고 역할이다. 또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작용으로 한 생산이다.


세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인간 중심으로 보는 것이며, 둘은 인간에 맞서는 물질 중심으로 보는 것이고, 셋은 인간과 물질을 떠나 순수한 관념으로 보는 것이다.


● 인간중심.. 창조(일과 구조): 의미와 가치

● 자연중심.. 물질(시간과 공간) : 기능과 역할

● 순수관념.. 질서(순서와 방향) : 시스템과 생산


인간 중심으로 보는 세상은 창조된 존재이며 그것은 의미의 창조이고 가치의 창출이다. 그 내용은 일과 구조로 되어 있다. 물질 중심으로 보는 자연은 기능이고 역할이다. 그 내용은 시간과 공간으로 되어 있다.


위 셋은 다른 어휘들로 표현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동일한 하나의 세 가지 측면일 뿐이다. 자연 중심으로 본다는 것은 과학의 방법, 귀납의 방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지어진 집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인간 중심으로 본다는 것은 직접 내 손으로 집을 지어본다는 것이다. 철학의 방법으로 본다는 것이며 연역의 방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순수관념으로 본다는 것은 인간중심도 아니고 자연중심도 아닌 중립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4. 구조론은 분류법이다

질서에 반하는 것은 혼돈이다. 혼돈의 콘텐츠는 곧 중복과 혼잡이다. 중복은 동일한 것의 반복됨이며 혼잡은 이질적인 것의 뒤섞임이다.(질서, 곧 순서와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혼돈 곧 중복과 혼잡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혼돈을 제거하므로써 우리는 질서에 도달할 수 있다. 중복을 배제하고 혼잡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질서의 최소 구성인자인 순서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학의 기본원리는 최단거리의 지름길을 가는 것이다. 즉 중복을 제거하여 최소화 하고 단순화함으로써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발상과 사고로 접근하고 있다 할 것이다.


● 질서 (순서와 방향)

● 혼돈 (중복과 혼잡)


학문의 기본은 분류다. 모든 학문이 분류로부터 그 첫 페이지를 열어 제치고 있다. 분류가 되지 않으면 애초에 학문이 성립하지를 않는다. 구조론 또한 기본적으로 일종의 분류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모든 학문분야 중에 분류학이 가장 발달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모든 학문이 분류의 방법으로 목차 혹은 차례를 정하고 본론에 들어간다. 곧 index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정작 그 분류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학문하는 이가 없다. 분류가 정확하지 않으면 내용이 중복되고 이질적인 것이 뒤섞여서 많은 혼란이 일어난다.


바른 분류야 말로 학문을 바로잡는 열쇠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른 분류법은 어떤 학자에 의해서도 시도되지 않았다. 구조론이 곧 분류이다. 분류의 기본원칙은 중복과 혼잡의 제거 그리고 순서와 방향의 지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순서와 방향을 지정하는가? ‘일과 구조’이다.


일은 시간적인 선후를 지정하는 데 있어서의 논리다. 곧 인과율이다. 원인과 결과가 있다면 반드시 원인이 앞서고 결과가 뒤따른다. 이 시간적 순서는 절대로 어김이 없다.


인과법칙에 의거하여 결과가 원인에 앞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이는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규칙이요 우주의 기본적인 질서라 할 것이다.


일이 인과율에 의거하여 시간적 순서를 지정하는 데 따른 논리라면, 구조는 모순율에 따라 공간의 방향을 지정하는 논리다. 공간의 방향의 논리로는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는 법칙이 있다.


● 인과율로 시간적 순서를 지정.. 원인이 앞서고 결과가 뒤따른다.

● 모순율로 공간적 방향을 지정.. 밖(높은 질서)이 먼저이고 안(낮은 질서)이 뒤따른다.


인과율은 잘 알려져 있지만 모순율은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 작은 그릇과 큰 그릇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섭할 수는 있어도 그 역의 경우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법칙이다.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무질서도의 증가로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은 용이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모순율은 질서의 정도가 높은 것(집적)과 낮은 것(해체) 사이에 차례지어지는 질서에 관한 법칙이다.


모든 에너지의 작용은 질서의 정도가 높은 곳(밖)에서 낮은 곳(안)으로 이동하며 그 역이나 예외는 절대로 없다. 이 또한 인과법칙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기본적인 법칙이다.(현대과학에 있어서도 인과율은 충분히 이해 및 적용되고 있으나, 모순율은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겨우 소개될 뿐 일반에 의해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 학문일반에 두루 반영되지 않고 있다.)


● 엔트로피의 법칙 :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높은 질서(집적된 상태)가 낮은 질서(해체된 상태)를 포섭할 뿐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이 원리를 조금 더 응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된다.(왜 아래와 같이 되는지는 다음에 설명하겠다. 그 본질은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 높은질서(집적)에서 낮은질서(해체)의 일방향으로 이행할 뿐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 모든 운동과 힘의 작용은 밖에서 안으로 작용할 뿐 그 반대는 없다.

● 질(높은 질서)에서 양(낮은 질서)으로 이행할 뿐 그 반대는 없다.

● 모든 힘은 미는 힘이며, 당기는 힘은 없다.

● 모든 운동은 직선운동이며, 원운동은 없다.


우리가 학문에 실패하는 것은 학문의 기본인 분류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분류에 실패하는 이유는 순서를 지정하는 인과의 논리 하나로만 분류하려 들기 때문이다. 분류법칙은 둘이 있다. 인과의 논리와 모순의 논리가 있다.


모순은 공간의 방향을 지정하는 데 있어서의 논리다. 순서와 방향을 동시에 지정함으로써 우리는 분류에 성공할 수 있다.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여 단순화 하는 방법으로 최단거리를 제시할 수 있다. 곧 질서를 얻을 수 있다.


● 구조론으로 본 엔트로피의 법칙.. 질서도가 ‘높은질서’가 있고 ‘낮은질서’가 있다. 높은질서를 해체하여 낮은질서로 만들 수 있다. 낮은질서를 결합하여 높은질서로 만들 수는 없다. 높은질서를 만들기 위하여 낮은질서를 결합할 때, 그 결합과정도 질서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에서의 변화는 점점 낮은질서로 이행한다. 이를 무질서도의 증가로 표현한다. (※ 높은 질서를 질, 낮은 질서를 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에서 양으로 이행할 뿐 그 반대는 없다.)


5. 구조는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세상은 질서로 설명할 수 있다. 질서는 순서와 방향으로 되어 있다. 순서는 시간적 순서이고 방향은 공간의 방향이다.


순서는 시간적으로 앞선 순서와 뒤진 순서 곧, 앞과 뒤의 순서이다. 방향은 높은 질서와 낮은 질서 곧 전체와 부분의 결합하고 분리하는 데 있어서의 질서이다.


순서는 인과율에 따라 원인이 앞서고 결과가 뒤진다. 방향은 모순율에 따라 전체(높은 질서)가 부분(낮은 질서)를 포섭한다.


여기서 ‘일과 구조’가 구분된다. 일과 구조는 실상 동일한 것의 다른 두 측면이다. 즉 ‘일=구조’라 할 수 있다. 구조는 일을 하고 일은 내부에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일은 상대적으로 더 시간적 측면 곧 인과율이 성립하는 동일한 내용의 반복작업을 의미하며 구조는 상대적으로 더 공간적 측면 곧 모순율이 성립하는 동시작업을 의미한다.


● 일 : 시간의 순서,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로 성립한다. 시간이 걸리는 반복적 작업에서 성립하는 질서를 설명한다.


● 구조 : 방향의 질서, 질과 양으로 포섭관계로 성립한다. 동시에 맞물려 있는 작업에서의 질서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일과 구조를 동시에 나타나는 개념은? 그것은 시스템과 그 작동 곧 생산활동이다. 시스템은 일을 하며 구체적인 성과를 생산한다. 이러한 점은 주로 생태계에서 동식물의 생산활동에서 관찰된다.


자연계에서 시스템은 생명의 창조활동 외에는 관찰된 바 없다. 창조는 곧 시스템의 작동이며 시스템은 일을 하고 그 내부에는 1사이클의 에너지 순환이 있다.


인간이 발명하고 있는 기기장치 또한 자연의 시스템 곧 생명체의 일을 모방하고 있다. 인간이 발명한 기기장치는 동력원, 동력발생, 동력제어, 동력전달, 동력효과의 5구성요소로 구조화 되어 있다.


이 원리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작은 세포 하나에 에너지의 순환 1사이클이 숨어 있다.


기기장치는 일을 하며 그 내부에 에너지의 순환 1사이클이 있다. 이것이 시스템이며 곧 창조의 1단위다. 모든 생명체의 창조활동 혹은 기기장치의 일은 이 에너지 순환 1사이클들의 집합이다.


여기서 동력원>동력효과로 진행하는 에너지의 전달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다. 인과율에서 결과가 원인에 앞설 수 없듯이 구조체 역시 양이 질을 앞설 수 없다. 즉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일의 구조(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를 이해한다는 말이다.


정리하자. 세상은 질서로 설명할 수 있다. 질서는 순서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창조활동(일)에 적용하면 그 질서는 에너지 순환의 질서로 설명될 수 있다. 곧 ‘질서=에너지’이다.


‘질서=에너지’이므로 질서의 법칙은 곧 에너지의 법칙이 된다. 일에 원인과 결과의 1사이클이 있고 질서에 높은질서(질)와 낮은질서(양)의 1사이클이 있듯이 에너지에도 에너지순환의 1사이클이 있다.


인과율과 모순율의 적용을 받아 ‘일’에서 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은 일정한 순서와 방향으로 진행된다. 시간에서는 원인에서 결과로의 진행이며, 공간에서는 질에서 양으로의 진행이다.


● 구조와 피드백의 1사이클 : 질⇒입자⇒힘⇒운동⇒량

● 일의 1사이클 : 유도⇒대응⇒의속⇒인과⇒표상

● 기기장치 및 생명체에서 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 : 동력원⇒동력발생⇒동력제어⇒동력전달⇒동력효과


이들은 다른 어휘로 표현되어 있지만 본질은 같다. 그것은 배경⇒실체⇒연관⇒이행⇒귀결의 1사이클이다. 일은 반복되고 구조는 집적된다. 그 반복과 집적의 1단위가 존재한다. 예의 1사이클이 그 1단위다.


생명체는 에너지 순환 1사이클의 집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자연에서 물질은 시간과 공간 1단위들의 집적으로 되어 있다. 시스템은 구성요소인 구조의 집적으로 되어 있다. 그 구조 안에는 일(역할)이 감추어져 있다.


어떤 하나의 조직은 일(열할) 혹은 기능(속성)의 1사이클들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회사의 조직이나 군대의 조직이나 정치의 조직들도 역할(팀)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세상은 부분들의 집합으로 집적하여 거대하다. 그 낱낱의 부분들에는 일을 하는 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들이 숨어 있다. 곧 ‘배경⇒실체⇒연관⇒이행⇒귀결’의 5구성요소이다.


6. 다섯 개의 일이 모여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세상은 ‘질서’로 설명할 수 있다. 질서라는 표현은 자연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에너지’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본질에서는 같다.


질량보존의 법칙과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세계의 기본인 질서가 높은질서(질)와 낮은질서(량)으로 질서의 형태 곧 구조를 바꿀 뿐 질서 그 자체의 바탕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질서의 내용은 일과 구조이다. 질서는 구조를 바꾸는 방법으로 일을 한다. 그 일 부분을 강조한 표현이 곧 에너지이다.


열역학 제 2법칙 곧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일의 진행은 일정한 순서와 방향의 지배를 받는다. 즉 구조가 일정한 질서를 가질 때 일을 하는 것이다.


일과 구조가 합쳐지면 ‘시스템’이 성립한다. 시스템은 일의 시작 단계에서 중간과정을 거쳐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1사이클의 순환주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완전성’의 개념이 얻어진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1사이클이 갖추어져 ‘완전한 일’을 하는 구조가 시스템이다.


세상은 질서로 설명될 수 있듯이, 에너지로도 설명될 수 있으며, 이를 구체화 하여 일과 구조로 설명될 수도 있으며 또한 시스템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일을 하는 시스템은 자연에서는 생명체에서 발견될 수 있다. 생명체가 세포라는 1단위를 가지는 이유는 시스템이 내부에 일을 하는 1사이클의 단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창안한 기기장치에도 시스템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피드백의 원리가 적용되는 1사이클의 완전한 일을 하는 장치는 컴퓨터 등 극소수의 장치들이고 대개는 외부의 힘에 의존하게 되어 있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다.


인간의 힘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시스템이 인간이 사용하는 단순 도구들이다. 간단한 구조의 도구들은 에너지 순환의 1사이클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불완전 하지만 그 내부에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외부의 도움에 의지하여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도구는 입력과 출력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역으로 구조를 반영하지 않은 도구는 성립될 수 없다. 도구는 우리 주위에 흔하므로 우리는 이 도구들을 통하여 구조를 파악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모든 도구는 아래 다섯 가지의 일을 반영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유도(입력) 대응(저장) 의속(제어) 인과(연산) 표상(출력)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못’을 예로 들 수 있다. 못은 망치에 의해입력 되고 판자에 박히는 형태로 출력된다. 그 중간에 저장, 제어, 연산의 기능이 있다.


못은 유도, 대응, 의속, 인과, 표상의 다섯 가지 일을 한다. 각각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반영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공간, 입체, 면, 선, 점의 형태로 나타난다.


못이 망치를 수용함은 공간이며, 못의 몸통은 입체이며, 못의 머리가 편평한 것은 면이며, 못의 몸이 길쭉한 것은 선이며, 못의 끝이 뾰족한 것은 점이다.


하나의 못에 ‘점, 선, 면, 입체, 공간’이 숨어있어서 각각 유도, 대응, 의속, 인과, 표상의 일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 용어로 표현하면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이 된다.


주위의 모든 도구들에서 공간, 입체, 면, 선,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컵이나 칼이나 지우개나 연필들에서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예외는 없다.


세상은 질서로 되어 있으며 질서는 일을 한다. 일을 반영하는 형태의 질서를 구조라 한다. 구조가 집적되어 입력에서 출력까지 1사이클의 완전한 일을 하는 계를 시스템이라 한다.


높은 질서와 낮은 질서가 있다. 그 질서의 종류는 다섯이다. 유도, 대응, 의속, 인과, 표상의 다섯 가지 질서, 다섯 가지 일이 존재한다.


우주는 커다란 집이다. 집은 벽돌들의 집합이다. 우주라는 집을 구성하는 벽돌은 구조다. 하나의 구조는 다섯 가지 일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구조라는 벽돌이 집적하여 에너지 순환 1사이클의 계를 이룬 것이 시스템이다.


세상은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시스템은 커다란 하나의 집이다. 시스템은 구조라는 벽돌의 집합이다. 구조는 다섯 가지 일의 집합이다.






구조론설명(2)

 

구조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모든 구조에 공통되는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다. 그런데 어렵다. 구조라는 것이 워낙 추상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점 수학과 비슷하다. 알고 보면 쉬운데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겁나게 어렵다.


1+1이 왜 2가 되는가? 진흙 한 덩어리에 한 덩어리를 합치면 한 덩어리가 되고, 물 한 컵에 한 컵을 더 부어도 역시 물 한 컵이 된다. 물론 양이 좀 늘어나기는 하지만 우리 집 부엌에는 커다란 컵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1+1은 1이 아닌가?


이런 논의를 유치하게 봐서 안된다. 고상한 논의에서도 이런 식의 오류는 얼마든지 있다. 항상 '게임의 규칙'을 먼저 간파하고 보자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숫자를 쉽게 이해하는 것은 그 추상개념을 잘 파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 수학을 실생활에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도 그렇다. 활용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활용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한다.


구조론은 실생활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단계를 넘기만 한다면 구조론을 이해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초기단계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산수를 아주 쉽게 배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구조는 5로 완성된다. 5는 단일구조를 이루는 요소의 숫자이다. 왜 하필이면 5인가를 따지기 전에, 구조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숫자의 요소들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기 바란다. 즉 요소의 수가 항상 5라는 필자의 주장에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단 요소의 수가 0인 구조는 없다는 사실은 여러분은 우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다. 즉 여러분들은 어떤 단일한 하나의 구조체가 일정한 숫자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데는 적어도 동의한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에 소설이 한 편 있는데 글자는 단 한 글자도 씌어져 있지 않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이건 명확하다. 적어도 글자가 두엇은 씌어있어야 소설이 되건, 시가 되건, 일단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음 미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음악, 한 글자도 없는 소설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빈 캔버스를 두고 그것도 미술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하얀 캔버스만 두고 '폭설이 내린 시카고의 겨울풍경'이라고 제목을 붙인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적어도 거기에 빈 캔버스는 있다. 뭔가 구성요소가 있기는 있는 것이다.


숫자 0이라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0에는 몇 가지 기초적인 성질이 있다. 일단 '0은 0 아닌 것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0은 0 아닌 것의 침투에 대하여 배타적이다. 즉 0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0이라는 놈이 빈자리를 지키고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에서 일단 모든 구조체에는 일정한 숫자의 내부적인 구성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은 인정하기로 하자. 그 다음에야 그 구성요소의 숫자가 몇 개인가를 논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규칙'이다. 구조론에서 첫 번째의 규칙은 중복의 배제다. 피라밋이 100만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면 100만개의 구성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의 돌이 있는 것이다. 피라밋을 이루고 있는 돌의 숫자가 몇 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피라밋에서 돌 한 개를 덜어내더라도 여전히 피라밋은 피라밋이기 때문이다. 즉 구성요소를 논함에 있어 중복을 배제한다는 규칙은 어떤 대상을 두고 거기에 어떤 임의의 상황을 부여하였을 때 그 '본질이 해체되는가'의 여부를 논하는 것이다.


자전거에서 바퀴살 하나를 빼낸다 해도 여전히 자전거는 자전거다. 그러나 바퀴를 통째로 빼버리면 고물이지 더 이상 자전거가 아니다. 즉 구성요소를 논함은 절대로 제거되어서 안되는 '필수 구성소'의 숫자를 논하는 것이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일단 여기서는 맨 위의 단계, 곧 질을 논하기로 한다. 질은 무엇인가? 질(質)은 바탕이다. 바탕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질은 '결합되지 않는 것'이다. 왜?


구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건축이다. 건축은 구조에서 시작해서 구조로 끝난다. 그렇다면 건축의 질(質)은 무엇인가? 건축의 바탕은 무엇인가? 여기서 '바탕'이란 개념을 생각해 보자.


바탕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뭔가가 잘못되었을 때 어느 선 까지 되돌아가야지만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가이다. 도자기를 빚는다. 도자기의 모양이 나쁜가? 도자기의 그림이 나쁜가? 도자기를 굽는 온도가 잘못되었는가? 등등 다양한 잘못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바탕은?


바탕은 중력에 대항한 형태의 공간구성에서 맨 아래부분이다. 시간적순서로 치면 맨 처음이다. 도자기의 맨 처음은 흙이다. 도자기의 바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흙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흙을 바꿔야 한다.


질을 바탕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이룩한 지구상의 구조물들이 공간구성에서 주로 중력에 대항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즉 중력에 대항한 형태의 구조체에서는 가장 하단부 곧 지구중심에 가까운 부위가 바탕인 것이다.


모든 구조체가 중력에 대항하는 형태의 구조물인 것은 아니므로 질(質) 곧 바탕의 정확한 정의는 구조를 제작하는 과정의 시간적 순서에서 첫 번째 필요한 요소 혹은 오류시정과정에서 피드백이 도달하는 첫 번째 위치다. 


건물이라면? 건물의 바탕은 건축재료다.


집을 짓는데 2층이 잘못되었다면 2층을 허물어버리고 새로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바탕이 잘못되었다면? 돌집을 지으라 했는데 실수로 나무집을 지어버렸다면?


바탕이란 개념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되돌아가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가에서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질이다.


왜 질이 바탕인가? 질은 결합되지 않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질이 같은 것과 결합하고 질이 다른 것과는 결합하지 않는다. 흙은 흙과 결합하고, 돌은 돌과 결합하고, 쇠는 쇠와 결하고, 나무는 나무와 잘 결합한다.


나무와 나무를 결합시켜 목조가옥을 짓는 것은 쉽다. 쇠와 쇠를 용접하여 철골조의 건물을 짓는 것도 쉽다. 그러나 흙과 쇠를 결합한다든가 나무와 쇠를 결합하기는 기술적으로 용이하지 않다. 바탕이 다르면 결코 결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합하지 않으면? 분리다. 분리는 곧 구조의 붕괴다. 구조가 무너지면? 집이 무너진다.


구조의 의미는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데 있다. 버티기 위해서는 결합해야 한다. 결합하려면 재료가 같아야 한다. 흙은 흙과 잘 결합하고, 풀은 풀과 잘 결합하고, 나무는 나무와 잘 결합하고, 돌은 돌과 잘 결합한다. 질이 다르면 결합하지 않는다. 고로 질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질 - 외적으로 질이 다른 것과 결합하지 않는다.

입자 - 내적으로 질이 같은 것과 잘 결합한다.

힘 - 교환된다.

운동 - 내부적으로 분리된다.

양 - 외부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즉 구조론은 구조에 대한 이론이며, 구조의 근본개념은 분리와 결합 및 교환에 있다. 구조를 숫자 5로 설명하는 것은, 편의적인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즉 구조는 5가 아니라 원래 1이며, 전개하면 3이고, 여기에 내부적인 대응과 외부적인 대응을 추가하여 5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컵이 하나 있다고 치자. 컵의 기능은 물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컵의 기능에 오류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컵이 물을 담지 못할 것이다. 이때 컵이 물을 담지 못하는 가능성의 총 숫자가 몇 개인가이다.


즉 컵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뭔가 잘못될 가능성의 총 숫자가 몇인가를 알 수 있다면 컵을 제조하는 단계에서 시행착오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도전해 보자. 컵이 잘못될 가능성의 숫자가 무한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컵은 지극히 단순한 구조이다. 이 단순한 구조의 컵에 무한대로 많은 종류의 고장이 날 리가 없다.


반대로 컵은 전혀 고장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실수로 컵을 깨뜨리거나 엎질러본 경험이 있으므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경험칙으로 말하면 여러분은 컵이 잘못될 가능성의 수가 적으면 3가지 정도, 많아봤자 5가지를 넘지 않는 걸로 얼추 짐작할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컵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3가지 혹은 다섯 가지다.


우선 질이 잘못될 가능성이다. 질은 결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결합한다면? 녹말로 만든 컵이라면? 설탕으로 만든 컵이라면? 소금으로 만든 컵이라면 그 컵에 담겨진 물에 소금이 녹아들어가서 마실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입자가 잘못될 가능성이다. 입자는 결합한다는 것이다. 입자가 잘못되면? 부실한 종이컵을 들 수 있다. 틈으로 물이 새어나온다. 입자는 결합하는 성질인데 이건 분리가 된다. 컵과 결합해야 할 물이 컵과 분리되어버리면? 이 경우 더 이상 컵이 아니다. 물이 샌다면 컵이 아니라 파이프이다.


셋째 힘이 잘못될 가능성이다. 컵에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중력 때문이다. 우주왕복선 내부에서의 무중력상태라면? 당연히 컵을 사용할 수 없다. 모든 용기는 특정한 형태의 힘의 작용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 힘은 첫째 아래에서 위를 받치는 중력에 대항하기이고, 둘째는 좌우 측면에서의 힘의 작용에 대응하는 컵 특유의 가운데가 깊숙한 구성형태이다. 만약 컵이 이러한 형태가 아니라면 컵에 든 물은 쏟아지고 말 것이다.


넷째 운동이다. 즉 컵을 손에 들고 움직일 수 있는가이다. 남산위의 잠두봉에 오목하게 홈을 파놓고 그걸 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손으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할 수 없는 컵은 컵이 아니다.


다섯째 양이다. 양은 분리되지 않는 성질이다. 즉 그 컵에는 최소한의 물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컵은 컵인데 물을 담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림 속의 컵이지 컵이 아니다. 이 경우 대개 컵의 크기를 의미한다. 즉 컵은 반드시 일정한 정도의 크기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형태로 컵이 잘못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다. 다시 말해서 컵의 제조공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중복을 제거했을 때 위 다섯 가지 경우 외에 없는 것이다. 고로 여러분이 컵의 제조를 책임지고 있다면 반드시 체크해야할 경우의 수를 위 5가지 유형으로 제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조론을 배워서 우리가 얻는 이익은?


여러분이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호주머니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질 것이다. 이때 실제로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곳도 뒤져보기 마련이다. 지갑이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도 혹시나 해서 뒤져본다면 시간낭비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시간과 노력은 엄청나다. 구조론은 그러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게 돕는다. 그 지갑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의 경우의 수는 5로 제한된다. 여러분은 단 다섯 가지 유형의 장소만 체크함으로써 잃어버린 지갑을 회수할 수 있다.


물론 구조론을 이해하지 못한 여러분은 "지갑이 오로지 5군데의 장소 중 한 곳에만 있으라는 밥이 어디에 있는가? 10군데 혹은 20군데라도 지갑을 찾을 때 까지 뒤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유형화에 실패하고 있다. 안주머니와 뒷주머니를 뒤져보았다면 2곳을 찾아본 것이 아니라 그냥 주머니 한 곳을 뒤져본 것이다.


우주왕복선을 만든다면? 엄청나게 많은 경우의 오류가능성이 있다. 100만가지쯤? 이 모든 가능성을 일일이 체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부품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주왕복선의 고장은 피할 수 없는가? 


천만에! 고장이 일어나는 패턴은 몇 가지 경우로 유형화할 수 있다. 고장유형에 대한 대응모델을 모듈화한다면 고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실제로는 어떤가? 많은 경우 이미 체크한 곳을 중복체크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미 확인한 곳을 중복하여 확인하는데 낭비하곤 한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체크해야할 곳을 체크하지 않아 우주왕복선발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엄청난 돈과 노력과 시간은 낭비된다.


우주왕복선이 고장난다면 그것은 부품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고장유형을 모듈화하고, 각 유형에 대한 대응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주왕복선의 고장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혀 뜻밖의 장소이고, 이는 고장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우주왕복선의 부품의 숫자가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설마 그 부분에서 고장이 날 것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구조론을 익힌다면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오류가능성은 5범주, 5유형, 5차원, 5분야로 제한됨을 알 수 있다. 곧 체크할 곳은 5군데 혹은 5가지 뿐이므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예상을 못하여 한 곳을 빠뜨린다든가 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범위를 단계적으로 압축해가는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초보운전자라면 보지 않아도 되는 뒷부분을 살피다가, 정작 눈앞에 있는 행인을 못 봐서 사고를 낸다. 능숙한 운전자라면 보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보지 않으므로 한 눈을 감고 운전해도 사고를 내지 않는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안봐도 되는 부분을 안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안봐도 되는 곳을 열심히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구조론은 이러한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줌으로써 공정을 최소화한다. 오류가 발생했을 때 피드백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앗! 이산이 아닌게벼"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후퇴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위에 예시한 컵의 오류가능성이 그렇다. "설탕으로 만든 컵은 오류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아마 웃을 것이다. "농담하냐? 어떤 바보가 설탕으로 컵을 만들겠냐?" 그러나 재질을 잘못 선택하여 열에 약한, 잘못 만들어진 컵은 시중에도 얼마든지 있다.


어떤 종류의 불량품 컵은 컵 안에 찍힌 무늬가 녹아내려 컵에 든 커피에 녹아든다. 이런 경우의 오류는 잘 간파하지 못한다. 제조업자는 컵을 단단하게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 설마 무늬가 녹아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시중에 처음 선보이는 신제품을 구매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어떤 고리부분, 손잡이로 연결되는 목 부분이 튼튼한 강철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똑 부러져서 못 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구조론을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설마 그 부분이 부러질까 하고 주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곳의 복잡한 기능에 결합이 없는데, 하필 접합부분, 손잡이부분, 전혀 부러질 것 같지 않던 부분이 똑 부러져 전체를 못 쓰게 된다면 원통한 일이다. 이런 오류들은 구조론에 대한 인식의 미비에 기초한 것이다.


모든 고장은 힘의 전달부분에서 일어난다. 이건 필수적으로 암기해야할 간단한 규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간단한 원리를 모르고 전혀 고장 날 가능성이 없는 곳을 조사해 보는데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결론적으로 구조의 문제는 결합의 문제이다. 결합의 반대는 분리다. 고로 구조론은 결합과 분리의 문제이다. 구조는 또 외부의 작용에 대응하고 내부의 이탈을 방지한다. 고로 결합과 분리가 각각 내부와 외부에 대응하므로 4가 된다. 여기에 교환성질을 더하여 총 5가 된다.


즉 구조론은 어떤 사물의 결합하거나 분리하거나 교환하는 성질이 안과 밖으로 각각 대응하는 것에 다섯 가지 경우에 관한 이론인 것이다.


컵의 구조는 간단하다. 고로 구조론을 응용할 필요도 없다. 구조하면 건축이다. 중요한 점은 건축에서의 오류가능성도 역시 컵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건물은 비와 바람과 외부에서의 침입자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고로 비와 결합하는 물질, 바람과 결합하는 물질, 외부의 침입자와 결합하는 물질로는 건축할 수 없다. 진흙은 물과 결합하기 때문에 진흙으로는 집을 짓지 않는다.


종이는 바람과 결합하여 바람에 날아가기 때문에 역시 종이로도 집을 짓지 않는다. 물론 금으로도 집을 짓지 않는다. 침입자가 금을 뜯어가기 때문이다. 동일하다. 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가능성은 100층짜리 건물에도 같은 형태로 일어난다.


구조의 기본개념은 최적화이다. 즉 중복을 제거함으로써 했던 짓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실생활에서 무수히 "했던 일 또 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하던 중 "이미 했던 일을 또 하게 된다"면 그것은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다.


최적화된 구조에서는 어떤 일이든 단번에 끝낼 수 있다. 동일한 작업을 두 번 반복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구조론설명(3)


'구조론'은 매우 쉽다. 필자는 사람들이 '구조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구조론은 매우 어렵다. 우선 필자조차도 구조론을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어휘를 수집하는데 애를 먹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조론은 세상 모든 것은 '5'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5'라는 숫자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편의상 숫자로 표현하고 있지만, 여기서 '5'는 굳이 숫자 5가 아니다. 숫자 '5'를 강조하는 것은 '질>입자>힘>운동>량'이라고 말하면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질은 무엇인가? 양은 무엇인가?


'질'과 '양'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필자를 제외하고 단 1명도 더 없을 것이다. 쉽게 가자. 그렇다면 질과 양을 합쳐서 '질량'은 무엇인가? '질'은 결합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양'은 쪼개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결합되지 않는 것을 쪼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 곧 '질량'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추상적인 사고에 약하다. '입자'란 무엇인가? '힘'이란 무엇인가? '운동'이란 무엇인가? 이런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쉽게 '5'로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5'라는 숫자에 집착해서는 구조론의 참다운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옛날에 어떤 수학자는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은 숫자로 되어 있다.' 이 명제는 틀렸다. 그러나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낼 수는 있다. 숫자는 기호다. 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 구조론의 5 역시 하나의 기호에 불과한 것이다.


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의 '2'로 되어있다. 여기서 시작과 끝이 중요한 것이지, '2'가 본질은 것은 아니다. 모든 개별자는 겉과 속, 안과 밖, 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 요소와 효과, 실체와 관계의 2로 나타낼 수 있다. 단지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그 숫자 2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구조론에 의하면 세상 모든 것은 '질>입자>힘>운동>량'의 5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는 구조론을 물리법칙에 적용했을 때이다. 구조론은 보편원리로서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이를테면 소설이나, 영화나,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다. 소설이라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5구조를 대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입자>힘>운동>량'의 어휘들에 집착해서도 안된다.


구조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용되는 추상개념으로서의 어휘들보다는 구조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어쨌거나 구조론이 증명하는 바 '내부에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모든 독립적 존재자'는 5요소의 최소구성단위를 가진다.


"왜 하필이면 5인가? 6이나 7이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가?"


숫자로 나타내기는 편리하지만 이렇게 오해를 유발한다. 오해이다. 구조론은 기능을 가진 독립된 단일 구조체를 해부한다. 그것은 '닫힌 계'이다. 하나의 구성체 내부에서 기능을 가진 구성요소의 수가 5를 넘을 수 없다. 구조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왜 5를 넘으면 구조가 붕괴하는가?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그 집은 기울어지고 종내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구조원리상 그러하다.


'시작과 끝'은 왜 둘일까? '시작과 중간과 끝'의 3단계로 만들수도 있다. 동서남북은 넷이지만 4방, 8방, 16방, 32방이 될 수도 있고 각도로 따지면 360도가 될 수도 있고, 세분하면 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 1년은 사계절이고, 하루는 24시간이다. 혹은 밤과, 낮이다. 혹은 밤과, 아침과, 오전과, 정오와, 오후와, 저녁과, 밤과, 새벽이다. 이러한 분류구분은 줄어서 1이 될 수도 있고, 늘어서 무한정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를 2로 혹은 4로 혹은 24로 나누는 것은 분류기준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 분류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2가 될 수도 있고 무한대가 될수도 있다.


구조론에서는 그 분류기준은 '기능'이다. 구조론에서 '5'라는 것은 기능을 가진 차별화된 요소의 수가 '5'라는 것이다. 여기서 요소이냐 요소가 아니냐를 구분하는 단위는 기능을 가졌느냐, 가지지 않았느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런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본의 어떤 목수가 유명한 건물을 한 채 지었다. 그 건물은 못을 단 한개만 사용하고 있는데, 그 못 하나를 뽑으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단지 못 하나만을 뽑았을 뿐인데 왜 건물전체가 무너질까? 이것이 구조다. 구조론도 이와 같다.


기능이 없는 즉, 없어도 되는 불필요한 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했을 때 5가 남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사실 없어도 되는 부분들이 무수하게 있다. 그 불필요한 부분을 하나하나 제거해 간다고 치자. 이제 더는 제거할 수 없는 어떤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어디든지, 단 하나만 제거해도 전체를 못 쓰게 된다. 기능이 정지하는 것이다. 이때 남은 것이 곧 5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준은 쓰느냐 못 쓰느냐 곧 '기능'이다.


자동차가 있다. 문짝이 없어도 차는 굴러간다. 트렁크가 없어도 차는 굴러간다. 의자의 시트를 제거해도 차는 굴러간다. 그러나 엔진이 없다면 그 차는 더 이상 차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제거해도 되는 것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더 이상 제거해서는 자동차일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남는 것이 5이다.


여기서 왜 하필이면 '기능'으로 구분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개별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곧 기능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자. 폐차된 자동차와 고철은 무엇이 다른가? 휴지와 연습장은 무엇이 다른가? 쇠덩어리와 쇠망치는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기능을 두고 사물을 판별한다.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면 곧 이쑤시개가 되는 것이다.


구조론에 의하면 어떤 하나의 사물에는 기능을 가진 구성요소의 수가 다섯 개 뿐이 없다. 왜 여섯이 아닌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기능은 배달된다. A에서 B로 기능이 배달되어야 한다. 배달되지 않으면 기능이 아니다.


여섯 개일 경우 하나가 남으므로 그 하나에는 기능이 배달되지 않는다. 즉 어떤 사물이 여섯 개의 구성요소를 가졌을 경우, 그 중 하나의 요소는 기능이 정지된다.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사용되지 않는 부분은 소거된다. 고로 다섯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법칙, 'A에서 B로 임의로운 전달이 있을 경우, 주는 쪽 A와 받는 쪽 B의 값은 동일해야 한다'. 즉 컴퓨터 A에서, 컴퓨터 B로 파일을 전송하려면,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동일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는 쪽은 MS워드인데 받는 쪽은 한글이라면, 파일의 전송은 불가능하다. 개미가 코끼리에게 건빵을 전달한다든가, 코끼리가 개미에게 비스킷을 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입력과 출력의 값은 항상 동일해야 한다'.


이는 기본적인 물리법칙이다. 구조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왜 '5'인가? '시작과 끝'은 2다. '시작=끝'으로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하여 양쪽의 값은 동일하다.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면, 시작과 끝으로 굳이 나눌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양자는 통일된다. 즉 시작과 끝은 합쳐져서 독림된 개별자로서의 구조체 1이다. 그런데 왜 시작과 끝의 2로 나뉘는가?


'시작과 끝'은 시간개념이다. 물리법칙의 시간성에 의해 개별자 1이, 기능의 2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나뉘어지지 않는다. 나누어지는 모든 것은 시간에 의존하고 있다.


질 1은 입자2로 나뉘어진다. 입자 1은 힘 2로 나뉘어진다. 힘1은 운동2로 나뉘어진다. 운동1은 량 2로 나뉘어진다. 양은 나뉘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양2는 합쳐져 운동 1이 되고, 운동 2는 합쳐져 힘 1이 되고, 힘 2는 합쳐져서 입자 1이 되고, 입자 2는 합쳐져 질 1이 된다. 질은 합쳐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뉘어지지 않는 것'을 '양'이라 하고, '합쳐지지 않는 것'을 '질'이라 한다. 질(質)이란 바탕이라는 뜻이다. 바탕이므로 합쳐지지 않는다. 합쳐진다면 결코 바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양(量)은 나뉘어지지 않는다. 양(量)은 헤아린다는 뜻이다. 나눠진다면 헤아릴 수 없다.


'흙'은 헤아릴 수 없다. 자꾸만 잘게 나눠지기 때문이다. '밀가루'도 헤아릴 수 없다. 자꾸만 잘게 나눠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것은 원자 알갱이다. 원자는 '양'으로 표시한다. 즉 '양'은 나눠지지 않는 원자인 것이다. 반대로 질은 더 이상 합쳐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은 나눠지지 않는 것과, 합쳐지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합쳐진다면 합쳐져서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개별자로 인정할 수가 없다. 나눠진다면 나눠져서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종이는 합쳐져서 '공책'이 된다. 종이 한 장은 하나의 입자이다. 질이 아니다. 종이의 질은 목재성분이다. 종이는 나무를 갈아서 만든 펄프를 합쳐놓은 것이다. 나무와 쇠는 합쳐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질이다.


여기서 '질'은 '절대로 합쳐지지 않는다'는 개념, 그리고 '양'은 '절대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개념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나 질과 양의 중간에서 입자와, 힘과, 운동은 나눠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한다. 운동이 합쳐지면 가속도가 되고, 입자가 나눠지면 에너지가 된다. 우리는 자연의 관찰을 통해서, 입자가 합쳐지거나 나눠지며, 힘과 운동도 역시 나눠지거나 합쳐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조론이 '5'로 완성되는 것은, 이 합쳐지거나 나눠지는 성질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질과 양에서 절대로 합쳐지거나 나눠지지 않는 성질 때문이다. 왜 6이나 7이 아니라 하필 5인가? 양은 더 이상 나눠지지 않기 때문이다. 양이 나눠진다면 6이나 7이나 8이나 9로 자꾸만 늘어날 수 있다. 무한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양'은 결코 나눠지지 않는다. 질이 합쳐진다면 역시 무한정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질은 어떤 경우에도 합쳐지지 않는다. 그곳이 더 이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계이다.


질과 양에서 변화는 정지한다. 입자와 힘과 운동은 변화하지만 질과 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해 양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론에 있어서 요소 판별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마찬가지로 질은 어떤 경우에도 합쳐지지 않고, 양은 어떤 경우에도 쪼개지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구조체의 요소의 수를 헤아릴 수 있다.


나무와 쇠가 합쳐진다면 나무와 쇠는 더 이상 질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무와 쇠를 합성하는데 성공한 과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물과 불은 합쳐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물과 불을 합성하는데 성공한 과학자는 없다. 물론 뛰어난 기술자는 구리와 아연이나 주석을 합쳐서 합금을 만들곤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질은 변하지 않았다. 설탕물 안에서 설탕과 물은 합쳐지지 않았으며, 소금물 안에서 소금 따로, 물 따로이다. 그 합금 안에서 구리성분과 주석 혹은 아연 성분은 마치 쇠 상자에 나무토막을 넣어두듯 완전히 합쳐지지 않고, 특수한 조직양상으로 분리된 채 결합상을 나타낼 뿐이다. 


왜 '질'은 합쳐지지 않는가? 합쳐지지 않는 것을 '질'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왜 '양'은 나눠지지 않는가? 나눠지지 않는 단계에서 '양'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질과 양의 절대로 합쳐지지 않고 절대로 나눠지지 않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구조론의 반은 이해한 셈이 된다.


여기에 '폐차'가 한 대 있다. 이 폐차를 두고 자동차로 분류할 지, 고철로 분류할 지는 기능이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양'인가 '질'인가는 그 기능이 결정한다. 그 기능에서 합쳐지는가? 나눠지는가? 의 여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능은 '전달'이다. 전달되지 않으면 '기능'이 아니다. 그런데 입력과 출력의 값은 항상 동일해야 한다. 기능에 의해 A에서 B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5'는 홀수다. 전달되려면 짝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최종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즉 일정한 구간 안에서 전달하되 질과 양에 의해 양쪽으로 차단되므로 최종적으로는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질과 양에 의해 차단되지 않고 무한정 전달된다면 어떻게 될까? 빠져나가버린다. 즉 에너지가 바깥으로 완전히 새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때 기능을 상실한다. 자동차는 승객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에너지가 새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승객이 타는 즉시 내려버린다. 또는 부산을 통과하여 계속 달린다. 즉 구멍난 호스처럼 중간에서 새나가는 것이다.


새지 않아야 한다. 서울에서 전달된 일이 부산에서 정확히 멈추어야 한다. 부산을 통과해서 지나쳐 가버린다면? 구조론이 '5'에서 끝나는 이유는 최종적으로 힘의 전달을 차단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즉 구조는 '에너지'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최종목적지에서 그 전달을 멈추는 것이다. 어디서 멈추는가? '양'에서 멈춘다. 어디서 멈추는가? 질에서 멈춘다. 고로 홀수인 '5'가 되는 것이다.


짝수의 경우를 보자. '시작과 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작은 끝이 되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이 경우 환원된다. 즉 서울에서 부산으로 배달한 상품이 다시 서울로 돌아와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서울에서 부친 물건이 정확하게 부산에 떨어지게 할 수 있는가? 구조론이 홀수인 5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힘을 전달하되, 원래의 위치에 되돌아오지는 않고, 특정의 타깃에 정확하게 멈추게 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곧 기능이다. 반면 기능이 아닌 경우를 보자. 강물이 흐른다. A에서 B로 간다. 계속 간다. 멈추지 않는다. 이때 기능은 상실한다. 우리는 그 강물을 이용할 수 없다. 차단해야 한다. 댐을 쌓아야 한다. 강물을 멈추게 해야지만 우리는 그 강물을 이용할 수 있다. 이용할 수 없는 것은 기능이 없는 것이다.


지구는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주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지구는 팽이처럼 돌면서 총알처럼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우리는 이용할 수 없다.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운동은 기능이 없으므로 정지해 있는 것과 같다.


멈추지 않고 통과해버리는 것을 우리는 이용할 수 없다.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능은 힘을 전달하되 특정 위치에서 멈추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왜 5인가? 어떤 하나의 개체에는 전달과 멈춤의 단위가 5개 있는 것이다.


가만히 멈추어 있기만 해도 기능이 아니다. 통과해버려도 역시 기능이 아니다. 전달과 멈춤이 동시에 공존해야 한다. 중심이 있다. 중심은 에너지다. 위로 전달하는 것이 입자이고 멈추는 것이 질이다. 아래로 전달하는 것은 운동이고 멈추는 것은 양이다.


여기까지에서 기억해야할 규칙들은?

질 : 합쳐지지 않는다.

양 : 쪼개지지 않는다.


1) 독립된 단일한 하나의 구조체를 이루는 구성요소의 수는 5다.

2) 구성요소의 판별기준은 기능이다.

3) 기능은 A에서 B로 배달한다.

4) 기능이 A에서 B로 배달할 때 A와 B 양쪽의 값은 동일해야 한다.

5) 기능이 배달하는 것은 결합과 분할이다.

6) 결합은 질에서 차단되고 분할은 양에서 차단된다.


하나의 닫힌 계(독립된 구조체) 내부에서 질은 결합을 차단한다. 양은 분할을 차단한다. 질은 합쳐지지 아니하고, 양은 쪼개지지 아니한다. 질과 양은 양쪽에서 닫힌 계의 괄호 [    ]를 이룬다. [<- 질   :   양 ->]가 된다. 질과 양쪽이 위와 아래에서 안팎으로 문을 걸어 잠근다. 이로서 하나의 독립된 '계'가 성립한다. 


질은 위에서 결합을 차단하므로, 반대로 아래쪽에서 내부적으로 결합을 개방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곧 입자다. 양은 아래에서 분할을 차단하므로 반대로 위쪽에서 내부적으로 분할을 개방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곧 운동이다. 가운데에서 입자의 결합과 운동의 분할을 교환하는 것이 곧 힘이다.


고로 독립된 단일 구조체로서의 '닫힌 계'의 구성요소의 수는 5가 된다.


본래는 구조체 1이며 구조체 1은 시간상에서 질과 양의 2다. 곧질과 양은 각각 결합과 분할 및 그 차단이다. 결합하였으므로 더 이상은 결합하지 않는 것이 질이며, 아직 결합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결합하는 것이 입자이고 반대로 분할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분할하는 것이 운동이고 반대로 이미 분할하였으므로 더는 분할하지 않는 것이 양이다. 중간에서 양자를 교환하는 것이 힘이다.


질 - 결합하였으므로 결합하지 않는다.

입자 - 결합하지 않았으므로 결합한다.

힘 - 결합과 분할을 교환한다.

운동 - 분할하지 않았으므로 분할한다.

량 - 분할하였으므로 분할하지 않는다.


구조체의 요소의 수는 위와 같이 5다. 왜 5인가? 본래는 닫힌 계 1이다. 닫힌 계 1은 일한다. 일은 결합과 분할이다. 곧 2다. 결합과 분할은 곧 질과 양이다. 질과 양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된 작용을 하는 것이 입자와 운동이다. 이제 4가 되었다. 질과 양은 중간의 힘에서 교환된다. 결국 5다.


여기서 5는 질과 양이 각각 가지는 결합과 분할의 이중성을 나타내어 4를 얻고, 양자의 교환을 나타내어 1을 추가하므로 최종적으로 5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5'라는 숫자에 집착해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본래는 구조체 1이고, 1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성을 가졌으며 그 이중성은 결합과 분할이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결합하고 분할하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 결합과 분할을 차단함으로써 닫힌 계를 독립시킨다.


여기서 '닫힌 계'의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닫힌 계는 외부와 구분되는 독립성을 의미한다. 질과 양이 결합과 분할을 차단함으로써, 바깥쪽으로 문을 걸어잠근다. 이로서 독립된 계가 형성된다. 곧 닫힌계이다. 이 닫힌 계 안에서 내부적으로 결합하고 분할하며 이를 교환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구조가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 이 다섯가지 요소 중 하나가 부족하면 구조는 붕괴한다. 하나가 남으면 그 부분은 기능하지 않으므로 소거된다.


하나의 소립자도 하나의 물건도 하나의 조직도 이러한 기능에 의하여, 비로소 그 존재가 성립되는 것이다. 반대로 열린계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 점은 지극히 미묘하므로 흔히 착각을 유발 할 수 있다.


'열린 계'에서 질은 결합한다. 그러나 이 결합은 내부적인 융합이 아니다. 즉 차단된 한도 바깥과의 교섭이며 실제로는 결합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공존이다. 말하자면 질이 다른 외부와 결합한 경우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별개로 독립된 채 이웃하여 공존한다.


망치가 있다. 망치는 도구이다. 도구는 사람의 손과 결합하고서야 비로소 기능한다. 그러나 이때 도구와 사람은 구분된다. 별도의 존재이다. 망치는 망치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둘은 섞이지 않는다. 고로 이는 일에서 물리적으로 결합이지만 진정한 융합이 아니다. 절대로 결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은 외부와 분할한다. 그러나 이 분할은 정반대의 의미이다. 즉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되어 구분되는 것이다. 금을 긋고, 간격을 띄우고, 격리된 채 분할하는 것이다. 이는 침투이다.


'열린 계'에서 외부적으로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전달하고 량은 침투한다. 반대로 닫힌 계에서 질은 외부와의 결합을 차단하고, 입자는 내부적으로 견고하게 결합하고, 힘은 분할과 결합을 교환하고, 운동은 분할하고, 양은 분할을 차단한다.


'닫힌 계'이냐 '열린 계'이냐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일한 하나의 개별자이냐 여러 가지가 뒤섞인 복합체이냐다. 하나의 구조는 하나의 '닫힌 계'를 중심으로 판별된다.


하나의 도구가 있다. 도구는 연필이다. 열린계는 연필과 사람의 손과의 관계이다. 연필의 질은 사람의 손과 결합한다. 즉 손에 쥐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융합된 것은 아니다. 분리된 채 결합되어 있다. 연필의 양은 사람의 손과 연필을 분할한다. 양에 의해 손과 연필 사이에는 차단된 것이다. 입자는 연필을 손에서 독립시킨다. 힘은 연필과 손을 교섭한다. 운동은 손에서 연필로 일을 전달한다. 양은 손에서 연필로 연필에서 종이로 침투한다.


이러한 '닫힌 계'와 '열린 계'의 차이를 통해 구조체를 이해할 수 있다. 사물들은 열린계로 뒤섞여 있다. 연필 뒤에는 지우개가 붙어있다. 이 지우개는 없어도 된다. 지우개가 붙지 않아도 연필은 독립적으로 기능을 가진다. 이 지우개를 분리하고 보는 것이 '닫힌 계'이다.


닫힌 계냐 열린 계냐는 간단히 내부냐 외부냐로 판단할 수 있다. 외부를 향한 작용은 무조건 열린 계이다. 내부를 향한 작용은 무조건 닫힌 계이다.


열린 계에서 질은 외부와 결합하고, 입자는 외부와 독립하고, 힘은 외부와 교섭하고, 운동은 외부로 전달하고, 양은 외부에 침투한다. 반대로 닫힌 계에서 질은 내부적으로 결합을 차단하고, 입자는 내부적으로 독립을 차단하고, 힘은 내부적으로 교섭을 차단하고, 운동은 내부적으로 전달을 차단하고, 양은 내부적으로 침투를 차단한다.


하나의 건물에 비유할 수 있다. 건물의 질은 그 건물의 울타리 곧 담장이다. 담장은 내부를 차단하고 외부를 수용한다. 건물의 벽은 입자다. 입자는 외부로부터 건물을 독립시키고 내부로부터 독립을 차단한다. 즉 내부의 뭔가가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조체는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지며 이 다섯 가지 기능은 실은 한 가지 기능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점이며 그 내용은 분할과 결합이다. 즉 구조는 분할과 결합을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한다. 그 전달이 곧 일이며 일은 기능이다. 일하지 않으면 기능이 아니며 기능이 아니면 구조가 아니다. 구조가 일을 하는 것은 교환 때문이다. 교환은 힘이며 힘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교환이다. 그 교환은 분할과 결합의 교환이다.


위치에너지가 있다. 댐에서 물을 낙하시킨다. 여기서 교환이 일어난다. 즉 위에서 분할하고 아래에서 결합하는 것이다. 이 결합과 분할의 교환을 우리는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곧 힘이다. 힘이 작용하는 모든 것은 결합과 분할과 교환이 있다.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주요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1) 결합

2) 분할

3) 교환


여기서 1)의 결합은 닫힌계의 외부와 내부에 각각 다르게 대응하므로 질과 입자의 2로 나눠지며 2) 분할도 역시 닫힌 계의 외부와 내부에 각각 다르게 대응하므로 운동과 양의 2로 나뉘어 진다. 여기에 교환의 1을 더하여 구조체는 5로 완성된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판단할 때 그 단일한 사물 안에서 결합기능과 분할기능을 판별할 수 있다. 그 결합과 분할은 각각 내부와 외부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양자를 교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교환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며 그 전달을 우리는 일로 명명한다.


자동차는 승객을 전달한다. 컵은 커피를 전달한다. 야구공은 투수의 힘을 타자의 방망이에게로 전달한다. 지구는 이 행성을 은하계의 가장자리로 전달하고 있다. 모든 구조체는 결국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그 전달은 항상 결합과 분할의 교환형태로 성립하며 이 일은 내부와 외부를 향하여 일어나고 있다. 이를 판단하여 우리는 구조체의 작용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내 컴퓨터에서 홍길동의 컴퓨터로 파일을 전달한다. 먼저 컴퓨터가 파일을 결합한다. 다음 패킷단위로 분할한다. 다음 교환한다. 이러한 결합과 분할과 교환에 의해 정보가 전달된다. 에너지의 작용도 역시 그러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합과 분할과 교환으로 하여 그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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