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로스쿨(LEET)

[학습자료]아주 색다른 독해 2

작성자러브맥스|작성시간09.02.19|조회수86 목록 댓글 0
운전하기와 읽기
초보자와 숙련자의 차이점

초보자
숙련자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시작한다.
머릿속으로 미리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그려본다.
아주 긴장해서 운전한다.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긴장을 해야 할 때와 이완해야 할 때를 구별한다.
앞만 보고 운동한다.
주위를 살피고 룸밀러, 사이드밀러를 보면서 운전한다.
오직 앞 차만 보고 운전한다.
앞, 뒤, 옆의 차를 살펴 예측하면서 운전한다.
운전하고 나면 아주 피곤하다. 그러나 효율은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효율이 높다.


글을 읽는 것은 운전하기와 같다.
운전 초보자와 숙련자들이 아주 다르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가 숙련자들은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하는 반면에 초보자들은 아주 긴장한 상태에서 운전을 한다. 그러다 보니 숙련자들은 운전을 하면서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기도 하고, 조수석의 물건을 다루기도 하지만 초보자들은 절대 양손을 운전대에서 놓지 않는다. 초보자들의 생각은 오로지 자신이 운전을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집중된다. 이렇게 볼 때, 숙련자들이 초보자들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운전을 한다.
글을 읽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읽기에 숙련이 된 사람들은 글읽기에 그렇게 큰 심리적 부담을 가지지 않지만, 글읽기 초보자들은 심리적 부담으로 인하여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다. 글읽기의 숙련자들이 여유를 가지고 필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비판하는 등 적극적인 독서에 에너지를 쏟는 반면에, 초보자들은 자신이 글을 제대로 읽는지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초보자들은 글을 읽기 전에 자기 최면을 통하여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한다. 즉, 글 읽기를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운전초보자들은 목적지에 대한 지도를 가지고 있고 전체적으로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하여 조사를 하지만, 실제 운전을 할 때 아무런 생각없이 운전을 해 나간다. 그렇지만 숙련된 운전자는 출발하기에 앞서 머릿속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은 다음에 운전대를 잡는다.
글을 읽을 때 초보자는 아무 생각없이 글을 읽기 시작하지만 숙련된 독서가는 목차나 제목을 통해 전체적인 글의 내용을 먼저 추리해 본다. 언어 시험에서 목차나 제목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발문과 선택지를 참고하거나 첫째 문장이나 첫째 문단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자연스럽게 상상해 보면서 글을 읽는다. 상상하면서 글을 읽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학생들이 이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글을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기도 바쁜데 언제 상상하면서 글을 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리고 상상하면서 읽기를 할 때 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걸리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예상하면서 읽으면 오히려 글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상한 내용대로 글이 흘러가면 내용 파악이 그만큼 쉽게 되고, 자신이 예상한 대로 글이 흘러가지 않으면 자신이 잘못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해서 읽기 전략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아무런 예상없이 글의 내용만 파악하는 경우와 달리 예상을 하면서 글을 읽을 때 글읽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운전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운전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숙련자는 긴장을 해야 할 때와 이완해야 할 때를 분명히 구별한다. 그래서 속도를 높여야 할 때는 긴장해서 운전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약간의 이완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읽기에도 이것이 그대로 적용된다. 긴장해서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별 신경 없이 그대로 대강대강 읽어내려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초보자들은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집중력으로 글을 읽는다. 이렇게 되면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글의 흐름을 잡지 못하게 된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흐름을 파악하면서 다음 글을 읽어보기로 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해야 할 세 가지 도덕적 상태로 ‘악덕’, ‘짐승 같음’과 더불어 아크라시아(akrasia)라고 불리는 ‘자제력 없음’을 든다. 통상 자제력 없음은 스스로 최선이라고 이성적 판단을 내린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는 없다. 그에 의하면 모든 악행은 무지의 탓일 뿐이다. 그러니 통상의 의미에서의 자제력 없음이란 소크라테스의 견해에서 보면 성립하지도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실제와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알면서도 자신이 내린 최선의 판단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는 것이다. 자제력 없는 사람도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는 그 나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백히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어느 순간에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 나쁜 행동을 선택할 뿐이다. 건강을 위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음식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자제력 없음이라고 본다면,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크라시아를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와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의 경우, 음식에 대한 욕구가 지금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성의 통제를 적어도 그 순간에는 제압한 듯이 보인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모욕을 당했음을 이성이 알려 주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싸워야 한다고 감정이 이끌어 가서 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욕구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보다 더 부끄러운 이유는 이성의 역할이 훨씬 더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크라시아는, ‘악덕’ 중의 하나로 아콜라시아(akolasia)라고 불리는 ‘무절제(방종)’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아크라시아와 아콜라시아는 육체적 욕구와 쾌락의 영역에 관계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격정, 명예, 승리 등 육체적인 쾌락이라 할 수 없는 것들도 아크라시아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크라시아가 관련되는 대상의 영역이 더 넓다.
대상의 영역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한다. 그것도 이성적 선택에 의해서 쾌락 자체를 추구한다. 그런 사람이 무절제한 사람이다. 무릇 이런 사람은 뉘우침이 없고, 뉘우침이 없는 자를 고칠 수는 없다. 뉘우침이 없는 것은 확고한 이성적 결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런 확고한 이성적 선택이라는 계기가 없는데도 과도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자제력 없는 사람이다. 바로 이것이 알면서도 자신의 앎과 다르게 실천한다고 하는 경우다.
자제력 없는 사람은 올바른 이치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만큼 욕구와 분노에 지배당하지만, 그 쾌락을 무한히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까지 지배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돌리도록 쉽게 설득되지만, 무절제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 무절제한 사람보다는 낫고, 또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고 보았다. 그가 당초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대충 보니까 철학에 관한 글이라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자신감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운 철학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읽으면 된다.
1문단에서 첫째 문장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악덕’, ‘짐승 같음’, ‘아크라시아라고 불리는 자제력 없음’을 소개하고 있는데, 독자는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고 상상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문장을 보니 바로 ‘아크라시아’를 정의해 놓고 있다. 이러면 독자는 ‘아, 아크라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에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아크라시아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대충 읽고 넘어가도 된다. 1문단에서 하고 싶은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크라시아’가 도대체 무엇인가이다.
둘째 문단의 첫째 문장은 표면적 의미 그대로 읽어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크라시아’의 개념이 성립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그 다음에 자제력 없음의 예를 구체적으로 들고 있으므로 뒷부분은 대강대강 읽어내려가며 시늉만 하면 된다.
셋째 문단에서는 아크라시아를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와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눈다는 정보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 부분은 그냥 눈길만 주고 지나가면 된다. 그 다음에 두 가지 경우에서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보다 더 부끄러운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 다음 문단에서 ‘아크라시아’와 ‘아콜라시아(무절제)를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다음 문단에서는 ‘아크라시아’와 ‘아콜라시아’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아콜라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아콜라시아’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자제력 없는 사람과 무절제한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자제력 없는 사람이 무절제한 사람보다 낫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제시하고 끝을 맺고 있다.

2008년 제공~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