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를 읽는 지하철안에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거나 흐뭇해지는 경험을 여러차례 하곤했다. 마치 일일 드라마를 보느것처럼 재미나고 보는 동안 홀가분해지고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왜일까?
토토는 자신의 느낌과 내면의 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한다. 너무나 정직해서 처음 입학했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반응은 당혹과 충격 그 자체였지 않았을까!! 토토가 수업중에 창가에 기대서 친동야를 기다리는 토토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두렵고 염려되고 긴장되며 당혹스러웠으리라. 아마도 담임 선생님에게는 순조로움? 순탄함 ? 편안함 아니면 협조가 절실하지 않았을까? 그 부분을 읽는 순간 그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공감해드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 아마도 선생님의 그 모습 속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도모에학원에서의 토토와 교장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너무 극적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침묵속에서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해서 듣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공감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와든 3분 동안이라도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동시에 오롯이 주의를 집중해서 듣기 위해 애쓰면서 난감해 하던 기억이 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정말 1시간 이상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것이 가능할까? 그 순간 토토는 정말 시원하고 신나고 뿌듯했으리라. 사람이 행복해지고 존귀해지는 순간의 처음은 누군가가 온전히 들어주는 경험을 했을 때가 아닐까?
학교가 벌써 개학을 해서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자리배치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쉬는 시간에 미리 자리를 바꿔 달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4주마다 또 바꿔야 하는데 그 때도 모르는 친구들과 같은 조가 되면 어떻게 하겠니? 하면서 결국 돌려보내고 말았다. 이어진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는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금방 후회를 했다. 교사는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역할이 춸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습관적으로 방어하는 데 급급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학생의 말을 교사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일, 멋진 일이다.
교사는 상담을 해도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질문1. 교사로서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질문2. 부모로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질문3. 30분 이상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