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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起이므로 空이요 無我다

작성자無二|작성시간08.04.21|조회수24 목록 댓글 0

           

 

          緣起이므로 空이요 無我다

왜 본래 부처요 짚이며 공이요 무아인가?를 규명해 봅시다

어찌하여 본래 부처요 짚이며 공이고 무아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연기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짚으로 만든  쌔끼줄이나 가마니나 망태 
      기나 짚신은 본 모습으로부터 만들어진 형상입니다 본래모습은 짚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과 같은 형상만 나라고 집착을 합니다. 형상을 만든 근본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근본이 형상이고 형상이 근본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곧, 형상과 근본이 들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나만 본래 부처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입니다.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입니다
이것을 알면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을 명화히 깨닫게 되고 비교를 하여 자기를 학대하거나
경쟁 속에서 고된 삶을 사는 어리석음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럼 모든 행복과 지혜를 다 갖추고 있는 본래 부처라는 사실은 어떻게 해야 이해를 할 수 있고
체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바로 <나>가 무아라는 것을 알 때 본래 부처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나>가 공空임을 깨달을 때 본래 부처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가 있다[有我]. 나만의 고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나의 행복을 만들어 내고 나를 내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나>는 자기 중심적이요 이기적인 <나>입니다 그 이기적인 나를 위해 우리는 참으로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그 <나>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고, 그 <나>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노력합니다.

하지만,이것이 중생의 착각이요,중생의 삶입니다.이러한 <나>를 내세우고 이러한 <나>를 위해
애를 쓰며 살다보면 어떻게 됩니까? 오히려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에 남의집 뒷간을 치워주며 살았던 소년 니제처럼 <나>를 구박하고 학대하고 비하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죽음이 임밖할 때가 되면 후회합니다.

한평생의 삶이 덧 없도다
참으로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해 한스럽다.
 
결국 <나>라는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고통스런 중생의 삶에서 해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 우리가 생존의 의미로 삼고 있는 나에서 벗어나 무아 無我
임을 알면 어떻게 되는가

<나>가 없다는 것을 알면,무아임을 알면 참으로 평등하고 기쁘고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위대한 작용이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납니다. 보래 부처를 회보하여 구름 걷힌 태양과 같은 빛을 발현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만물을 살려주는 태양이 되어 참으로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있어 <내가 없다>는 무아의 가르침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분명히 내가 듣고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아는 것이 있는 데 애 내가 없다고 하느냐 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부정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없습니다. <나>라고 할만한 실체가 었습니다.실체가 없기때문에 무아요,공입니다.
불자들이 즐겨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으로 시작 됩니다.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난과 액난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五蘊은 色,受 想 行 識입니다. 色에는 매우 포괄 적인 의미가 있지만  여기의 색은  우리의 몸, 육체를 가리키며 수,상,행,식은 정신 입니다.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가 공하다는 말씀입니다.곧, <나>가 공한 줄을 알고 나니까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조견 오온 개공>은 원래 <나>가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원애 <나>가 공임을
천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럼 왜 <나>가 공한가?

緣起이기 때문에 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합니다
<인생이 태어나고 성장해서  늙어 병들어 죽기 때문에 <공>이다
곧, 덧 없이 변하기 때문에 빈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합니다. 그러나 오온 개공의 참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온 개공을 생로병사에 대입을 시키면 태어 나는 것 그상태가 그대로 공입니다 성장하는 것도 공이요, 늙음과 병듦 그 자체가 공이며 죽음 자체가 공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매 순간 그대로가 오온 개공의 산태요 <나>가 없는 무아의 상태입니다.

왜?
바로 연기로써 있기 때문 입니다.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요, 무아라는 거십니다.

형상이 있거나 형상이 없거나 모든 것은 연기로써 존재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은 형상이 있는 것이요 형상이 없는 것에는 정신 작용과 허공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형상이 있거나 형상이 없거나 라는 말은 색계 무색계를 통틀어 말씀한 것이며 이 속에는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로써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기를 이해하면 불교를 이해하게 되고 우리의 존재원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내가 사는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를 알게 되며 또, 죽고 난 뒤에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이해하게 됩니다. 나아가 연기를 이해하면 아 내가 본래 그자리, 본래 부처의 자리를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해 하게 됩니다.

                                                                                        고우스님의 <연기법과 불교의 생활화>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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