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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이제는 결별할 때 : 윤순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작성자공예가|작성시간21.01.29|조회수449 목록 댓글 0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탈원전 논쟁이 뜨겁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전환이 우리 사회에서도 속도를 내야 할 때, 여전히 우리 사회가 탈원전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에 갇혀 있어 상당히 안타깝다. 에너지전환이란 기존의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기반한 중앙집중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대규모 공급지향적 에너지체계로부터 벗어나 에너지절략과 에너지 효율개선으로 수요를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립으로써 보다 소규모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에너지체계로 변화시켜 가는 흐름을 말한다. 한 때 원자력발전이 우리 사회 경제발전을 위한 동력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는 원전의 위험성이나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에 대해 잘 몰랐을 때였다. 몇 차례의 세계적인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이제 원자력발전기술의 위험성과 경제성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은 사양화되고 있다. 그게 인정해야 할 현실이고 마주해야 할 사실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가 무엇을 의미하고 시사하는 걸까? 미래는 그냥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 그 미래가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일 수 있도록, 미래세대에게서 빌려온 국토의 부양능력을 훼손함이 없이 되돌려 줌으로써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들 또한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 장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왜 이제는 더 이상 선택해서는 안 되는 에너지원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원자력발전산업은 사양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기술과 원전산업을 가진 몇 안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원전 기술이나 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한국은 이 점에서 원전산업의 미래에 상당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산업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우선, 원전산업의 추세와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원자력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영 가능한 원자로는 453기(399.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5기(56.6GWe)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WN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세계적으로 운전가능한 원자로는 450기(399.0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7기(62.0GWe)다. 하지만 2018년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2018, WNISR 2018)에 의하면, 2018년 7월 현재 전 세계 운전 중인 원자로는 413기(36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0기(48.5GWe)다. 이러한 차이는 운전가능한 원자로의 범위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IAEA와 WNA에서는 일본의 운전가능한 원자로를 각각 42기와 40기로 계상하고 있지만 일본의 전력 생산 중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둘 다 3.6%라고 밝히고 있다. 운전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전하고 있지 않은 원자로가 26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사실은 원전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게 아니라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러 통계를 관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원전 운전 국가는 대만을 중국이 아닌 별도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31개국이다. 아직 아랍에미리에이트(UAE)는 원전 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은 상태다. 2017년 현재 원전 발전량 상위 5개국은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한국으로 이 5개국의 원전발전량이 전세계 원전 발전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림 1>의 왼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2017년 현재 원자력발전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3%이다(WNA, 2019; WNISR 2018). 원전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7.5%를 기록했던 1996년으로 그 때 이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원전발전량이 가장 많았던 해는 2,660TWh을 기록한 2006년으로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12년에 2,461TWh로 2000년대 이후 가장 낮게 떨어졌다. 그 이후 조금씩 증가해서 2017년에 2,503TWh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2006년의 최고 발전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증가분조차 <그림 1>의 오른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중국효과가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2011년에서 2018년까지 새로 가동된 48기 중 60.4%인 29기가 중국에서였다. 중국의 원전발전량이 증가하면서 2017년 세계 원전발전량이 2016년에 비해 1%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원전생산량은 오히려 0.4% 감소하였다. 모두 중국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2016년 12월 이후부터는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안전규제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상승한 데다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1> 1990~2017년 전 세계 원전의 총 생산 전력량 변화와 전력 중 원자력 비중

2017년에는 신규 원자로가 단지 4기, 총 2GWe가 새로 가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같은 해 태양광 402GW, 풍력 539GW 등 총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가 2,195GW(수력발전 제외시 1,081GW) 늘어난 것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적은 용량임을 알 수 있다. 투자금 규모로 봤을 때도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는 2,798억 달러(50MW 이상 대수력발전을 포함할 경우 3,100억 달러)가 투자된 데 비해 원자력발전에 투입된 금액은 17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만큼 세계 원전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로의 원전의 가동년수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2018년 중반 평균 가동년수가 30년에 달했다. 그만큼 전세계 원전은 노후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총 원전의 60%가 넘는 254기는 31년 이상 운영되어 왔는데 특히 18.5%에 달하는 77기는 41년 이상 운영된 상태다. 노후화된 원전을 지속적으로 폐쇄해 나간다면 폐쇄한 원전만큼 건설하지 않는 한 향후 원전 규모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가동에 들어간 원자로는 9개국 53기였는데 이들의 건설 기간은 4.1년부터 43.5년으로 큰 차이가 있었으며 평균 건설기간은 10.1년이었다. 현재 건설 중인 50기(48.5 GW)로 평균 건설 기간은 6.5년으로 추산된다. 즉, 40년 설계수명이 종료되거나 60년으로 설계수명을 연장한다 해도 폐쇄되는 원자로만큼 새로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현재 전 세계 생산 전력의 절반은 기업들이 소비한다. 2014년부터, 향후 일정년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사용하자며 선언하고 나선 기업들의 모임이 있다. 바로 RE100이다. 2019년 1월 현재 161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BMW, GM, 스타벅스, 레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RE100기업들은 이제 협력업체들에도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시대에 걸맞는 기업경영활동으로 RE100을 주창하고 있는데 화석연료만이 아니라 원자력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점점 더 원자력발전이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자력 안전은 신화’일 뿐이다.

이러한 원자력발전의 감소 추세와 결과적인 사양화 추세는 무엇보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고 있는 걸까? 그건 원자력기술은 인간이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위험기술이란 사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앞선 원전 기술을 보유한 데다 어떤 다른 국가들보다 엄격한 안전관리로 정평이 나있던 일본에서 치명적인 원전사고가 일어났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원전정책에 상당한 시사점을 주었다.

이제껏 널리 거론되는 대표적인 원전사고로는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원인도 다르고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의 노형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고의 원인을 제어하면 된다거나 노형이 다른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제까지와 달리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원인에 의해, 노형이 다른 경우에도 얼마든지 원전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원전사고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Perrow, 1999)라 불릴만큼 기술의 내재적 속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상사고란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설계와 관리상 오류 또는 개인 잘못으로 유발된다기보다 기술 자체에 내재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하는 사고를 말한다(윤순진, 2011). 현대 사업사회의 기술 체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비정상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기술 운영 상태에서도 필연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정상사고라 지칭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원자력발전기술이다.

원전지지자들은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성이 강화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는 자연재난이나 인간의 실수는 예상 밖에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사고 원인을 피해갈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강화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전 강화는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안전성 강화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미 15미터가 넘는 지진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일어난 측면이 있는데 사고 전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그런 규모의 지진해일은 “상정 외”로 간주했다(최종민·윤순진, 2017).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는 경제성 악화로 귀결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국에서 원전 안전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원전 건설비용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문제는 이후 원전 경제성과 원전 수출 관련해서 다시 다루도록 한다.

한국의 원자력발전, 특별히 더 불안하다.

한국의 원전 시설용량은 국토 면적 대비 세계 최고이다. 즉,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2019년 2월 1일 신고리 4호기가 운영허가 승인을 받음으로써, 좁은 국토에 이미 25기 원전(23,929MW)이 가동 중에 있다. 다만 1983년에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679MW)는 2022년까지 10년 수명 연장된 상태지만 최근 경제성 악화로 조기 폐쇄가 결정되어 현재 가동 중지 상태라 운전 중인 원전은 24기다. 앞으로 2023년까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4기(5,600MW)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도 우리나라의 밀집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표 1>을 보면 한국을 제외한 밀집도 상위 6개국들로는 벨기에, 대만, 일본, 프랑스, 스위스가 있는데 이 국가들 중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거나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대만, 스위스는 이미 탈핵을 선언했고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줄여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정부에서는 원전 포기를 선언하지 않고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국민 여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표 1> 세계 주요 원자력발전 국가 현황(2019년 1월 현재)
1위2위3위4위5위6위세계
시설 용량
(GWe)*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399.0
99.363.143.038.928.022.5
원자로 수
(기)*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450
985845403624
건설 중 원자로
(기(GW))
중국인도러시아한국UAE미국57(62.0)
13(12.8)7(5.4)6(4.8)5(7.0)4(5.6)4(5.0)
원전 발전량
(TWh)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한국캐나다2,519
805.0379.1247.5187.5141.196.0
발전량 중
원전 비중(%)**
프랑스우크라이나헝가리벨기에스웨덴슬로베니아10.3
71.655.150.149.939.639.1
원전 밀집도
(kW/km2)
한국벨기에대만일본프랑스스위스-
224.2194.7103.3103.098.180.7
주: *시설용량은 현재 가동 중이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원자로를 모두 포함한 것임. WNISR(2018)에 의하면 일본은 8.7GW(9기)로 러시아와 한국이 각각 시설용량 세계 4,5위 국가가 됨.
**원자력 발전량 비중은 2017년 수치임. 프랑스를 제외한 6대 원전대국들의 원전발전량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20.0%, 중국 3.9%, 일본 3.6%, 러시아 17.8%, 한국 27.1%였음.
자료: World Nuclear Association 홈페이지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가진 더 심각한 문제점은 원전 부지당 입지한 원자로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즉, 국토 전체로 봐서 밀집도가 높을 뿐 아니라 <그림 2>에 제시된 것처럼 부지별 위험 집약도가 현저하게 높다. 전 세계적으로 부지당 원자로가 6기 이상 입지한 지역은 2016년 현재 188개 부지들 중 11곳인 6%에 불과하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42%(79곳)를 차지하는 2기 입지이다. 그 다음이 27%를 차지하는 1기(51곳)로 한두 기가 들어선 경우가 전체의 69%이다. 4기가 입지한 경우가 29곳으로 15%에 달하고 3기가 입지한 데가 18곳으로 1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해서 고리본부의 경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했음에도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완료되면 고리원전본부에 총 9기(10,150MW)가 입지하게 된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소내에 사용후 핵연료가 그대로 저장된 상태라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울진원전본부에는 총 8기의 원자로(8,700MW)가 입지하게 된다. 그만큼 사고로 인한 위험이 집약적이란 의미다.

<그림 2> 한국 원전 분포 현황과 세계적인 밀집도

게다가 발전소 주변지역 인구 수로 보면 위험성은 더 심각하다. 무려 380만 명이 고리원전으로부터 30km이내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원자로 8기(700MW)가 입지해 2위인 브루스 원전 주변지역 인구가 3만 명인 것과 대비된다. 고리원전만이 아니라 한빛원전과 한울원전, 월성원전이 한 부지당 시설용량 규모로 세계 각각 3위, 4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 부지 입지 원자로 수가 많다는 사실은 동일한 자연재난에 노출될 때 동시적이고 연쇄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시설용량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로 인해 누출될 방사능물질의 양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지역 인구 수가 많으니 그만큼 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인구가 많은 것이다. 위험의 증폭, 그것이 한국 상황이다.

화장실 없는 맨션,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흔히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으로 비유한다. 원자력발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특히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기술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1954년에 구 소련에서 오브닌스크 원자로를 처음으로 개발하고 1956년에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인 콜더홀 원자로를 가동한 이래 6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핀란드에서 심지층 처분시설을 짓고 있고 스웨덴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마련한 상태지만 아직 누구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 이들 두 나라는 한국과 달리 운영 중인 원자로가 각각 4기와 10기로 우리나라보다 적어서 폐기물의 양도 많지 않고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우리와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도 하다. 게다가 이 두 국가들에서도 아직 실제 운영 경험이 없어 고준위 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원전을 늘려가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소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해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에 내놓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는 2028년까지 중간저장 및 영구처분 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부터는 중간저장시설을, 2053년부터는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유일하게 중수로를 가진 월성 원전의 경우 2019년 포화될 전망이었으나 월성1호기 조기 폐쇄로 완전포화시점이 1~2년 지연된 상태다. 하지만 소내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으면 늦어도 2022년쯤부터는 소내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된다면 원전가동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표 2>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2018년 12월말 기준)
구분중수로경수로
월성(경주)*신월성(경주)고리(기장)새울(울주)한울(울진)한빛(영광)
저장용량(다발)169,6321,0468,1157807,0669,017
저장량(다발)138,0603866,2711005,5316,302
포화율(%)81.436.977.312.878.369.9
주: * 월성 중수로의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은 저장용량 330,000다발에 313,200다발 저장(94.9%)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2017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에 들어간 이래 앞으로 노후원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폐로 자체는 물론 폐로 후 발생할 고준위 폐기물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얼마 있지 않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의 규모와 입지에 대해서 공론화를 진행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소내 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될 상황을 고려해서 임시저장시설의 추가 설치에 대해서 시급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처 없이 원전을 건설만 하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원자력발전, 저렴하기는커녕 무척 비싼 에너지원이다.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이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주장은 원전의 경제성, 즉 원전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발전단가이다. 발전단가는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원별 정산단가로 계산된다. 발전원별 정산단가는 전력거래금액을 전력거래량으로 나눈 값으로 전력거래량 1kWh당 발전사업자에게 사후적으로 정산된 거래금액을 말한다. 발전단가는 시기에 따라 다르다. 시기별로 연료비가 달라지고 발전소 이용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1월부터 10월 사이 한전의 연료별 전력구입 정산단가를 살펴보면, kWh당 원자력은 60.86원이었던 데 비해 유연탄은 84.9원, LNG는 118.07원, 신재생에너지는 173.38원으로 원자력이 가장 쌌다. 그렇다면 원전이 정말 가장 싼 전원일까?

여기서 우리는 경제성 판단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는 발전단가 또는 정산단가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발전원별 발전원가 또는 정산단가는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세부항목을 알기 어렵다. 어떤 항목들이 비용 계산에 들어가 있는지, 각 항목당 비용이 적정하게 산정되어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걸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넘어 각 에너지원이 야기하는 시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런 요소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비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 현재의 발전단가가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단순 발전단가가 아니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 비용까지 더한 균등화발전 원가(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LCOE)란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원전 발전원가에는 일반적으로 건설비 단가와 운전 유지비, 송전 접속비, 연료비 같은 직접 비용만이 아니라 SOx와 NOx, CO2 배출 같은 환경비용,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과 같은 정책비용으로 구성되는 간접비용이 반영된다. 원자력발전의 경우 다른 발전원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비용들이 포함되는데 원전 해체비용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 같은 직접 비용에, 사고위험대응 비용이나 방폐장 주변지역 지원사업비, 지역자원시설세 등이 간접비용으로 들어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1MWh당 원전의 균등화발전원가가 한국은 40.42달러인데 비해 미국은 77.71달러, 일본은 87.57달러, 영국은 100.75달러로 한국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8년 연구보고서에서 원자력의 LCOE가 전국 기준으로 2017년엔 61.17원∼68.29원인데 비해 2030년에는 68.84원∼76.98원으로 소폭 상승하고 태양광은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같은 기간 118.65∼147.60원에서 66.03∼94.88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gency, EIA) 연구결과에서는 2022년 균등화 발전원가가 1㎿h당 풍력 64달러, 태양광 85달러, 원전 99달러로 원전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의 분석에서도 2025년 1MWh당 균등화 발전원가가 풍력 61파운드, 태양광 63파운드, 원전 95파운드 순으로 원전이 더 비쌌다. 많은 연구결과들에서 원전 경제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재생가능에너지 경제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국가별로나 연구기관별로 연구 결과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어떤 항목을 포함하는지, 포함된 각 항목을 얼마로 계산하는지가 다를 뿐 아니라, 국가마다 상황이 달라서 동일 항목에 대한 비용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균등화발전원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 이유는 뭘까? 우선 우리나라의 원자력 건설단가가 외국에 비해 훨씬 낮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년 보고서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에 따르면 kW당 건설비가 한국 231만 원(APR 1400), 일본(ABWR) 365만 원, 프랑스(EPR) 560만 원, 미국(3+세대 원자로) 640만 원이다. 실제로 용량 2.8GW인 신고리 5,6호기 건설비는 8조 6,254억 원인데 그보다 다소 적은 용량(2.4GW)의 미국 보글원전 3,4호기는 32조 원이 넘는다. 원전 지지자들은 한국의 원전 기술이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데 비해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업생태계가 무너지고 기술 수준이 퇴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여러 기를 한 부지에 몰아서 건설했기 때문에 행정비용과 입지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보글 3,4호기 건설비용이 늘어난 건 주 건설 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서 공기가 지연된 측면이 크다. 원전은 건설비용이 높아 금융 조달이 상당히 중요한데 공기가 지연되면 그만큼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자)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한 부지에 여러 기의 원자로를 집중 건설함으로써 부지 확보 비용이나 관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만큼 다수호기가 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자연 재난이나 테러 등의 위험에 여러 호기가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성과 경제성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국내 원전과 해외 원전의 안전 설비 내용과 수준이 동일한가의 문제도 있다. 단적인 예로 해외 신규 원전은 이중 격납고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내 모든 원전은 단일 격납고이다. 항공기가 격납고에 충돌할 경우 이중 격납고는 방사능 물질의 누출을 막을 수도 있지만 단일 격납고는 그렇지 못하다. 2007년에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이 충돌해서 원유 10,900톤이 유출되는 한국 역사상 최대 원유유출사고 있었는데 그 때 사고 규모가 커진 이유가 단일 선체였기 때문이란 점도 작용했다. 이중 장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에 취약함을 의미하지만, 단일 격납고를 채택하면 건설비가 저렴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APR1400’이 격납건물과 중대사고 관리설비에 관한 핀란드의 안전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는데 현재 우리는 그 정도의 기술력으로 국내 원전을 짓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중대 사고 발생시 총 손해 비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비용으로 원전 폐로와 오염 제거, 배상 비용 등을 모두 합해서 약 21조 5,000억 엔(약 215조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한전은 2018년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원전부지 4곳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총 손해비용을 추정하였다. 일본경제연구센터(Japan Center for Economic Research, JCER)에서 사용한 후쿠시마 사고 피해 비용 산정 방식을 적용할 경우, 고리 원전은 1,735조 원, 한울 원전은 284조 원, 월성 원전은 839조 원, 한빛 원전은 326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중대사고 발생 확률이 낮다 해도 혹시라도 그런 사고가 난다면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금액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원전은 결코 경제적인 발전원이 되기 어렵다.

현재 발전단가엔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비용의 포함 여부를 넘어 반영된 비용이 적정한가의 문제가 있다. 2017년 6월 영구 정지에 들어간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으로 6,437억 원을 산정했지만 한 번도 폐로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실제 해체 시 얼마나 많은 금액이 투입될지, 이 정도 비용으로 충분할지 알기 어렵다. 이미 폐로 경험이 있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원전은 현재 20년 이상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제까지 투입된 금액만도 약 43억 유로(약 6조 원)이다. 앞으로도 20~30년간 해체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폐로 비용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산정한 폐로 비용은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앞서 기술했듯이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처분기술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처분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는가? 결국 현재 널리 유포되어 있는 원전의 경제성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계산에 의한 것으로 신화나 허구에 가깝다.

원전 수출, 탈원전이 아니라 시장 소멸과 금융조달 능력 미비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 국내 탈원전을 반대하는 주된 논리는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탈원전을 하면서 다른 국가들에는 원전을 수출하는 이중적 태도가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과 탈원전으로 국내 원전산업생태계가 무너지면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져서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려면 국내에서 탈원전정책을 취하거나 원전이 축소되는 국가들은 원전을 수출할 수 없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국내적으로는 원전 축소정책을 펴거나 원전이 축소되어 왔지만 다른 국가들에 원전을 꾸준히 수출해왔다. 국내 원전 축소가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란 것이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발전량에서 75%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하고 총 58기 원전 중 14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로드맵을 마련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가장 최근에 완공한 원자로는 2000년부터 운영 중인 시브(Civaux) 2호기로 그 후에는 2007년에 착공해서 2020년에 완공할 예정인 플라망빌(Flamanville) 3호기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단 한 기의 원전을 건설했을 뿐이다. 2013년부터 건설에 들어간 원전으로 보글(Vogtle) 원전 3,4호기와 브이씨 써머(V.C. Summer) 3,4호기 등 4기가 있었지만 브이씨 써머 2기 건설은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세계 원전시장에서 미국은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이후 자국내 원전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중요한 행위자였다. 오히려 국내 원전시장의 축소와 침체 때문에 해외 원전 수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국가로 사고 이후 더 이상 예전 규모로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원전 수출에 부단히 노력했고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 이전에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시장이 존재하는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우리나라 기업이 승산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2000년 이후 원자력은 35GW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태양광은 399GW, 풍력은 497GW가 증가하였다.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 50MW 이상의 대규모 수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2,798억 달러(포함하면 3,100억 달러)가 투자되었지만 원자력엔 고작 170억 달러가 투자되었을 뿐이다. 태양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풍력에 투자된 금액만 2017년에 2,161억 달러로 태양광에 57%, 풍력에 38%가 투자되었다. 이제 세계 에너지시장의 원자력 비중은 너무나 낮은 상태이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설 계획 중인 원자로는 141기다. 이건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해서 이 계획대로 실현되리란 보장도 없지만 계획된 원자로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진출할 시장이 크지 않다. 141기의 30.5%에 달하는 43기는 중국에서 계획 중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13기를 건설 중이지만 2016년 12월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액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의 재생가능에너지 투자국이다. 무엇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중국은 더 이상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기술로 원전 건설을 하고 있어서 우리 기업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 다음으로는 러시아가 25기를 계획 중이지만 러시아 또한 자국 기술로 건설하기 때문에 수출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14기를 건설 중인 인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몰두하고 있어 수출시장이 거의 없으며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동유럽은 러시아와 훨씬 긴밀하다.

최근 일본의 원전 수출 계획 포기와 좌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해외 원전 수출 사업은 머잖아 전면 백지화될 전망이다. 히타치(Hitachi) 사는 2012년 11월 영국 원전회사인 호라이즌 뉴클리어 파워(Horizon Nuclear Power) 사를 인수해 2020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2,700㎿ 규모의 ‘와일파 뉴이드(Wylfa Newydd) 원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지난해 2018년 12월 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000억 엔(한화 약 3조 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안전대책 강화로 예상보다 증가한 건설비 마련이 어려워진 데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발전비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기 판매를 통한 투자비 회수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자 사업을 접은 것이다. 미쓰비시 사도 2013년 수주전 막판에 한국을 제치고 따낸 터키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에서 철수했다. 안전대책 비용 등이 급증하면서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0기 원전 중 33기 이상이 안전대책 강화로 당초 계획보다 수년 이상 완공이 지연되고 있고 그 사이 사업비는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원전 2기의 건설비가 3조 엔(약 31조 원)에 이를 정도로 원전은 건설비용이 엄청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대책이 강화되면서 건설비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 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금융조달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투자금은 건설 후 즉각 회수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운영과 전력 판매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방식이라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수십 년에 걸친 투자회수 기간 동안 핵 테러나 안전 및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민간이 투자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 한전이라는 공기업과 정부가 원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 적자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기에 국가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원전 수출을 국익이란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가능성 낮은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해 인력과 조직을 운용하기보다 폐로할 노후원전이 늘어날 상황을 고려해서 원전 해체시장을 겨냥한 해체 기술 개발과 전문가 양성 전략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특히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 건설 수주를 받는다 해도 해당 특허를 가진 나라(미국)에 기술료를 주고 그 나라에서 부품을 사와야 하기에 원전 건설 수주가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익이 크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차제에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검토와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원전산업회의에 따르면, 국내 원전 관련 기업과 기관은 원전발전사업체 2곳, 원자력공급산업체 509곳, 연구공공기관 26곳, 원자력 관련 대학 16곳 등 553개에 이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매해 실태조사가 이루어지는데 2016년 조사 결과가 가장 최근 자료이다. 553개 대상업체와 기관들 중 522개가 응답했는데 응답 결과를 보면 원자력산업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사업체 전체 매출액(비원자력분야 포함)은 2016년에 211조 5,259억 원으로 원자력 분야 순 매출액은 그 중 13.0%인 27조 4,513억 원을 차지할 뿐이다. 원자력발전사업체의 원자력분야 순 매출액 비중은 29.1%, 원자력공급산업체는 4.0%, 연구공공기관은 81.4%이다. 즉, 원자력공급산업체의 원자력 분야 매출은 4.0%로 원자력산업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원자력공급산업체는 원전 건설 및 운영이 89.4%(4조 9,187억원) 원자력 안전이 0.9%(493억 원), 원자력 연구가 0.2%(115억 원), 원자력 지원 관리가 5.7%(3,137억 원), 비파괴검사(Non-Destructive Test, NDT) 및 기타가 3.8%(2,103억 원)이다. 원전 건설과 운영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원자력 안전 분야 비중은 극히 낮다. 원자력 안전 분야 매출을 보면 폐기물관리·처분이 5.4억 원, 방사선 안전관리·규제가 487억 원, 품질관리·보증은 0억 원이다. 매출을 통해 살펴 본 이런 산업 구성은 원전 안전이 강화되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과제나 폐로시장이 늘어나면서 원전건설 시장이 세계적으로 사양화되는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아 어떻게든 재편이 필요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대응방안이 될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창되고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화석연료와 달리 발전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기체 배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책임 있는 접근이 아니다. 게다가 미세먼지는 당장의 현실이고 기후변화 또한 2도씨, 나아가 1.5도씨 온도 상승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원전은 공기가 길다. 2008년에서 2018년 7월 사이에 가동에 들어간 전 세계 55개 원자로의 평균 건설 기간은 10.1년이었다. 한국의 경우 해당 기간에 가동에 들어간 5기 원자로의 건설기간은 5.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하지만 여기서 건설기간은 말 그대로 원자력발전소라는 물리적 구조물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건설 이전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는 리드타임(lead time)을 고려한다면 원전 건설과 가동에 소요되는 기간은 더 길어진다. 설령 우리나라의 건설기간인 5.3년을 적용한다 해도 임박한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원자력발전은 수요의 변화에 상관없이 대량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도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아 전력 요금을 낮게 유지하도록 하고 낮은 전력요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전력 소비 절약이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게 된다. 결국 전력 낭비적인 생활패턴이나 산업구조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전력 소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효과를 야기한다. 원자력발전으로 전력을 100%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낮은 전력요금이 유지하기 위해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전력 소비 증가는 석탄 발전 전력 소비도 함께 늘림으로써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더욱 늘리는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에게 원자력 이외에 대안이 없다면 사고 위험이나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원자력을 택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소비 절약과 효율개선을 통한 에너지 소비 저감과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줄일 수 있는 낭비되는 에너지가 적지 않으며 기술 개선을 통해 동일한 에너지 서비스를 좀 더 적은 에너지 투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단가는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다. 2009년 이래 2017년까지 원자력의 세계 평균 균등화 발전원가는 20% 상승한 데 비해 풍력은 67%, 대규모 태양광은 86% 하락하였다. 재생가능에너지 또한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화석연료나 원자력과 비교한다면 환경영향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일 뿐 아니라 세심한 설계와 입지로 환경영향을 저감할 수 있다. 에너지, 특히 전력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전력을 생산해서 공급함으로써 설비에 대한 가시성을 높여 에너지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을 높일 수 있고 발전과 송배전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생산지와 경과지 주민에게 전가하지 않아 윤리적이며 지역 주민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함으로써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적합하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2017년 현재 전 세계 풍력 시설용량(515GWe)은 물론 태양광 시설용량(400GWe)에 비해 원전 시설용량(385GWe, 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53GWe)이 더 적은 상태다. 2000년 이후 설비용량 증가 추세를 보면 세계적 경향성이 더욱 뚜렷이 보이는데 원자력은 35GWe(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GWe)가 늘어난 데 비해 풍력은 497GWe, 태양광은 399GWe가 증가하였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3> 전 세계 원전과 태양광 풍력의 설비 용량 변화 추세

나가며: 원자력발전 없는 미래는 가능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허위보도 또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적지 않았다. “기승전 탈원전”이란 표현이 등장했듯이 에너지 관련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탈원전 탓으로 돌리는 기사들도 넘쳐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이 점차 축소, 사양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반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 확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OECD 36개 회원국들 가운데 현재 23개국(71%)이 원전을 보유하고 있지만 25개 나라가 원전이 없거나 중단 중이거나 특정 시점에 폐기하기로 한 상태이다. 탈원전을 명시적으로 발표한 OECD 국가들로는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이 있으며 비OECD 국가로 대만이 있다. 명시적인 발표가 없었다 해도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9년에 4기 건설을 발표했으나 경제성이 없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머 핵발전소 2·3호기의 건설이 중단되었고 35%의 원전이 조기폐쇄되거나 발전을 중단하기로 되어 있다. 중국도 2016년 12월 이후로는 신규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고 있고 베트남은 원전 건설을 포기했다. 기존 원전이 갈수록 노화되고 폐로될 예정이기에 폐로될 용량만큼 신규로 지어지지 않으면 원전 감소는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으로 소비량을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려가는 에너지전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RE100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길은 전 세계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발이 늦을수록, 속도가 늦을수록, 그만큼 비용 부담이 늘고 기업의 활로 모색이 지연될 뿐이다. 원자력발전은 한 때 우리 사회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원전은 이제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미래 성장동력으로서의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 효율개선기술과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기존 에너지체제의 유지 확장에 기여해온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을 활발하게 변화시켜서 에너지전환을 보다 힘 있고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오늘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와 미래세대에게 원자력 발전 없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현실로 가능해질 수 있다.원자력발전산업은 사양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기술과 원전산업을 가진 몇 안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원전 기술이나 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한국은 이 점에서 원전산업의 미래에 상당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산업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우선, 원전산업의 추세와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원자력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영 가능한 원자로는 453기(399.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5기(56.6GWe)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WN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세계적으로 운전가능한 원자로는 450기(399.0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7기(62.0GWe)다. 하지만 2018년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2018, WNISR 2018)에 의하면, 2018년 7월 현재 전 세계 운전 중인 원자로는 413기(36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0기(48.5GWe)다. 이러한 차이는 운전가능한 원자로의 범위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IAEA와 WNA에서는 일본의 운전가능한 원자로를 각각 42기와 40기로 계상하고 있지만 일본의 전력 생산 중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둘 다 3.6%라고 밝히고 있다. 운전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전하고 있지 않은 원자로가 26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사실은 원전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게 아니라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러 통계를 관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원전 운전 국가는 대만을 중국이 아닌 별도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31개국이다. 아직 아랍에미리에이트(UAE)는 원전 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은 상태다. 2017년 현재 원전 발전량 상위 5개국은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한국으로 이 5개국의 원전발전량이 전세계 원전 발전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림 1>의 왼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2017년 현재 원자력발전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3%이다(WNA, 2019; WNISR 2018). 원전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7.5%를 기록했던 1996년으로 그 때 이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원전발전량이 가장 많았던 해는 2,660TWh을 기록한 2006년으로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12년에 2,461TWh로 2000년대 이후 가장 낮게 떨어졌다. 그 이후 조금씩 증가해서 2017년에 2,503TWh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2006년의 최고 발전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증가분조차 <그림 1>의 오른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중국효과가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2011년에서 2018년까지 새로 가동된 48기 중 60.4%인 29기가 중국에서였다. 중국의 원전발전량이 증가하면서 2017년 세계 원전발전량이 2016년에 비해 1%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원전생산량은 오히려 0.4% 감소하였다. 모두 중국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2016년 12월 이후부터는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안전규제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상승한 데다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1> 1990~2017년 전 세계 원전의 총 생산 전력량 변화와 전력 중 원자력 비중

2017년에는 신규 원자로가 단지 4기, 총 2GWe가 새로 가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같은 해 태양광 402GW, 풍력 539GW 등 총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가 2,195GW(수력발전 제외시 1,081GW) 늘어난 것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적은 용량임을 알 수 있다. 투자금 규모로 봤을 때도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는 2,798억 달러(50MW 이상 대수력발전을 포함할 경우 3,100억 달러)가 투자된 데 비해 원자력발전에 투입된 금액은 17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만큼 세계 원전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로의 원전의 가동년수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2018년 중반 평균 가동년수가 30년에 달했다. 그만큼 전세계 원전은 노후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총 원전의 60%가 넘는 254기는 31년 이상 운영되어 왔는데 특히 18.5%에 달하는 77기는 41년 이상 운영된 상태다. 노후화된 원전을 지속적으로 폐쇄해 나간다면 폐쇄한 원전만큼 건설하지 않는 한 향후 원전 규모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가동에 들어간 원자로는 9개국 53기였는데 이들의 건설 기간은 4.1년부터 43.5년으로 큰 차이가 있었으며 평균 건설기간은 10.1년이었다. 현재 건설 중인 50기(48.5 GW)로 평균 건설 기간은 6.5년으로 추산된다. 즉, 40년 설계수명이 종료되거나 60년으로 설계수명을 연장한다 해도 폐쇄되는 원자로만큼 새로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현재 전 세계 생산 전력의 절반은 기업들이 소비한다. 2014년부터, 향후 일정년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사용하자며 선언하고 나선 기업들의 모임이 있다. 바로 RE100이다. 2019년 1월 현재 161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BMW, GM, 스타벅스, 레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RE100기업들은 이제 협력업체들에도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시대에 걸맞는 기업경영활동으로 RE100을 주창하고 있는데 화석연료만이 아니라 원자력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점점 더 원자력발전이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자력 안전은 신화’일 뿐이다.

이러한 원자력발전의 감소 추세와 결과적인 사양화 추세는 무엇보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고 있는 걸까? 그건 원자력기술은 인간이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위험기술이란 사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앞선 원전 기술을 보유한 데다 어떤 다른 국가들보다 엄격한 안전관리로 정평이 나있던 일본에서 치명적인 원전사고가 일어났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원전정책에 상당한 시사점을 주었다.

이제껏 널리 거론되는 대표적인 원전사고로는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원인도 다르고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의 노형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고의 원인을 제어하면 된다거나 노형이 다른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제까지와 달리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원인에 의해, 노형이 다른 경우에도 얼마든지 원전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원전사고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Perrow, 1999)라 불릴만큼 기술의 내재적 속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상사고란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설계와 관리상 오류 또는 개인 잘못으로 유발된다기보다 기술 자체에 내재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하는 사고를 말한다(윤순진, 2011). 현대 사업사회의 기술 체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비정상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기술 운영 상태에서도 필연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정상사고라 지칭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원자력발전기술이다.

원전지지자들은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성이 강화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는 자연재난이나 인간의 실수는 예상 밖에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사고 원인을 피해갈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강화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전 강화는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안전성 강화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미 15미터가 넘는 지진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일어난 측면이 있는데 사고 전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그런 규모의 지진해일은 “상정 외”로 간주했다(최종민·윤순진, 2017).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는 경제성 악화로 귀결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국에서 원전 안전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원전 건설비용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문제는 이후 원전 경제성과 원전 수출 관련해서 다시 다루도록 한다.

한국의 원자력발전, 특별히 더 불안하다.

한국의 원전 시설용량은 국토 면적 대비 세계 최고이다. 즉,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2019년 2월 1일 신고리 4호기가 운영허가 승인을 받음으로써, 좁은 국토에 이미 25기 원전(23,929MW)이 가동 중에 있다. 다만 1983년에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679MW)는 2022년까지 10년 수명 연장된 상태지만 최근 경제성 악화로 조기 폐쇄가 결정되어 현재 가동 중지 상태라 운전 중인 원전은 24기다. 앞으로 2023년까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4기(5,600MW)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도 우리나라의 밀집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표 1>을 보면 한국을 제외한 밀집도 상위 6개국들로는 벨기에, 대만, 일본, 프랑스, 스위스가 있는데 이 국가들 중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거나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대만, 스위스는 이미 탈핵을 선언했고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줄여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정부에서는 원전 포기를 선언하지 않고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국민 여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표 1> 세계 주요 원자력발전 국가 현황(2019년 1월 현재)
1위2위3위4위5위6위세계
시설 용량
(GWe)*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399.0
99.363.143.038.928.022.5
원자로 수
(기)*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450
985845403624
건설 중 원자로
(기(GW))
중국인도러시아한국UAE미국57(62.0)
13(12.8)7(5.4)6(4.8)5(7.0)4(5.6)4(5.0)
원전 발전량
(TWh)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한국캐나다2,519
805.0379.1247.5187.5141.196.0
발전량 중
원전 비중(%)**
프랑스우크라이나헝가리벨기에스웨덴슬로베니아10.3
71.655.150.149.939.639.1
원전 밀집도
(kW/km2)
한국벨기에대만일본프랑스스위스-
224.2194.7103.3103.098.180.7
주: *시설용량은 현재 가동 중이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원자로를 모두 포함한 것임. WNISR(2018)에 의하면 일본은 8.7GW(9기)로 러시아와 한국이 각각 시설용량 세계 4,5위 국가가 됨.
**원자력 발전량 비중은 2017년 수치임. 프랑스를 제외한 6대 원전대국들의 원전발전량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20.0%, 중국 3.9%, 일본 3.6%, 러시아 17.8%, 한국 27.1%였음.
자료: World Nuclear Association 홈페이지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가진 더 심각한 문제점은 원전 부지당 입지한 원자로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즉, 국토 전체로 봐서 밀집도가 높을 뿐 아니라 <그림 2>에 제시된 것처럼 부지별 위험 집약도가 현저하게 높다. 전 세계적으로 부지당 원자로가 6기 이상 입지한 지역은 2016년 현재 188개 부지들 중 11곳인 6%에 불과하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42%(79곳)를 차지하는 2기 입지이다. 그 다음이 27%를 차지하는 1기(51곳)로 한두 기가 들어선 경우가 전체의 69%이다. 4기가 입지한 경우가 29곳으로 15%에 달하고 3기가 입지한 데가 18곳으로 1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해서 고리본부의 경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했음에도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완료되면 고리원전본부에 총 9기(10,150MW)가 입지하게 된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소내에 사용후 핵연료가 그대로 저장된 상태라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울진원전본부에는 총 8기의 원자로(8,700MW)가 입지하게 된다. 그만큼 사고로 인한 위험이 집약적이란 의미다.

<그림 2> 한국 원전 분포 현황과 세계적인 밀집도

게다가 발전소 주변지역 인구 수로 보면 위험성은 더 심각하다. 무려 380만 명이 고리원전으로부터 30km이내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원자로 8기(700MW)가 입지해 2위인 브루스 원전 주변지역 인구가 3만 명인 것과 대비된다. 고리원전만이 아니라 한빛원전과 한울원전, 월성원전이 한 부지당 시설용량 규모로 세계 각각 3위, 4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 부지 입지 원자로 수가 많다는 사실은 동일한 자연재난에 노출될 때 동시적이고 연쇄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시설용량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로 인해 누출될 방사능물질의 양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지역 인구 수가 많으니 그만큼 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인구가 많은 것이다. 위험의 증폭, 그것이 한국 상황이다.

화장실 없는 맨션,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흔히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으로 비유한다. 원자력발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특히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기술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1954년에 구 소련에서 오브닌스크 원자로를 처음으로 개발하고 1956년에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인 콜더홀 원자로를 가동한 이래 6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핀란드에서 심지층 처분시설을 짓고 있고 스웨덴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마련한 상태지만 아직 누구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 이들 두 나라는 한국과 달리 운영 중인 원자로가 각각 4기와 10기로 우리나라보다 적어서 폐기물의 양도 많지 않고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우리와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도 하다. 게다가 이 두 국가들에서도 아직 실제 운영 경험이 없어 고준위 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원전을 늘려가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소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해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에 내놓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는 2028년까지 중간저장 및 영구처분 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부터는 중간저장시설을, 2053년부터는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유일하게 중수로를 가진 월성 원전의 경우 2019년 포화될 전망이었으나 월성1호기 조기 폐쇄로 완전포화시점이 1~2년 지연된 상태다. 하지만 소내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으면 늦어도 2022년쯤부터는 소내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된다면 원전가동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표 2>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2018년 12월말 기준)
구분중수로경수로
월성(경주)*신월성(경주)고리(기장)새울(울주)한울(울진)한빛(영광)
저장용량(다발)169,6321,0468,1157807,0669,017
저장량(다발)138,0603866,2711005,5316,302
포화율(%)81.436.977.312.878.369.9
주: * 월성 중수로의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은 저장용량 330,000다발에 313,200다발 저장(94.9%)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2017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에 들어간 이래 앞으로 노후원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폐로 자체는 물론 폐로 후 발생할 고준위 폐기물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얼마 있지 않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의 규모와 입지에 대해서 공론화를 진행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소내 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될 상황을 고려해서 임시저장시설의 추가 설치에 대해서 시급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처 없이 원전을 건설만 하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원자력발전, 저렴하기는커녕 무척 비싼 에너지원이다.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이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주장은 원전의 경제성, 즉 원전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발전단가이다. 발전단가는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원별 정산단가로 계산된다. 발전원별 정산단가는 전력거래금액을 전력거래량으로 나눈 값으로 전력거래량 1kWh당 발전사업자에게 사후적으로 정산된 거래금액을 말한다. 발전단가는 시기에 따라 다르다. 시기별로 연료비가 달라지고 발전소 이용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1월부터 10월 사이 한전의 연료별 전력구입 정산단가를 살펴보면, kWh당 원자력은 60.86원이었던 데 비해 유연탄은 84.9원, LNG는 118.07원, 신재생에너지는 173.38원으로 원자력이 가장 쌌다. 그렇다면 원전이 정말 가장 싼 전원일까?

여기서 우리는 경제성 판단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는 발전단가 또는 정산단가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발전원별 발전원가 또는 정산단가는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세부항목을 알기 어렵다. 어떤 항목들이 비용 계산에 들어가 있는지, 각 항목당 비용이 적정하게 산정되어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걸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넘어 각 에너지원이 야기하는 시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런 요소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비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 현재의 발전단가가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단순 발전단가가 아니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 비용까지 더한 균등화발전 원가(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LCOE)란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원전 발전원가에는 일반적으로 건설비 단가와 운전 유지비, 송전 접속비, 연료비 같은 직접 비용만이 아니라 SOx와 NOx, CO2 배출 같은 환경비용,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과 같은 정책비용으로 구성되는 간접비용이 반영된다. 원자력발전의 경우 다른 발전원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비용들이 포함되는데 원전 해체비용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 같은 직접 비용에, 사고위험대응 비용이나 방폐장 주변지역 지원사업비, 지역자원시설세 등이 간접비용으로 들어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1MWh당 원전의 균등화발전원가가 한국은 40.42달러인데 비해 미국은 77.71달러, 일본은 87.57달러, 영국은 100.75달러로 한국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8년 연구보고서에서 원자력의 LCOE가 전국 기준으로 2017년엔 61.17원∼68.29원인데 비해 2030년에는 68.84원∼76.98원으로 소폭 상승하고 태양광은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같은 기간 118.65∼147.60원에서 66.03∼94.88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gency, EIA) 연구결과에서는 2022년 균등화 발전원가가 1㎿h당 풍력 64달러, 태양광 85달러, 원전 99달러로 원전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의 분석에서도 2025년 1MWh당 균등화 발전원가가 풍력 61파운드, 태양광 63파운드, 원전 95파운드 순으로 원전이 더 비쌌다. 많은 연구결과들에서 원전 경제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재생가능에너지 경제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국가별로나 연구기관별로 연구 결과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어떤 항목을 포함하는지, 포함된 각 항목을 얼마로 계산하는지가 다를 뿐 아니라, 국가마다 상황이 달라서 동일 항목에 대한 비용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균등화발전원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 이유는 뭘까? 우선 우리나라의 원자력 건설단가가 외국에 비해 훨씬 낮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년 보고서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에 따르면 kW당 건설비가 한국 231만 원(APR 1400), 일본(ABWR) 365만 원, 프랑스(EPR) 560만 원, 미국(3+세대 원자로) 640만 원이다. 실제로 용량 2.8GW인 신고리 5,6호기 건설비는 8조 6,254억 원인데 그보다 다소 적은 용량(2.4GW)의 미국 보글원전 3,4호기는 32조 원이 넘는다. 원전 지지자들은 한국의 원전 기술이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데 비해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업생태계가 무너지고 기술 수준이 퇴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여러 기를 한 부지에 몰아서 건설했기 때문에 행정비용과 입지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보글 3,4호기 건설비용이 늘어난 건 주 건설 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서 공기가 지연된 측면이 크다. 원전은 건설비용이 높아 금융 조달이 상당히 중요한데 공기가 지연되면 그만큼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자)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한 부지에 여러 기의 원자로를 집중 건설함으로써 부지 확보 비용이나 관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만큼 다수호기가 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자연 재난이나 테러 등의 위험에 여러 호기가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성과 경제성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국내 원전과 해외 원전의 안전 설비 내용과 수준이 동일한가의 문제도 있다. 단적인 예로 해외 신규 원전은 이중 격납고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내 모든 원전은 단일 격납고이다. 항공기가 격납고에 충돌할 경우 이중 격납고는 방사능 물질의 누출을 막을 수도 있지만 단일 격납고는 그렇지 못하다. 2007년에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이 충돌해서 원유 10,900톤이 유출되는 한국 역사상 최대 원유유출사고 있었는데 그 때 사고 규모가 커진 이유가 단일 선체였기 때문이란 점도 작용했다. 이중 장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에 취약함을 의미하지만, 단일 격납고를 채택하면 건설비가 저렴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APR1400’이 격납건물과 중대사고 관리설비에 관한 핀란드의 안전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는데 현재 우리는 그 정도의 기술력으로 국내 원전을 짓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중대 사고 발생시 총 손해 비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비용으로 원전 폐로와 오염 제거, 배상 비용 등을 모두 합해서 약 21조 5,000억 엔(약 215조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한전은 2018년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원전부지 4곳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총 손해비용을 추정하였다. 일본경제연구센터(Japan Center for Economic Research, JCER)에서 사용한 후쿠시마 사고 피해 비용 산정 방식을 적용할 경우, 고리 원전은 1,735조 원, 한울 원전은 284조 원, 월성 원전은 839조 원, 한빛 원전은 326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중대사고 발생 확률이 낮다 해도 혹시라도 그런 사고가 난다면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금액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원전은 결코 경제적인 발전원이 되기 어렵다.

현재 발전단가엔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비용의 포함 여부를 넘어 반영된 비용이 적정한가의 문제가 있다. 2017년 6월 영구 정지에 들어간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으로 6,437억 원을 산정했지만 한 번도 폐로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실제 해체 시 얼마나 많은 금액이 투입될지, 이 정도 비용으로 충분할지 알기 어렵다. 이미 폐로 경험이 있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원전은 현재 20년 이상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제까지 투입된 금액만도 약 43억 유로(약 6조 원)이다. 앞으로도 20~30년간 해체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폐로 비용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산정한 폐로 비용은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앞서 기술했듯이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처분기술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처분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는가? 결국 현재 널리 유포되어 있는 원전의 경제성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계산에 의한 것으로 신화나 허구에 가깝다.

원전 수출, 탈원전이 아니라 시장 소멸과 금융조달 능력 미비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 국내 탈원전을 반대하는 주된 논리는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탈원전을 하면서 다른 국가들에는 원전을 수출하는 이중적 태도가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과 탈원전으로 국내 원전산업생태계가 무너지면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져서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려면 국내에서 탈원전정책을 취하거나 원전이 축소되는 국가들은 원전을 수출할 수 없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국내적으로는 원전 축소정책을 펴거나 원전이 축소되어 왔지만 다른 국가들에 원전을 꾸준히 수출해왔다. 국내 원전 축소가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란 것이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발전량에서 75%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하고 총 58기 원전 중 14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로드맵을 마련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가장 최근에 완공한 원자로는 2000년부터 운영 중인 시브(Civaux) 2호기로 그 후에는 2007년에 착공해서 2020년에 완공할 예정인 플라망빌(Flamanville) 3호기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단 한 기의 원전을 건설했을 뿐이다. 2013년부터 건설에 들어간 원전으로 보글(Vogtle) 원전 3,4호기와 브이씨 써머(V.C. Summer) 3,4호기 등 4기가 있었지만 브이씨 써머 2기 건설은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세계 원전시장에서 미국은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이후 자국내 원전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중요한 행위자였다. 오히려 국내 원전시장의 축소와 침체 때문에 해외 원전 수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국가로 사고 이후 더 이상 예전 규모로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원전 수출에 부단히 노력했고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 이전에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시장이 존재하는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우리나라 기업이 승산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2000년 이후 원자력은 35GW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태양광은 399GW, 풍력은 497GW가 증가하였다.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 50MW 이상의 대규모 수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2,798억 달러(포함하면 3,100억 달러)가 투자되었지만 원자력엔 고작 170억 달러가 투자되었을 뿐이다. 태양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풍력에 투자된 금액만 2017년에 2,161억 달러로 태양광에 57%, 풍력에 38%가 투자되었다. 이제 세계 에너지시장의 원자력 비중은 너무나 낮은 상태이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설 계획 중인 원자로는 141기다. 이건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해서 이 계획대로 실현되리란 보장도 없지만 계획된 원자로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진출할 시장이 크지 않다. 141기의 30.5%에 달하는 43기는 중국에서 계획 중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13기를 건설 중이지만 2016년 12월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액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의 재생가능에너지 투자국이다. 무엇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중국은 더 이상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기술로 원전 건설을 하고 있어서 우리 기업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 다음으로는 러시아가 25기를 계획 중이지만 러시아 또한 자국 기술로 건설하기 때문에 수출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14기를 건설 중인 인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몰두하고 있어 수출시장이 거의 없으며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동유럽은 러시아와 훨씬 긴밀하다.

최근 일본의 원전 수출 계획 포기와 좌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해외 원전 수출 사업은 머잖아 전면 백지화될 전망이다. 히타치(Hitachi) 사는 2012년 11월 영국 원전회사인 호라이즌 뉴클리어 파워(Horizon Nuclear Power) 사를 인수해 2020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2,700㎿ 규모의 ‘와일파 뉴이드(Wylfa Newydd) 원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지난해 2018년 12월 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000억 엔(한화 약 3조 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안전대책 강화로 예상보다 증가한 건설비 마련이 어려워진 데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발전비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기 판매를 통한 투자비 회수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자 사업을 접은 것이다. 미쓰비시 사도 2013년 수주전 막판에 한국을 제치고 따낸 터키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에서 철수했다. 안전대책 비용 등이 급증하면서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0기 원전 중 33기 이상이 안전대책 강화로 당초 계획보다 수년 이상 완공이 지연되고 있고 그 사이 사업비는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원전 2기의 건설비가 3조 엔(약 31조 원)에 이를 정도로 원전은 건설비용이 엄청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대책이 강화되면서 건설비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 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금융조달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투자금은 건설 후 즉각 회수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운영과 전력 판매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방식이라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수십 년에 걸친 투자회수 기간 동안 핵 테러나 안전 및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민간이 투자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 한전이라는 공기업과 정부가 원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 적자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기에 국가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원전 수출을 국익이란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가능성 낮은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해 인력과 조직을 운용하기보다 폐로할 노후원전이 늘어날 상황을 고려해서 원전 해체시장을 겨냥한 해체 기술 개발과 전문가 양성 전략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특히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 건설 수주를 받는다 해도 해당 특허를 가진 나라(미국)에 기술료를 주고 그 나라에서 부품을 사와야 하기에 원전 건설 수주가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익이 크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차제에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검토와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원전산업회의에 따르면, 국내 원전 관련 기업과 기관은 원전발전사업체 2곳, 원자력공급산업체 509곳, 연구공공기관 26곳, 원자력 관련 대학 16곳 등 553개에 이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매해 실태조사가 이루어지는데 2016년 조사 결과가 가장 최근 자료이다. 553개 대상업체와 기관들 중 522개가 응답했는데 응답 결과를 보면 원자력산업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사업체 전체 매출액(비원자력분야 포함)은 2016년에 211조 5,259억 원으로 원자력 분야 순 매출액은 그 중 13.0%인 27조 4,513억 원을 차지할 뿐이다. 원자력발전사업체의 원자력분야 순 매출액 비중은 29.1%, 원자력공급산업체는 4.0%, 연구공공기관은 81.4%이다. 즉, 원자력공급산업체의 원자력 분야 매출은 4.0%로 원자력산업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원자력공급산업체는 원전 건설 및 운영이 89.4%(4조 9,187억원) 원자력 안전이 0.9%(493억 원), 원자력 연구가 0.2%(115억 원), 원자력 지원 관리가 5.7%(3,137억 원), 비파괴검사(Non-Destructive Test, NDT) 및 기타가 3.8%(2,103억 원)이다. 원전 건설과 운영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원자력 안전 분야 비중은 극히 낮다. 원자력 안전 분야 매출을 보면 폐기물관리·처분이 5.4억 원, 방사선 안전관리·규제가 487억 원, 품질관리·보증은 0억 원이다. 매출을 통해 살펴 본 이런 산업 구성은 원전 안전이 강화되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과제나 폐로시장이 늘어나면서 원전건설 시장이 세계적으로 사양화되는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아 어떻게든 재편이 필요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대응방안이 될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창되고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화석연료와 달리 발전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기체 배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책임 있는 접근이 아니다. 게다가 미세먼지는 당장의 현실이고 기후변화 또한 2도씨, 나아가 1.5도씨 온도 상승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원전은 공기가 길다. 2008년에서 2018년 7월 사이에 가동에 들어간 전 세계 55개 원자로의 평균 건설 기간은 10.1년이었다. 한국의 경우 해당 기간에 가동에 들어간 5기 원자로의 건설기간은 5.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하지만 여기서 건설기간은 말 그대로 원자력발전소라는 물리적 구조물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건설 이전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는 리드타임(lead time)을 고려한다면 원전 건설과 가동에 소요되는 기간은 더 길어진다. 설령 우리나라의 건설기간인 5.3년을 적용한다 해도 임박한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원자력발전은 수요의 변화에 상관없이 대량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도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아 전력 요금을 낮게 유지하도록 하고 낮은 전력요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전력 소비 절약이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게 된다. 결국 전력 낭비적인 생활패턴이나 산업구조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전력 소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효과를 야기한다. 원자력발전으로 전력을 100%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낮은 전력요금이 유지하기 위해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전력 소비 증가는 석탄 발전 전력 소비도 함께 늘림으로써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더욱 늘리는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에게 원자력 이외에 대안이 없다면 사고 위험이나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원자력을 택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소비 절약과 효율개선을 통한 에너지 소비 저감과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줄일 수 있는 낭비되는 에너지가 적지 않으며 기술 개선을 통해 동일한 에너지 서비스를 좀 더 적은 에너지 투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단가는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다. 2009년 이래 2017년까지 원자력의 세계 평균 균등화 발전원가는 20% 상승한 데 비해 풍력은 67%, 대규모 태양광은 86% 하락하였다. 재생가능에너지 또한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화석연료나 원자력과 비교한다면 환경영향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일 뿐 아니라 세심한 설계와 입지로 환경영향을 저감할 수 있다. 에너지, 특히 전력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전력을 생산해서 공급함으로써 설비에 대한 가시성을 높여 에너지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을 높일 수 있고 발전과 송배전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생산지와 경과지 주민에게 전가하지 않아 윤리적이며 지역 주민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함으로써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적합하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2017년 현재 전 세계 풍력 시설용량(515GWe)은 물론 태양광 시설용량(400GWe)에 비해 원전 시설용량(385GWe, 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53GWe)이 더 적은 상태다. 2000년 이후 설비용량 증가 추세를 보면 세계적 경향성이 더욱 뚜렷이 보이는데 원자력은 35GWe(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GWe)가 늘어난 데 비해 풍력은 497GWe, 태양광은 399GWe가 증가하였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3> 전 세계 원전과 태양광 풍력의 설비 용량 변화 추세

나가며: 원자력발전 없는 미래는 가능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허위보도 또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적지 않았다. “기승전 탈원전”이란 표현이 등장했듯이 에너지 관련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탈원전 탓으로 돌리는 기사들도 넘쳐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이 점차 축소, 사양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반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 확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OECD 36개 회원국들 가운데 현재 23개국(71%)이 원전을 보유하고 있지만 25개 나라가 원전이 없거나 중단 중이거나 특정 시점에 폐기하기로 한 상태이다. 탈원전을 명시적으로 발표한 OECD 국가들로는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이 있으며 비OECD 국가로 대만이 있다. 명시적인 발표가 없었다 해도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9년에 4기 건설을 발표했으나 경제성이 없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머 핵발전소 2·3호기의 건설이 중단되었고 35%의 원전이 조기폐쇄되거나 발전을 중단하기로 되어 있다. 중국도 2016년 12월 이후로는 신규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고 있고 베트남은 원전 건설을 포기했다. 기존 원전이 갈수록 노화되고 폐로될 예정이기에 폐로될 용량만큼 신규로 지어지지 않으면 원전 감소는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으로 소비량을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려가는 에너지전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RE100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길은 전 세계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발이 늦을수록, 속도가 늦을수록, 그만큼 비용 부담이 늘고 기업의 활로 모색이 지연될 뿐이다. 원자력발전은 한 때 우리 사회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원전은 이제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미래 성장동력으로서의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 효율개선기술과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기존 에너지체제의 유지 확장에 기여해온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을 활발하게 변화시켜서 에너지전환을 보다 힘 있고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오늘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와 미래세대에게 원자력 발전 없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현실로 가능해질 수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원전기술과 원전산업을 가진 몇 안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원전 기술이나 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한국은 이 점에서 원전산업의 미래에 상당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산업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우선, 원전산업의 추세와 현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원자력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영 가능한 원자로는 453기(399.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5기(56.6GWe)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WNA)에 따르면, 2019년 1월 현재 세계적으로 운전가능한 원자로는 450기(399.0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7기(62.0GWe)다. 하지만 2018년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2018, WNISR 2018)에 의하면, 2018년 7월 현재 전 세계 운전 중인 원자로는 413기(363GWe), 건설 중인 원자로는 50기(48.5GWe)다. 이러한 차이는 운전가능한 원자로의 범위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IAEA와 WNA에서는 일본의 운전가능한 원자로를 각각 42기와 40기로 계상하고 있지만 일본의 전력 생산 중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둘 다 3.6%라고 밝히고 있다. 운전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전하고 있지 않은 원자로가 26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사실은 원전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게 아니라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여러 통계를 관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원전 운전 국가는 대만을 중국이 아닌 별도의 국가로 간주할 경우 31개국이다. 아직 아랍에미리에이트(UAE)는 원전 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은 상태다. 2017년 현재 원전 발전량 상위 5개국은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한국으로 이 5개국의 원전발전량이 전세계 원전 발전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림 1>의 왼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2017년 현재 원자력발전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3%이다(WNA, 2019; WNISR 2018). 원전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는 17.5%를 기록했던 1996년으로 그 때 이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원전발전량이 가장 많았던 해는 2,660TWh을 기록한 2006년으로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12년에 2,461TWh로 2000년대 이후 가장 낮게 떨어졌다. 그 이후 조금씩 증가해서 2017년에 2,503TWh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2006년의 최고 발전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증가분조차 <그림 1>의 오른쪽 그림에 제시된 것처럼 중국효과가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2011년에서 2018년까지 새로 가동된 48기 중 60.4%인 29기가 중국에서였다. 중국의 원전발전량이 증가하면서 2017년 세계 원전발전량이 2016년에 비해 1%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원전생산량은 오히려 0.4% 감소하였다. 모두 중국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2016년 12월 이후부터는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안전규제를 강화하면서 비용이 상승한 데다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1> 1990~2017년 전 세계 원전의 총 생산 전력량 변화와 전력 중 원자력 비중

2017년에는 신규 원자로가 단지 4기, 총 2GWe가 새로 가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같은 해 태양광 402GW, 풍력 539GW 등 총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가 2,195GW(수력발전 제외시 1,081GW) 늘어난 것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적은 용량임을 알 수 있다. 투자금 규모로 봤을 때도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는 2,798억 달러(50MW 이상 대수력발전을 포함할 경우 3,100억 달러)가 투자된 데 비해 원자력발전에 투입된 금액은 17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만큼 세계 원전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자로의 원전의 가동년수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2018년 중반 평균 가동년수가 30년에 달했다. 그만큼 전세계 원전은 노후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총 원전의 60%가 넘는 254기는 31년 이상 운영되어 왔는데 특히 18.5%에 달하는 77기는 41년 이상 운영된 상태다. 노후화된 원전을 지속적으로 폐쇄해 나간다면 폐쇄한 원전만큼 건설하지 않는 한 향후 원전 규모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가동에 들어간 원자로는 9개국 53기였는데 이들의 건설 기간은 4.1년부터 43.5년으로 큰 차이가 있었으며 평균 건설기간은 10.1년이었다. 현재 건설 중인 50기(48.5 GW)로 평균 건설 기간은 6.5년으로 추산된다. 즉, 40년 설계수명이 종료되거나 60년으로 설계수명을 연장한다 해도 폐쇄되는 원자로만큼 새로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현재 전 세계 생산 전력의 절반은 기업들이 소비한다. 2014년부터, 향후 일정년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사용하자며 선언하고 나선 기업들의 모임이 있다. 바로 RE100이다. 2019년 1월 현재 161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BMW, GM, 스타벅스, 레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RE100기업들은 이제 협력업체들에도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시대에 걸맞는 기업경영활동으로 RE100을 주창하고 있는데 화석연료만이 아니라 원자력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점점 더 원자력발전이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자력 안전은 신화’일 뿐이다.

이러한 원자력발전의 감소 추세와 결과적인 사양화 추세는 무엇보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에 시작된,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고 있는 걸까? 그건 원자력기술은 인간이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위험기술이란 사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앞선 원전 기술을 보유한 데다 어떤 다른 국가들보다 엄격한 안전관리로 정평이 나있던 일본에서 치명적인 원전사고가 일어났기에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원전정책에 상당한 시사점을 주었다.

이제껏 널리 거론되는 대표적인 원전사고로는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다. 이 사고들은 사고 발생 원인도 다르고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의 노형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고의 원인을 제어하면 된다거나 노형이 다른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제까지와 달리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원인에 의해, 노형이 다른 경우에도 얼마든지 원전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원전사고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Perrow, 1999)라 불릴만큼 기술의 내재적 속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상사고란 단순한 기술적 오류나 설계와 관리상 오류 또는 개인 잘못으로 유발된다기보다 기술 자체에 내재한 복잡성과 중층적 연결고리에서 기인하는 사고를 말한다(윤순진, 2011). 현대 사업사회의 기술 체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비정상상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기술 운영 상태에서도 필연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정상사고라 지칭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원자력발전기술이다.

원전지지자들은 원전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성이 강화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는 자연재난이나 인간의 실수는 예상 밖에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사고 원인을 피해갈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강화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전 강화는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안전성 강화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미 15미터가 넘는 지진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일어난 측면이 있는데 사고 전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그런 규모의 지진해일은 “상정 외”로 간주했다(최종민·윤순진, 2017).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는 경제성 악화로 귀결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국에서 원전 안전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원전 건설비용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 문제는 이후 원전 경제성과 원전 수출 관련해서 다시 다루도록 한다.

한국의 원자력발전, 특별히 더 불안하다.

한국의 원전 시설용량은 국토 면적 대비 세계 최고이다. 즉,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2019년 2월 1일 신고리 4호기가 운영허가 승인을 받음으로써, 좁은 국토에 이미 25기 원전(23,929MW)이 가동 중에 있다. 다만 1983년에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679MW)는 2022년까지 10년 수명 연장된 상태지만 최근 경제성 악화로 조기 폐쇄가 결정되어 현재 가동 중지 상태라 운전 중인 원전은 24기다. 앞으로 2023년까지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4기(5,600MW)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도 우리나라의 밀집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표 1>을 보면 한국을 제외한 밀집도 상위 6개국들로는 벨기에, 대만, 일본, 프랑스, 스위스가 있는데 이 국가들 중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거나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대만, 스위스는 이미 탈핵을 선언했고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줄여가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정부에서는 원전 포기를 선언하지 않고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국민 여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표 1> 세계 주요 원자력발전 국가 현황(2019년 1월 현재)
1위2위3위4위5위6위세계
시설 용량
(GWe)*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399.0
99.363.143.038.928.022.5
원자로 수
(기)*
미국프랑스중국일본러시아한국450
985845403624
건설 중 원자로
(기(GW))
중국인도러시아한국UAE미국57(62.0)
13(12.8)7(5.4)6(4.8)5(7.0)4(5.6)4(5.0)
원전 발전량
(TWh)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한국캐나다2,519
805.0379.1247.5187.5141.196.0
발전량 중
원전 비중(%)**
프랑스우크라이나헝가리벨기에스웨덴슬로베니아10.3
71.655.150.149.939.639.1
원전 밀집도
(kW/km2)
한국벨기에대만일본프랑스스위스-
224.2194.7103.3103.098.180.7
주: *시설용량은 현재 가동 중이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원자로를 모두 포함한 것임. WNISR(2018)에 의하면 일본은 8.7GW(9기)로 러시아와 한국이 각각 시설용량 세계 4,5위 국가가 됨.
**원자력 발전량 비중은 2017년 수치임. 프랑스를 제외한 6대 원전대국들의 원전발전량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20.0%, 중국 3.9%, 일본 3.6%, 러시아 17.8%, 한국 27.1%였음.
자료: World Nuclear Association 홈페이지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가진 더 심각한 문제점은 원전 부지당 입지한 원자로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즉, 국토 전체로 봐서 밀집도가 높을 뿐 아니라 <그림 2>에 제시된 것처럼 부지별 위험 집약도가 현저하게 높다. 전 세계적으로 부지당 원자로가 6기 이상 입지한 지역은 2016년 현재 188개 부지들 중 11곳인 6%에 불과하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42%(79곳)를 차지하는 2기 입지이다. 그 다음이 27%를 차지하는 1기(51곳)로 한두 기가 들어선 경우가 전체의 69%이다. 4기가 입지한 경우가 29곳으로 15%에 달하고 3기가 입지한 데가 18곳으로 1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해서 고리본부의 경우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했음에도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완료되면 고리원전본부에 총 9기(10,150MW)가 입지하게 된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소내에 사용후 핵연료가 그대로 저장된 상태라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울진원전본부에는 총 8기의 원자로(8,700MW)가 입지하게 된다. 그만큼 사고로 인한 위험이 집약적이란 의미다.

<그림 2> 한국 원전 분포 현황과 세계적인 밀집도

게다가 발전소 주변지역 인구 수로 보면 위험성은 더 심각하다. 무려 380만 명이 고리원전으로부터 30km이내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원자로 8기(700MW)가 입지해 2위인 브루스 원전 주변지역 인구가 3만 명인 것과 대비된다. 고리원전만이 아니라 한빛원전과 한울원전, 월성원전이 한 부지당 시설용량 규모로 세계 각각 3위, 4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 부지 입지 원자로 수가 많다는 사실은 동일한 자연재난에 노출될 때 동시적이고 연쇄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시설용량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로 인해 누출될 방사능물질의 양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지역 인구 수가 많으니 그만큼 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인구가 많은 것이다. 위험의 증폭, 그것이 한국 상황이다.

화장실 없는 맨션,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흔히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으로 비유한다. 원자력발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특히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기술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1954년에 구 소련에서 오브닌스크 원자로를 처음으로 개발하고 1956년에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인 콜더홀 원자로를 가동한 이래 6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핀란드에서 심지층 처분시설을 짓고 있고 스웨덴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마련한 상태지만 아직 누구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 이들 두 나라는 한국과 달리 운영 중인 원자로가 각각 4기와 10기로 우리나라보다 적어서 폐기물의 양도 많지 않고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우리와 상황이 상당히 다르기도 하다. 게다가 이 두 국가들에서도 아직 실제 운영 경험이 없어 고준위 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원전을 늘려가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소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해두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에 내놓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는 2028년까지 중간저장 및 영구처분 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부터는 중간저장시설을, 2053년부터는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유일하게 중수로를 가진 월성 원전의 경우 2019년 포화될 전망이었으나 월성1호기 조기 폐쇄로 완전포화시점이 1~2년 지연된 상태다. 하지만 소내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으면 늦어도 2022년쯤부터는 소내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된다면 원전가동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표 2>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저장 현황(2018년 12월말 기준)
구분중수로경수로
월성(경주)*신월성(경주)고리(기장)새울(울주)한울(울진)한빛(영광)
저장용량(다발)169,6321,0468,1157807,0669,017
저장량(다발)138,0603866,2711005,5316,302
포화율(%)81.436.977.312.878.369.9
주: * 월성 중수로의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은 저장용량 330,000다발에 313,200다발 저장(94.9%)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2017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에 들어간 이래 앞으로 노후원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폐로 자체는 물론 폐로 후 발생할 고준위 폐기물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얼마 있지 않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의 규모와 입지에 대해서 공론화를 진행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소내 저장시설이 완전 포화될 상황을 고려해서 임시저장시설의 추가 설치에 대해서 시급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처 없이 원전을 건설만 하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원자력발전, 저렴하기는커녕 무척 비싼 에너지원이다.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이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주장은 원전의 경제성, 즉 원전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발전단가이다. 발전단가는 한국전력공사의 발전원별 정산단가로 계산된다. 발전원별 정산단가는 전력거래금액을 전력거래량으로 나눈 값으로 전력거래량 1kWh당 발전사업자에게 사후적으로 정산된 거래금액을 말한다. 발전단가는 시기에 따라 다르다. 시기별로 연료비가 달라지고 발전소 이용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1월부터 10월 사이 한전의 연료별 전력구입 정산단가를 살펴보면, kWh당 원자력은 60.86원이었던 데 비해 유연탄은 84.9원, LNG는 118.07원, 신재생에너지는 173.38원으로 원자력이 가장 쌌다. 그렇다면 원전이 정말 가장 싼 전원일까?

여기서 우리는 경제성 판단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는 발전단가 또는 정산단가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발전원별 발전원가 또는 정산단가는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세부항목을 알기 어렵다. 어떤 항목들이 비용 계산에 들어가 있는지, 각 항목당 비용이 적정하게 산정되어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걸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넘어 각 에너지원이 야기하는 시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런 요소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비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 현재의 발전단가가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단순 발전단가가 아니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 비용까지 더한 균등화발전 원가(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LCOE)란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원전 발전원가에는 일반적으로 건설비 단가와 운전 유지비, 송전 접속비, 연료비 같은 직접 비용만이 아니라 SOx와 NOx, CO2 배출 같은 환경비용,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과 같은 정책비용으로 구성되는 간접비용이 반영된다. 원자력발전의 경우 다른 발전원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비용들이 포함되는데 원전 해체비용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비용,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 같은 직접 비용에, 사고위험대응 비용이나 방폐장 주변지역 지원사업비, 지역자원시설세 등이 간접비용으로 들어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할 때 1MWh당 원전의 균등화발전원가가 한국은 40.42달러인데 비해 미국은 77.71달러, 일본은 87.57달러, 영국은 100.75달러로 한국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8년 연구보고서에서 원자력의 LCOE가 전국 기준으로 2017년엔 61.17원∼68.29원인데 비해 2030년에는 68.84원∼76.98원으로 소폭 상승하고 태양광은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같은 기간 118.65∼147.60원에서 66.03∼94.88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gency, EIA) 연구결과에서는 2022년 균등화 발전원가가 1㎿h당 풍력 64달러, 태양광 85달러, 원전 99달러로 원전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의 분석에서도 2025년 1MWh당 균등화 발전원가가 풍력 61파운드, 태양광 63파운드, 원전 95파운드 순으로 원전이 더 비쌌다. 많은 연구결과들에서 원전 경제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재생가능에너지 경제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국가별로나 연구기관별로 연구 결과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어떤 항목을 포함하는지, 포함된 각 항목을 얼마로 계산하는지가 다를 뿐 아니라, 국가마다 상황이 달라서 동일 항목에 대한 비용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균등화발전원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 이유는 뭘까? 우선 우리나라의 원자력 건설단가가 외국에 비해 훨씬 낮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년 보고서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에 따르면 kW당 건설비가 한국 231만 원(APR 1400), 일본(ABWR) 365만 원, 프랑스(EPR) 560만 원, 미국(3+세대 원자로) 640만 원이다. 실제로 용량 2.8GW인 신고리 5,6호기 건설비는 8조 6,254억 원인데 그보다 다소 적은 용량(2.4GW)의 미국 보글원전 3,4호기는 32조 원이 넘는다. 원전 지지자들은 한국의 원전 기술이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데 비해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산업생태계가 무너지고 기술 수준이 퇴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여러 기를 한 부지에 몰아서 건설했기 때문에 행정비용과 입지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보글 3,4호기 건설비용이 늘어난 건 주 건설 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서 공기가 지연된 측면이 크다. 원전은 건설비용이 높아 금융 조달이 상당히 중요한데 공기가 지연되면 그만큼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자)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한 부지에 여러 기의 원자로를 집중 건설함으로써 부지 확보 비용이나 관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만큼 다수호기가 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다. 동일한 자연 재난이나 테러 등의 위험에 여러 호기가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성과 경제성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국내 원전과 해외 원전의 안전 설비 내용과 수준이 동일한가의 문제도 있다. 단적인 예로 해외 신규 원전은 이중 격납고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내 모든 원전은 단일 격납고이다. 항공기가 격납고에 충돌할 경우 이중 격납고는 방사능 물질의 누출을 막을 수도 있지만 단일 격납고는 그렇지 못하다. 2007년에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이 충돌해서 원유 10,900톤이 유출되는 한국 역사상 최대 원유유출사고 있었는데 그 때 사고 규모가 커진 이유가 단일 선체였기 때문이란 점도 작용했다. 이중 장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에 취약함을 의미하지만, 단일 격납고를 채택하면 건설비가 저렴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APR1400’이 격납건물과 중대사고 관리설비에 관한 핀란드의 안전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는데 현재 우리는 그 정도의 기술력으로 국내 원전을 짓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중대 사고 발생시 총 손해 비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비용으로 원전 폐로와 오염 제거, 배상 비용 등을 모두 합해서 약 21조 5,000억 엔(약 215조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한전은 2018년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원전부지 4곳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때 총 손해비용을 추정하였다. 일본경제연구센터(Japan Center for Economic Research, JCER)에서 사용한 후쿠시마 사고 피해 비용 산정 방식을 적용할 경우, 고리 원전은 1,735조 원, 한울 원전은 284조 원, 월성 원전은 839조 원, 한빛 원전은 326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중대사고 발생 확률이 낮다 해도 혹시라도 그런 사고가 난다면 이런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금액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원전은 결코 경제적인 발전원이 되기 어렵다.

현재 발전단가엔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비용의 포함 여부를 넘어 반영된 비용이 적정한가의 문제가 있다. 2017년 6월 영구 정지에 들어간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으로 6,437억 원을 산정했지만 한 번도 폐로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실제 해체 시 얼마나 많은 금액이 투입될지, 이 정도 비용으로 충분할지 알기 어렵다. 이미 폐로 경험이 있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원전은 현재 20년 이상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제까지 투입된 금액만도 약 43억 유로(약 6조 원)이다. 앞으로도 20~30년간 해체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폐로 비용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산정한 폐로 비용은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앞서 기술했듯이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처분기술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처분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을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는가? 결국 현재 널리 유포되어 있는 원전의 경제성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계산에 의한 것으로 신화나 허구에 가깝다.

원전 수출, 탈원전이 아니라 시장 소멸과 금융조달 능력 미비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 국내 탈원전을 반대하는 주된 논리는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탈원전을 하면서 다른 국가들에는 원전을 수출하는 이중적 태도가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과 탈원전으로 국내 원전산업생태계가 무너지면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져서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려면 국내에서 탈원전정책을 취하거나 원전이 축소되는 국가들은 원전을 수출할 수 없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국내적으로는 원전 축소정책을 펴거나 원전이 축소되어 왔지만 다른 국가들에 원전을 꾸준히 수출해왔다. 국내 원전 축소가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란 것이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발전량에서 75%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하고 총 58기 원전 중 14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로드맵을 마련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가장 최근에 완공한 원자로는 2000년부터 운영 중인 시브(Civaux) 2호기로 그 후에는 2007년에 착공해서 2020년에 완공할 예정인 플라망빌(Flamanville) 3호기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단 한 기의 원전을 건설했을 뿐이다. 2013년부터 건설에 들어간 원전으로 보글(Vogtle) 원전 3,4호기와 브이씨 써머(V.C. Summer) 3,4호기 등 4기가 있었지만 브이씨 써머 2기 건설은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세계 원전시장에서 미국은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이후 자국내 원전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중요한 행위자였다. 오히려 국내 원전시장의 축소와 침체 때문에 해외 원전 수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국가로 사고 이후 더 이상 예전 규모로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은 원전 수출에 부단히 노력했고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 이전에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시장이 존재하는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우리나라 기업이 승산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2000년 이후 원자력은 35GW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태양광은 399GW, 풍력은 497GW가 증가하였다. 2017년, 재생가능에너지에 50MW 이상의 대규모 수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2,798억 달러(포함하면 3,100억 달러)가 투자되었지만 원자력엔 고작 170억 달러가 투자되었을 뿐이다. 태양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풍력에 투자된 금액만 2017년에 2,161억 달러로 태양광에 57%, 풍력에 38%가 투자되었다. 이제 세계 에너지시장의 원자력 비중은 너무나 낮은 상태이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설 계획 중인 원자로는 141기다. 이건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해서 이 계획대로 실현되리란 보장도 없지만 계획된 원자로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진출할 시장이 크지 않다. 141기의 30.5%에 달하는 43기는 중국에서 계획 중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13기를 건설 중이지만 2016년 12월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액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의 재생가능에너지 투자국이다. 무엇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중국은 더 이상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 기술로 원전 건설을 하고 있어서 우리 기업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 다음으로는 러시아가 25기를 계획 중이지만 러시아 또한 자국 기술로 건설하기 때문에 수출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14기를 건설 중인 인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몰두하고 있어 수출시장이 거의 없으며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동유럽은 러시아와 훨씬 긴밀하다.

최근 일본의 원전 수출 계획 포기와 좌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해외 원전 수출 사업은 머잖아 전면 백지화될 전망이다. 히타치(Hitachi) 사는 2012년 11월 영국 원전회사인 호라이즌 뉴클리어 파워(Horizon Nuclear Power) 사를 인수해 2020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2,700㎿ 규모의 ‘와일파 뉴이드(Wylfa Newydd) 원전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지난해 2018년 12월 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000억 엔(한화 약 3조 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안전대책 강화로 예상보다 증가한 건설비 마련이 어려워진 데다 태양광과 풍력 등의 발전비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기 판매를 통한 투자비 회수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자 사업을 접은 것이다. 미쓰비시 사도 2013년 수주전 막판에 한국을 제치고 따낸 터키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에서 철수했다. 안전대책 비용 등이 급증하면서 채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50기 원전 중 33기 이상이 안전대책 강화로 당초 계획보다 수년 이상 완공이 지연되고 있고 그 사이 사업비는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원전 2기의 건설비가 3조 엔(약 31조 원)에 이를 정도로 원전은 건설비용이 엄청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대책이 강화되면서 건설비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 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금융조달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투자금은 건설 후 즉각 회수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운영과 전력 판매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방식이라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수십 년에 걸친 투자회수 기간 동안 핵 테러나 안전 및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민간이 투자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 한전이라는 공기업과 정부가 원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 적자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기에 국가적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원전 수출을 국익이란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가능성 낮은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해 인력과 조직을 운용하기보다 폐로할 노후원전이 늘어날 상황을 고려해서 원전 해체시장을 겨냥한 해체 기술 개발과 전문가 양성 전략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특히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 건설 수주를 받는다 해도 해당 특허를 가진 나라(미국)에 기술료를 주고 그 나라에서 부품을 사와야 하기에 원전 건설 수주가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익이 크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차제에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검토와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원전산업회의에 따르면, 국내 원전 관련 기업과 기관은 원전발전사업체 2곳, 원자력공급산업체 509곳, 연구공공기관 26곳, 원자력 관련 대학 16곳 등 553개에 이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매해 실태조사가 이루어지는데 2016년 조사 결과가 가장 최근 자료이다. 553개 대상업체와 기관들 중 522개가 응답했는데 응답 결과를 보면 원자력산업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사업체 전체 매출액(비원자력분야 포함)은 2016년에 211조 5,259억 원으로 원자력 분야 순 매출액은 그 중 13.0%인 27조 4,513억 원을 차지할 뿐이다. 원자력발전사업체의 원자력분야 순 매출액 비중은 29.1%, 원자력공급산업체는 4.0%, 연구공공기관은 81.4%이다. 즉, 원자력공급산업체의 원자력 분야 매출은 4.0%로 원자력산업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음을 시사한다. 원자력공급산업체는 원전 건설 및 운영이 89.4%(4조 9,187억원) 원자력 안전이 0.9%(493억 원), 원자력 연구가 0.2%(115억 원), 원자력 지원 관리가 5.7%(3,137억 원), 비파괴검사(Non-Destructive Test, NDT) 및 기타가 3.8%(2,103억 원)이다. 원전 건설과 운영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원자력 안전 분야 비중은 극히 낮다. 원자력 안전 분야 매출을 보면 폐기물관리·처분이 5.4억 원, 방사선 안전관리·규제가 487억 원, 품질관리·보증은 0억 원이다. 매출을 통해 살펴 본 이런 산업 구성은 원전 안전이 강화되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의 과제나 폐로시장이 늘어나면서 원전건설 시장이 세계적으로 사양화되는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아 어떻게든 재편이 필요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대응방안이 될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주창되고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화석연료와 달리 발전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기체 배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것처럼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책임 있는 접근이 아니다. 게다가 미세먼지는 당장의 현실이고 기후변화 또한 2도씨, 나아가 1.5도씨 온도 상승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대응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원전은 공기가 길다. 2008년에서 2018년 7월 사이에 가동에 들어간 전 세계 55개 원자로의 평균 건설 기간은 10.1년이었다. 한국의 경우 해당 기간에 가동에 들어간 5기 원자로의 건설기간은 5.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하지만 여기서 건설기간은 말 그대로 원자력발전소라는 물리적 구조물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건설 이전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는 리드타임(lead time)을 고려한다면 원전 건설과 가동에 소요되는 기간은 더 길어진다. 설령 우리나라의 건설기간인 5.3년을 적용한다 해도 임박한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원자력발전은 수요의 변화에 상관없이 대량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발전단가에 사회·환경비용이 충분하고도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아 전력 요금을 낮게 유지하도록 하고 낮은 전력요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전력 소비 절약이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게 된다. 결국 전력 낭비적인 생활패턴이나 산업구조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전력 소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효과를 야기한다. 원자력발전으로 전력을 100%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낮은 전력요금이 유지하기 위해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전력 소비 증가는 석탄 발전 전력 소비도 함께 늘림으로써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더욱 늘리는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에게 원자력 이외에 대안이 없다면 사고 위험이나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원자력을 택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소비 절약과 효율개선을 통한 에너지 소비 저감과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줄일 수 있는 낭비되는 에너지가 적지 않으며 기술 개선을 통해 동일한 에너지 서비스를 좀 더 적은 에너지 투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단가는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다. 2009년 이래 2017년까지 원자력의 세계 평균 균등화 발전원가는 20% 상승한 데 비해 풍력은 67%, 대규모 태양광은 86% 하락하였다. 재생가능에너지 또한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화석연료나 원자력과 비교한다면 환경영향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일 뿐 아니라 세심한 설계와 입지로 환경영향을 저감할 수 있다. 에너지, 특히 전력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전력을 생산해서 공급함으로써 설비에 대한 가시성을 높여 에너지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을 높일 수 있고 발전과 송배전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을 생산지와 경과지 주민에게 전가하지 않아 윤리적이며 지역 주민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함으로써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적합하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공급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2017년 현재 전 세계 풍력 시설용량(515GWe)은 물론 태양광 시설용량(400GWe)에 비해 원전 시설용량(385GWe, 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53GWe)이 더 적은 상태다. 2000년 이후 설비용량 증가 추세를 보면 세계적 경향성이 더욱 뚜렷이 보이는데 원자력은 35GWe(장기가동중지 원전을 제외하면 3GWe)가 늘어난 데 비해 풍력은 497GWe, 태양광은 399GWe가 증가하였다.

출처: Schneider et al., WNISR 2018

<그림 3> 전 세계 원전과 태양광 풍력의 설비 용량 변화 추세

나가며: 원자력발전 없는 미래는 가능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허위보도 또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적지 않았다. “기승전 탈원전”이란 표현이 등장했듯이 에너지 관련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탈원전 탓으로 돌리는 기사들도 넘쳐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이 점차 축소, 사양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반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 확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OECD 36개 회원국들 가운데 현재 23개국(71%)이 원전을 보유하고 있지만 25개 나라가 원전이 없거나 중단 중이거나 특정 시점에 폐기하기로 한 상태이다. 탈원전을 명시적으로 발표한 OECD 국가들로는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이 있으며 비OECD 국가로 대만이 있다. 명시적인 발표가 없었다 해도 미국은 1979년 쓰리마일 섬 원전사고 후 신규 원전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2009년에 4기 건설을 발표했으나 경제성이 없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서머 핵발전소 2·3호기의 건설이 중단되었고 35%의 원전이 조기폐쇄되거나 발전을 중단하기로 되어 있다. 중국도 2016년 12월 이후로는 신규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고 있고 베트남은 원전 건설을 포기했다. 기존 원전이 갈수록 노화되고 폐로될 예정이기에 폐로될 용량만큼 신규로 지어지지 않으면 원전 감소는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으로 소비량을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려가는 에너지전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RE100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길은 전 세계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발이 늦을수록, 속도가 늦을수록, 그만큼 비용 부담이 늘고 기업의 활로 모색이 지연될 뿐이다. 원자력발전은 한 때 우리 사회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원전은 이제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미래 성장동력으로서의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 효율개선기술과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기존 에너지체제의 유지 확장에 기여해온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을 활발하게 변화시켜서 에너지전환을 보다 힘 있고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오늘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와 미래세대에게 원자력 발전 없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현실로 가능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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